기쿠지로의 여름
菊次郎の夏
1999 · 코미디/드라마 · 일본
2시간 1분 ·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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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기다리던 여름방학. 하지만 마사오는 전혀 즐겁지 않다. 할머니는 매일 일을 나가시느라 바쁘고 친구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다나 시골로 놀러 가버려 외톨이가 되었기 때문. 어느 날 먼 곳에 돈을 벌러 가셨다는 엄마의 주소를 발견한 마사오. 그림 일기장과 방학숙제를 배낭에 넣고 엄마를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친절한 이웃집 아줌마는 직업도 없이 빈둥거리는 전직 야쿠자 남편 기쿠지로를 마사오의 보호자로 동행시킨다. 왕복 600km의 여정. 그러나 그 여행은 마사오도 기쿠지로도 잊을 수 없는 생애 최고의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는데... 52세 철없는 어른과 9세 걱정많은 소년. 그들이 마침내 찾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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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JH
5.0
아이인 마사오는 아이가 되고, 어른인 기쿠지로가 어른이 되는 이야기. 일본인이 만드는 특유의 여름과 잔잔한 감성이 잘 드러난다. 슬픈 장면 없이도 눈물이 나게 하는 이 특별함이 좋다.
멋진 씬세계
4.0
여름이 오면 생각나는 영화가 아니라 보고나면 여름이 오는 영화.
Suji Lee
5.0
스포일러가 있어요!!
검쥐로귀를파는귀지국공쥐띠혜디팥뒤공쥐
5.0
오지짱재밌는놀이졸라많이알아
수우
4.0
스포일러가 있어요!!
김폴더
3.5
지구는 너를 중심으로 돌지 않아. 혹 상처받을까 마사오를 위해 기꺼이 가까이서 지구를 돌려주고자 부단히 애쓰던 그 해, 기쿠지로의 여름.
Leslie
5.0
스포일러가 있어요!!
rol
4.5
코미디의 윤리적 전환: 기타노 다케시의 <기쿠지로의 여름> <기쿠지로의 여름>은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팬이 되면 그의 필모그래피를 주행할 때 필히 거칠 작품으로, 영화 깨나 봤다 하는 영화광들 사이에서는 “<하나비>보단 <소나티네>, <기쿠지로의 여름>보단 <키즈 리턴>”이라며 자신의 안목을 즐겁게 정립할 비교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처럼 주로 이 영화는 지루한 템포의 코미디, 즉흥적이고 헐거운 서사로 파악된 채 기타노 다케시의 쉬어가는 범작으로 분류되곤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타노 특유의 하드보일드한 폭력 미학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다소 유치하고 실망스러운, 미학화의 정도를 넘어 비윤리적으로 보이는 면이 분명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기타노 다케시가 만든 90년대 작품들의 흐름을 생각했을 때 <기쿠지로의 여름>은 확실히 기타노 다케시적인 영화, 그리고 보태자면 전작 <하나비>보다 더 나아가 그의 초기 작품세계를 아우르는 윤리적인 영화라고까지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기쿠지로의 여름>은 이전 그가 보여준 거친 세계와 별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일찍이 기타노가 “웃긴다는 사실만 제외하고 나면 코미디는 어떤 장르보다 폭력적입니다”라고 얘기한 것처럼, 코미디에는 슬랩스틱의 마찰과 충돌, 상대를 조롱하며 가학적인 웃음을 이끌어내는 폭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폭력성의 외상은 주인공 소년이 아저씨 등의 문신을 보고 악몽을 꾸며 귀신의 환영에 시달리거나, 아저씨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는 장면 같은 징후로 드러나게 되죠. 그러나 여전히 그의 밝고 실없는 코미디가 못 미덥고 비장미 넘치는 야쿠자식 폭력 미학이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 분들께는 이런 반문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의 폭력 미학을 지지한 이유는 폭력으로 점화되는 폭발력이 아니라, 폭력을 대하는 방식에 있지 않던가요? 