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막장드라마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어쩌면 맞닥뜨릴 수도 있는 <인형의 계곡>(1967)의 대성공 이후, 20세기 폭스가 기획한 속편은 난항을 거듭하다가 당시 누디 큐티 영화와 <빅센!>(1968)의 성공으로 주가를 올린 러스 마이어를 고용한다. 스튜디오와 대형 극장의 배급망이 아닌 전국 순회상영 방식을 통해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던 섹스플로이테이션의 상업적 가능성을 엿본 폭스가 마이어에게 내린 지침은 최소의 제작비로 가장 선정적인 영화를 만들라는 것. 마이어는 당시 친구였던 시카고 선 타임즈의 평론가 로저 에버트와 함께 3주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그 결과는 당대 대중영화의 상식을 뛰어넘는 막장 플롯 안에 섹스, 로큰롤, 마약 등을 당대 히피/사이키델릭 문화의 요소들을 뒤죽박죽 섞어놓은 폭탄이었다. 후일 에버트의 토크쇼 동료가 되는 진 시스켈은 별 4개 만점에 0개를 줄 정도로 평단의 반응은 혹독했지만, <인형의 계곡을 지나>는 당시 고전을 면치 못하던 폭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나름의 흥행성공을 가져다주면서 그동안 음지의 영화로만 인식되었던 섹스플로이테이션 장르가 주류 영화산업 안으로 진입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박진형)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