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솜땅3.0뭔가 있어보이는 영상속에 허무주의를 끼워넣다. 블라디보스톡까지 가서 찍은 영상에 뭔가 빠진듯 하다. 별로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찾아 러시아로 가서 다 털리고... 하지만 숨겨진 그녀의 본모습을 보이며 자유를 찾아 떠나는 모습인데.. 좀 자유를 만끽하게 놔두면 안돼겠니? #20.7.18 (1802)좋아요36댓글0
Ordet5.012월 21일 오후 2시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마지막으로 상영되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일곱 번째 코드>(2013)를 강력하게 추천하고자 한다.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내가 존경하는 일본의 영화평론가인 하스미 시게히코를 통해서였다. 어느 해인가 그가 <일곱 번째 코드>를 베스트 명단에 올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이 영화가 있는 걸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늘 이 영화를 보고 싶었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보게 된 것이다. 하스미와 같은 이유는 아니겠으나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기요시의 영화 중에 덜 알려진 이 작품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일단은 핵심만 담은 글을 먼저 쓰고 나중에 더 긴 글을 써볼 생각이다. 내가 <일곱 번째 코드>를 추천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지금 영화를 보고 있다는 감각을 계속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흔히 이런 유형의 영화를 메타 시네마라고 부르는데 이 영화가 놀라웠던 건 기요시는 그냥 재미있는 영화를 한 편 만든 것 같은데 그가 영화를 만들어오면서 갖고 있던 질문들이 화면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곱 번째 코드>가 의도적으로 메타 시네마를 지향하면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아키코(마에다 아츠코)가 일본에서 딱 한번 만났던 마츠나가(스즈키 료헤이)가 러시아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오게 되고 그 이후로 그녀가 겪게 되는 모험을 그린다.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 기요시가 쓴 '구로사와 기요시, 21세기의 영화를 말한다'에 대한 언급도 해야할 것 같다. 내가 이번에 <일곱 번째 코드>를 보는 방식에 이 책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요시는 이 책에서 세계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영화는 사각형으로 오려낸 부분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에도 그는 사각으로 오려낸 부분만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항상 사각형의 밖에는 세계가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다고 말한다. 이 내용을 염두에 두고 기요시의 영화를 보니까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기요시의 영화는 화면에 뭔가가 자꾸 침입한다는 인상을 주는데 기요시의 영화 철학을 이해하고 나니 그것이 영화 속에 현실(세계)이 틈입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틈입은 기요시의 호러 영화에 독창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영화 밖의 현실을 환기시키도록 작동한다. 고다르는 그가 만드는 모든 영화가 비평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요시가 프레임 안으로 자꾸 침투하는 것들을 통해 현실을 환기시키는 방식도 일정 부분 영화에 대한 비평의 차원이 포함된 건 아닐까. 요컨대 기요시의 영화는 빼어난 장르 영화이자 '메타 시네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일곱 번째 코드>를 보니까 매 순간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이 영화는 아키코가 프레임 안에 등장하고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면서 끝난다. 이것을 존 포드의 <수색자>(1956)에서 문이 열리면서 영화가 시작하고 문이 닫히면서 영화가 끝나는 형식과도 연관지어볼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은 아키코에 동화되어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아키코의 여정이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러한 과정이 프레임에 등장하고 퇴장하는 아키코를 통해 환기되는 것이다. 영화의 초반에 아키코가 괴한들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가서 낯선 장소에 버려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 또한 관객이 영화를 보는 상황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 관객은 스크린 속에서 어떤 이야기와 마주쳐야 할지 모르는 채 어디엔가 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인 아키코가 러시아라는 낯선 땅에 와있다는 것도 던져진 존재라는 점을 강화시킨다. 