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자
Il conformista
1970 · 드라마 · 이탈리아, 프랑스, 서독
1시간 53분 · 청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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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로마. 무솔리니 정권 하에 비밀요원으로 활동하게 된 마르첼로는 줄리아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프랑스로 망명하여 반파시즘 운동을 이끌고 있는 대학시절 은사 콰드리 교수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은 마르첼로는 파리로 신혼 여행을 가서 콰드리 교수와 그의 아내 안나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안나에게 걷잡을 수 없이 끌리게 된 마르첼로는 자신의 본심과 임무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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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phile
4.0
역사가 파시즘에 줄곧 열광하는 것은 그것이 약속하는 무결하며 공고한 질서가 소시민이 꿈꾸는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위로는 그처럼 헛된 그림자 안에서의 굴종이 아니라, 자신의 속된 과거마저도 직시할 수 있는 투쟁에서 발견된다.
나상민
4.5
1. 마르첼로의 어린시절, 운전사가 선물을 주겠다고 하자 마르첼로는 총을 선물로 달라고 한다. 바로 전, 마르첼로는 자신을 희롱하던 아이들을 차를 타고 지나가며 놀리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마르첼로는 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무기, 힘의 존재를 깨닫는다. 마르첼로가 비밀경찰이 되겠다고 한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보좌관 망가니엘로에게 자신의 이복형제를 굴복시키는 것이었다. 2. 영화의 첫 장면. 빨간 전등이 깜박거리고 흐릿한 눈으로 허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마르첼로가 있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망가니엘로의 전화. 첫 전화 알람이 채 끝나기 전에 마르첼로는 전화기를 집어든다. 그런데 마르첼로가 전화를 기다렸다기 보다는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는 것에 더 가까워보이지 않는가. 3. 마르첼로가 파시스트가 된 후부터 그의 행동은 수동적이다. 지시를 받고 그것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주체의 판단은 개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르첼로는 거대한 세력을 유지하는 기계장치의 일부가 된다. 그는 욕망할 수 없고, 주체이기를 포기한다. 4. 그런 그에게 다시 욕망하게 하고 인간으로 살게 해주는 존재가 나타난다. 그의 옛 연인을 닮은 안나가 그것이다. 그래서 마르첼로는 욕망한다. 안나를 따라 욕망의 세계로 들어가 인간이 될 것인가, 거대한 세력에 계속 남을 것인가. 안나가 살해 당하기 직전, 마르첼로에게 이러한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선택권이 없다. 거대한 힘에 굴복한 것일까. 그 보다는 마르첼로는 어떠한 판단도 욕망도 포기한 완전한 수동의 상태가 된 것으로 보인다. 5. 마르첼로가 비밀경찰이 되려 한 것은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한-능동적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욕망을 포기한 객체가 된다. 결국 '순응자'는 스스로 거대한 흐름에 순응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을 말한다기 보다는 거대한 흐름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사람에 의미가 더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거대한 흐름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흔들릴뿐이다. 6. 마지막 장면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마르첼로가 주체없는 자신을 직시하지만 자기자신을 찾을 수 없다는 체념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비참함 고독이 보이기도 한다.
Jay Oh
4.0
평범함을 좇는 순응의 막을 들춰보니 바람에 흔들리는 그림자 뿐. Wavering shadows of ambivalence, startling cinematography.
Dh
4.0
퇴색된 그림자를 가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자의 우화 #허위 #서울아트시네마×네오리얼리즘을 넘어서
Mino
5.0
1. 과연 마르첼로는 리노를 죽였을까? 아니면 죽였다고 믿고 싶어 하는 걸까. 과거 성추행을 당했던 기억에서 그 일을 당하고만 있었다는 죄책감에 그를 죽였다고 믿게 된 건 아닐까. 그런 거짓 과거를 품은 채 마르첼로는 멀쩡히 살아있는 리노를 목격한다. 죽은줄 알았던 그에게 과거를 언급하며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어두운 과거와 그의 생존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어느 정도의 용기를 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첼로는 화내는 와중에 사람들에게 리노가 콰드로 부부를 사살한 파시스트라며 콰드로 부부의 죽음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자신을 추행한 성범죄자를 죽였다는 거짓 과거를 만들어낸 것처럼, 그는 또 한번 콰드로 부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리노에게 돌림으로써 파시스트였던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동료인 이탈로를 파시스트라며 사람들에게 떠벌리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테다. . 2. 