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phile3.5데릭 저먼 감독이 에이즈와 투쟁하며 겪은 고통, 특히 부분적인 실명을 겪으며 느끼던 절망의 감정만을 일종의 장편 서사시로 읽어 내린다. 브라이언 이노가 참여한 명상적 음악과 함께 낭송을 들으면 아름다움을 두고 떠나야 하는 것에 대한 그의 비탄을 읽게 된다.좋아요14댓글2
sanissan5.0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데릭 저먼을 알게 된 것은 글이나 영화가 아니라 어느 블로그에 올라온 그가 가꾼 정원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의 이름이나 이력ㅡ그러니까 그가 영화 감독이며 작가고 동시에 설치미술가이자 동성애자며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 잊었지만 어딘지 모를 정원의 이미지는 오랜시간 내 안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마 그때 난 그 울타리도 없고, 바닷가에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 만들어진 정원이 찍힌 몇 장의 이미지에 빠져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같은 건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가 죽기 전까지 남은 생을 보낸 바닷가 인근 낡은 집 정원은 프로스펙트 코티지라고 불린다. 그러다 최근 다시 그 정원의 모습이 떠올라 탐색하다 다시 데릭 저먼을 떠올리게 되어 자연스럽게 영화도 감상해보자는 생각에 <블루>를 보게 되었다. 솔직히 미동없는 파란 화면과 내레이션, 음악만으로 이루어진 영화라는 사실은 알고 감상했기에 몰입해서 볼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영화를 보며 완전히 사라졌다. 난 이 진실한 파란빛과 언어, 시각을 잃었음에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은 작가의 진실함에 놀랍게도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 영화를 보며 그의 삶과 나 자신 이외에 어떤 작가나 감독도 떠올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말하고 싶다.) 에이즈라는 병으로 인해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이룬 시각을 잃었음에도 그 한계와 장애마저 예술로 녹여내는 예술가의 흔적으로 이루어진 블루는 이 영화가 가진 명상적인 효과로 관객 개개인의 삶에 숨겨진 무언가를 스스로 자연스럽게 떠오르게하고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거닐게 만드는 힘이 있다. <블루>에는 그의 두려움과 고통과 고뇌, 사랑과 사람에 대한 풍경의 기억이 진실하게 담겨있고 여기에서 그는 죽기전에 자신이 겨우 남길 수 있을 것을 힘껏 표현한다. 아마 그가 자신을 위해 정원을 가꾸었듯 <블루>도 그러한 작업일 것이다. 난 그의 마지막 삶의 풍경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파란 순간을 즐기고 그가 그 색을 통해 자신을 발화하듯 조금은 비겁하게, 아직 진실하지 못한 스스로를 의식하고 나만의 색을 밝힐 날을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나를 내 안에 발화하게 된다. 79분동안 이어지는 화면에는 그가 느끼고 생각한 경계없는 푸른 빛이 파란 하늘을 울타리로 삼는 그의 정원처럼 펼쳐져 있다. 이 무한한 파란색은 데릭 저먼의 개인적인 정원임과 동시에 관객 저마다의 시선을 담을 지극히 사적인 풍경의 체험을 선사하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푸른 세계다.좋아요12댓글0
양기연3.5작가 스스로 주변인들의 죽음과 작가 자신의 에이즈로 인한 시력 감퇴 및 죽음의 예감을 경험하며 품었을 그 모든 굴레 너머의 영원에 대한 염원이 '블루'를 매개로 하여 관객에게로 전이되어 온다. '블루'는 관객에게 있어 시각적 정보의 제한인 동시에 블루라는 색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에 기반하여 데릭 저먼이라는 한 작가의 개인사와 어떤 희망, 인류의 역사, 신화 등이 교차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극장으로 향하는 입구가 된다. .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한 가지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작가의 의도가 전혀 변동하지 않는 푸른빛 스크린을 화면 전면에 띄워 시각적 자극을 배제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이미지의 감옥으로부터 탈피하도록 하고, 보이스오버 나레이션 및 음악, 음향 등 청각적 정보를 인도자 삼아 관객의 상상력과 블루의 가능성에 기반한 새로운 무한의 영역을 체험케 하는 데 있었다고 해 보자. 그렇다면 필름의 노화에 따른 그레인과 화면 우측으로 끊임없이 명멸하는 한국어 자막은 작가의 의도와 전혀 무관한 잉여의 시각적 자극으로 작용한다 할 것인데, 이에 영향을 받은 한 과연 이번 상영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오늘 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상영관에 앉아 있었고 단 한 순간도 졸지 않았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도저히 이 영화를 감상하였노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좋아요12댓글0
상맹5.0이 얼마나 많은 예술의 종합체인가. 영화는 또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 것인가. 마크 로스코가 떠올랐다가 베토벤이 떠올랐다가, 요나스 메카스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이건 데렉 저먼의 작품일 뿐이다. 영화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녹여낸 훌륭한 문장들과 사유들로 가득한 시적 에세이로 확장되는 것만으로도 최고인데, 블루라는 주제 하나가지고도 독창적인 음악들과 단 하나의 이미지로 여러 감정들을 발생시킨다. 화이트큐브에서 봤으면 또 다른 어떤 감상을 했을까. 어느 곳에 있으시던 이젠 편히 쉬시고 오랫동안 기억되시길 파란 델피니움꽃과 함께.좋아요10댓글0
Jay Oh
4.5
블루 너머의 당신에게, #002FA7에서 찾은 끝과 무한을. Within the Blue, a resignation, a perpetuity.