이 영화에서 기요시는 의도적으로 이중 프레임을 사용하면서 계속 영화를 끌고 간다. 이중 프레임은 아키코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있지만 그녀의 상태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계속 관객으로 하여금 상기시키며 이후 상황에 대한 복선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미쟝센이 전혀 억지스럽지가 않다. 이 이중 프레임은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가 살아서 약동하고 있으며 아키코가 다른 프레임으로 사라지는 순간 언제라도 다른 방향으로 열릴 수 있다는 감각을 전달한다. 영화의 초반에 아키코는 마츠나가를 만나지만 금새 그와 헤어지게 되고 마츠나가의 세계로 들어가는 걸 방해받는다. 아키코는 마츠나가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온 건데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체가 밝혀지는 것이 유예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키코는 한 레스토랑에 취직을 하게 되는데 레스토랑의 주인인 사이토와 아키코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우리는 놀라운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사이토와 아키코가 대화를 나눌 때까지 프레임 밖에 있던 레스토랑 밖의 풍경이 카메라의 위치가 바뀌면서 비로소 드러나는데 이때 레스토랑 밖으로 청록색 차가 한 대 지나간다. 관객은 이 차를 본 적이 있다. 바로 영화의 오프닝에서 마츠나가가 탔던 차이기 때문이다. 마치 섬광 같이 우리의 눈 앞을 지나가는 청록색. 이 색으로부터 영화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아키코와 사이토가 이 청록색 차를 추격하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음악이 흐르고 카메라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전까지 나오지 않았던 프레임 밖에 있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하고 아키코는 그제서야 마츠나가의 세계로 한발 더 다가서게 된다. 영화에서 카메라는 세계를 발견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그렇게 본다면 순식간에 지나가는 청록색을 실마리로 관객의 눈 앞에 다른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건 '영화'에 대한 메타포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보통 영화 속 서사가 한 인물이 세계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말이다. 그런데 기요시는 이렇게 마츠나가의 세계를 열어주는 것 같더니 이 세계의 진실을 밝혀내는 순간을 다시 유예시킨다. 그러면서 <일곱 번째 코드>는 이후로도 여러 번 서사의 변곡점을 거치면서 우리를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결말로 이끈다. 그러는 동안 기요시는 프레임의 안과 밖을 계속 돌아보게 만들고 프레임의 이완과 확장을 통해 관객이 영화와 현실 사이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감각을 체험하게 만든다. 영화가 끝나는 건가 하는 순간 가장 이질적인 장면이 시작된다. 갑자기 영화 속에서 아키코 역을 맡은 마에다 아츠코의 뮤직 비디오가 삽입되기 때문이다. 그 뮤직 비디오의 제목이 바로 '일곱 번째 코드'이다. 이 영화는 원래 마에다 아츠코의 '일곱 번째 코드' 뮤직 비디오용으로 제작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비로소 밝혀진다. 이 뮤직 비디오의 장면과 아키코가 어디론가 이동하는 장면이 교차로 보여진다. 그러다가 카메라는 아키코가 탄 트럭에서 일어나는 일을 익스트림 롱 숏으로 보여주고 천천히 우측으로 팬을 한다. 그러자 우리의 눈 앞에는 초록색 평원이 펼쳐진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기요시가 애초에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바로 러시아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면에서 기차가 도착한다거나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던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세계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일곱 번째 코드>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나는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1965)의 마지막 장면에서 화면 속에 광활한 바다가 펼쳐진 가운데 장 폴 벨몽도와 안나 카리나가 나누던 대화가 어쩌면 '영화'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팬을 통해 드러나는 러시아의 풍경을 보면서 장 르누아르의 <익사로부터 구조된 부뒤>(1932)를 비롯한 영화사의 기억이 환기되는 것도 물론이다. 