한때 플라톤의 '사슬에 묶인 죄수' 강의를 들은 경험과 베이컨의 '동굴의 우상'을 토대로 반 파시즘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쓰려 했던 마르첼로이지만, (반 파시즘 진영인)콰드로 교수와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서 그는 파시즘에 순종한다. 이윽고 파시즘이 무너지자 그는 파시스트였던 과거는 잊으려는 채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려 한다.(이는 리노를 콰드로 교수와 안나를 죽인 범인이라 모함하고, 이탈로를 파시스트라며 대놓고 떠벌리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파시스트가 무너지고 이를 환호하는 군중들에 섞이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을 뒤편에서 멀찍이 바라만 보고 있는 마르첼로의 모습은 결국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아웃사이더의 모습이다. 그는 순응을 자처하는 순응자이지만 단 한 번도 그 체제에 제대로 '순응'한 적이 없다. 겉으로만 순응한 척, 일원인 척 겉돌기만 했을 뿐이다. 파시스트를 자처해 비밀경찰이 되었을 때조차 그는 파시즘과 반 파시즘 사이에 서성일뿐이었다. (콰드로 교수의 거짓 편지를 거부한 것에서 드러나듯 그가 진짜 파시스트였다면 오히려 그 편지를 역이용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후환이 두려워 안나를 지키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그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도 아니었다. 보좌관 망가니엘로에게 사부아에 위치한 콰드로교수 저택의 주소를 넘기며 자신의 임무를 떠넘기기까지 했다. 마르첼로는 시대적 격랑에 몸을 내맡기는 척하며 심지어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믿으려 하는 동굴의 우상, 사슬에 묶인 수감자에 불과했다. . 3. 라스트 신을 얘기하고싶다. 침대 위에서 헐벗은 채로 노래를 듣고 있는 호모인 남성을 바라보는 마르첼로의 모습은 마치 창살에 갇혀있는 듯한 동굴 속 그 수감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작은 불씨와 대비되는 어두운 풍경, 그리고 창살은 극중 언급된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를 그대로 구현한 듯하다. ) '동굴의 우화' 속 수감자가 그림자를 실체라고 믿었듯, 마르첼로 또한 진짜 실체를 보지 못하고 거기서 비롯된 그림자를 실체라 믿으며 피상적인 것에 종속된 삶을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바라보는 나체의 남성은 자유분방한 '나체'의 모습인 동시에 성소수자인 '호모'다. 보편성을 갈망했지만 그 보편성에도 속하지 못하였고 그렇다고 주체성 넘치는 사람도 아니었던 자신과 현저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가 바라보는 대상의 남성이 호모인 점이나, 과거 모자를 벗은 리노에게 다가가는 마르첼로를 담은 앵글 등은 그에게 동성애 성향이 어느정도 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성정체성을 감추기 위해선 즉, 평범해지기 위해선 이성과의 결혼이 필요했을 것이다.) . 우리는 영화가 마르첼로의 후면이 아니라 창살 너머 호모를 바라보는 그의 측면으로 종료되었다는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의 뒷모습을 마냥 바라보며 주체적인 호모 남성과 대비하면서 끝냈다면 거기엔 절망만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가 창살 너머에 있는 남성을 보기 위해 뒤를 돌아보는 것을 끝으로, 이제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 것과 더불어 해당 남성처럼 좀 더 주체적인 삶을 살아보겠다는 열망을 그의 눈빛에 소량 담아둔다. 동굴 벽 그림자를 생성케한 불빛을 보기 위해선 수감자는 자신의 등 뒤를 바라봐야 한다.
raffy
4.0
순응은 안전한 길처럼 보이지만, 그 길 끝에는 점점 더 깊어진 공허와 상실만이 있다. 결국 자유를 꿈꾸며, 그 꿈을 손에 쥐지 못한 채 사라져간다.
박형곤
4.5
가장 순응할때 어디에도 순응할수없었던 나약한 위선자
mekong1922
4.5
항시 자신을 내리쬐는 빛을 손으로 가리며, 원하는 이미지만을 갈구하는 한 순응자의 인생에 대한 탐구. 세상이 추구하는 ‘정상적임’을 이상으로 바라본 그는 과거 본인이 갖고 있던, 세상의 보편성과는 어긋난 그의 기억을 조작하고, 잊으려 한다. 조작된 그림자로 비추어본 세계는 항상 불안한 형상을 띠기 마련이다. 과거의 잊고 싶은 트라우마와 격동의 정치적 환경이 혼재된 세계에서 그는 순응이란 무기로 무장하며 저항을 해 나간다. 흠이 잔뜩 보이는 나약한 무기들로 말이다. 본인을 부정하며 확립한 철학과 관념들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화 후반부 식당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사람들 속 깊은 사색과 고뇌에 빠진 그를 오버헤드샷으로 포착한다. 이러한 화면 구성들로 하여금 감독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당신은 이런 적이 없었느냐고 말이다. 세상에 순응하기 위해 ’나‘를 숨기며,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사랑하고, 춤을 춰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럴 수는 없는.. 영화의 마지막 그는 자신이 계속해서 가리고, 마주하지 않았던 어둠의 동굴, 철창 속 비밀들을 직시하게 된다. 과거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환경의 호모를 보고 말이다. 그리고 영화 내내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옅은 미소를 천천히 드러낸다. 아마 그는 이제 세상의 흐름에만 의지하는 공허한 순응이 아닌 본인을 향한, 원시적인 탐구 따위의 ’순응‘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내리쬐는 빛을 맞이하며 손으로 가리지 않고, 그저 미소를 보일 수 있는. 이는 우리가 삶을 살면서 항시 쥐고 살아가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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