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줏간 소년
The Butcher Boy
1997 · 코미디/드라마 · 미국, 아일랜드
1시간 50분 · 15세

어떤 작은 마을의 작은 새디스트 악마인 프란시(이먼 오웬스)는 자살 중독증 엄마와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뻔뻔하게 성장한다. 어느날 모범생 아들을 괴롭혔다는 이유로 누전트 부인이 고용한 건달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이제 그녀는 프란시의 표적이 된다. 그녀의 집에 몰래 들어가 난장판을 만든 프란시는 마을에서 쫓겨나 수도원에 감금된다. 성모 마리아를 만나는 환상을 보고, 소아성애자인 신부를 즐겁게 해주는 일을 한다. 다시 마을로 돌아온 프란시. 푸줏간에서 청소부 일을 하게 되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배척하고 친구인 조마저 자신과 관계 맺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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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입곡 정보

Mack the Knife

Oh Mein Papa

My Ole Pal

Tune For Da

Blood Of The Apache

Tune For Da


혁준
4.0
왜 시간이 지날수록 소중한 것들은 하나 둘 변해가는걸까 정작 나는 그 모습 그대로인데. . 안타깝게도 세상은, 소년에게 이런 물음표를 던질 시간따위는 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배신감과 절망감을 안겨주며 그의 손에 서늘한 도축용 칼 한 자루를 쥐어주었을 뿐이었다. . 프란시가 유쾌하면 유쾌할수록 되려 영화는 더욱 비극적이고, 참혹해지는 반작용(反作用)이 일품인 영화.
Hojun Yoon
4.0
[내 인생의 영화 200 - 194위] "모든 게 다 뉴전트 부인 때문이다." 소년 프란시에게는 이것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그냥 착한 놈 삥 좀 뜯었을 뿐인 일로 뉴전트 부인이 그토록 법석 떠는 걸 그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우울증 엄마와 알콜 중독 아빠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그는 오로지 짓궂은 복수로 대응한다. 프란시가 스스로의 논리에 따라 순진무구함과 악행과 광기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넘나드는 동안 지역 사회는 기숙학교와 정신병원으로 그에게 맞대응한다. 하지만 그 어느 곳도 이 순진한 악마의 언행과 논리를 굴복시키지 못한다. <푸줏간 소년>은 바로 이 순간들을, 세상과 대면하는 프란시만의 방식을, 에둘러 단서를 풀거나 뜸 들이지 않고 곧장 사건으로 직행해 마주해버리는 소년의 과단성을 담아내면서 반짝이는 영화가 된다. 잠깐 가출했다 마을로 돌아왔는데 곧바로 자살한 엄마의 장례 행렬과 마주치고, 기숙학교 신부님의 소아성애 성향을 알면서도 어느 순간 불쑥 여성용 보닛을 쓰고 태연하게 신부님과 놀아주는 것이다. 이런 전개에 엄마의 자살 과정이나 신부의 꼬드김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엄마는 그냥 죽은 것이고, 신부는 그냥 그런 놈이었던 것이다. 이런 직행의 편집 호흡은 뉴전트 부인을 토막살인하는 장면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보자마자 바로 쏘고 바로 난도질을 하면 될 뿐이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서 프란시는 전혀 끔찍한 놈으로 보이지 않는다. 프란시의 끔찍함은 그를 둘러싼 다른 끔찍함들, 공산당을 증오하고 하층 계급을 멸시하고 성모 마리아의 강림을 정말로 믿는 어른들의 끔찍함 때문에 묽게 희석된다. 프란시는 실제로 성모 마리아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적인 존재가 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정신분열의 증세이기도 하다. 내팽개쳐진 아이의 몰락을 이만큼 슬프고 웃기고 무섭고 애틋하게 버무려내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HGW XX/7
4.0
비참한 현실을 비현실적인 밝은 톤으로 풀어내는 소년의 극단적인 성장영화. 소중했던 것들을 하나둘 잃어가며 붕괴되어가는 마음을 망상으로 지탱해가던 아이, 프란시.
석미인
3.0
착한 아이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가정과 국가가 지나가고 그리스도가 되물었으며 경찰이 찾아옵니다. 질문만 바뀔 뿐 답변을 해야만 하는 본질은 같았어요. 영화에서 시네드 오코너가 성모 마리아로 분한 채 천상의 락을 부른다지만 또 누군가는 그러겠죠. 그거슨 진정한 락이 아니야. 이 걸 들어봐 어때? 세상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이데올로기적 선언을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부쳐보이는요. 그걸 참.지.않.았.긔 후후후
Michael Scarn
4.0
시계테옆 오렌지 알렉스 어린시절 같았다..
P1
3.5
정감이 가지 않는 악동을 낳은 건 어쩌면 사회의 탓인가
개봉연도블라인드
4.0
스포일러가 있어요!!
강인숙
3.0
악동을 넘어 악마에 가까운 프란시의 소행을 눈이 아프도록 보고 나니 기분도 한껏 씁쓸해진다. 상처에 딱지도 앉기 전에 또 상처가 덧나고..그러기를 수차례 하다 보면 단단한 딱지가 앉은 상처가 되듯 프란시의 양심도 딱딱한 딱지로 뒤집어씌워진 것일까? . 분명 태어났을 때는 말랑말랑하고 순수한 양심이었을 텐데, 그가 그렇게 뻔뻔스럽고 죄책감이나 죄의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의 불량소년이 된 것은 그의 잘못이라고만은 할 수 없기에 더 뒷맛이 씁쓸하다. . 자살중독증 엄마에 지독한 술주정뱅이 아빠에 사랑이나 연민의 마음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이웃 어른들에 괴상망측한 신부까지.. 사실은 어른들이 더 비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건만, 어린애 마음에 스스로 자신을 가누지 못하고 별 해괴한 짓을 다 저지르는 프란시만 대역죄인이다. . 그런 환경에서 그런 식으로 버티지 않으면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되바라지고 영악하고 어른을 가지고 노는 것도 모두 생존에의 몸부림으로 여겨지기에 그 모든 해괴한 짓이 용서될 수는 없어도 납득은 가능하지 않을까? . 이 불행의 골짜기에서 살아남고자 발악을 하는 어마무시한 소년의 이야기를 펼쳐놓으면서 음악은 어째서 시작부터 유쾌하고 경쾌한 리듬으로 연주되는가? 아이의 불행을 쾌활한 음악으로 감추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 어른들의 무책임과 방관이 빚어내는 불행.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신실한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 이렇게 지적질하는 건 좋지. 지적질을 하면 자기는 그 무리에서 빠져 있는 듯한 착각도 드니까. 하지만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다르게 프란시를 돌볼 수 있느냐 하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부끄럽게도.ㅠㅠ . 이륵고 바깥세상과 그가 살아온 세상 사이의 경계선에 선 프란시스. 그토록 숱한 상처에 거듭 노출됐으면서도 오뚝이처럼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놀랍고 또 안쓰럽기 짝이 없네. . 그나저나 포스터가 너무 살벌하네. 돼지머리를 프란시만 쓰고 있는 것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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