결국 이 영화에서 아키코는 사라지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기요시가 일정 부분 로라 시타렐라의 <트렌케 라우켄>(2022)의 결말과도 비슷한 걸 선취한 느낌마저 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전체로 놓고 보면 로버트 알드리치의 <키스 미 데들리>(1955)와도 통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언뜻 보기에 <일곱 번째 코드>는 아무리 좋게 봐도 장르에 대한 기요시의 탁월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장르를 오가는 영화 이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곱 번째 코드>는 한편으로 영화는 사실 세계에서 오려낸 사각형일 뿐이고 세계는 열려 있으므로 영화 또한 고정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프레임 밖의 세계로 확장될 수 있다는 놀라운 감각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 글을 읽고도 이 영화가 나에게 왜 그리 경이롭게 다가왔는지 납득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내 글을 읽고 마음이 동한 사람이 있다면 <일곱 번째 코드>의 경이로움을 반드시 스크린을 통해 직접 확인하기를 바란다.좋아요21댓글0
오세일3.5기요시의 숏은 관객이 인식하는 보통의 세계를 프레임 내부에 가둔 뒤, 서서히 균열을 일으켜 생성해낸 골 너머로 마중의 손을 뻗는다. 그러니까 '기요시 월드'로의 초대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그는 숏을 통해 자연적인 현상이 물질과 맞닿을 때의 순간, 혹은 자연적인 현상이 이미 지나간 자리의 흔적을 감각하며 보통의 세계에 이질감을 수놓는다. (이제는 기요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바람의 입김에 위태롭게 흩날리는 커튼, 커튼의 틈새 사이로 간신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자연광, 보이지 않는 프레임 너머의 무언가를 인식하는 시선 등. <세븐스 코드>의 시선은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를 떠올리게 하는 러시아의 한 폐허를 경유한다. 무너진 잔해들, 혹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땅 위로 솟아난 잡초 따위들. 일본을 벗어난 기요시는 타국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세계를 숏으로 건축한다. 영화의 내용은 허무맹랑하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쯤 아키코가 스스로 직업의 비밀을ㅡ다소 당혹스러운 육신의 운동성으로ㅡ밝히기 이전까지 <세븐스 코드>는 줄곧 개연성을 상실한 채 진행된다. 하지만 기요시의 세계에서 비개연은 설명(이해)할 수 없는 생의 즉흥성을 강조하기 위한 미학적 수단이며, 아키코 역시 다소 충동적인 직업으로부터의 도피를 기도한다. 그리고 또 뜬금없이 등장하는 음악 그리고 낭만. 자유를 찾아 떠난 그녀에게 영화는 민망할 정도의 '청춘스러운' 감성을 끼얹는다. 허나 (마침내) 킬러의 옷을 벗고 청춘의 삶으로 돌아간 그녀에게 영화가 허락한 낭만의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는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한 명의 인물에 의해 역으로 목숨을 빼앗기고 마는 킬러의 아이러니. 그나저나 왜 하필 러시아였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아키코에게 주었던 희망을 다시 회수하는 기요시의 마지막 숏은 유달리 매정해 보인다.좋아요6댓글0
이용희0.5방심은 죽음의 지름길. 그 어떤 서사도 없이 사건이 전개되니 인물들의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다. 노래는 좋다. 뮤직비디오는 뮤직비디오로 끝내길. 2022년 8월 15일에 봄 좋아요5댓글0
미상.3.5"외국에서는 사람을 믿지 마라." 그런 말 하는 당신이 제일 안 믿었어야 했는데. 도대체 내용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세븐스 코드>라는 제목은 그저 마에다 아츠코의 노래 제목이라서 이 영화의 제목이 되었을 것이다. 뮤직비디오로도 기획된 영화라고도 하지만 뭔가 그 이상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를 이해할려면 <세븐스코드>라는 노래 가사도 알아야 할 것 같다. 마지막에 여행을 떠난다고 할 지 그런 것은. 전개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이런 허술한 구멍이 있어보이는 게 재밌다. 구로사와 기요시가 밥 먹듯이 존경하다고 말하는 장 뤽 고다르의 초기작도 사실 치밀한 스토리는 아니니. 그 치밀하지 않은 스토리 안에서 그가 말해왔던 것들 주로, 사회주의, 영화, 역사 등을 이해하는 게 관객의 목적 아닌다. 구로사와 기요시도 그러하다면 이 영화 속에서 봐야하는 것도 사회나 사람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기요시도 항상 그래왔고. 약하고, 철 없는 줄 알았던 아키코의 반전, 주체적이고 강한 캐릭터였다. 우리의 편견이나 사고가 이 영화의 주제라면. 그런 편견이 왜 생겼는지 세상과 결부시켜서 봐야겠다. 뭔지 잘 모르지만 마지막 반전(?) 또는 전개가 대단히 흥미롭기는 하다. [2019. 8. 19 월요일]좋아요3댓글0
다솜땅
3.0
뭔가 있어보이는 영상속에 허무주의를 끼워넣다. 블라디보스톡까지 가서 찍은 영상에 뭔가 빠진듯 하다. 별로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찾아 러시아로 가서 다 털리고... 하지만 숨겨진 그녀의 본모습을 보이며 자유를 찾아 떠나는 모습인데.. 좀 자유를 만끽하게 놔두면 안돼겠니? #20.7.18 (1802)
Ordet
5.0
