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필요
여행자의 필요
2024 · 드라마 · 한국
1시간 31분 · 12세



어디서 온지 모르는 이 사람은 불란서에서 왔다고 하고, 어린애 피리를 근린공원에서 열심히 불고 있었습니다. 돈도 없고 어떻게 살지 몰라해 불어를 가르쳐보라 권했고, 그렇게 두 명의 한국여자들에게 선생이 되었습니다. 땅에 맨발로 걷는 것을 좋아하고, 돌에 누워있는 걸 좋아하고, 힘이 되는 때 순간 순간을 비언어적으로 바라보려하고, 최대한 사실에 근거한 삶을 살려고 애씁니다. 그래도 사는 건 변함없이 고되고, 매일 막걸리에 의존하며 조금의 편안함을 얻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31번째 영화 <여행자의 필요>는 제목 그대로 여행자의 걸음 속에서 비언어적인 순간들을 경유한다. 불란서에서 왔다는 이리스(이자벨 위페르)는 서울을 돌아다니며 프랑스어를 가르친다. 그렇지 않을 땐 동산이나 공원에 머물며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땅에 맨발로 걷는 것을 좋아하고, 돌에 누워 있는 것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막걸리를 좋아한다. 홍상수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설명이 필요한 순간 비워내는 이 영화는 마치 시의 리듬, 운율처럼 반복과 변주 속에서 공명하는 순간들을 차분히 담아낸다. 여행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마음으로 이리스의 걸음에 보폭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여행자가 가져온 낯선 시선과 생경한 공기가 우리 삶에 왜 필요한지 실감 중인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송경원)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제13회 디아스포라영화제]
이동진 평론가
3.5
느슨하고 한계 많은 소통 속에서 한없이 투명해지려는 영화를 보았다.
STONE
3.5
언어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자신이 느낀 감정을 해당 언어로 곱씹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듯이, 한 사람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람의 과거를 자신의 언어로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법이다. 언어적 통찰의 세계에 몸 담그기 이전에 가시적인 인상을 만끽할 줄 아는 녹색의 나른한 순간이 좋다.
조순익
4.0
홍상수 감독의 신작 <여행자의 필요>를 키득키득 웃으며 재미있게 봤다. 농담 속에 뼈때리는 영화의 여운이 두둥실 떠다니는데, 이에 즐거운 기분으로 조금은 진지한 소견을 덧붙여 둔다. (스포일러 주의) 한국 사회에서 ‘열심히 산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생존 경쟁에 열심히 참여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밥벌이’나 ‘먹고사니즘’으로도 표현되는 이 유기체적 생존의 지상 명령은 극심한 경쟁 사회를 지배해온 강박적인 이념이다. 이런 사회에서 진정 자유로운 삶을 향한 욕망은 불가피하게 그 사회적 압력을 거스르기 마련이며, 이는 곧 사물화된 삶에서 벗어나 죽음의 경계를 직시하는 지향성이 생긴다는 뜻이다. 생존주의가 진정한 삶의 욕망을 억압하는 강박적 체제의 지배 이념이라면, 그 속에서 희생되며 죽어간 타자의 응시 속에 진정 자유로운 삶의 단서가 서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제의 억압적인 체제 속에서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겠다던 시인 윤동주의 다짐 역시 그런 죽음의 응시를 통해 삶의 자유를 지향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에도 젊은 생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시심은 전방위적인 생존주의의 압력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생사의 줄다리기를 하곤 한다. 반면에 오래전부터 경쟁 사회의 강박 속에 자아를 갈아넣어온 많은 한국인들은 내면의 시심 자체를 억누르고 망각한 상태여서, 모두가 앵무새처럼 상투적인 언어만 반복할 뿐이다. 그들 사이에 바로 정체불명의 프랑스인 여행자가 낯선 타자로서 끼어든다. 젊은 시인은 여행자에게 맘을 열고 진심어린 친구가 되지만, ‘열심히 사는’ 사회적 지배 이념을 충실하게 대변하는 어머니는 낯선 것을 경계하며 지배적인 인식 틀 속에 타자를 가두고 시험하려 든다. 한국의 전통주인 막걸리는 원래 ‘막’ 걸러내서 만들고 ‘막’사발에 따라 막 마셔야 제법인 서민적인 술이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영화사 사장 부부는 서구화된 식습관에 맞춰 막걸리를 디캔터에 옮겨 담고 와인잔에 따라 고상하게 마신다. 서구 부르주아의 취향이 습관화된 한국의 중산층에게 한국의 전통은 이렇게 타자적인 지위로 뒤집히곤 하지만, 일제 시대에 죽어가는 것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며 죽어간 시인 윤동주의 시비는 여전히 요절한 아름다운 민족 정신의 역사로 기려지기도 한다. 이러한 한국적 자아의 다면성을 객관적으로 응시하기 위해서는 어느 틀 속에 강박적으로 갇히기를 부정하는, 제목 그대로 ‘여행자’의 자유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영화 속 여행자는 한국인들의 자아를 거울처럼 비추는 신원미상의 타자요 자유로운 주체다. 프랑스어와 영어를 하는 여행자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지만, 선진 문화를 욕망하는 한국인들이 예술적 기교를 뽐내다가도 내면의 느낌은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의 빈곤 상태를 포착하고 그들의 표현을 적절히 번역하여 돌려주는 거울로 기능하기에는 충분한 설정이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의 제목인 ‘여행자의 필요’도 ‘여행자가 뭔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기보다 ‘여행자가 무엇에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는 게 자연스럽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를 직시하는 데 여행자가 필요’하고, 지배 이념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의 ‘자아’를 직시하기 위한 거울적인 ‘타자’로서 필요하다고 말이다. 게다가 그 여행자를 꼭 영화 내용에만 국한해 외국인만 뜻한다고 볼 필요도 없을 듯하다. 어쩌면 늘 한국적인 소재 안에 이질적인 시선을 담아내는 홍상수 감독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객관적으로 성찰하기에 요긴한 ‘여행자’ 같은 존재로 느껴져서다. 생각해보면 그의 영화들은 늘 한국인에게 친숙한 대사들을 반복하며 우리의 자아를 매번 색다르게 ‘타자화’하는 거울이지 않았던가? 친숙한 배우들이 친숙한 장소에서 친숙한 대사들을 반복할수록, 친숙해 보이던 일상은 어느새 타자화되어 새로운 웃음을 유발한다. 그것이 지금껏 홍상수식 반복이 드러내온 일상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늘 그래왔지만, 이번 신작에서도 역시나 새롭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OLSTA
4.0
저 정도 집인데 1000에 50은 좀....
무비신
4.0
통찰의 질문을 통해 찾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진짜 삶.
창민
4.0
나의 과거와 현재를 상기/환기시켜주는 영화는 언제나 항상 옳다. 스크린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간.
견주
3.5
여행자에게 필요한 한국인 구워 삶아 먹는 방법을 국제 영화제에 출품하면 어떡하나요… 너무 웃어서 자존심 상함
벤키
3.5
영화관 신종 고문인가요? 웃음참느라 너무 힘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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