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
The Edge of Democracy
2019 · 다큐멘터리 · 브라질
1시간 53분 · 15세

벼랑 끝에 선 브라질의 민주주의. 감독은 나직이 말한다. 자신의 가족이 겪은 과거의 고통이 부활했고, 이젠 모두의 이야기라고. 저널리즘과 회고록을 결합한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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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
5.0
기시감.. 대한민국 태생의 1961년생이 브라질 정치사회 다큐를 보며 느끼는 것이 ‘기시감’이라는 아이러니.. 근자의 브라질에서 과거 대한민국을 보았는데, 근자의 브라질에서 미래의 대한민국을 볼수도 있다는 두려움.. 이 다큐가 향하는 시선의 지점은 분명 그런 두려움 또는 낭패감인지도 모른다.. 분명 민주주의는 예서제서 휘청거린다.. 우리는 무엇으로 더 나은 곳으로 갈수 있을까.. 공고하게 또아리를 틀고 있는 소위 기득권의 교활한 술수들을 우리는 무엇으로 분별하며 나아갈수 있을까.. 그들에게 속는 내 이웃들을 향해 나는 혐오와 경멸 대신에 무엇으로 ‘연대’할 수 있을까.. 룰라 대통령의 절규같은 외침대로 과연 우리들 가슴마다에는 그들이 결코 말살시키지 못할 봄의 씨앗들이 이미 퍼져있는걸까.. 봄이 온 것 같았는데, 늘 봄은 다시 겨울로 향하는 이 숙명적인 순환의 끝은 정말 봄인 것일까.. 기득권들이 비틀어대는 정보들로부터 우리는 어떻게 눈 부릅뜨고 속지 않을수 있을까.. 기득권 자체이거나 그들의 이웃인 언론들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민주시민의 연대’는 그것으로부터다.. 우리들의 이웃을 그들에게 빼앗겨서는 안된다.. 오늘 이땅에는 이미 빼앗긴 이웃들이 너무 많다.. 브라질의 위기가 남의 일이 아닌 이유이다.. 20210213 Netflix (20.07)
이진구
4.0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보일 비슷한 양상은, 이 다큐를 모범답안으로 여기는 부류와 이 다큐를 반면교사로 삼는 부류 간의 싸움
Ziwoo
4.0
‘반독재 진보’를 넘어선 좌파가 필요해 -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2019)를 보고 2020.4.25. Z우 네이버에 ‘브라질’을 검색해보니 첫머리에 나오는 기사가 이렇다. “코로나 부실대응·부패수사 개입…브라질 대통령 탄핵 위기” (비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다큐를 보고 난 후라면 말이다. 이 다큐의 감독이자 화자는 젊은 여성이다. 그녀의 부모는 반독재 좌파 게릴라였다. 짧은 투옥과 긴 도망자 생활은 그들 젊음의 전부였다. 그들이 사랑을 나눠 낳은 딸 ‘페트라’는 열아홉 이 되던 해, 인생 첫 선거에서 룰라에게 표를 던진다. 브라질의 군부독재는 한국의 것과 다르게 대학생 중심의 시민운동이 아닌, 노동자 중심의 총파업으로 무너진다. 룰라는 그 노동자들을 광장에 모았던 장본인, ‘노동자 출신 김대중’ 정도의 롤이 되겠다. 룰라는 내리 세 번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의 집권은 독재가 아닌 정당한 연임이었다. 그는 브라질을 가난에서 구해냈다. 빈곤층에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말이다. 실로 놀라운 정치가였던 것이다.(그의 정치에 대해 더 공부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남기고 대통령 사저를 떠난다. 경제학자 출신의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 호세프 지우마는 그렇게 자신이 속한 정당인 노동당에 4번째 대선 승리를 가져다준다. 룰라가 ‘노동자 출신 김대중’이었다면, 지우마는 ‘학자 출신 노무현’이 아니었을까. 그는 진보정당이 배출한 사상 최고로 개혁적인 대통령이었다. 룰라가 ‘어쩔 수 없이’ 대기업과 영합했던 부분에 대해 지우마는 협상이 불가함을 선언한다. 경제불평등의 원흉을 대기업와 은행으로 콕 집어 지목했고, 그들에 대한 강경책을 펼친다. 그러나 이것은 존경받던 경제학자의 판단미스였을까. 브라질 경제는 거짓말처럼 흔들리기 시작한다. ‘경제를 망친 대통령’에 대해 민주시민들은 어떤 처벌을 내릴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대답은 ‘다음 선거를 기다리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시민들은 대통령을 투옥시킬 수도, 기요틴으로 끌고 갈 수도 없다. 혁명은 빠를지언정, 민주주의는 느린 이유가 이것이다. 굼뱅이 민주주주의, 달팽이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혁명과 함께 빠르게 시작되지만 달팽이처럼 천천히 서서히 끝날 수도 있다. 이 다큐는 전적으로 브라질의 정치 상황을 아예 모르는 외국인 오디언스를 대상으로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치인들이 대통령제 아래에서 의회 연정에 왜 그렇게 목 맬 수 밖에 없는지(나는 [연정]을 독일 정치로 배웠어서 그저 좋은 것인 줄로만 알았다), 탄핵당한 지우마가 정당하게 재선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인지, (한국 정치의 좌우를 구성하는 요소가 반일-반미-반독재/친일-친미-독재이듯) 브라질 정치의 좌우를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깊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포르투갈의 식민지배와 플랜테이션 노예제 이후, 아마 브라질의 좌우를 가르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는 [인종]일 것이라 추측할 수는 있었다). 브라질 의회가 상하원으로 이분화되어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나는 더 궁금하다. 