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 같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하며 금고를 털기로 결심한 은행원 모란. 얼떨결에 범죄 행위에 가담하게 된 그의 직장 동료 로만. 묻어둔 돈 가방을 찾으러 간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만난 아름다운 자매 노르마, 모르나 그리고 그들의 친구 라몬. 알파벳 다섯 글자의 배열 순서만 바뀐 이름을 가진 다섯 명의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비행자들>은 열리고 열리며 또 열리는 이야기가 결국 하나로 합쳐져 닫힐 것이라는 관객의 기대를 지속적으로 배반한다. 흔한 카체이싱 액션 하나 없고, 음모와 배신이 전무한, 하이스트 무비인 줄 알았는데 로맨틱 코미디처럼 흘러간다. 이 꿈꾸듯 종잡을 수 없는 영화를 따라가면, 오히려 부조화가 충돌하는 재미와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모란은 자유를 얻기 위해 스스로 감옥에 갇히는 것을 선택한다. 로만은 생각지도 않았던 자유로움을 맛보고 어쩔 줄 모른다. 신기루 같은 자유는 갈증을 달래기 위해 한 모금 피운 담배 연기와 함께 사라진다. (박가언)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