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아빠4.0모든 대립 관계에서 존재하는 경계선.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모든 부분에서 날카롭고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올려져 있다. 그 경계를 벗어나 잠시 다른편에 섯지만..결국 주인공은 원래의 경계선으로 돌아오고야 만다. 이미 그 어느 곳으로도 가지못할 경계선으로 말이다. 자신처럼 다시 그 경계선에 세워야할 분신과 함께... . . #선과악의경계 #인간과트롤의경계 #남여의경계 #복수와공생의경계 #이영화가 #끔찍하게느껴지 거나 #역겹게느껴진다면 #당신은경계선밖 #어딘가에확실히구속된것 #놀랍고 #독특하고 #신선하다 #이영화를판단하는지금 #우리모두는경계선위 #경계선위가아닌 #어느쪽으로든편가르는인간들 #자신이속한그경계선또한 #넘어오길바라지않는인간들좋아요256댓글4
정환4.0“경계선은 어쩌면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지닌 가치마다 한계를 부여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으로 규정된 또 다른 영역의 경계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그은 선들을 허물곤, 나와 나의 땅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성장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에겐 스스로의 기준이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우리 마음의 선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의 삶으로 인도하는 선이다. 그 선이 이어준 우리의 삶에는 객관적 도덕을 비롯해 개인의 고유한 매력과 신념과 가치와 사랑 모든 것이 담겨있다. 누군가의 선은 보다 넓을 수도, 누군가의 선은 누구보다 엄격할 수도. 선이 있기에 그리고 그 선은 모두가 다르기에, 우리에게 색이 있는 것은 아닐까. 경계선은 분명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선은 우리를 결코 벗어나지 않게 만들어준다. 우리의 선이 순간마다 멈칫하게 만들며 우리의 선이 모든 것을 판단하게 만든다. 무언가를 경계하기 위한 경계선. 허나, 선은 때때로 위험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나의 신념의 선은 때로는 법의 기준마저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하다. 누구는 개개인이 지닌 도덕성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누구는 개인을 무시한 채 집단으로 묶어 바라본다. 또한 내가 어떤 선을 지녔느냐에 따라 나와 너와 우리, 이 세상은 넓어지기도 하고 좁혀지기도 한다. 세상을 향한 경계선이 많다면 이 세상은 복잡해지고 경계선이 좁다면 이 세상은 작아지기 마련이다. 당신이 가진 미의 기준에 만약 스스로가 만족을 못 한다면, 그 미의 경계선 아래에 살고 있는 사람이겠지만, 내가 당신을 경계선 저 너머로 바라볼 수도 있다. 당신이 만약 염색체가 결함이 된 인간이라고 기준을 삼았을지라도, 나는 당신을 숲의 요정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미의 기준도, 도덕의 기준도 사실 선이라는 건, 특히나 보이지도 않는 이 경계들이 남에게 향할 때에는 좋던 나쁘던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내가 미처 그들의 진가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의 기준을 그들에게 씌운다는 건, 오히려 그들을 작게 만드는 실수일지도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 선들이 애초에 좋고 나쁘고를 따진다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랑과 분노와 같은 감정들과 저마다 가지고 있을 암묵적인 기준을 비롯해 관념과 도덕이란 단어들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우리가 말하는 것조차도 사람의 행위와 눈에 보이는 상황으로 우리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느끼는 정도를 선들이 규정하는 것이라면, 이는 상대적이기에 무엇이 진정 아름답고 더러운 것인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에 의해 만들어진 의견일 뿐이지 하나의 선을 긋고선 오로지 두 가지의 색과 방향성만을 띠고 있는건 아니라는 것이다. 갑작스레 맞닥뜨린 내 자아의 경계선에서 만약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깨닫지 못했을 때에, 어느 쪽으로 가야만 할까 망설이는 것은 성장의 시기가 다가왔다는 징조임에는 틀림없지만, 마침내 어디로 향할지 선택했다고 해도 그 선택이 내가 경계선을 허문 것이 아닌 이상 성장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실은 내가 머무르던 이 경계선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공존하는 세상이라는걸, 내가 딛고 있는 이 세상은 보다 더 넓다는 것을 아는 것부터 나라는 사람이 가진 선택의 폭과 그런 나를 담고 있는 세상의 부피마저 커지는 것이니까. 티나는 두 존재 사이에서 결정을 해야만 하는데, 결국은 어느 편에 속해야겠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가 가진 두 개의 이름을 동시에 받아들였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있던 경계선에서 선으로 규정된 또 다른 영역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경계선 자체를 허물어 버린 것이다. 곤충을 놓아줬던 그녀가 곤충을 먹더니, 사람들이 역겹다고 하는 그 행위에 반하는 존재가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의 결말은 곤충을 먹여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살아가며 받아들일, 세상이 나를 향한 모든 문제들 중에는 둘 중에 하나의 답만을 요구하는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나를 둘러싼 경계선은 둘보다도 많다. 역겨우나 아름다우나 두 눈으로 보고 멋대로 판단하는 이 세상에서 차라리 보는 게 아닌 냄새로 저 마다의 경계선을 확인하는 것이 이 세상을 더 크게 담아낼 수 있으려나. 경계선은 어쩌면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지닌 가치마다 한계를 부여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으로 규정된 또 다른 영역의 경계에서 ‘나는 누구인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그은 선들을 허물곤, 나와 나의 땅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성장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좋아요188댓글9
이동진 평론가
5.0
잊지 못할 만큼 강렬하고 전복적이며, 그 어떤 영화와도 다르다.
chan
4.0
스포일러가 있어요!!
