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에서 석탄을 캐고 있는 장성광업소 채탄부 A조 여섯 명은 막장에서 생사를 함께한다. 탄광에서 3년만 일하겠다고 들어온 이들은 짧게는 20년에서 길게는 40년 동안 석탄을 캐왔다. 사고를 겪을 때마다 떠날 결심을 했지만, 폐광된 후에야 그만두게 되었다. 한편, 35년 전 강원 탄광 광부였던 성완희 열사의 분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광부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했던 20대의 청년들이 이젠 60을 바라보고 있다. 태백시장 재선에 도전하는 류태호, 정육점을 운영하는 전미영과 광부 출신 남편 천삼용, 탄광연구소 소장 원기준, 성완희 열사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한 안재성, 탄광촌에 주저앉았던 늙은 광부의 마지막 모습도 모두가 광산이라는 그늘 곁에 머물고 있다. 오래전 태백을 떠났던 이연복은 8년간의 광부 생활을 가슴에 묻어두고 있다. 성완희 열사의 분신 현장에 있었던 다섯 명의 친구들은 모두 전국으로 흩어졌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다만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던 양심적으로 살아가자 약속하고 헤어졌다. 누군가는 책임감으로 할 일을 찾고, 누군가는 죄책감으로 숨고, 누군가는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언젠가 다섯 명이 모여 친구의 묘에 가고 싶지만 찾을 방법이 없다. 폐광을 앞둔 태백이라는 공간에 모이고 흩어졌던 이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기억하고 싶었다’. 주로미, 김태일 감독은 영화의 제작 의도를 간명한 첫 자막으로 밝힌다. 너무나 간명해서 정확하게 마음에 꽂히는 말. 주로미, 김태일은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한다. “먹고 살아야겠다.” 그들이 기록하려는 태백 광산의 마지막 광부들은 이 말로 영화를 연다. 막장으로 끝없이 내려가는 케이지 숏 위에 얹힌 영화의 첫 대사다. 폐광을 앞둔 장성광업소 광부들이 입 모아 지옥이라 부르는 곳. 너무 가난했고, 먹고 살아야겠기에 들어왔지만 사흘 만에 관두려 했던 일이 30여 년을 넘겼고 그동안 ‘좋은 꼴은 못 봤다.’ 마지막 광부들로 시작한 영화는 38년 전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고 성완희 열사와 그 동료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탄식 같은 반문이 또다시 마음을 건드린다. “가난에 찌들어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왜 그렇게까지 궁지로 내몰았을까?” <이슬이 온다>는 위대한 노동/노동자를 기록하고 기억하려, 마음으로 찍은 영화다. (강소원)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