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Queer
2024 · 드라마/로맨스/전기/역사 · 이탈리아, 미국
2시간 17분 · 청불
“내가 빠져든 건 네 찬란함일까, 젊음일까” 1950년대 멕시코시티. 미국에서 도망친 뒤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작가 리. 함께할 수 있는 상대라면 누구든 상관없었던 리는 태양이 마지막 열기를 태워내며 타오르는 오후에 아름다운 청년 유진을 만나 첫눈에 빠져든다. “그저 다정하게만 대해줘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노골적인 관심과 구애 끝에 유진과 특별한 밤을 보낸 리. 하지만 마음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유진의 태도에 리는 점점 더 그를 갈망하며 집착하게 되는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그리는 매혹적인 사랑의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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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영화많이보는사람
4.0
~ 나는 남자와 섹스는 할 수 있지만, 퀴어는 아니야. ~ <구아다니노가 보여주는 이데아적 사랑> 초반부만 해도 중년게이의 애환을 담은 영화인가 했더니 꽤나 첨예하게 정체성 담론들을 휘젓는다. 영화의 키워드 중 하나는 '정신과 육체의 분리'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욕망을 반투명한 실루엣으로 표현한 연출이 처음엔 촌스럽다고 생각하였으나 키워드가 '정신과 육체의 분리'인 것을 깨닫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전통적 서구 철학부터 보자면 플라톤이 '정신과 육체의 분리'에 대해 말하였는데(계속해서 고립된 작은 방들이 나오는 이유도 맞닿아있다고 본다.) 이때만 해도 동성애는 이성애적 육체 관계보다 더 초월적인 형태의 무언가로 보았기에 소년과의 동성애가 유행(?)했다는 것은 꽤나 유명한 사실이다.(조금은 용례의 혼용이 있긴 하지만 이것이 '플라토닉 러브'이며, 두 주인공의 나이차만 봐도 이 '소년애'를 떠올릴 수 있다.) 물론 플라톤은 정신과 육체는 분리된 것들이지만 상호의존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성장해나간다고 보았다. 하지만 기독교가 세력을 넓히며 반동성애 풍조가 널리 퍼지게 되고 이 '분리'는 다른 형태로 퀴어 씬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퀴어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서구 철학에서의 '정신과 육체의 분리'는 현 사회에서 퀴어를 억압하는 장치로 쓰인다고 비판하였다. 예를 들면 이러한 분리의 억압이 '나는 남자와 섹스는 할 수 있지만, 게이는 아니야.' 같은 자기부정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물론 정신과 육체는 합일된 하나이다 보니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부정의 꼴은 자신의 총체적인 정체성, 즉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는 바 꽤나 위험하다. 이 리뷰에서 트랜스젠더 담론까진 들어가지 않을 것이지만 정신과 육체가 일치하지 않고 결코 합일을 이룰 수 없는 트랜스젠더들이 사는 동안 얼마나 크나큰 정신적 아픔을 안고 사는지 몇몇 사례들을 들어보면 정신과 육체가 불일치한다는 것에 의한 고통이 얼마나 큰지 감히 예상해볼 수 있으며, 퀴어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주변에 커밍아웃하고 퍼레이드에 참여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는 본인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일련의 과정이기에, 어떤 퀴어들은 본인의 정체성을 숨기는 것 자체가 죽음(자기부정)과도 직결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존중은 하는데 그냥 좀 조용히 살면 안돼?”라는 태도는 퀴어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생각이 없는 굉장히 모순적인 말이다. (참고로 이 글에서는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광의적으로 ’정체성‘을 사용한다.) 영화 내에서 윌리엄 리(대니얼 크레이그)도 유진 앨러튼(드류 스타키)도 "I'm not QUEER"를 종종 말하곤 한다.(영화에서 게이가 아닌 퀴어로 말하는 것을 보고 뭔가 이질감을 느끼긴 했으나 외국에서의 용례에 대해서 잘 모르니 연출적인 선택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면서 본인들은 그저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었을 뿐이라고 하며 성적 지향(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회피한다.(혹은 숨긴다.) 