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익4.5영화 <콜럼버스>가 그리는 욕망들(스포일러 주의): 소녀는 인간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정직하고 정갈한 무엇을 원하고 있었다. 그렇지 못한 혼잡스런 것들이 그녀의 삶을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랑에 실패해 한동안 약물에 빠져 살았고, 그녀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보살펴야 하는 삶의 무게를 떠안았다. 자신의 꿈을 펼쳐 보지 못한 채, 어깨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에 힘들어질 때면 말없이 정직한 모습으로 서있는 건축물을 찾아가 위안을 받곤 했다. 남자는 건축에 빠져 자식에게 관심주지 않던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었다. 그를 기다려준 적이 없는 아버지가 생사의 기로에 선 지금, 그는 아버지의 생전 발자취를 느껴보며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린다. 그의 아버지는 영혼이 있는 모더니즘을 믿었고, 그는 아버지의 믿음이 종교 같다고, 또한 종교는 군주제와 같다며 싫어했다. 허나 모더니즘은 본래 종교적 전통의 속박에서 헤어나 자유롭고 새로워지려는 청춘의 믿음이었으니, 그의 아버지가 믿은 영혼도 그런 해방적 삶의 의지였으리라. 하지만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이기적인 생에서 해방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아버지의 삶이 더 연명하지 않길 바랐다. 이런 아들의 생각 또한 청춘의 모더니즘이었으니. 그런 그가 그녀를 만났다. 좌절된 인생의 욕망을 정직한 건축에 투영하며 위안받아온 소녀는 그와의 대화 끝에 자신의 꿈을 따라 떠나기로 한다. 그녀는 어머니의 삶을 보살피느라 자신의 꿈을 포기하며 눈물을 참아왔었지만, 이제 자신의 삶을 살려는 의지가 어머니의 삶을 힘들게 할 까봐 눈물을 터뜨린다. 그리고는 유럽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떠난 것처럼, 어머니가 있는 고향을 떠나 건축의 꿈이 있는 곳으로 떠난다. 이렇듯 영화 <콜럼버스>는 모더니즘 건축을 소재로 삼아, 삶의 무게를 덜고 싶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욕망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 욕망은 주어진 과거와 다른 새로운 미래를 향한 근대적 주체의 의지이기에, 모더니즘 건축의 욕망과도 같다. 그 심리는 부모의 삶에 엮인 멍에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립적 삶을 살려는 자식들의 욕망과도, 전통적 고향에서 벗어나 타지로 진출해 도시를 일궈온 인류 문명의 욕망과도 같다. 그렇다면 남자의 말을 듣고 고향을 떠나는 여자는 역시 그런 근대적 주체로 남고 마는 것일까? 그녀가 떠나면서 흘린 폭풍같은 눈물을 보건대, 그와는 다른 결말을 예상할 수도 있겠다. 그녀는 타지에서도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욕망이 남아 다시 재회할 날을 염원할 테니까. 그렇다면 그건 오히려 탈근대적 주체에 가까우리라. 과거와 미래를 죽음과 삶으로 양분하는 근대적 주체가 아니라, 양자가 모순적인 헤어짐과 재회로 이어질 것임을 아는 성숙한 주체 말이다. p.s. 그 외에도 이 영화에 흐르는 은근한 애정의 코드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욕망의 연쇄 고리가 드러난다. 어린 소년은 소녀를 좋아하고, 인간사에 실망한 소녀는 건축을 좋아한 나머지 건축 교수의 아들인 남자에게 의지하고, 남자는 아버지의 제자인 연상의 여인을 사모했고, 연상의 여인은 남자의 아버지를 스승으로서 존경하며,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는 영혼이 있는 모더니즘을 종교처럼 믿었다. 더 고귀한 영혼을 향해 상승해가는 이러한 욕망의 구조는 건축적이다. 그래도 이런 욕망의 흐름을 수직으로 상승하는 종교적•군주제적 구조에 비유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 모더니즘은 어쨌든 자유의 기표였고, 모더니즘을 향한 욕망의 상승적 구조는 결국 등장 인물들의 욕망을 자유롭게 수평적으로 펼치고픈 욕망의 구조이기도 하니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평성이 두드러지는 모더니즘 건축처럼 말이다.좋아요108댓글2
