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5.0감자 하나 가지고 뭘 불편해하는가에 착안해서 이렇게 함으로써 꿀이 새롭게 태어나고 부가가치가 굉장히 높아졌어요. 이게 바로 창조영화이고 이런 창조영화에 다들 높이 사서 모두가 창조적 정신을 가지고 또 대한민국의 미래를 염두에 두는게 좋지 않겠나..좋아요185댓글7
정환4.5“죽음과 같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의 개입이 무력함과 적막함의 반복인 우리의 단순한 생존의 삶을 변화시킨다. 어둠 속에서 벗어나지도 못할 꺼져가는 불씨로서 살아가지만, 어떻게든 꺼지지 않고 살아보려는 어떤 결심. 그 능동적 허무주의를 향하여. 하루씩만 살아볼 것. 한순간만 견뎌볼 것.”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어떤 결심>, 이해인 어느 한 집이 있다. 우리가 그 집에서 태어났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집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건 알겠다. 불씨마저 꺼진 세상의 암흑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 살아야 한다면 우리가 살아야할 땅은 이 곳 뿐이다. 먹어야 한다며 되뇌어도 눈앞의 음식조차 먹지도 못하는 절망 속에서 무력함과 적막함의 반복이 오히려 평화라 여겼고, 이해하지 못할 일들의 개입이 우리의 안일한 삶을 변화시킨다. 우물의 물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불은 왜 켜지지 않을까. 불쑥 다가온 불청객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말은 어째서 움직이지도 먹지도 않을까.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 아니, 삶지도 않은 생감자를 먹으면서까지 굳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나의 신은 죽었다고 믿는 사람은 그렇게 먹지도 못할 감자를 바라만 보고 있다. 우리 이외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지만 위대한 자들은 결코 먹지도 못할 감자 앞에서 손놓고 있지 않는다. 위대한 자들은 스스로 살아보기 위한 어떤 결심을 한다. 칙칙한 어둠 속에서 벗어나지도 못할 꺼져가는 불씨로서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그런 적막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그 능동적 허무주의를 향하여. 먹어야 한다는 건 사람이라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라기보단, 생명으로서 살고자 한다면 먹어야 한다는 말이 더 적합하다. 먹지 않겠다면 죽겠다는 말로 인식할 때, 우리는 신도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 내 삶과 죽음의 주인이 된다. 비록 세상의 창조를 비롯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분명 신의 존재를 느끼게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삶만큼은 스스로가 가꿔나가야 하겠지. 우리에게 죽음의 존재는 이해하지 못한 일들의 개입과 같이 단순한 생존으로서 우리의 병약한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우리는 그 덕에 단조로운 삶으로부터 성숙해지고 강해진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들도 꿋꿋이 견디며 걸어갔던 것처럼 살아생전의 어려움과 난관들로 인해 우리는 이전보다 더욱 성장한다. 아무리 아파도 하루씩만 살아볼 것. 한순간만 견뎌볼 것. 세상 모든 고난들을 고요히 맞서는 내 모습을 바라볼 때, 성숙해지는 것만으로도 웃지 못할 세상에 다가오는 행복.좋아요93댓글0
STONE4.5<안개 속의 풍경> 이후 이렇게까지 외롭고 황폐한 작품을 본 적이 있나 싶다. 어떠한 일거리나 유흥거리도 없는 이 세상에선, 쾌락이나 도덕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광풍이 몰아치는 황무지에서 창밖을 바라만 보는 게 삶의 전부라면, 오히려 그런 삶의 불씨를 꺼트리는 게 곧 구원의 응답일 테다.좋아요74댓글2
Pars Ignari4.5(인생의 아득한 길이에 비한다면 짧고 보잘것없는 시간이지만) 146분의 정적인 동형반복의 일상은 인간이 그저 태어나고 살아가고 소멸하는 무목적의 굴레라는 사실에 온 힘을 다해 체념케 한다. 지천에 숭배할 것이 가득할 현대문명에게의 더없이 절망적인 무신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좋아요63댓글0
박근혜 전 대통령
5.0
감자 하나 가지고 뭘 불편해하는가에 착안해서 이렇게 함으로써 꿀이 새롭게 태어나고 부가가치가 굉장히 높아졌어요. 이게 바로 창조영화이고 이런 창조영화에 다들 높이 사서 모두가 창조적 정신을 가지고 또 대한민국의 미래를 염두에 두는게 좋지 않겠나..
