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솜땅4.0젊은 나이에 법을 공부하며 변호사가 되었고.. 탁월하게 똑똑한 모습은 없었지만, 최고의 현명함은 넘치게 가졌던 링컨의 젊은시절의 폐기! 그의 너그러운 모습이 얼마나 빛이나는지... 극적인 이야기의 재미가 탁월했던 존 포드의 링컨이었다. #20.8.27 (2138)좋아요51댓글0
Jay Oh4.0언제까지나 나뭇가지가 선택의 무게를 지탱할 수는 없을테다. No longer will the stick be burdened by the weight of choice and action.좋아요40댓글0
포포투5.0내가 가장 좋아하는 존 포드의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젊은 링컨〉이다. 여기서 (링컨의) 죽음은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그 기운은 넘친다. 조금 오버하면 링컨의 죽음을 모르는 사람도 이 작품을 보면 예견할 수 있을 정도다. 헨리 폰다가 연기한 링컨은 움직임, 제스처 하나하나 자신감과 주저함이 공존하고, 삶과 죽음이 함께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밀고 당기기다. 삶과 죽음의 공기가, 자신감과 주저함의, 자신과 타자의 결정 사이 밀고 당기기가 있고 불필요한 서사의 삽입과 필요한 쇼트의 제거가 서로 씨름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오묘하게 느껴지는 것은 프레임에 링컨이 있을때이다. 중요한 순간마다 프레임에 고립되어있는 그의 모습, 즉 영웅의 서사에서 그는 철저히 고립된다. 첫 장면과 달리 마지막에 삭제된 관객의 쇼트에서 그는 홀로 언덕을 오른다. 이런 영화적 공기를 만들 수 있는 거장은 아마 존 포드 밖에 없지 않을까.좋아요14댓글0
혁민5.0불완전한 세계를 살아가는 불완전한 개인을 담는 완전한 영화. 영화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반영의 현실'이라고 할 때 그 반영의 대상이 '개인'일 경우 그 개인이 놓여있는 영화라는 대안-현실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하여 가장 완벽하고 정교한 미학을 보여주는 예술품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더하여 후반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재판 시퀀스는 그 자체로 존 포드의 연출 방법론을 대변한다고 까지 말하고 싶다. 법 체계 너머를 상상하기 위해 법 체계를 공부한 링컨과 언제나 미학이 철학보다 우위에 있으며 철학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인간다움'을 영화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존 포드가 사뭇 겹쳐보인다.좋아요13댓글0
왓챠보안관^^75.0- 존 포드는 위대한 감독이다. 그렇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위대하다 느낄 수 있는 건 별개의 문제다. 넘나 부끄럽지만 최근에 나는 <역마차>의 모뉴먼트 밸리를 보고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고, <수색자>의 데비가 나타났을 때 흔들리는 공동체의 심연을 마주하며 마음이 흔들렸던 적은 더더욱 없다. 존 포드에 관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선대의 평가에 기대 그를 위대하다고 기계적으로 받아들였던 게 다다. 단지 그의 위대함을 알아채기에 내 영화적 세계가 단단하지 못함을 깨달을 뿐이다. - 그런 의미로 <젊은 링컨>은 포드의 모더니티와 위대함(이라 불리어지는 장르적 형식)이 조금이나마 눈으로 감각할 수 있게 된 계기같다. 이 영화는 고전 영화의 장르 규칙을 따르지만 그 표현양식에 있어서는 너무나 모던하다. - 변호사 시절의 링컨이 있다. 그는 우리가 아는 턱수염을 기른 정치인이자 노예해방을 이끈 영웅 링컨이 아니다. (세간에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링컨의 턱수염은 대통령 취임 전후로 길러졌다고 알려졌다) 헨리 포드의 육체에 깃든 긴 팔과 다리, 늘어진 목소리와 시시껄렁한 유머로 좌중을 편안하게 하는 자이자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것 조차 두려워하는 젊은이다. <젊은 링컨>의 링컨은 확실히 우리가 아는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적 면모와 사뭇 거리가 있다. - 영화는 정치인이 되기를 잠시 접어두고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는 전반부와 살인 누명을 쓴 형제를 변호하기 위해 변호사로 거듭나는 후반부 링컨의 이야기로 나뉘어 있다. 형제의 누명을 벗긴 변호사 링컨의 성장 서사로 받아들이기 보단 오히려 재판의 결과와 링컨 개인이 가진 신념(혹은 정치관)이 아무런 관계도 없음을 증명하는 것 같다. 따라서 재판의 승리는 긴장을 해소하기 보단 오히려 승리로 인해 링컨의 얼굴에 불안이 깃드는 모양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인지 <역마차>의 모뉴먼트 밸리를 마주했을 때보다 '어쩌면 저것이 서부가 아닐까' 하는 마음을 지니게 한다. 변호사로서의 여정을 끝마치고 홀연히 떠나는 링컨의 뒷모습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희비를 맞이할 링컨이 기다리고 있다. <젊은 링컨>은 그 공백을 모던하게 지탱하는 영화같다. 존 포드의 세계로 어렴풋이나마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만드는.좋아요10댓글0
STONE
4.5
정의는 완전무결한 선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뇌하는 과정에 있다.
