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르모의 본피글리오 중학교의 8학년 학생들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종탑, 대성당의 돔, 뼈대만 남은 흉측스러운 폐건물, 그리고 신규 철도선 건설 현장이다. 영어로 부서진 기둥을 뜻하는 콜로나 로타는 독특한 동네임에 틀림없다. 한 다리 건너면 모르는 사람 없는 이곳 아이들은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이 산다. 뭐 대개 비좁고 초라한 아파트들이지만 말이다. 그들은 오전에는 학교에 출석 도장을 찍은 뒤 오후가 되면 집에 머물거나 거리 생활을 시작한다. 총 17명의 같은 반 친구들 중 유독 가까운 다니엘, 시몬, 데지레, 그리고 모레나. 이들은 연인의 집, 숙모의 집, 친구의 집, 혹은 먼 친척의 집을 가리지 않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일종의 공생의 삶을 꾸린다. 날씨가 좋은 날엔 정처 없이 걷다가 광장의 형태를 띤 공간은 뭐든 점령한 채, 하릴없는 이 동네와 그들을 옥죄는 미성년자의 틀을 벗어나는 상상을 하며 그저 시간을 때울 뿐이다. [2021년 제18회 EBS 국제다큐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