12월 21일 오후 2시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마지막으로 상영되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일곱 번째 코드>(2013)를 강력하게 추천하고자 한다.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내가 존경하는 일본의 영화평론가인 하스미 시게히코를 통해서였다. 어느 해인가 그가 <일곱 번째 코드>를 베스트 명단에 올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이 영화가 있는 걸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늘 이 영화를 보고 싶었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보게 된 것이다. 하스미와 같은 이유는 아니겠으나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기요시의 영화 중에 덜 알려진 이 작품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일단은 핵심만 담은 글을 먼저 쓰고 나중에 더 긴 글을 써볼 생각이다. 내가 <일곱 번째 코드>를 추천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지금 영화를 보고 있다는 감각을 계속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흔히 이런 유형의 영화를 메타 시네마라고 부르는데 이 영화가 놀라웠던 건 기요시는 그냥 재미있는 영화를 한 편 만든 것 같은데 그가 영화를 만들어오면서 갖고 있던 질문들이 화면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곱 번째 코드>가 의도적으로 메타 시네마를 지향하면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아키코(마에다 아츠코)가 일본에서 딱 한번 만났던 마츠나가(스즈키 료헤이)가 러시아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오게 되고 그 이후로 그녀가 겪게 되는 모험을 그린다.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 기요시가 쓴 '구로사와 기요시, 21세기의 영화를 말한다'에 대한 언급도 해야할 것 같다. 내가 이번에 <일곱 번째 코드>를 보는 방식에 이 책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요시는 이 책에서 세계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영화는 사각형으로 오려낸 부분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에도 그는 사각으로 오려낸 부분만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항상 사각형의 밖에는 세계가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다고 말한다. 이 내용을 염두에 두고 기요시의 영화를 보니까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기요시의 영화는 화면에 뭔가가 자꾸 침입한다는 인상을 주는데 기요시의 영화 철학을 이해하고 나니 그것이 영화 속에 현실(세계)이 틈입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틈입은 기요시의 호러 영화에 독창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영화 밖의 현실을 환기시키도록 작동한다. 고다르는 그가 만드는 모든 영화가 비평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요시가 프레임 안으로 자꾸 침투하는 것들을 통해 현실을 환기시키는 방식도 일정 부분 영화에 대한 비평의 차원이 포함된 건 아닐까. 요컨대 기요시의 영화는 빼어난 장르 영화이자 '메타 시네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일곱 번째 코드>를 보니까 매 순간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이 영화는 아키코가 프레임 안에 등장하고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면서 끝난다. 이것을 존 포드의 <수색자>(1956)에서 문이 열리면서 영화가 시작하고 문이 닫히면서 영화가 끝나는 형식과도 연관지어볼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은 아키코에 동화되어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아키코의 여정이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러한 과정이 프레임에 등장하고 퇴장하는 아키코를 통해 환기되는 것이다. 영화의 초반에 아키코가 괴한들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가서 낯선 장소에 버려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 또한 관객이 영화를 보는 상황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 관객은 스크린 속에서 어떤 이야기와 마주쳐야 할지 모르는 채 어디엔가 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인 아키코가 러시아라는 낯선 땅에 와있다는 것도 던져진 존재라는 점을 강화시킨다. 이 영화에서 기요시는 의도적으로 이중 프레임을 사용하면서 계속 영화를 끌고 간다. 이중 프레임은 아키코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있지만 그녀의 상태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계속 관객으로 하여금 상기시키며 이후 상황에 대한 복선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미쟝센이 전혀 억지스럽지가 않다. 이 이중 프레임은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가 살아서 약동하고 있으며 아키코가 다른 프레임으로 사라지는 순간 언제라도 다른 방향으로 열릴 수 있다는 감각을 전달한다. 영화의 초반에 아키코는 마츠나가를 만나지만 금새 그와 헤어지게 되고 마츠나가의 세계로 들어가는 걸 방해받는다. 