이동진 평론가
5.0
여전히 위대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홍경숙
5.0
스포일러가 있어요!!
정환
4.5
“죽음과 같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의 개입이 무력함과 적막함의 반복인 우리의 단순한 생존의 삶을 변화시킨다. 어둠 속에서 벗어나지도 못할 꺼져가는 불씨로서 살아가지만, 어떻게든 꺼지지 않고 살아보려는 어떤 결심. 그 능동적 허무주의를 향하여. 하루씩만 살아볼 것. 한순간만 견뎌볼 것.”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어떤 결심>, 이해인 어느 한 집이 있다. 우리가 그 집에서 태어났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집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건 알겠다. 불씨마저 꺼진 세상의 암흑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 살아야 한다면 우리가 살아야할 땅은 이 곳 뿐이다. 먹어야 한다며 되뇌어도 눈앞의 음식조차 먹지도 못하는 절망 속에서 무력함과 적막함의 반복이 오히려 평화라 여겼고, 이해하지 못할 일들의 개입이 우리의 안일한 삶을 변화시킨다. 우물의 물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불은 왜 켜지지 않을까. 불쑥 다가온 불청객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말은 어째서 움직이지도 먹지도 않을까.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 아니, 삶지도 않은 생감자를 먹으면서까지 굳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나의 신은 죽었다고 믿는 사람은 그렇게 먹지도 못할 감자를 바라만 보고 있다. 우리 이외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지만 위대한 자들은 결코 먹지도 못할 감자 앞에서 손놓고 있지 않는다. 위대한 자들은 스스로 살아보기 위한 어떤 결심을 한다. 칙칙한 어둠 속에서 벗어나지도 못할 꺼져가는 불씨로서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그런 적막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그 능동적 허무주의를 향하여. 먹어야 한다는 건 사람이라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라기보단, 생명으로서 살고자 한다면 먹어야 한다는 말이 더 적합하다. 먹지 않겠다면 죽겠다는 말로 인식할 때, 우리는 신도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 내 삶과 죽음의 주인이 된다. 비록 세상의 창조를 비롯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분명 신의 존재를 느끼게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삶만큼은 스스로가 가꿔나가야 하겠지. 우리에게 죽음의 존재는 이해하지 못한 일들의 개입과 같이 단순한 생존으로서 우리의 병약한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우리는 그 덕에 단조로운 삶으로부터 성숙해지고 강해진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들도 꿋꿋이 견디며 걸어갔던 것처럼 살아생전의 어려움과 난관들로 인해 우리는 이전보다 더욱 성장한다. 아무리 아파도 하루씩만 살아볼 것. 한순간만 견뎌볼 것. 세상 모든 고난들을 고요히 맞서는 내 모습을 바라볼 때, 성숙해지는 것만으로도 웃지 못할 세상에 다가오는 행복.
STONE
4.5
<안개 속의 풍경> 이후 이렇게까지 외롭고 황폐한 작품을 본 적이 있나 싶다. 어떠한 일거리나 유흥거리도 없는 이 세상에선, 쾌락이나 도덕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광풍이 몰아치는 황무지에서 창밖을 바라만 보는 게 삶의 전부라면, 오히려 그런 삶의 불씨를 꺼트리는 게 곧 구원의 응답일 테다.
귀도
4.5
생명 연장은 인간이 하릴없이 감내해야만 하는 가장 잔혹한 의무.
Jay Oh
4.5
소멸. 지겹고도 지독한 공허감. Bleak decay.
Pars Ignari
4.5
(인생의 아득한 길이에 비한다면 짧고 보잘것없는 시간이지만) 146분의 정적인 동형반복의 일상은 인간이 그저 태어나고 살아가고 소멸하는 무목적의 굴레라는 사실에 온 힘을 다해 체념케 한다. 지천에 숭배할 것이 가득할 현대문명에게의 더없이 절망적인 무신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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