브라질의 현대 정치사에서 한국이라는 데자부가 많이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룰라-지우마를 김대중-노무현에 비교했듯, 지우마는 노무현처럼 부당한 이유로 탄핵소추되었었고, 브라질을 이 상황으로 만든 정부와 검찰의 갈등은 지금까지 한국 진보정권의 흥망성쇠를 아우르는 핵심 테제였다. 여성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상황에 대해 ‘미소지니’로 평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식민의 역사마저도, 모두모두 비슷하다. 한국의 현대정치사를 압축해놓은 듯한 이 다큐를 보고나니, ‘좌우’라는 기준으로 정치를 손쉽게 나누는 것이 이제는 완전히 무력함을 깨닫는다. 뭐랄까, 전 세계 좌파의 이론상 공통 특징-자주, 반전, 노동, 복지, 소수자-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좌파의 역사를 그저 ‘안티테제’의 역사로 이해해도 좋을까? 나는 그 안티테제들이 다시금 권력이 되어 우리 앞에 돌아온 일들을 알기에, 그마저도 조심스럽다. 홍콩, 스페인, 세네갈, 우크라이나 그리고 브라질의 정치가 내게 중요한 이유는, 각자의 방식으로 거칠게 성장하다 추락하고, 다시 일어서고 있는 그 민주주의란 것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의 주체가 되길 자처하는 좌파들 때문이다. 내가 ‘반독재’ 정체성으로 한국 진보의 주류가 된 민주당과 이별하기로 결심한 지금, 나의 정치적 지향을 설명할 새로운 단어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그것이 386 남성들이 만든 ‘느낌의 좌파’란 것과 결별하고 3세계의 자유와 연대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영미남(영화에 미친 남자)
4.5
(86)외부에서는 몰랐던 룰라 지우마 세력 몰락의 이면. 추천 : 한국에서도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 비추천 : 좀 어려운 내용일 수도, 스토리 20/25 연출 20/25 메시지 23/25 교훈 23/25
최형우
3.5
민주주의는 '국민'이 똑똑해야 할 수 있다. -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에 반대했다.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투표권을 주는 것보다 소수의 똑똑한 사람들에게만 주권을 주는 것이 더 좋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 '똑똑함'이란 여러 문제들에 대해 깊이 사고해서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해본다. 소크라테스 자신도 선동가들에 의해 선동된 무지한 사람들의 투표로 죽고 말았으니 그의 주장도 일리 없는 건 아니다. - 그로부터 2천 년 뒤 사람들은 그 민주주의 해보겠다고 피를 흘리며 싸웠다. 몇몇 사람들에게만 통치를 맡겨 놓으니까 자유도 억압해버리고, 사람들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독단적으로 다스리니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직도 독재와의 싸움을 하는 나라도 있고, 싸움에서 이긴 나라는 국민 다수의 선택으로 뽑은 대표자가 국민 다수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서 국정을 수행하는 제도를 운영해나가고 있다. - 그런데 좋은 줄만 알았던 '민주주의'도 약점이 있다. 소크라테스를 죽인 사람들은 소수의 선동가들에 의해 선동된 사람들이었다. 시대가 지나며 그 선동가들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기업인, 법조인, 언론인 등으로 탈바꿈했다. 그들은 돈과 정보를 독점하고, 웬만한 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제도들을 악용하며, 국민들에게는 '몰라도 돼'라고 하고 뒤로는 자기들 유리한 대로 모든 것을 조종한다. 이런 모든 선동에 대해 국민이 무지하면,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가장 나쁜 결과를 정당하게 만드는 안 좋은 제도가 되어 버린다.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도 민주주의 안에서 정당화된 것처럼 말이다. - 결국 민주주의는 민주적으로 대표자를 뽑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대표자를 뽑아놓고, 그 대표자들이 선동에 동참하거나 선동을 주도하지는 않는지 매번 철저히 따져보고 옥석을 골라내는 똑똑함을 국민 개개인이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가장 어렵다. 그 어려운 것 한번 해보자고 조상들이 피 흘린 것이다. 민주주의가 어려워서 머리 아프다고 내팽개치면 민주주의는 순식간에 후퇴한다. - 검찰, 언론, 법원... 많은 사람들에 의해 똑똑하다고 믿어졌던 이들이 이젠 그 믿음을 담보로 정보를 독점하고 왜곡해서 전달하며, 제도의 허점을 알고 교묘히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운영한다. 브라질이 더 심할 뿐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좋은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이제 누가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지, 우리가 가진 제도의 허점은 무엇이고 그것을 이용해먹은 사람들이 누군지... 철저히 찾아내어 바꾸기 위한 국민 개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요컨대 국민이 '똑똑함'을 쟁취해야만 민주주의를 이롭게 운영할 수 있다. - 사실 그 개개인의 노력을 매번 머리 아프게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다. 똑똑한 대표자를 잘 가려내어 나랏일을 맡기면 된다. 우리에게도 선거가 한 달 반 남았다. 