Cinephile
3.5
데릭 저먼 감독이 에이즈와 투쟁하며 겪은 고통, 특히 부분적인 실명을 겪으며 느끼던 절망의 감정만을 일종의 장편 서사시로 읽어 내린다. 브라이언 이노가 참여한 명상적 음악과 함께 낭송을 들으면 아름다움을 두고 떠나야 하는 것에 대한 그의 비탄을 읽게 된다.
sanissan
5.0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데릭 저먼을 알게 된 것은 글이나 영화가 아니라 어느 블로그에 올라온 그가 가꾼 정원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의 이름이나 이력ㅡ그러니까 그가 영화 감독이며 작가고 동시에 설치미술가이자 동성애자며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 잊었지만 어딘지 모를 정원의 이미지는 오랜시간 내 안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마 그때 난 그 울타리도 없고, 바닷가에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 만들어진 정원이 찍힌 몇 장의 이미지에 빠져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같은 건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가 죽기 전까지 남은 생을 보낸 바닷가 인근 낡은 집 정원은 프로스펙트 코티지라고 불린다. 그러다 최근 다시 그 정원의 모습이 떠올라 탐색하다 다시 데릭 저먼을 떠올리게 되어 자연스럽게 영화도 감상해보자는 생각에 <블루>를 보게 되었다. 솔직히 미동없는 파란 화면과 내레이션, 음악만으로 이루어진 영화라는 사실은 알고 감상했기에 몰입해서 볼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영화를 보며 완전히 사라졌다. 난 이 진실한 파란빛과 언어, 시각을 잃었음에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은 작가의 진실함에 놀랍게도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 영화를 보며 그의 삶과 나 자신 이외에 어떤 작가나 감독도 떠올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말하고 싶다.) 에이즈라는 병으로 인해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이룬 시각을 잃었음에도 그 한계와 장애마저 예술로 녹여내는 예술가의 흔적으로 이루어진 블루는 이 영화가 가진 명상적인 효과로 관객 개개인의 삶에 숨겨진 무언가를 스스로 자연스럽게 떠오르게하고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거닐게 만드는 힘이 있다. <블루>에는 그의 두려움과 고통과 고뇌, 사랑과 사람에 대한 풍경의 기억이 진실하게 담겨있고 여기에서 그는 죽기전에 자신이 겨우 남길 수 있을 것을 힘껏 표현한다. 아마 그가 자신을 위해 정원을 가꾸었듯 <블루>도 그러한 작업일 것이다. 난 그의 마지막 삶의 풍경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파란 순간을 즐기고 그가 그 색을 통해 자신을 발화하듯 조금은 비겁하게, 아직 진실하지 못한 스스로를 의식하고 나만의 색을 밝힐 날을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나를 내 안에 발화하게 된다. 79분동안 이어지는 화면에는 그가 느끼고 생각한 경계없는 푸른 빛이 파란 하늘을 울타리로 삼는 그의 정원처럼 펼쳐져 있다. 이 무한한 파란색은 데릭 저먼의 개인적인 정원임과 동시에 관객 저마다의 시선을 담을 지극히 사적인 풍경의 체험을 선사하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푸른 세계다.
양기연
3.5
작가 스스로 주변인들의 죽음과 작가 자신의 에이즈로 인한 시력 감퇴 및 죽음의 예감을 경험하며 품었을 그 모든 굴레 너머의 영원에 대한 염원이 '블루'를 매개로 하여 관객에게로 전이되어 온다. '블루'는 관객에게 있어 시각적 정보의 제한인 동시에 블루라는 색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에 기반하여 데릭 저먼이라는 한 작가의 개인사와 어떤 희망, 인류의 역사, 신화 등이 교차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극장으로 향하는 입구가 된다. .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한 가지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작가의 의도가 전혀 변동하지 않는 푸른빛 스크린을 화면 전면에 띄워 시각적 자극을 배제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이미지의 감옥으로부터 탈피하도록 하고, 보이스오버 나레이션 및 음악, 음향 등 청각적 정보를 인도자 삼아 관객의 상상력과 블루의 가능성에 기반한 새로운 무한의 영역을 체험케 하는 데 있었다고 해 보자. 그렇다면 필름의 노화에 따른 그레인과 화면 우측으로 끊임없이 명멸하는 한국어 자막은 작가의 의도와 전혀 무관한 잉여의 시각적 자극으로 작용한다 할 것인데, 이에 영향을 받은 한 과연 이번 상영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오늘 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상영관에 앉아 있었고 단 한 순간도 졸지 않았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도저히 이 영화를 감상하였노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상맹
5.0
이 얼마나 많은 예술의 종합체인가. 영화는 또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 것인가. 마크 로스코가 떠올랐다가 베토벤이 떠올랐다가, 요나스 메카스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이건 데렉 저먼의 작품일 뿐이다. 영화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녹여낸 훌륭한 문장들과 사유들로 가득한 시적 에세이로 확장되는 것만으로도 최고인데, 블루라는 주제 하나가지고도 독창적인 음악들과 단 하나의 이미지로 여러 감정들을 발생시킨다. 화이트큐브에서 봤으면 또 다른 어떤 감상을 했을까. 어느 곳에 있으시던 이젠 편히 쉬시고 오랫동안 기억되시길 파란 델피니움꽃과 함께.
정군
4.0
파란종이에 파란글씨로 적은 데릭저먼의 자서전
sonatine
5.0
한 영화감독이 죽음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방식 한 인간이 죽음을 받아드리는 자세
말하는 감쟈
3.5
가장 지루하고 근사한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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