다솜땅
4.0
젊은 나이에 법을 공부하며 변호사가 되었고.. 탁월하게 똑똑한 모습은 없었지만, 최고의 현명함은 넘치게 가졌던 링컨의 젊은시절의 폐기! 그의 너그러운 모습이 얼마나 빛이나는지... 극적인 이야기의 재미가 탁월했던 존 포드의 링컨이었다. #20.8.27 (2138)
Jay Oh
4.0
언제까지나 나뭇가지가 선택의 무게를 지탱할 수는 없을테다. No longer will the stick be burdened by the weight of choice and action.
Dh
4.0
그른 것을 지나칠 수 없었던 링컨의 정의구현 #고뇌와 선택
김솔한
4.0
대중을 홀리는 자발적 아웃사이더.
포포투
5.0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존 포드의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젊은 링컨〉이다. 여기서 (링컨의) 죽음은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그 기운은 넘친다. 조금 오버하면 링컨의 죽음을 모르는 사람도 이 작품을 보면 예견할 수 있을 정도다. 헨리 폰다가 연기한 링컨은 움직임, 제스처 하나하나 자신감과 주저함이 공존하고, 삶과 죽음이 함께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밀고 당기기다. 삶과 죽음의 공기가, 자신감과 주저함의, 자신과 타자의 결정 사이 밀고 당기기가 있고 불필요한 서사의 삽입과 필요한 쇼트의 제거가 서로 씨름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오묘하게 느껴지는 것은 프레임에 링컨이 있을때이다. 중요한 순간마다 프레임에 고립되어있는 그의 모습, 즉 영웅의 서사에서 그는 철저히 고립된다. 첫 장면과 달리 마지막에 삭제된 관객의 쇼트에서 그는 홀로 언덕을 오른다. 이런 영화적 공기를 만들 수 있는 거장은 아마 존 포드 밖에 없지 않을까.
혁민
5.0
불완전한 세계를 살아가는 불완전한 개인을 담는 완전한 영화. 영화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반영의 현실'이라고 할 때 그 반영의 대상이 '개인'일 경우 그 개인이 놓여있는 영화라는 대안-현실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하여 가장 완벽하고 정교한 미학을 보여주는 예술품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더하여 후반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재판 시퀀스는 그 자체로 존 포드의 연출 방법론을 대변한다고 까지 말하고 싶다. 법 체계 너머를 상상하기 위해 법 체계를 공부한 링컨과 언제나 미학이 철학보다 우위에 있으며 철학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인간다움'을 영화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존 포드가 사뭇 겹쳐보인다.
왓챠보안관^^7
5.0
- 존 포드는 위대한 감독이다. 그렇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위대하다 느낄 수 있는 건 별개의 문제다. 넘나 부끄럽지만 최근에 나는 <역마차>의 모뉴먼트 밸리를 보고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고, <수색자>의 데비가 나타났을 때 흔들리는 공동체의 심연을 마주하며 마음이 흔들렸던 적은 더더욱 없다. 존 포드에 관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선대의 평가에 기대 그를 위대하다고 기계적으로 받아들였던 게 다다. 단지 그의 위대함을 알아채기에 내 영화적 세계가 단단하지 못함을 깨달을 뿐이다. - 그런 의미로 <젊은 링컨>은 포드의 모더니티와 위대함(이라 불리어지는 장르적 형식)이 조금이나마 눈으로 감각할 수 있게 된 계기같다. 이 영화는 고전 영화의 장르 규칙을 따르지만 그 표현양식에 있어서는 너무나 모던하다. - 변호사 시절의 링컨이 있다. 그는 우리가 아는 턱수염을 기른 정치인이자 노예해방을 이끈 영웅 링컨이 아니다. (세간에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링컨의 턱수염은 대통령 취임 전후로 길러졌다고 알려졌다) 헨리 포드의 육체에 깃든 긴 팔과 다리, 늘어진 목소리와 시시껄렁한 유머로 좌중을 편안하게 하는 자이자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것 조차 두려워하는 젊은이다. <젊은 링컨>의 링컨은 확실히 우리가 아는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적 면모와 사뭇 거리가 있다. - 영화는 정치인이 되기를 잠시 접어두고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는 전반부와 살인 누명을 쓴 형제를 변호하기 위해 변호사로 거듭나는 후반부 링컨의 이야기로 나뉘어 있다. 형제의 누명을 벗긴 변호사 링컨의 성장 서사로 받아들이기 보단 오히려 재판의 결과와 링컨 개인이 가진 신념(혹은 정치관)이 아무런 관계도 없음을 증명하는 것 같다. 따라서 재판의 승리는 긴장을 해소하기 보단 오히려 승리로 인해 링컨의 얼굴에 불안이 깃드는 모양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인지 <역마차>의 모뉴먼트 밸리를 마주했을 때보다 '어쩌면 저것이 서부가 아닐까' 하는 마음을 지니게 한다. 변호사로서의 여정을 끝마치고 홀연히 떠나는 링컨의 뒷모습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희비를 맞이할 링컨이 기다리고 있다. <젊은 링컨>은 그 공백을 모던하게 지탱하는 영화같다. 존 포드의 세계로 어렴풋이나마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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