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홀
City Hall
2020 · 다큐멘터리 · 미국
4시간 32분

시청 공무원들이 뭘 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을까. 프레데릭 와이즈먼은 별로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하는, 그 시간들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랬더니 꽤나 감동적이다. 보스턴 시청에는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티홀>은 보스턴 시장 월시를 위시한 시청 사람들이 보스턴 시민과 방문자들을 위해 설계한 성공적인 시정 활동을 따라간다. 치안, 화재, 공중보건, 재향군인, 노인복지, 주차, 각종 면허증 발급, 출생 사망 결혼 신고 등 소소한 일부터 인종, 주택, 빈민, 환경 등 까다로운 문제까지 그들이 관여하지 않는 일이란 없다. 지난 50년 간 매년 한 편씩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아흔이 넘은 이 노장의 작업과 꼭 닮았다. (강소원)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왓챠보안관^^7
보고싶어요
와이즈먼 영화보다 밥먹으러가기, 화장실 가기 도전하는 게 올해 목표
배 윤 서
3.5
스포일러가 있어요!!
이석범
3.5
감독의 전작 <인디애나 몬로비아>랑 대칭을 이루는 작품. 전작이 보수적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데 비해 <시티홀>은 다양한 인종과 성정체성을 존중하려는 시청의 태도가 드러난다. 프레데릭 와이즈먼 감독의 다큐멘터리가 그저 촬영한 푸티지들을 배열만 한채 그저 이 동네 저 동네 라이프스타일만 보여준다고 오래하기 쉬운데 잘 집중해서 보면 신과 신을 배열하면서 주관적인 자기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시청>의 경우 보스턴 도시의 다양성과 진보적인 운영을 하려는 시청 공무원들의 활약으로 네시간 삼십분이 채워졌다 볼 수 있겠지만 의외로 감독은 그런 다양성에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는 몇 개의 신들을 추가한다. 보스턴 대학교의 한 세미나에서 보스턴의 인구에서 유색인종이 55%를 차지하지만 인종별 순자산 보고서에서 흑인가족의 순자산은 8만 달러인데 비해 백인가족의 순자산은 24만 7천달러라는 격차. 한 라틴계 사장이 이십여년동안 보스턴에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어려움을 겪으며, 시청은 수천만 달러 단위로 큰 회사와 계약하고, 자신과 같은 중소기업에는 두세단계 복잡한 절차를 걸쳐 20-30만 달러 규모의 작은 계약만 하며, 격차가 존재하며 불공평하다고 항의하던 장면. 과거 청교도들이 미 대륙에 도착하여 인디언들을 제도적 학살하던 과거 역사가 보관된 건물안에서 시장의 참석 아래 참전용사들을 위로하는 행사를 하는 장면등 영화는 종종 보스턴 시청이 가진 모순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쩌면 보스턴 정부의 다양성 정책은 위선적인게 아닐까 생각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풍경을 담은 인서트 장면들을 보면 '라틴계 미용실''스페인 슈퍼마켓''도미니크 공화국 식당'같은 가게들이 네시간 내내 나오고 벽화도 다양한 인종으로 그려져있는 것들이 보여지며 이 도시가 아프리카계와 라틴계, 아시안, 성소수자, 백인, 장애인들의 존엄성이 어느정도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네시간 삼십분 내내 등장하는 백인 시장을 포함해서 영화 속 보스턴 도시의 모습이 진짜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감독이 보고 싶었던 '다양성을 중시하는 이상적인 도시의 이미지'를 담았다는데는 이견은 없다. 문제는 트럼프 정부 이후 온갖 차별과 무지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다큐 속 이상이 더 이상 실현될 수 있을까 의문을 갖게 된다는 게 문제지만.
