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퍼스트퓨너럴
마이퍼스트퓨너럴
2023 · 다큐멘터리/단편 · 한국
38분

한국에서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건 고달픈 일이다. 결혼이나 행복한 미래, 죽음 따위는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이상한 여성은 스물 둘의 나이에 장례를 치르기로 한다! 내가 원하는 죽음과 장례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한국의 가부장적 장례 문화에 도전한다!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2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14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한국에서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건 고달픈 일이다. 결혼이나 행복한 미래, 죽음 따위는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이상한 여성은 스물 둘의 나이에 장례를 치르기로 한다! 내가 원하는 죽음과 장례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한국의 가부장적 장례 문화에 도전한다!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2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14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JK
4.0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가짜' 장례식을 보며 함께 눈물이 났던 것은 그 살아있는 장례식을 기획한 이의 마음이 마치 내 마음처럼 너무나 이해가 가서
김성호의 씨네만세
2.5
나 또는 가까운 이의 죽음을 예비하여 장례를 준비하는 다큐멘터리가 이제껏 여럿 나왔다. 개중 말기암 진단 뒤 제 죽음을 준비하는 스나다 마미의 2011년 작 <엔딩 노트>, 온갖 방식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재현한 뒤 가상의 장례식에 이르는 커스틴 존슨의 2020년 작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가 정점이라 할 수 있겠다. 자신과 가까운 이의 죽음을 다큐라는 형식으로 담아 세계적 화제가 됐으니 이후 등장한 비슷한 작품을 그 자장 아래 놓였다 해도 틀리지는 않을 테다. 한국에도 이와 같은 흐름이 없지는 않아서 근 몇 년 유사한 형식의 작품을 몇쯤 마주할 수 있었다. 제2회 반다페 선정작 <굿바이 트라우마, 우리들의 장례식 - 너에게 이름을 줄게>가 그랬고, 여기 이은혜의 <마이 퍼스트 퓨너럴>이 또한 그러하다.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을 진실로, 또 가상으로 준비한다는 점에서 앞의 작품들과 한 데 묶일 영화다. 그러나 그들과는 다른 삶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저만의 차별점 또한 가진다. 말하자면 주인공인 감독 자신이 저의 내밀한 삶을 얼마나 진솔하고 감각적으로 내보일 수 있는가에 영화의 가치가 달려 있었다 하겠다. 레즈비언, 그중에서도 정도가 센 축에 든다며 포문을 열어젖힌 영화다. 성소수자가 놓인 차별이야 한국사회에서 수없이 다뤄져온,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영역이니 그대로 나름의 승부수가 될 수 있겠다. 시작은 역시 사회적 고리다. 한국에서 상주 역할을 할 수 없는 여성, 그중에서도 결혼해 배우자의 법적 지위를 가질 수 없는 레즈비언이 놓인 부조리한 상황을 영화는 인터뷰로써 드러낸다. 이어 영화는 감독 자신이 직접 제 장례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으로 이어지니, 레즈비언의 장례를 이성애자들의 갇힌 시선 아래 두고 싶지 않다는 저항의 표출 정도로 이해할 수가 있겠다. 아쉬운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레즈비언이 놓인 고난은 영화 내내 오로지 인터뷰로써 비춰진다. 제 장례식을 현실 장례가 치러지는 절차가 아닌 가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부조리가 드러날 여지 또한 상당부분 상실된다. 무엇보다 장례 그 자체를 가까이서 비추지 않는단 건 아까운 대목이다. 편지를 읽는 친구들, 상주를 맡은 이들, 관 안에 누운 주인공 자신의 모습이 비춰지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춰지는 정도에 그친다. 표출되는 감정을 넘어 그 목소리를, 뜻을, 의지를 생생히 전달할 장치를 감독은 얼마 고민하지 않은 듯하다. 여성과 레즈비언이 놓인 부조리함을 선명히 들추거나 전위적 저항에까지 이를 수 있는 순간이 없지 않았을 것이기에 차마 만족한다 평할 수가 없다. 다만 <마이 퍼스트 퓨너럴>의 가치는 기록할 만하다. 어째서 여성은 상주를 할 수 없는가. 왜 여성과 여성 간 가족관계는 맺어질 수 없는가. 인간이 제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자유를 국가며 낡은 문화가 가로막고 있는 오늘의 상황을 우리는 어찌하여 아직까지 그대로 놓아두고만 있는가. 충분히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 카메라 너머로, 이 영화를 찍고 찍히기로 결정한 이들의 마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건 치이고 다치기만 해온 여린 사람들의 공감대가 분명한 힘을 발하고 있는 덕분일 테다. 그리하여 나는 <마이 퍼스트 퓨너럴>이 여전히 유효한 작품이라 적을 밖에 없다. 한국의 민망한 현실, 그에 다친 이들의 진심이 적어도 얼마쯤은 비어져 나오는 때문이다.
리버
4.0
'죽고 싶다’와 ‘그래도 살아가야지‘ 사이에는 무엇이 있나
에브릴
3.5
덕분에 나의 내일을 위해 조금 더 씩씩하게 살피고 준비하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GG
4.0
기꺼이 행해보는 장례식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잔월
5.0
기존 고정관념의 형식을 완전히 깨버린 자신이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새로운 유형의 장례식 그뿐만 아니라 장례식의 성차별적인 요소들도 보여주면서 현 사회에서의 장례식과 가족의 관계와 소수자와 연대에 대해서도 다시금 고려하게 만든다. 사실상 모든 혁신과 변화는 이러한 시도의 선례로부터 시작되기에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나볼 수 있어 반가웠다. # SIWFF 2024
준이
4.0
당당하게 나의 새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박상민
3.5
감독은 호모포비아(부모)에 의한 레즈비언(딸)의 장례식을 거부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장례식(의식이자 일종의 연극)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과 성소수자들의 관점에서 한국의 장례절차와 법체계 속 가부장제를 뜯어보인다. (장례식에서 가족의 이름을 띄우는 순서, 상주가 손님 맞는 법, 딸보다 사위가 앞서는 점, 관은 여자가 들 수 없는 것, 재산의 자동 승계와 공증유언 등에 이르도록.) 마지막 장례식 장면에서 감독 자신이 관 안에 누워있는 모습은 등 장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조문객과 그들의 리액션만을 담는다.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 저항적 행위에 공감하는 소수자들의 목소리와 얼굴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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