Cinephile3.5마치 결벽증처럼 강조되는 대칭 구도와 그 외 거울을 사용한 약간의 변칙적 접근 등을 보면, 영화의 깔끔히 정리된 화면을 통해 관객이 힐링을 받을 수준이다. 단순하나 위트 있는 대화가 즐겁지만, 전체 이야기와 정서의 깊이는 다소 부족한 편이다.좋아요90댓글0
Jay Oh4.0어찌 설명해야 할까, 이 공간, 이 색감, 이 소리, 이 사람들... 보면서 숨쉬기 좋은 영화다. Like one breath after another.좋아요62댓글0
장민5.0"아카데미 스타일" 드라마 영화가 향신료를 듬뿍담은 자극적인 맛이라면 "콜럼버스"는 미묘하면서도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맛의 영화. --- 조잡하고 괴리감만 물씬 풍기는 작위적인 서사 없는, 진짜 사람 사는 이야기인 것만 같은게 참 좋다. --- 임순례 감독의 "리틀포레스트"에 기대했던 힐링을 콜럼버스에서 받고 간다. ---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도, 우리를 치유하는 것도 "사람".좋아요61댓글0
에베베베4.5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는 어떤 감정들, 선택들에 대한 영화. 이유도 모른 채 떠나고 남으며, 서로에게 왜 끌리는지도 모른채 사랑한다. 그 선택들이 맞다는 걸 그저 아는 것엔 '가이드'의 설명 따위는 필요 없기에. 영화 중반 유리벽에 막혀 음소거된 케이시의 말에서 그녀의 건축에 대한 사랑, 진과의 교감이 생생히 느껴지는 것처럼.. 어떤 진심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좋아요51댓글0
999
3.5
머물러야지 했지만 떠나는 사람과 떠나야지 했지만 머무르는 사람.
조순익
4.5
영화 <콜럼버스>가 그리는 욕망들(스포일러 주의): 소녀는 인간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정직하고 정갈한 무엇을 원하고 있었다. 그렇지 못한 혼잡스런 것들이 그녀의 삶을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랑에 실패해 한동안 약물에 빠져 살았고, 그녀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보살펴야 하는 삶의 무게를 떠안았다. 자신의 꿈을 펼쳐 보지 못한 채, 어깨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에 힘들어질 때면 말없이 정직한 모습으로 서있는 건축물을 찾아가 위안을 받곤 했다. 남자는 건축에 빠져 자식에게 관심주지 않던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었다. 그를 기다려준 적이 없는 아버지가 생사의 기로에 선 지금, 그는 아버지의 생전 발자취를 느껴보며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린다. 그의 아버지는 영혼이 있는 모더니즘을 믿었고, 그는 아버지의 믿음이 종교 같다고, 또한 종교는 군주제와 같다며 싫어했다. 허나 모더니즘은 본래 종교적 전통의 속박에서 헤어나 자유롭고 새로워지려는 청춘의 믿음이었으니, 그의 아버지가 믿은 영혼도 그런 해방적 삶의 의지였으리라. 하지만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이기적인 생에서 해방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아버지의 삶이 더 연명하지 않길 바랐다. 이런 아들의 생각 또한 청춘의 모더니즘이었으니. 그런 그가 그녀를 만났다. 좌절된 인생의 욕망을 정직한 건축에 투영하며 위안받아온 소녀는 그와의 대화 끝에 자신의 꿈을 따라 떠나기로 한다. 그녀는 어머니의 삶을 보살피느라 자신의 꿈을 포기하며 눈물을 참아왔었지만, 이제 자신의 삶을 살려는 의지가 어머니의 삶을 힘들게 할 까봐 눈물을 터뜨린다. 그리고는 유럽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떠난 것처럼, 어머니가 있는 고향을 떠나 건축의 꿈이 있는 곳으로 떠난다. 