데뷔작의 제목 그대로, 그 남자는 정말 흉포하다고 믿고 계시나요? 저는 처음으로 돌아가 이 영화의 구조와 인물이 어떻게 폭력을 다루고 있는지 차례로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아저씨는 늘 타인에게 폭언을 일삼고 재물을 갈취하곤 하는 삼류 건달입니다. 더구나 젊었을 적 어떤 일에 몸담았던 건지 등짝에 무시무시한 이레즈미 문신이 가득 채워져 있죠. 일련의 행동거지를 봐도 그는 다분히 폭력적인데다 무책임하고, 이 빈정대는 주인공을 어디까지 지켜봐야 할지 의문이 듭니다. 그러나 영화는 곧잘 그것을 경계하고 제어하는 묘사 방식을 취해 보입니다. 경륜장에서 소년의 뒤통수를 때리는 장면은 실은 벗어놓은 소년의 헬멧을 때린 것이었고, 트럭을 태워주지 않는 운전수의 뒤통수엔 차마 짱돌을 던지지 못했고, 운전수와 싸울 땐 냉혈한의 모습을 드러내는 듯 그를 폭행하지만 그 도구는 다행히 쇠파이프가 아닌 나무막대기였습니다. 심지어 리조트 값 계산도 했어요. 이는 모두 나중에 밝혀지는 구성으로, 폭력의 수위를 조절하고 도덕의 테두리에 아슬아슬하게 안착시키는 반전 효과를 갖습니다. 애초에 그의 등에 그려진 ‘한야’ 문신은 소년을 잡아먹는 악귀이지만 그 내면의 악을 억누르기 위해 봉인한다는 뜻이 담겨있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그는 정말로 어떤 인물일까요. 제 눈엔 자기 잘못을 알고 매번 도망치기 일쑤인, 변태 아저씨에게 뭘 하려고 했는지 바지를 벗어 보이고 궁금해하는 이상한 순수성의, 소년에게 어설픈 길잡이 역할을 하는 맹인 검객 자토이치의 무력한 버전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더해 그의 신체는 지나치게 순수한 기질인 나머지 수영을 못 하고 물속에 코를 박거나, 운전을 못해 엔진이 불타도록 비틀비틀 차를 모는 모습을 보이죠. 그런가 하면 그는 탁자 위에서 수영을 연습해보고, 몰래 탭댄스를 춰보고, 저글링을 기어코 해내고 마는 어린아이의 무구한 욕망도 가졌습니다. 이렇듯 그는 <소나티네>의 야쿠자들보다 더욱 동심에 사로잡힌 신체와 정신을 지닌 어른입니다. 그에게 폭력은 떼를 쓰는 어린 마음이지 억압적 분출이 아닌 것이죠. 이런 인물은 기타노의 장기인,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에서 역설적으로 선한 공기를 형성해내는 연출에 크게 일조합니다. 한마디로 그의 코미디에는 인식과 관습을 뒤집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영화에 '코미디의 윤리적 전환'이라고 할 만한 기제가 유희적으로 작동된다고 봅니다. 이러한 전환의 과정에서 인물들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헤매고 떠돕니다. 마치 운명처럼, 버려진 사람들이 버려진 길 위에 섰습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이런 곳에서 영화를 찍으려고 생각할까요. 잡목들이 제멋대로 마구 우거져 있고 더러운 강물이 흐릅니다. 휴양소마저 싸구려 실내 장식을 자랑하고, 버스 한 대 오지 않는 낡은 정류소에다가 심지어 ‘출입금지’ 팻말이 잔디밭에 못 박혀 있죠. 절대 개발될 것 같지 않은, 남루하고 질척이는 곳들. 영화에 사용되는 효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이라고도 할 수 없을 오버랩이나, 물 컵 아래서 보는 맥주 붓기, 잠자리의 눈으로 보는 시점 등. 참 귀여우나 예술적 실험이라 말하긴 민망한 것들입니다.(소년의 꿈은 일견 구로사와 아키라적이긴 하죠...ㅎㅎ) 하지만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조잡한 장소들과 어우러지는 조야한 효과는 맹아 상태의 순수지대를 적나라하게 펼쳐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질서 없는 우주적 쇼트와 풍경에 천사가 자유로이 날아들도록 말이죠. 이것은 어쩌면 <하나비>의 우울한 바다 끝에 당도한 인물들을 절망에서 구원해낸 것 아닐까요? 이 부서져가는 풍경들을 끌어모으는 영화를, 저 역시 끌어안고 싶어집니다. 아무것도 없는 오지에서 아저씨는 놀이들을 발명하여 누추한 세계를 하나씩 재조립하고, 폭력성을 환상으로 전환시킵니다. 모두가 벌거벗은 채로 불투명한 진흙탕을 투명하게 긍정하면서, 점점 소년의 악몽은 아저씨들이 귀신 옷을 입었는데도 무궁화 꽃이 피는 꿈으로 화합니다. 