아키코는 마츠나가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온 건데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체가 밝혀지는 것이 유예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키코는 한 레스토랑에 취직을 하게 되는데 레스토랑의 주인인 사이토와 아키코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우리는 놀라운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사이토와 아키코가 대화를 나눌 때까지 프레임 밖에 있던 레스토랑 밖의 풍경이 카메라의 위치가 바뀌면서 비로소 드러나는데 이때 레스토랑 밖으로 청록색 차가 한 대 지나간다. 관객은 이 차를 본 적이 있다. 바로 영화의 오프닝에서 마츠나가가 탔던 차이기 때문이다. 마치 섬광 같이 우리의 눈 앞을 지나가는 청록색. 이 색으로부터 영화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아키코와 사이토가 이 청록색 차를 추격하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음악이 흐르고 카메라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전까지 나오지 않았던 프레임 밖에 있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하고 아키코는 그제서야 마츠나가의 세계로 한발 더 다가서게 된다. 영화에서 카메라는 세계를 발견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그렇게 본다면 순식간에 지나가는 청록색을 실마리로 관객의 눈 앞에 다른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건 '영화'에 대한 메타포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보통 영화 속 서사가 한 인물이 세계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말이다. 그런데 기요시는 이렇게 마츠나가의 세계를 열어주는 것 같더니 이 세계의 진실을 밝혀내는 순간을 다시 유예시킨다. 그러면서 <일곱 번째 코드>는 이후로도 여러 번 서사의 변곡점을 거치면서 우리를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결말로 이끈다. 그러는 동안 기요시는 프레임의 안과 밖을 계속 돌아보게 만들고 프레임의 이완과 확장을 통해 관객이 영화와 현실 사이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감각을 체험하게 만든다. 영화가 끝나는 건가 하는 순간 가장 이질적인 장면이 시작된다. 갑자기 영화 속에서 아키코 역을 맡은 마에다 아츠코의 뮤직 비디오가 삽입되기 때문이다. 그 뮤직 비디오의 제목이 바로 '일곱 번째 코드'이다. 이 영화는 원래 마에다 아츠코의 '일곱 번째 코드' 뮤직 비디오용으로 제작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비로소 밝혀진다. 이 뮤직 비디오의 장면과 아키코가 어디론가 이동하는 장면이 교차로 보여진다. 그러다가 카메라는 아키코가 탄 트럭에서 일어나는 일을 익스트림 롱 숏으로 보여주고 천천히 우측으로 팬을 한다. 그러자 우리의 눈 앞에는 초록색 평원이 펼쳐진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기요시가 애초에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바로 러시아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면에서 기차가 도착한다거나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던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세계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일곱 번째 코드>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나는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1965)의 마지막 장면에서 화면 속에 광활한 바다가 펼쳐진 가운데 장 폴 벨몽도와 안나 카리나가 나누던 대화가 어쩌면 '영화'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팬을 통해 드러나는 러시아의 풍경을 보면서 장 르누아르의 <익사로부터 구조된 부뒤>(1932)를 비롯한 영화사의 기억이 환기되는 것도 물론이다. 결국 이 영화에서 아키코는 사라지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기요시가 일정 부분 로라 시타렐라의 <트렌케 라우켄>(2022)의 결말과도 비슷한 걸 선취한 느낌마저 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전체로 놓고 보면 로버트 알드리치의 <키스 미 데들리>(1955)와도 통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언뜻 보기에 <일곱 번째 코드>는 아무리 좋게 봐도 장르에 대한 기요시의 탁월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장르를 오가는 영화 이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곱 번째 코드>는 한편으로 영화는 사실 세계에서 오려낸 사각형일 뿐이고 세계는 열려 있으므로 영화 또한 고정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프레임 밖의 세계로 확장될 수 있다는 놀라운 감각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 글을 읽고도 이 영화가 나에게 왜 그리 경이롭게 다가왔는지 납득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내 글을 읽고 마음이 동한 사람이 있다면 <일곱 번째 코드>의 경이로움을 반드시 스크린을 통해 직접 확인하기를 바란다.