moviemon94
5.0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45번째 장편영화인 <시티 홀>(2020)은 보스턴 시청 공무원들의 2018년 가을부터 2019년 겨울 내의 업무와 시간을 기록한다. 관찰자적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공중 보건, 직장 내 성 평등 문제, 재향군인, 교육 문제, 주차 문제, 푸드뱅크, 항구 개발 문제 등 크고 작은 사회 이슈를 사건으로 삼고, 그 사건을 시간으로 삼은 후 점프 컷으로 연결한다. 관찰자적 다큐멘터리의 미학답게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해설 및 해석 없이도 관객은 해당 이슈의 과거와 현재, 보스턴 시청 공무원들의 업무 처리 과정, 지역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한 시민 참여 토론에서 드러나는 성과, 문제점, 해결 가능성 등을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 러닝타임이 무려 4시간 32분이라서 굉장히 지루할 수 있지만, 보스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카메라와 점프 컷을 활용한 편집은 상당한 역동적인 힘을 불어넣는다. 게다가, 하이 앵글, 로우 앵글을 중심으로 보스턴의 얼굴, 일상, 소리 등을 기록하는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자세에서는 그의 고향 사랑을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동구리
4.0
프레더릭 와이즈먼의 여러 영화처럼, <시티홀>은 시청을 찍는다. 정확히 말하면 트럼프 정권 집권기인 2018년의 보스턴 시청과 당시 시장이었던 마티 월시(현 미국 노동부 장관), 그리고 보스턴 곳곳에서 활동하는 시청 공무원들의 모습을 담는다. 때문에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나 <내셔널 갤러리>처럼 특정한 공공공간 하나에 집중한다기보단, <인디애나 몬로비아>나 <버클리에서>처럼 한 지역 전체를 다루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와이즈먼의 카메라는 언제나 그랬듯 카메라 앞의 인물들을 인터뷰하지 않는다. 대신 보스턴이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벌어지는 개인 간의 역동을, ‘도시’라는 유기체가 작동하는 모습을 관찰할 뿐이다. 당연히 관찰에는 관찰자의 관점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특히 편집을 통해 관찰된 화면에 연출자가 개입하게 되기에, 와이즈먼의 영화는 언제나 존재하는 공동체/공공기관/지역 자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기보다 그의 관점이 투영된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 조금 더 옳은 설명일 것이다. <시티홀> 속 몇몇 장면을 떠올려보자. 30년간 보스턴의 건설업 중소기업을 운영해온 라틴계 미국인 시민은 관계자의 정책 설명을 듣고 “백인들로 가득한 대기업은 몇천만 달러짜리 사업을 시에서 받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한다. 성장하지 못한다.”라고 반문한다. 관계자는 그러한 의심이 들 수도 있지만~이라며 설명을 이어나간다. 그의 설명이 채 끝나기 전에, 그보다 상위의 시청 관계자가 “의심은 없습니다”라며 새로운 설명을 이어간다. 혹은 미국 재향군인의 날에 참전용사 회관 같은 공간에서, 카메라는 이라크나 베트남에 다녀온 참전용사들의 발언에 앞서, 보스턴의 역사가 담긴 그림들을 담는다. 역사의 순서를 고스란히 따르는 그림들의 몽타주는, 17세기 영국 청교도 개척자들의 도착부터 보스턴 차 사건까지의 사건들을 보여준다. 참전용사들의 발언 사이사이엔 공간에 전시된 양차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당시의 무기들을 비롯한 전시품들이 놓여 있다. 이 장면은 1차대전에 참전한 삼촌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참전용사들의 PTSD를 자신의 알코올 중독 경험과 등치시키는 시장의 연설로 끝난다. 물론 <시티홀>이 보스턴 시청 공무원들이 보여주는 관료제의 폐해를 보여주려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이들이 열정적으로 보스턴 행정을 끌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 청년이 시청 관계자 및 예술가와 도시의 노숙인들이 머무를 수 있는 쉼터를 계획하는 장면이라던가, 장애인 위원회가 도시 곳곳의 접근성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처럼, 보스턴의 여러 여성,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인종 커뮤니티 등으로 구성된 여러 위원회, 단체 등에서 진행하는 다양하고 열정적인 논의가 계속 등장한다. 