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나무의 씨앗
The Seed of the Sacred Fig
2024 · 드라마/스릴러/미스터리/범죄 · 프랑스, 독일, 이란
2시간 47분 · 1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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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수사판사 승진을 하게 된 ‘이만’, 때마침 테헤란에서는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이만’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총을 지급받는다. 그러나 딸들과 논쟁을 벌인 어느 날, 총이 집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가족의 믿음에는 균열이 생긴다. 지금 반드시 목격해야 할, 올해 가장 용감한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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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가능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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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
3.5
용기와 지성을 함께 갖춘 필름메이킹의 감동.
창민
4.5
주변에 권위적인데 억압적이기도 한 사람이 있다면 일단 한 보 피하시라. 그 사람은 '독재적 리더의 씨앗'일 수도 있다. 물론 영화 속 씨앗은 희망을 상징하지만..(스포 X)
조조무비
4.0
#🧕 신이 주신 두 눈을 가려놓고 신을 믿으라 말하면.
ㅂ승규/동도
4.0
가장의 무게를 견디는 아빠의 경추 공권력의 압박을 버티는 딸들의 척추 끝없이 고뇌하듯 동조하는 엄마의 뇌 가정의 불화와 사회의 인권유린을 하나의 중추신경처럼 바라보는 어마무시한 미장센 - 제 50회 서독제
Dh
4.0
희망의 씨앗이 싹트기 위해서 때로는 지독한 발화점도 필요할 수 있다 #🌱 #CGV
주+혜
4.5
국가 폭력의 하수인이면서 그와 같은 얼굴을 갖게 된 당신에게, 당신의 무능을 여성의 탓으로 몰아가지 마세요. 우린 그저 머리나 숨기고 당신에게 조아리고 복종해야 하는 짐승일 뿐이잖아요. 아니라면, 이 모든 부정의 책임이 제게 있을 만큼 유능했던 걸까요. 내 탓을 할 때만 당신과 동등한 인간일 수 있는 내 모습이 참 웃겨요. _ 실제 자료 화면을 영화 중간중간 삽입하여 기록의 매체라는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만약에 그날의 계엄이 실패하지 않았다면, 하는 끔찍한 상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자유'는 한 단어인데, 왜 당신과 내가 생각하는 의미는 다를 때도 있는 걸까. 부모와 자녀 간의 이데올로기, 신념, 종교, 가치관이 같은 결인 경우가 오히려 더 흔하지 않을 일이기에 이런 영화가 나오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인도보리수 나무의 비유는 섬뜩하리만큼 충격적이지만, 일정 부분은 자연의 진실을 담고 있다. 인간의 경우, 부모의 살을 떼어 가지고 나와 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닮았다. 양육과 발달은 양육자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분리된 삶-독립-으로 향한다. 씨앗의 몫은 숙주를 먹고 자라 숙주가 되는 것이고 숙주의 역할은 씨앗을 키워내는 일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사이에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다만, 나는 어떤 씨앗인지를 아는 것과, 어떠한 숙주가 될 것인지는 바랄 수 있다. 한 씨앗을 이루는 사회(가정부터 지역 사회와 국가, 제도까지)의 역할은 그 가운데 생기는 갈등을 어떻게 유연하게 견뎌낼 것인지를 위한 넉넉한 공간을 제공하는 일일 것이다.
JY
4.0
직접적으로 외치는 듯한 후반부를 영화적 문법을 들이밀며 한가하게 평하고 싶지 않았다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 한 발씩 격발하면서 걸어온 감독의 절박한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용감한 걸음에 나 까짓 게 뭐라고
Cinephile
2.5
논픽션의 차원에서 이 영화가 연대를 호소하는 정치적 의제에는 동감하지만, 정작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는 픽션의 방법론은 격정으로 무작정 윽박지를 뿐이다. 급격한 선악 구도로의 장르 전환에서 어느 쪽도 치밀한 당위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점이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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