이는 두 주인공에게 약간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는데 리의 경우 정신(내적)은 게이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며 게이씬에서 잔뼈가 굵은 듯하지만 육체적(외적)으론 일반(헤테로)인 척 굴며 유진과의 육체적 관계를 계속해서 참아낸다.(물론 이는 육체적 욕망은 멈추고 정신적으로 합치하고 싶은 플라토닉 러브로 볼 수도 있다.) 유진의 경우 정신적(내적)으로는 퀘스쳐닝의 상태로 보이며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인물도 있고 정체성에 대해 노골적으로 티를 내지는 않지만, 호기심에 게이바를 가고 내킬 때는 리와 자는 등 육체적(외적)으로는 충분히 즐기고 다닌다. (개인적으론 유진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 이 영화의 골자라고 본다.) 사실 정체성 담론이 서양 퀴어시네마에서는 꽤 예전부터 이루어졌던 터라 좀 진부한 면도 있고, 현재 꽤나 개방된 사회상과 맞지 않기에 최근엔 이성애 로맨스와 다를 바 없는 일상 퀴어물들이 많이 나오는 추세이다.(요샌 한국에서도 정체성 고민보다 일상물을 더 많이 다루는 느낌이다, 벨드 말고.) 허나 구아다니노는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던 듯 '50년대'로 배경을 잡고 특이한 연출(솔직히 부천 영화제에서 볼 법한 연출들이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았다. 뭐 다른 의미로 리는 유진과의 사랑에서 공포를 느꼈겠지만.)들을 보여주며 꽤 괜찮은 정체성 영화를 선사해주었다.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리는 마약이 범죄시 되기 때문에 미국에서 멕시코로 넘어왔다고 했지만 비단 마약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예전부터 마약=동성애 같은 도식은 꽤나 사용되어왔기에, 리가 마약 뿐만이 아닌 동성애 박해로 인해 기독교가 창궐한 미국을 떠나 멕시코로 왔다고 볼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저 당시에 저렇게 퀴어프렌들리한 동네가 어디일까 의문이 들 정도였으니 일부러 멕시코로 왔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또한 초반에 유대교 청년과 보수적인 오클라호마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리가 마약에 중독되어 부작용으로 오한을 느끼지만, 이는 사랑(유진)에 중독되었지만 그만큼 애정을 돌려주지 않는 유진 때문에 외로움에 사무친 리의 모습과도 겹친다. 의도적으로 약국에서 마약을 사서 리에게 건네주는 것은 유진이다. 동성애(=마약) 박해를 피해 멕시코로 왔지만 이곳에서도 치명적인 유진을 만나면서 계속 그에게 중독되어간다. (여기서 마약은 부정적인 뉘앙스보다는 'toxic love' 정도의 느낌이다.) 더군다나 마약하는 낌새가 보이지도 않던 리가 유진에게 빠져들수록 의도적으로 마약하는 장면들이 나온다.(리의 마약통이 처음 등장한 것은, 리의 방에서 유진이 처음 발견했을 때이다. 유진이 리의 공간에 들어오고부터 리가 마약하는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중년게이의 삶을 처량하다. 게이씬에서 나이는 무기이다 보니 어린 사람이 취향인 사람일 수록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파트너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상대에게 매달리게 된다. 리가 영화에서 처음 젊은 청년과 자고난 다음 날 슈가대디 마냥 돈을 쥐어줄 지 고민한다. 진정한 사랑을 찾기 어려운 나머지 돈으로 귀속하는 것이 당연시 되어버렸고, 사랑의 관계에서 (나이에 따른, 돈이 얽힌) 상하 위계가 생겨버리고 만다. 가장 슬펐던 장면은 리가 유진에게 '다정하게 대해 줘,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이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할 때인데 이미 유진에게 중독되었고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린 중년게이 리의 처절함이 너무나 묻어나왔다. 솔직히 이렇게 냉랭해질 것이었으면 유진은 그날 밤 그 '하얀 키스'를 해서는 안됐다...ㅠ (기특하다고 리가 신나서 어루만져줬잖아...) 나중에 리가 밤에 마약 때문에(외로움에 사무쳐) 벌벌 떨 때도, 유진은 먼저 다가와 안아주질 않더라. 리가 먼저 물어보고 침대로 가 끌어안고(이때도 유진은 뒤돌아 있었다ㅠ) 그저 유진이 올려준 그 맨다리 하나에 기뻐하며 잠들 수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유진이 '리'의 이름을 불렀던 적이 손에 꼽는다. 두 번 정도로 기억하는데 그 중에 한 번은 환청이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정체성에 대한 결심을 '게워낸다(비워낸다)'라는 행동으로 표현하는데,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음에도 유진은 리의 집에서 게워낸 후 리와 관계를 가지고, 술에 잔뜩 취한 리가 유진에게 '너와 이야기 나누고 싶어, 말하지 않고.'라고 고백하러 가기 전에 소변을 본다. (이 때 두 장면 모두 전 시퀀스에 나오던 음악들이 뚝 끊긴다.) 