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Night Moves
2013 · 드라마/스릴러 · 미국
1시간 52분 · 전체

<어둠 속에서>는 세 명의 급진적인 환경운동가가 수력발전 댐 폭파라는 그들 인생 가장 극단적인 시위를 실행에 옮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인 동시에 정치적 극단주의의 결과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세 인물의 행로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옳은 신념은 불법적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개인의 정치적 신념은 궁지에 몰렸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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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 Oh
3.0
금이 간 댐 너머로 새어 나오는 인간 고유의, 저마다의 어떤 본성. Leaking humanity, for better or worse.
JE
3.5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숏: 우선 보트 위에서 나무 사이 사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해를 보는 (아마도) 시점 숏. 그리고, 단일한 숏은 아니고, 어둠 속에서 도로를 달릴 때의 몇 차례 시점(?) 숏들. 전자는 패닝과 트래킹의 결합에 마치 해가 저무는 듯한 인상이 든데다 돌연한 응시가 유난해 그렇다 치지만, 비교적 관습적이고 범상한 후자는 왜였을까. 아무래도 라이카트가 로드 무비를 찍는 감독이기도 하고, <Night Moves>란 제목을 의식하기도 했던 것 같다. 로드 무비와 어둠. 상투적인 감상인지는 몰라도, 결국 어둠을 달리는 일련의 숏들은 세 사람의 길 같다. 저 너머가 보이지 않는 길. ('로드킬' 당한 사슴처럼) 죽음이 가로막기도 하고, (경찰 검문이라는) 불안이 가로막는 길. 호수 위의 배까지 포함한다면, (고장난 차량을 보는) 두려움 내지 망설임까지. 어두운 길 위엔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어 보인다. 그러고 보면 먼저 언급했던 숏 역시 빛이 점멸하는 점이나 해가 지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는 점에서 어둠과 무관하지 않을 것도 같다. 이와 연관해 흥미로웠던 숏을 하나 더하면, 댐을 폭발시키고 돌아오는 차 안을 찍는 숏. 아까 말한 (어둠을 헤치는) 주행 숏의 리버스 숏이라도 되는 것마냥 차의 움직임과 대조되게끔 경직된 세 사람의 표정을 찍는데, 결국 어둠으로 이어진 길ㅡ로드 무비의 끝ㅡ은 내면으로 향한다고 말하는 걸까. 믿어온 (물)길은 뚫었을지언정 무너져 덮쳐 내리는 것들, 혹은 최소한 그 조짐에 대한 내면의 풍경. 역시 라이카트의 영화는 자꾸만 멈춰 선다.
샌드
3.5
켈리 라이카트 감독 특유의 풍광과 인물을 길게 보여주면서 정적인 톤으로 정서를 만들어 가는 스타일이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서부극을 제외하곤 가장 장르 영화적이다 할 수도 있을 만큼 이야기가 선명한 작품입니다. 폭발하기 직전의 들끓는 감정을 느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화면 속에 담아 시종 팽팽한 긴장감을 만듭니다. 켈리 라이카트의 영화 중 가장 그 투쟁이 밖으로 표출되는 행동적인 영화면서 감독 본인의 생각이 인물의 사연과 감정으로 그대로 나타나는 논쟁적인 작품입니다. 저는 집에서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봤는데, 가능하다면 이 작품은 극장에서 보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모든 영화가 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어둠이 의미하는 것도 있고, 영화 중간 실제로 어둠 속에서 굉장한 긴장감을 만드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작한 지 십 년이나 된 이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지만, 켈리 라이카트의 모든 영화는 언제라도 계속 논의되어야 할 것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포함한 모든 영화를 뒤늦게라도 보고 얘기할 수 있을 자리가 꼭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별,
3.5
떨어진 둥지를 가지 위로 올리는 것도, 로드킬당한 사슴을 길 밖으로 버리는 것도 결국은 같은 그이다. 단지 둥지는 비어있고, 사슴은 채워져 있을 뿐. 하지만 까매진 손을 보며 자신의 행위가 어떠한 것인지를 인식할때, 그 차이는 어둠 속으로 침잠해가는 자신의 내면이 선택할 길을 분명히 암시한다.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의 두려운 진실 앞에서 그가 선택하는 외면이라는 응답과 다시 한 번 사고로 위장되는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은 마치 그녀의 윤리적 죄책감 마냥 온몸을 휘감는 두드러기만큼이나 확실하게 예감되는 그의 의지로서 당위성을 얻는다. 따라서 그가 흘린 눈물은 참회가 아닌 위선의 감정이며, 그조차도 필요 없다는듯이 자신의 존재를 감춰버리는 일련의 행위는 이윽고 자신의 이름을 한 자도 채워넣지 못하는,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은 결코 비춰지지 않을거라는 결말로 이른다. 생존을 위해 존재를 버린 그의 삶은 곧 지옥일테지만, 마땅히 인간이라면 따라야할 관념들 앞에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가는 이가 오직 그 뿐만은 아닐 것이다.
