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Time Between Dog And Wolf
2005 · 드라마 · 한국
1시간 48분 · 15세

![[운영] <햄넷> 20% 할인_보드배너](https://an2-img.amz.wtchn.net/image/v2/Og9Y6ZnKP4IMflSnEYv7Qg.jp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mNIUnpJanBiSW1KbklsMHNJbkFpT2lJdmRqSXZjM1J2Y21VdmNISnZiVzkwYVc5dUx6RXlPRGszTkRrMk1UQXhNRGcxTkNKOS5ReWRaV0RSNGQwUTVVakl3OE9rVVI3aGtDaTQ0M0Z2UDJRcWtMWE1XRVlv)
![[운영] <햄넷> 20% 할인_보드배너](https://an2-img.amz.wtchn.net/image/v2/rMHEMZTez3HUfl62RTIWyQ.jp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mNIUnpJanBiSW1KbklsMHNJbkFpT2lJdmRqSXZjM1J2Y21VdmNISnZiVzkwYVc5dUx6TXlOalF3T0RNeE16VTFNelU1SW4wLmdKeXkxbzVrdkExNndqcUMyQW1RX21vaDVFVlZCczNFVUd2ZTUtS1hybEk=)
가난한 영화감독 김은 왕래 없이 지냈던 사촌형 일규의 전화를 받는다. 일규의 모친과 6.25전쟁 때 헤어져 북한에 살고 있는 부친이 중국 연길에서 상봉하기로 한 소식을 전하며,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김이 동행해 줄 것을 부탁한다. 속초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한 여자(영화)를 보게 되고, 잠시 여자와 눈이 마주치며 마음이 끌린다. 속초의 민박집에서 우연히 영화를 다시 만난 김은 태백으로 동생을 찾으러 가는 영화를 무작정 따라 나선다. 뿌리를 잃은 한국인의 고립감과 상실감을 서정적인 화면에 담아냈다.
쾌감폭발 완벽 필승 조합
크리스 헴스워스 VS 마크 러팔로
크라임 101 · AD
쾌감폭발 완벽 필승 조합
크리스 헴스워스 VS 마크 러팔로
크라임 101 · AD
감상 가능한 곳
본 정보의 최신성을 보증하지 않으므로 정확한 정보는 해당 플랫폼에서 확인해 주세요.
출연/제작
코멘트
9갤러리
삽입곡 정보