깊이 사고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뽑고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뒤에서 무슨 작당을 할지 몰라 매번 감시하느라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인간을 뽑게 될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한 달 반 정도만 고심해서 뽑으면 4년이 편하다. - 이 영화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 누가 무슨 잘못을 했고 그 잘못을 정당하게 만드는 제도는 무엇인지, 그 잘못을 저지르고 가리려는 세력은 누구인지를 더 말끔하게 정리해서 보여주면 어땠을까?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제대로 굴러가게 하기 위한 충분한 교육적 내용을 갖춘 영화라면 더 좋았겠다. (2020.02.28.)
Lemonia
4.0
민주주의를 획득하고 쌓아 올리는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것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민주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환경과 근간을 이루는 국민 사이에 생긴 틈을 타고 소수의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파고드는 순간, 민주주의는 전체주의로 돌아간다. 과거에는 총과 칼로 정권을 이어갔다면, 현재는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교묘하게 국민의 눈을 가리고 속인다. 한쪽에선 경제 위기를 불러온 부패한 정치인을 내몰아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며 지켜내려 하지만, 다른 쪽에선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탄핵이란 이름으로 기본권인 선거권을 박탈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하며 군부독재 시절로의 회귀를 외친다. 위기의 민주주의가 제일 먼저 덮치는 곳은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근간이 돼야 할 국민이다. 기득권에게 근간을 내어준 나라와 그 나라의 국민에게 남는 것은 차별과 무기력함뿐이다. 폭정의 시대를 망각한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폭력과 혐오의 시대다. 이는 전 세계에서 목격할 수 있는 현재의 잔인한 광경이다.
영화는 나의 힘
3.5
보수의 정치는 감정에 호소하면 된다. 보수들은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할 특정 프레임을 사용해 진보정치를 굴복시킨다. 상대적으로 진보는 철저한 논리와 죽음을 각오 할 열정이 없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HBJ
3.0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는 2000년대 브라질의 대통령들인 룰라, 호세프, 그리고 보우소나루까지 거치며 일어났던 혁명, 탄핵과 시위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세계 뉴스로도 간간이 접한 호세프의 탄핵과 룰라의 체포와 그를 둘러싼 부패 스캔들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접했지만, 이 영화는 나에게 그에 대한 훨씬 자세한 이야기와 맥락을 알려주게 됐다. 기득권 조부모와 운동권 부모 밑에서 자란 감독은 본인의 삶의 일부이기도 했으며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온 브라질의 다사다난한 정치사를 개인사와 조금씩 섞으며 이야기한다. 룰라가 어떤 과정으로 집권하고 어떤 정책을 펼치며, 호세프가 어떻게 바통을 이어받았는지부터 해서 이들이 어떻게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어 몰락했는지를 철저히 감독의 시선으로 전한다. 이런 방식에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으로는 이 영화의 감독보다는 조국을 사랑하는 브라질 시민으로서 정치와 삶을 분리해서 보지 않고 일상의 중요한 부분으로 보며 민주 시민으로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치계를 지켜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개인적인 사연들과 엮어서 전달하기 때문에 관객과 사적인 수준인 공감대를 나누고자 한다. 단점으로는 정치적 편향성이 불가피해 진다는 것이다. 보우소나루로 대표되는 브라질의 과격한 극우 행보는 개인적으로도 안 좋게 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룰라와 호세프와 이들이 연관된 스캔들과 이들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너무 이념적 논리나 프레임으로 가둬서 보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를 들어 호세프 정권 시절의 경제적 불황 같은 요인들은 너무 얼렁뚱땅 넘어간 듯했다.) 그 외에는 전반적으로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모든 상황들을 설명하는 전개는 브라질에 대해 잘 모르는 입장으로서는 친절하긴 했지만 상당히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브라질의 위기의 민주주의가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하고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됐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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