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한국전쟁 당시, 한 탈영병이 벙어리 소년의 움막을 찾아 소년의 가난한 한끼를 훔쳐 먹는다. 이윽고 누이가 집을 비운 사이 처녀 귀신이 아사 직전의 소년을 찾아오고, 소년은 처녀 귀신을 따라 지옥 여행에 나서게 된다. 구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에 애조 어린 동요까지 흘러나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내 모종의 유희성이 출몰한다. 가이 매딘의 영화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의도적으로 흐릿하고 불온한 무성 영화적 이미지와 한국 공포물의 기괴한 인상들과 애니매이션의 원색적 기법들이 섞여 매력의 난장을 펼친다. <기행>은 반골적 상상력을 전제로 한 시청각적 고집과 독창성이 빛을 발하는 기행(紀行)이자 기행(奇行)이다. (정한석) [2022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