세상의 끝에서

네겐 힘들어도

청소년관람불가
3.0
시간은 같게 가는거 같지만 다르게간다
GS
2.5
떠도는 인물들 -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의 주인공 김은 속초와 태백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김은 속초와 태백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 사람들도 각자의 사정을 갖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김은 우연히 만난 영화에게 묻는다. "어디로 가세요? 누굴 찾는 거예요?". 영화는 잃어버린 동생을 찾기 위해 태백으로 향한다고 말하지만, 실상 그녀가 태백에서 하는 일은 딱히 없다. 눈길 위를 뛰는 영화는 '왜 달리냐'는 김의 물음에 그저 '불안해서'라고 답한다. 김과 영화를 비롯한 인물들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이동하는 모습은 본래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 목적이 흐릿한 상태, 즉 막연한 떠돎에 가까워 보인다. 전수일 감독의 작품에서 인물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습은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떠돌고 유랑하고 방랑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 영화는 왜 인물의 떠돎이라는 상태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인물의 떠돎으로 발생하는 특정한 의미와 효과와 이유를 묻기 위해서는 이 영화가 인물이 떠도는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인지 얘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떠돈다는 표현은 다소 애매하다. 떠도는 이동과 떠돌지 않는 이동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러니 질문을 바꿔보자. 영화는 이동이라는 움직임의 상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선 피사체의 물리적인 움직임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다. 쉽게 말해 인물이 걷는 모습, 뛰는 모습, 탈 것을 운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동이라는 움직임의 상태는 피사체의 물리적인 활동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물의 움직임과는 무관하게 쇼트의 편집에 따른 공간의 재구성만으로 우리는 이동을 인지할 수 있다. 가령 학교에 있던 인물이 다음 장면에 집에 있다면, 우리는 인물의 물리적인 움직임을 보고 듣지 않더라도 인물이 학교에서 집으로 이동했다는 의미를 자연스레 부여하는 것이다. - 이처럼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은 인물의 이동을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미학적 형식으로 재현한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고정 숏과 풀 숏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물은 프레임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보다 자신이 위치한 공간에 막연히 머무른다. 그래서 우리가 인물의 이동을 인지하는 것은 대개 그 다음 장면에서다. 영화의 초반부, 누나와 통화하는 김은 옛 가족을 보는 게 부담스럽다며 고향으로 올라가지 않겠다고 화를 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은 시외버스 정류장에 있다. 그는 앞서 내뱉은 말과 다른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유와 맥락을 알 수 없다. 단지 그가 위치한 공간적 변화로부터 인물의 이동이라는 상태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갑작스레 제시된 시외버스 정류장이라는 공간적 정보는 관객의 인식적 차이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그 차이를 좁히지 않고 오히려 김의 이동에서 마주하는 느슨한 우연들의 발견으로 관조자인 관객의 잠재된 능동성을 이끌어낸다. - 같은 맥락에서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은 인물을 크게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전반이 인물과 배경이 분리되지 않는 풀 숏이나 롱 숏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물의 얼굴과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심지어 인물과 배경의 색채와 톤이 비슷해서 마치 인물과 배경은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인물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들과 조화하는 공간적 배경을 보아야 한다. 즉 이 영화가 인물의 떠돎이라는 막연한 상태로부터 마주하는 것은 인물들이 존재하는 일상적 공간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김과 영화가 태백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수북이 쌓인 눈이 미장센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하지만 눈은 그저 예쁘고 감성적인 화면을 꾸미기 위해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 이질적인 태백의 설경은 날씨라는 물리적 환경의 변화를 통해 특정한 장소성을 부여함으로써 내러티브에 얽매이지 않고도 자연스레 인물의 이동이라는 상태를 감각하게 한다. 더욱이 새하얀 눈은 예외적으로 인물들을 부각한다. 영화는 하얀 눈의 물질성을 경유하는 것으로 인물의 감정과 심리에 접근한다. -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은 보이지 않는 것 혹은 들리는 것으로도 인물의 이동을 감각한다. 김과 영화가 태백으로 향할 때 갑자기 사격 소리가 들린다. 영화 속에서 사격 소리는 장르적 관습으로 활용되지 않으며, 한국에서 사격 소리가 들리는 경우는 군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아니나 다를까 김은 군 얘기를 하며, 사격 소리의 이유를 알려준다. 제설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자동차에 탑승한 인물들의 시점 숏으로 짧게 스쳐 지나가듯 사격 소리라는 청각적 모티브 역시 스쳐 지나가며 인물들의 이동을 환기한다. 그런가 하면, 속초의 민박집에 도착한 김과 영화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갑자기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진다. 김이 그 소리의 정체를 묻자, 영화는 안개가 심한 날 울린다고 답한다. 사격 소리나 뱃고동 소리의 진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편집의 구성 상 그것들은 동시 녹음 과정에서 개입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사후적으로 삽입한 사운드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영화는 왜 그러한 소리들을 필요로 한 것일까? 그 소리들이 인물들에게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무엇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화가 그 소리들을 매우 우연적이고 자연스러운 소리처럼 들려준다는 점이다. 인물들이 발견하는 소리들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으로 작용하지 않고, 대단하고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지도 않은 채, 그저 그 공간에서 그 자체로 들린다. 그 자체로 목적을 수행하는 그러한 소리들은 이동 자체에 목적이 내재된 떠돎이라는 인물의 상태를 환기한다. 그러한 소리로부터 인물들은 공간의 변화와 발견을 인식하고, 자기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새기며, 정체성의 탐문이라는 존재론적 인식으로 향하는 것이다. - 김과 주민들의 대화는 이러한 공간의 변화 속에서 상실을 인식하게 하는 직접적인 매개 역할을 수행한다. 고향과 가족, 영화감독으로서의 신념, 사라진 탄광, 만남과 헤어짐, 발견할 수 없고 이동할 수 없는 공간들. 이 영화는 그러한 상실을 영화 내부에서 메꾸고 해소하기보다 떠도는 인물들을 통해 유예하고 지연하려 한다. 전수일 감독이 연출 의도에서 밝혔듯 영화 제목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은 실체가 온전히 식별되지 않을 때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역설적 의미를 갖는다. 영화는 그 찰나의 순간에 정체성을 인식하며 상실에 내재된 신비와 불안을 앓는 인물들을 그린다. - 하지만 김이 정체성을 인식하고 상실을 느끼는 과정은 다소 은유적이고 관념적인 지각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의심을 부추기는 것은 영화와 영화의 동생이 재현되는 해변가 장면이다. 이 장면은 시제나 속성이 모호해 그 이미지가 은유하는 의미를 떼고 나면 매우 공허하다. 게다가 김의 상실에 비해 영화의 상실은 직접적으로 재현된다는 점에서 영화라는 인물 자체가 관념적인 이해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난 영화감독인데 당신은 이름이 '영화'네 라고 말하는 김의 언사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상투적인 근심을 갖는 존재로서 오직 동생을 잃은 인물이라는 의미로만 기능한다. 영화가 김에게 자신의 상처와 슬픔을 쉽사리 말하지 않는 묵언수행의 태도는 그녀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전략으로 작용하기보다 오히려 그 상태를 치장하는 얕은 방식이자, 여성의 언어 불구를 통해 주체성을 승인받는 남성 가부장의 상징 질서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김을 위해 우연히 발견되고 기능하고 해소된다. 김의 정체성 발견이라는 욕망을 위해 영화는 대상화되고 타자화된다. - - https://blog.naver.com/rmatjdwjdals/222389081368
박스오피스 셔틀
1.5
관객 수 : 608명 제작비 정보 없음.
썸머
3.5
황혼의 어스름한 것을 쫒아 도달한 밤은 허무하지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반드시 날아오른다.
Bryan Jo
2.0
내내 화가 나 있고 계속 술을 마시고 고뇌하는 두 사람, 결국 왜 그런건지는 알 수 없었다
무비라이더
2.5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
CINEX
2.0
개일까 늑대일까 고민하는 사이 관객도 헷갈리기시작한다
우울한cut과 유쾌한song
0.5
개, 집을 순환하다. 늑대, 폐허에서 사라지다.
더 많은 코멘트를 보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