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오바마의 비커밍

살면서 안전한 광장에 있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었는데, 2016년 워싱턴 여성 행진에 참가했을 때 그런 기분을 느꼈었다. 그 광장에 있는 모든 분홍모자 사람들이 다 순수하게 선한 사람들로 보였고, 그런 신뢰 안에서 군중들과 함께 걷는 안전한 기분에 행복했다. 구호를 따라 외칠 때 마음에 들지 않는 구호가 없었다. 그런, 우린 함께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어, 라는 벅찬 신뢰의 감정은 어떤 도덕적 우월감이나 정의로운 분노보다 강력한 감정이다. 그게 내가 여행객으로나마 느낄 수 있던 유일한 오바마 정권의 흔적이다. 트럼프 당선 다음, 그에게 저항하기 위해 모였던 워싱턴의 사람들. 미국 시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바마가 그립다고 하면 순진하고 어설픈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에게도 흠과 실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인종의 장벽을 넘어서고 무지개빛으로 백악관이 조명을 비추던 시대의 그 막연한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는 여태 그립다. 나아가고 있다는 시대적 공감대가,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바이러스의 책임 전가 사태와 유가 전쟁, 그리고 복지의 소외 계층들을 보면, 정의는 매일 간신히 한번 하나의 승리씩 해내가며 고군분투하고 있고, 권리는 필사적으로 벼랑 끝에서 물러서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다. 나처럼 알량한 정의감을 가진 시민 한 사람은 매일 이기는 기분이 아니라 버티는 기분이 든다. 미셸 오바마의 이야기가 지금 전세계로 공개되는 것에 그런 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을 되짚었다. 분명 미셸이 어떤 정치적인 의도를 품어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이 완벽한 각도와 연출의 영화는 아침에 음악을 듣는 미셸이 가족을 소중히 하는 미셸로서 일과 삶에 긍정적인 미셸을 수행해내는 완벽한 홍보 필름이다. 하지만 그래도 어떤가, 세상에 이제는 때가 됐다하고 흑인 대통령을 보여주던 그 순간의 긍정적인 충격에 향수를 가지는 것은 나쁘지 않은데. 결국 중요한건 stat이 아니라 story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청소년들에게 당신의 학력과 점수가 아니라 당신의 할머니의 이야기 가족의 문화 그런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내면에서부터 소외감을 느낄 거라고 조언해주는데. 아무렴 이게 미셸의 차기 대권 출마의 떡밥이고 무엇인들 어떻겠는가. 지금 우리에겐 가짜 정보를 생각나는대로 허공에 말하면서 기자와 시민들에게 눈을 맞추지 않는 미국 대통령이 있는데. 차라리 전 영부인의 자기계발서 같은 영험한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게 무엇이 나쁘겠는가. 미국을 믿느냐고 하면 못 믿는다. 미국이 위대한 나라라고 하면 절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난사사건이 발생해도 총기 사용을 지지하는 나라, 후드 입은 흑인들을 쉽게 쏴죽이고도 무죄가 잦은 나라, 이민자 수용소에서 아이들이 부모와 강제로 떨어져서 열악한 처우를 겪는 나라, 원주민의 땅을 뺏고 노예에게 개발을 시킨 뒤 오늘날은 이민노동자에게 모든 궂은 일을 맡기는 백인들의 나라. 마약팔이보다 더 비정한 월스트리트의 나라. 모두 맞는데, 아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미셸 오바마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여성 청소년들을 보면 그냥 마음이 벅차다. 저들은 정말 무엇이라도 될 것 같기에, 그들과 좋은 동료 세계 시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저들은 총기 규제를 위해 거리에 나설 이들이고, 인종 차별에 존재 그 자체로 저항할 이들이고, 어떤 소외된 계급과도 대화할 수 있는 실마리들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 영화를 켜놓고 빠져 들어 계속 보게 된 이유는 미셸 오바마를 긍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셸 오바마가 상징하는 가치에 공감하는, 이 영화에 계속 삽입되는 미셸 오바마의 동료들 지지자들 청소년들의 눈과 표정을 보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다. 같은 영화를 보고 비슷한 뭉클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모두 다른 꿈을 꾸고 다른 정당과 후보를 지지해도 상관 없다. 하지만 어떤 파괴적인 억울함이나 분노 이기심을 순간 잊어버릴만큼 자극적인, 그 아주 마약 같고 어려운 모두가 존중 받는 세상에 대한 소망. 그거 하나만은 모두와 공유하고 싶다. Yes, we can. 얼마나 멋진 말이던가. 그 구호를 모두가 함께 외치던 워싱턴의 밤은 얼마나 안전하고 근사했을까.

미셸 오바마를 보면 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있게 가자 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닌 것 같아

유명인사들의 일반적인 투어 밀착카메라 영상, 딱 그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