리가 그토록 '야헤'의 '텔레파신'의 집착했던 것은 유진과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는 진정한 융합과 사랑의 경지(고대 그리스에서의 이데아적 사랑이 아닐까 한다. 육체를 뛰어넘어 정신마저 하나가 되는 플라토닉 러브.)에 도달하길 바랐기 때문인데, 사실 그냥 유진과 계속 함께 할 구실이 필요했었을 수도 있다. 결국은 함께 하며 (‘사랑해‘ 같은) 특별한 말 없이 돈독해지고 마침내 야헤를 통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 것도 이 과정을 통한 결과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서 사랑한단 대사를 들은 기억이 없다.) '야헤'는 '오락'이 아닌 '거울처럼 자신과 마주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언급이 나오는데 동성애를 단순히 쾌락과 연결짓는 반동성애 진영과 달리, 동성애를 통한 이러한 과정들은 정체성을 마주하는 존재적 중대사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이고, 이 거울에 대한 오마쥬로 초반에 리와 유진이 '장 콕토'의 <오르페>를 본다. '야헤'를 달여먹고 리와 유진은 심장을 게워내고 둘은 서로 뒤섞이는데 정신과 육체의 합일(정체성을 마주함), 더 넘어서는 두 사람의 합치된 마음(사랑을 확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야헤를 달여먹은 밤의 진정한 자신을 마주한 유진의 모습을 코터 박사가 칭찬하고 며칠 더 있다가라고 하지만 유진은 정체성을 더 깊이 인정하고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 황급히 떠나려고 한다. 그 밤에 유진은 이 정체성을 받아들인다는게 무서워서 울었다. 그렇게 정글을 떠나던 날, 리의 뒤를 쫓아 오는 줄만 알았던 유진은 어느새 앞서가있었고 결국 사라져버린다. 에필로그에서 리는 자신의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더 나아가서 무한대 기호의 모양을 하고 있다.)를 본다. 이 뱀은 야헤를 달여먹은 밤의 유진처럼 울고 있다. 이 굴레가 유진에게 얽매인 굴레인지 동성애의 굴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리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유진의 환영을 보게 된 리는 계속해서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던 권총(총과 뱀이 남성기의 상징물이라는 것은 너무 보편적이니 설명 생략.)을 드디어 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유진에게 벗어나기 위해서. 물론 쏘고나서 바로 후회한 듯이 시체에게 키스를 한다. 시간을 뛰어넘는 연출 후 노인이 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유진의 환청을 들은 후(위에서 언급했듯이 유진이 리의 이름을 불러주는 두 번 중 한 번 이다. '김춘수'의 <꽃>처럼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를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행위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약에 벌벌 떨던 날 밤 무심하게 유진이 자신의 다리 위에 포개어준 그의 맨다리를 잊지 못하고 그 추억을 회상하며 눈을 감는다. 이 때 마지막 씬이 굉장히 초월적인 정신세계 같은 느낌이 있다. 개인적으로 확신은 안 섰지만 대강 떠올렸던 부분들. 1. 유진의 갈비뼈나 뱀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아담 이야기를 안 떠올릴 수가 없는데 '치명적인 금단' 정도만 떠올랐다. 2. 작중 언급되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어머니' 이야기. 정신분석학적인 이야기로 간다면 어머니 이야기를 빼놓을 수야 없겠지만, 내가 모르는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기에 남성을 사랑하게 되었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있는 걸까...(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언급된 부분이 한 게이가 어떤 의사에게 진단 받았단 대목이라서..) 3. 지네는 무엇을 의미할까. 영화에서 계속 나오는 뱀과는 비슷하지만 다른(다리가 무수히 많다.) 상징물인지, 아니면 클리셰적으로 그 기어다니는 불쾌감(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젠더 디스포리아 같은?)을 보여준 것인지.
개스리
3.0
드류 스타키 당신을 아메리칸 은교로 임명합니다
해왕성
2.0
영화가 되게 국현미 로비에서 한낮에 졸다가 꾼 악몽 같으시다
변정아
1.5
남미새 남미에 가다
이가현
2.5
중간에 서브스턴스 되는 줄 알고 개쫄음진심
이동진 평론가
3.0
몽환이 깊어질수록 투명해지는 것들.
yy
3.0
왜이리추잡해... 이거노인학대야
카야와 멍멍이
4.0
루카님 레즈버전 한번만요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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