또한 영화의 구조에서도 윤리적 배치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영화 말미에 이르러서야 <기쿠지로의 여름>이 그야말로 ‘기쿠지로의’ 여름이자 그의 과거로의 플래시백이었음을 알게 되죠. 소년이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서야 아저씨가 소년(혹은 자신)의 상처받은 세계를 서둘러 수습하는 것 같지만, 사실 아저씨는 처음부터 이를 알고 과거로의 이별여행을 준비해왔습니다. 아저씨의 애인이 마사오를 설명하면서 “엄마는 어디 멀리 일하러 갔나 봐”라고 얘기하자, “남자랑 어디 내뺀 거 아냐”라고 직감하는 모습, 소년이 잠든 새에 “너도 나랑 같은 처지구나”라고 연민하는 대목을 되새겨 보면, 경륜장에서 어기적거리며 떠나지 않으려던 아저씨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로서는 차마 대면하기 힘든 요양소를 거치게 될 것을 예감한 거죠. 그러나 곧 우리는 여행을 가려는 소년과 여행을 가지 않으려는 아저씨의 사이가 좁혀지고 중첩되는 모습을 봅니다. 소년이 아저씨의 음란한 꿈을 대신 꾸게 되는 호텔 침대에서부터요. 그렇게 영화는 아저씨의 친구인 ‘마사오’의 여행이자, 그의 미래로의 플래시백도 되는 나눔의 구조를 완성합니다. 그래서인지 소년이 초반 내내 왼쪽으로 걸었던 게 특별히 눈에 띕니다. 소년은 친구들을 찾아 항상 왼쪽으로 걸어갔지만 그들은 모두 가족과 함께였죠. 이는 화면의 왼쪽으로 걸어 나갈 때의 시각적인 안정감을 부여하는 것이지만 소년에겐 등 떠밀리는 걸음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곧 소년은 아저씨를 만나 오른쪽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오른쪽으로 향함은 그 자연스러운 규칙을 깨뜨리는 전환적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간중간 인서트된 바람개비를 기억한다면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그의 저항적 몸짓을 연상해볼 수도 있겠죠. 이에 종지부를 찍듯 소년은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달려갑니다. 처음에 슬로 모션으로 소년을 잡았던 것과 대비되게 한층 가벼운 움직임입니다. 어쩌면 소년의 슬로 모션으로 시작한 영화는 유년의 파편적 회상의 감각을 사유하게 하도록 의도적으로 지루한 호흡을 유지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됐든 더 이상 기타노의 전작들처럼 멜랑콜리와 강박적인 미학화는 없어요. 천사의 날개를 단 소년은 이제 세상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관습의 세계 반대편으로 가벼이 달려갈 수 있을 겁니다. 한편 아저씨는 어떤가요. 소년을 룸살롱에 데려가는 생각 없던 어른은 어느새 아이에게 주먹밥을 먼저 건네며 “좋은 어른”을 어설프게나마 운운하는 사람이 되었고, 소년에게 “아빠”라고 불러보라고 하는 은밀한 바람까지 생겼습니다. 엄마를 잃은 상황에 아저씨는 보이지 않는 천사를 보이게 만들어주는 어른이 되어, 보호자로서 자기 삶의 국면 또한 전환시킵니다. 그의 미래가 궁금한 찰나, 물살을 가르는 배가 꽤나 든든하게 지나갑니다. 최근 극장에서 영화를 다시 보곤 아저씨의 옷과 팬더곰 인형이 같은 색깔(흑/백)이었던 귀여운 전환적 소품도 눈에 들어왔지만, 이 시네마틱한 운동에 가장 눈길이 간 까닭은 그것이 단순히 뒤집기의 유희를 넘어 반성하는 감각을 지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저씨와 소년이 양방향으로 헤어지기 직전의 장면을 ‘둘로 잘린 영화’의 접합을 시도한 것으로 본 건 과장이 아닐 것 같습니다. 소년과 아저씨의 두 가지 플래시백이 마주 보고 다시 이별하는 우애가 별자리 같은 간격을 유지하며 빛나고 있으니까요. 적어도 인물의 한쪽을 도구적(인형)으로, 환상의 통로로 만들어버리지 않은 윤리를 미덕으로 말할 수 있겠네요. <기쿠지로의 여름>은 기타노의 최고작이라 하긴 겸연쩍어도, 폭력으로 남루해진 세계를 해체하고 윤리적 온기로 전환하는, 유희의 균형과 따뜻함이 출중한 투톱 주인공의 로드무비입니다. 그리고 더 맥락을 덧붙이지 않아도 아이와 놀이하며 그를 웃게 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인 이 영화는 그 자체로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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