개구리개
2.0
영화를 보고 엥? 뒤늦게 감독이름보고 엥?엥?엥?
오세일
3.5
기요시의 숏은 관객이 인식하는 보통의 세계를 프레임 내부에 가둔 뒤, 서서히 균열을 일으켜 생성해낸 골 너머로 마중의 손을 뻗는다. 그러니까 '기요시 월드'로의 초대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그는 숏을 통해 자연적인 현상이 물질과 맞닿을 때의 순간, 혹은 자연적인 현상이 이미 지나간 자리의 흔적을 감각하며 보통의 세계에 이질감을 수놓는다. (이제는 기요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바람의 입김에 위태롭게 흩날리는 커튼, 커튼의 틈새 사이로 간신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자연광, 보이지 않는 프레임 너머의 무언가를 인식하는 시선 등. <세븐스 코드>의 시선은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를 떠올리게 하는 러시아의 한 폐허를 경유한다. 무너진 잔해들, 혹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땅 위로 솟아난 잡초 따위들. 일본을 벗어난 기요시는 타국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세계를 숏으로 건축한다. 영화의 내용은 허무맹랑하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쯤 아키코가 스스로 직업의 비밀을ㅡ다소 당혹스러운 육신의 운동성으로ㅡ밝히기 이전까지 <세븐스 코드>는 줄곧 개연성을 상실한 채 진행된다. 하지만 기요시의 세계에서 비개연은 설명(이해)할 수 없는 생의 즉흥성을 강조하기 위한 미학적 수단이며, 아키코 역시 다소 충동적인 직업으로부터의 도피를 기도한다. 그리고 또 뜬금없이 등장하는 음악 그리고 낭만. 자유를 찾아 떠난 그녀에게 영화는 민망할 정도의 '청춘스러운' 감성을 끼얹는다. 허나 (마침내) 킬러의 옷을 벗고 청춘의 삶으로 돌아간 그녀에게 영화가 허락한 낭만의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는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한 명의 인물에 의해 역으로 목숨을 빼앗기고 마는 킬러의 아이러니. 그나저나 왜 하필 러시아였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아키코에게 주었던 희망을 다시 회수하는 기요시의 마지막 숏은 유달리 매정해 보인다.
청소년관람불가
3.0
기요시의 음악재해석 그리고 내용전개 방식도 여러모로 친절하진 않다
이용희
0.5
방심은 죽음의 지름길. 그 어떤 서사도 없이 사건이 전개되니 인물들의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다. 노래는 좋다. 뮤직비디오는 뮤직비디오로 끝내길. 2022년 8월 15일에 봄
미상.
3.5
"외국에서는 사람을 믿지 마라." 그런 말 하는 당신이 제일 안 믿었어야 했는데. 도대체 내용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세븐스 코드>라는 제목은 그저 마에다 아츠코의 노래 제목이라서 이 영화의 제목이 되었을 것이다. 뮤직비디오로도 기획된 영화라고도 하지만 뭔가 그 이상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를 이해할려면 <세븐스코드>라는 노래 가사도 알아야 할 것 같다. 마지막에 여행을 떠난다고 할 지 그런 것은. 전개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이런 허술한 구멍이 있어보이는 게 재밌다. 구로사와 기요시가 밥 먹듯이 존경하다고 말하는 장 뤽 고다르의 초기작도 사실 치밀한 스토리는 아니니. 그 치밀하지 않은 스토리 안에서 그가 말해왔던 것들 주로, 사회주의, 영화, 역사 등을 이해하는 게 관객의 목적 아닌다. 구로사와 기요시도 그러하다면 이 영화 속에서 봐야하는 것도 사회나 사람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기요시도 항상 그래왔고. 약하고, 철 없는 줄 알았던 아키코의 반전, 주체적이고 강한 캐릭터였다. 우리의 편견이나 사고가 이 영화의 주제라면. 그런 편견이 왜 생겼는지 세상과 결부시켜서 봐야겠다. 뭔지 잘 모르지만 마지막 반전(?) 또는 전개가 대단히 흥미롭기는 하다. [2019. 8. 19 월요일]
또로로
3.5
뮤직비디오를 만들랬더니 <키스 미 데들리>를 재해석해버린 기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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