Indigo Jay
3.5
주인공(들)이 자신이 한 행동에 무기력을 느끼고 신념이 서서히 흔들릴 때 카메라는 서두르지 않고 원인과 과정을 보여준다. 레이카트 감독의 전작들과는 달리 극적인 씬이 들어있지만 템포나 수위가 잘 조절되어 있다. 다코타 패닝과 제시 아이젠버그가 급진적 환경운동가로 나오고 여기에 미국독립영화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피터 사스가드가 합세했다. * 2017.8.17 첫 감상 켈리 레이카트 감독 작품 정주행 중. <올드 조이>(2006), <웬디와 루시>(2008), <믹의 지름길>(2010), <나이트 무브>(2013), <써튼 위민>(2016)
문희원
4.0
전작에서 인물들을 한 곳으로 모았던 어둠은 이제 숨을 곳을 탐색해야 하는 불안의 공간으로 전이되었다. 양립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선의와 정의의 모순 속, 흔들리는 내면에 무심한 듯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시간의 냉철함이 실로 가혹하다.
왓챠보안관^^7
3.5
- 영화 속 자연물은 그것이 세트 위에 세워진 인위적인 풍광이건 아니건 간에 언제나 영화 안으로 전부 포섭되지 않는 잉여의 감정을 남긴다는 데 의의가 있다. 보이는 것만으로는 끝내 다 이야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영화 속 풍경에 대해 말한다는 건 보이지 않는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어둠 속에서>를 서두로 두고 싶은 까닭은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연결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의 명징한 주제는 레이차트의 영화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라 해도 좋을 것이다. - 그전에 <어둠 속에서>라는 영화에 관해 먼저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른 영화들 중에서도 국내에 비교적 덜 알려진 이 영화는 켈리 레이차트의 영화 궤적을 따라갈 때 서사의 비중이 비교적 높은 영화로 받아들여진다. 그건 아무래도 에코-테러리즘과 살인 사건이 연속해서 출현하는 영화라는 데 근거를 둔다. 이 작품엔 급진적인 환경운동가 3명 조시, 다나, 하몬이란 인물 셋이 등장한다. 각기 다른 이유로 운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환경 파괴를 막는다는 목적 아래 저마다 필사적이다. 이들은 모두가 잠든 사이 수력댐 폭파를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그런데 이 과정에 무고한 시민 한 명이 사망하고 셋은 윤리적 문제에 봉착한다. - 조시와 하몬은 희생자의 죽음을 묵인하려 하는데 다나는 자신을 짓누르는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다. 결국 다나는 자신의 죄를 털어놓기로 결심하지만 이를 막기 위해 찾아간 조시에 의해 불운한 죽음을 맞는다. 다나를 살해하고 도주한 조시는 초점을 잃고 캠핑 매장을 배회하는데, 조시의 얼굴이 매장 거울에 비친 순간 그의 얼굴엔 길 잃은 짐승의 표정이 깃들어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대의를 위해 뭉친 그들이었지만 무고한 희생자를 낳았고 종국엔 길을 잃었다. 길 잃은 연대에게 더 이상 가능성이란 존재하는지를 묻는 비관적인 이야기가 바로 <어둠 속에서>다. - 켈리 레이차트의 영화는 이야기가 밀도가 높을수록 되려 영화가 활력을 잃는 편이다. 죄의식과 침묵, 자본의 폐해라는 주제가 보다 직접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설명 불가능한 지점이 매력적이던 그의 세계가 쉽게 정치적으로 읽힐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전경들은 여전히 영화 속 화면 자체를 초월한 형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 단순히 나무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형성하는 기괴한 리듬. 이후 벌어지는 사태를 고민했을 때 조시 일행의 공모를 목격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연 그 자체라는 결론으로 이끌린다. 침묵하고 있지만 침묵하지 않은 자연의 소리를 들은 건 다나뿐 인 것인가. 어떤 의미로도 환원되지 않는 지형이라 하기에 <어둠 속에서>의 풍경들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정리하면 어떨까. <어둠 속에서>에서 볼 수 있듯 레이차트 영화 속에 등장하는 풍경은 단순히 조망하는 경탄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지만 모든 걸 보고 있는 일종의 감시자다. 이 야행의 목격담을 거쳐 우리는 죄책감을 안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다나가 가장 윤리적인 이었음을 안다. (어쩌면) 연대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사이를 잇기 위해 몸부림치는 개인만이 어둠 사이에서도 조용히 빛날 뿐이다.
이동윤
3.5
어둠이 빛을 이겨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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