와이즈먼이 <뉴욕 라이브러리>와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 영화는 공적인 영역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트럼프의 미국 아래에서도 인종, 성별, 성적지향, 계급, 나이에 따른 차별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의 역동이 <시티홀>의 가장 큰 축을 이루며,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합법 대마초 상점의 개장에 앞서 사업가들과 지역 주민들의 모임을 담은 장면에서 그러한 역동의 절정이 드러난다. 하지만 <시티홀>에서 흥미로운 것은, 앞서 언급했던 관료제의 함정 혹은 구멍을 드러내는 듯한 장면들이다. 2017년의 인디애나주 몬로비아를 담은 <인디애나 몬로비아>와 대비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인디애나 몬로비아>는 트럼프 정권 당시의 미국 남부를 보여준다. 이들의 공동체는 지극히 민주적이고, 지극히 보수적이다. 영화는 백인 기독교도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낙농업이 주 수입인, 20, 30대는 도시로 떠났으며 지역에서 평생을 살거나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기 위해 돌아온 이들만이 남은 몬로비아의 공동체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들이 등장하는 사이사이에 하수처리장의 오물, 우리에서 이송되어 나오는 돼지 떼 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외침이 들릴 것 같은 미국 중서부의 농촌 정경, 독수리가 날개를 펴듯 가로로 길게 펴지는 농약 뿌리는 농기계의 모습이 등장한다. 결국 와이즈먼은 중서부 미국의 소도시라는 공간을 대하면서,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 회유적으로, 그리고 분산적으로 이를 드러낸다. <인디애나 몬로비아>의 마지막 장면에서 누군가의 장례식이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에는 누군가의 출생, 탄생은 담기지 않는다. 와이즈먼은 <인디애나 몬로비아>에서 공동체의 생명이 끝나가는 시기를 포착하려는 것만 같다. 즉 미국이 자랑스레 내세우는 민주주의의 방법으로 극적인 보수화 과정을 겪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티홀>은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보스턴의 모습을 보여주며, 반대로 민주적인 절차와 사상에 따라 모든 이를 배제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노숙인 쉼터에 대한 이야기나, 대마초 사업에 대한 질의응답 모임에서 지역 공동체를 이루는 이들과 사업가 사이의 격렬한 토론을 보고 있자면, <뉴욕 라이브러리> 등 와이즈먼의 전작에서 드러난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엿보인다. 하지만 두 번째 문단에서 언급했던 관료제의 함정이라 부를 수 있는 것, 혹은 아일랜드계 천주교인 시장이 보여주는 어떤 태도들에서 무엇도 배제하지 않으려는 민주주의적 열망의 실천 속 모순이 드러난다. <인디애나 몬로비아>는 지극히 민주적인 방식으로 보수화되는 곳을, <시티홀>은 보수화의 흐름 속에서 노력하지만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모순을 조심스레 꺼내 보인다. 와이즈먼은 <시티홀>의 마지막에서야, 보스턴하면 떠오르는 항구와 바다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식민지 개척자들이 처음 들어온 곳, 그들이 유럽으로부터 독립한 사건이 벌어진 곳, 재향군인회 건물에 걸려 있던 그림 속 사건들이 벌어진 역사적 장소를 돌아보며, 이 영화는 끝난다.
Kinotime
3.0
공무원이라 하면 스테레오타입을 떠올리는 우리에게 네시간 반에 걸쳐 세상에서 가장 일 잘하는 공무원을 소개하는 다큐. 쥐 출몰 민원부터 미국 내 인종갈등 해소의 본보기까지 대도시의 일면을 놀라울 정도로 세세히 훑고 있는 그들은 각계각층의 현장에서 낮은 목소리를 수집하며 민주시정이라는 원대한 화합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런 분투의 현장을 이어주는 평온한 도시의 풍경들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거니는 이 거리의 일상에 대책을 골몰하는 누군가의 땀이 배어 있음을 실감케 한다. - 2020 BIFF 인디플러스에서
찬 / NLMA
4.0
합리적 의사결정을 만들어 내는 지역 공동체. 러닝타임만큼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그게 바람직한 민주주의니까.
이재은
4.5
와이즈먼 영화를 공동체에 대한 희망이 생긴다 자신의 위치에서 세상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는건 즐겁다 그러나 이 장면들이 모두 과거의 이야기이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발전이 순식간에 후퇴했다는 사실이 슬프다 '워싱턴에서 벌어진 일들이 보스턴의 거리에서 느껴집니다'라는 말에 담겨있던 슬픔이 점점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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