Skräckis
4.0
스포일러가 있어요!!
윤제아빠
4.0
모든 대립 관계에서 존재하는 경계선.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모든 부분에서 날카롭고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올려져 있다. 그 경계를 벗어나 잠시 다른편에 섯지만..결국 주인공은 원래의 경계선으로 돌아오고야 만다. 이미 그 어느 곳으로도 가지못할 경계선으로 말이다. 자신처럼 다시 그 경계선에 세워야할 분신과 함께... . . #선과악의경계 #인간과트롤의경계 #남여의경계 #복수와공생의경계 #이영화가 #끔찍하게느껴지 거나 #역겹게느껴진다면 #당신은경계선밖 #어딘가에확실히구속된것 #놀랍고 #독특하고 #신선하다 #이영화를판단하는지금 #우리모두는경계선위 #경계선위가아닌 #어느쪽으로든편가르는인간들 #자신이속한그경계선또한 #넘어오길바라지않는인간들
노양
4.5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너무나 무례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지예
4.5
스포일러가 있어요!!
정환
4.0
“경계선은 어쩌면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지닌 가치마다 한계를 부여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으로 규정된 또 다른 영역의 경계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그은 선들을 허물곤, 나와 나의 땅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성장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에겐 스스로의 기준이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우리 마음의 선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의 삶으로 인도하는 선이다. 그 선이 이어준 우리의 삶에는 객관적 도덕을 비롯해 개인의 고유한 매력과 신념과 가치와 사랑 모든 것이 담겨있다. 누군가의 선은 보다 넓을 수도, 누군가의 선은 누구보다 엄격할 수도. 선이 있기에 그리고 그 선은 모두가 다르기에, 우리에게 색이 있는 것은 아닐까. 경계선은 분명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선은 우리를 결코 벗어나지 않게 만들어준다. 우리의 선이 순간마다 멈칫하게 만들며 우리의 선이 모든 것을 판단하게 만든다. 무언가를 경계하기 위한 경계선. 허나, 선은 때때로 위험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나의 신념의 선은 때로는 법의 기준마저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하다. 누구는 개개인이 지닌 도덕성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누구는 개인을 무시한 채 집단으로 묶어 바라본다. 또한 내가 어떤 선을 지녔느냐에 따라 나와 너와 우리, 이 세상은 넓어지기도 하고 좁혀지기도 한다. 세상을 향한 경계선이 많다면 이 세상은 복잡해지고 경계선이 좁다면 이 세상은 작아지기 마련이다. 당신이 가진 미의 기준에 만약 스스로가 만족을 못 한다면, 그 미의 경계선 아래에 살고 있는 사람이겠지만, 내가 당신을 경계선 저 너머로 바라볼 수도 있다. 당신이 만약 염색체가 결함이 된 인간이라고 기준을 삼았을지라도, 나는 당신을 숲의 요정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미의 기준도, 도덕의 기준도 사실 선이라는 건, 특히나 보이지도 않는 이 경계들이 남에게 향할 때에는 좋던 나쁘던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내가 미처 그들의 진가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의 기준을 그들에게 씌운다는 건, 오히려 그들을 작게 만드는 실수일지도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 선들이 애초에 좋고 나쁘고를 따진다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랑과 분노와 같은 감정들과 저마다 가지고 있을 암묵적인 기준을 비롯해 관념과 도덕이란 단어들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우리가 말하는 것조차도 사람의 행위와 눈에 보이는 상황으로 우리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느끼는 정도를 선들이 규정하는 것이라면, 이는 상대적이기에 무엇이 진정 아름답고 더러운 것인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에 의해 만들어진 의견일 뿐이지 하나의 선을 긋고선 오로지 두 가지의 색과 방향성만을 띠고 있는건 아니라는 것이다. 갑작스레 맞닥뜨린 내 자아의 경계선에서 만약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깨닫지 못했을 때에, 어느 쪽으로 가야만 할까 망설이는 것은 성장의 시기가 다가왔다는 징조임에는 틀림없지만, 마침내 어디로 향할지 선택했다고 해도 그 선택이 내가 경계선을 허문 것이 아닌 이상 성장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실은 내가 머무르던 이 경계선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공존하는 세상이라는걸, 내가 딛고 있는 이 세상은 보다 더 넓다는 것을 아는 것부터 나라는 사람이 가진 선택의 폭과 그런 나를 담고 있는 세상의 부피마저 커지는 것이니까. 티나는 두 존재 사이에서 결정을 해야만 하는데, 결국은 어느 편에 속해야겠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가 가진 두 개의 이름을 동시에 받아들였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있던 경계선에서 선으로 규정된 또 다른 영역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경계선 자체를 허물어 버린 것이다. 곤충을 놓아줬던 그녀가 곤충을 먹더니, 사람들이 역겹다고 하는 그 행위에 반하는 존재가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의 결말은 곤충을 먹여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살아가며 받아들일, 세상이 나를 향한 모든 문제들 중에는 둘 중에 하나의 답만을 요구하는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나를 둘러싼 경계선은 둘보다도 많다. 역겨우나 아름다우나 두 눈으로 보고 멋대로 판단하는 이 세상에서 차라리 보는 게 아닌 냄새로 저 마다의 경계선을 확인하는 것이 이 세상을 더 크게 담아낼 수 있으려나. 경계선은 어쩌면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지닌 가치마다 한계를 부여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으로 규정된 또 다른 영역의 경계에서 ‘나는 누구인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그은 선들을 허물곤, 나와 나의 땅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성장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최성찬
3.5
이 영화가 진짜 into the unknown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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