이렇듯 영화 <콜럼버스>는 모더니즘 건축을 소재로 삼아, 삶의 무게를 덜고 싶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욕망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 욕망은 주어진 과거와 다른 새로운 미래를 향한 근대적 주체의 의지이기에, 모더니즘 건축의 욕망과도 같다. 그 심리는 부모의 삶에 엮인 멍에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립적 삶을 살려는 자식들의 욕망과도, 전통적 고향에서 벗어나 타지로 진출해 도시를 일궈온 인류 문명의 욕망과도 같다. 그렇다면 남자의 말을 듣고 고향을 떠나는 여자는 역시 그런 근대적 주체로 남고 마는 것일까? 그녀가 떠나면서 흘린 폭풍같은 눈물을 보건대, 그와는 다른 결말을 예상할 수도 있겠다. 그녀는 타지에서도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욕망이 남아 다시 재회할 날을 염원할 테니까. 그렇다면 그건 오히려 탈근대적 주체에 가까우리라. 과거와 미래를 죽음과 삶으로 양분하는 근대적 주체가 아니라, 양자가 모순적인 헤어짐과 재회로 이어질 것임을 아는 성숙한 주체 말이다. p.s. 그 외에도 이 영화에 흐르는 은근한 애정의 코드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욕망의 연쇄 고리가 드러난다. 어린 소년은 소녀를 좋아하고, 인간사에 실망한 소녀는 건축을 좋아한 나머지 건축 교수의 아들인 남자에게 의지하고, 남자는 아버지의 제자인 연상의 여인을 사모했고, 연상의 여인은 남자의 아버지를 스승으로서 존경하며,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는 영혼이 있는 모더니즘을 종교처럼 믿었다. 더 고귀한 영혼을 향해 상승해가는 이러한 욕망의 구조는 건축적이다. 그래도 이런 욕망의 흐름을 수직으로 상승하는 종교적•군주제적 구조에 비유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 모더니즘은 어쨌든 자유의 기표였고, 모더니즘을 향한 욕망의 상승적 구조는 결국 등장 인물들의 욕망을 자유롭게 수평적으로 펼치고픈 욕망의 구조이기도 하니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평성이 두드러지는 모더니즘 건축처럼 말이다.
Cinephile
3.5
마치 결벽증처럼 강조되는 대칭 구도와 그 외 거울을 사용한 약간의 변칙적 접근 등을 보면, 영화의 깔끔히 정리된 화면을 통해 관객이 힐링을 받을 수준이다. 단순하나 위트 있는 대화가 즐겁지만, 전체 이야기와 정서의 깊이는 다소 부족한 편이다.
Jay Oh
4.0
어찌 설명해야 할까, 이 공간, 이 색감, 이 소리, 이 사람들... 보면서 숨쉬기 좋은 영화다. Like one breath after another.
P1
3.5
모던한 건축물과 도시풍경 asmr에 취한다.
장민
5.0
"아카데미 스타일" 드라마 영화가 향신료를 듬뿍담은 자극적인 맛이라면 "콜럼버스"는 미묘하면서도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맛의 영화. --- 조잡하고 괴리감만 물씬 풍기는 작위적인 서사 없는, 진짜 사람 사는 이야기인 것만 같은게 참 좋다. --- 임순례 감독의 "리틀포레스트"에 기대했던 힐링을 콜럼버스에서 받고 간다. ---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도, 우리를 치유하는 것도 "사람".
인세영
3.5
명상을 하는듯한 영상. 진짜 다른 것에 집중안하고 영상만 멍하니 본 것같다.
에베베베
4.5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는 어떤 감정들, 선택들에 대한 영화. 이유도 모른 채 떠나고 남으며, 서로에게 왜 끌리는지도 모른채 사랑한다. 그 선택들이 맞다는 걸 그저 아는 것엔 '가이드'의 설명 따위는 필요 없기에. 영화 중반 유리벽에 막혀 음소거된 케이시의 말에서 그녀의 건축에 대한 사랑, 진과의 교감이 생생히 느껴지는 것처럼.. 어떤 진심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더 많은 코멘트를 보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