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섬세함은 알아도 타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남자, 유명한 그림은 알지 못해도 타인의 폭력을 잊지 못하는 여자가 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아서일까.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억되지 못한 존재가 또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제목이자 흔히 ‘교통’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트래픽(Traffic)’은 ‘소통’ 혹은 ‘밀매’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영화는 범죄와 밀거래 유혹에 취약해지고 마는 이주 노동자들의 서사를 기반으로 하여 누군가와 몸과 마음, 혹은 상품과 가치를 주고받는 문제를 포착하려 한다. 적자생존과 경쟁 사회에서 진정 우리를 갈라놓는 것은 무엇일까. 루마니아 공권력이 네덜란드에서 온 영국인에게 누가 ‘우리’이고 ‘그들’인지 가르는 말은 작금의 타자화가 단지 국경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린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검은 봉지 안으로 무참히 들어가는, 국경 넘어온 명화들을 보면서 기이한 기운을 느낀다. 무언가에 대한 가치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상대적으로 매겨진다는 그 차가운 현실을 친숙하면서도 낯선 방식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우리 마음 한쪽에 기억될 희망의 소통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한창욱) [제13회 디아스포라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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