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혼: 죽은 넋
死灵魂
2018 · 다큐멘터리 · 프랑스, 스위스
8시간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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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북부에 위치한 간쑤성에는 60년 전 공산당이 주도한 반우파운동이 한창인 시절,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혀 굶어 죽은 수감자들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지아비앙고와 밍수이 강제노동수용소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기록하는 아시아 대표 다큐멘터리스트 왕빙의 신작.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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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 Oh
4.0
삶을 보고 있는 줄 알았을 때도 알고 보니 죽음을 보고 있었다. 달래질 수 있는 넋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디 이 영화를 통해 기억이라도 되길. "나 빼고 다 죽었어"라던 그 나머지 영혼들까지 다. Words and bones from beyond.
천수경
5.0
이 영화에 등장하는 증인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야기 도중에 누군가의 실명을 수없이 거론한다는 점이다. 듣고 있는 사람은 절대 모를 사람들, 도움을 건넨 사람들의 이름이 종종 나열된다. 마치 자기 절친들의 이름을 갑자기 칠판에 적으면서 썰을 풀던 나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같았다. 영화 속 증인들은 말해도 말해도 그 은혜가 다 말해지지 못할 것인 양 이름들과 업적을 말한다. 이 영화가 소환하는 죽은 넋들의 이야기가 전부 사실일까, 증인들의 기억력이 정확할까, 나의 불경한 의심이 조금 쓸모없어지는 순간들. 저렇게 많은 사람이 저렇게 수많은 이름을 신신당부하듯 영화에 새겨넣고 있다면. 설령 정확하지 않은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일지언정, 진실이 크게 담겨 있다고 누구든 직감하리라. 증인들의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국가가 제대로 달래주지 않은 울분이 얼굴 곳곳에 패여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통째로 핸드헬드여야만 한다. 큰 돈이 되지 못할 이 영화가 어디로도 흐르지 못하게 되더라도 한 사람에겐, 최소한 카메라를 든 사람에겐 그 증언들이 현장에서 생으로 흡수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말을 뱉는 사람이 휘청이는 만큼 카메라를 든 사람의 손이 그 울분의 무게에 함께 휘청여야 한다. 사람 고기로 몸보신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야만의 시절이었던 게 아니다. 5%라는 수치를 정해두고 불순 분자를 색출하던 행태가 야만이었다. “알고 보니 시체랑 잔 거였어, 허허”하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줄 저들은 알았을까. 죽음의 냄새가 코앞에 들이닥쳤을 땐 전혀 다른 표정이지 않았을까. 그의 앳된 얼굴이 하얗게 질렸을 순간을 뒤로한 채 웃는 것이 죽은 넋들을 기리는 방식일까. 생존한 이들이 생존하지 못한 이들에 대해 무려 여덟 시간 동안 늘어놓는 영화를 왕빙은 왜 찍어야만 했나. 노인이 굶어 죽은 사람들을 이야기하는데 화면의 맨앞 구석엔 수박이 한 무더기 쌓여있다. 사상 때문에 굶어 죽을 위기에서 정작 책을 끓여 먹거나 불쏘시개로 썼다던, 죄를 시인해야 무죄가 될 수 있었다던, 반혁명이 곧 혁명이었던, 모순의 시대에 관한 증언들. 밭인 줄 알았던 어느 땅엔 흰 뼈들이 잡초처럼 곳곳에 박혀 있다. 한때 누군가의 정강이였을, 골반이었을 덩어리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그 땅에 무언가를 심으려고 했던 농부는 그곳이 무덤인 걸 알게 된 이후로 주변을 산책할 뿐이다. 그의 산책을 카메라가 따라간다. 그 길을 걸어도 걸어도 무언가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으로부터 졸업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영화 속 증언들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사실을 거의 모든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모든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침을 튀기며 얘기하는 남자 옆에서 꾸벅꾸벅 졸던 여인은 어떤 죽음의 한 대목에서 불시에 눈물을 흘린다. 또 다른 남자는 동네 어릿광대처럼 맛깔나게 이야기를 펼치다가 고향을 떠날 때 느낀 서러움에 도달하자 아이처럼 운다. 곧이어 화면 밖 지나가던 행인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증인들의 현재는 아직 현실이 되지 못한 듯하다. 과거가 더욱 큰 현실이라서 현재는 이따금 안부만 전하는 먼 친척 같다. 어느 장례식에서 오열하던 남자는 관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온갖 난리를 피운다. 몸소 깊은 구덩이로 들어가서 관이 제대로 놓였는지 확인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안도할 때까지, 관의 위치를 직접 보고 승인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가 죽은 사람의 생애를 요약하는 편지를 사람들 앞에서 읽을 때 엉엉 울었기 때문에. 관의 위치에 관한 그의 호들갑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가 과거와 조금은 멀어질 수 있도록, 현재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과거로 난 직통 고속도로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아직 해소되지 않은 폭력이 가득한 그 과거는 우리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곳으로 향한 길이 잘 뚫려 있어야 현재를 잘 돌볼 수 있고, 현재를 잘 돌보아야만 사령혼들을 오래오래 기릴 수 있다. 기리는 자들이 생존해야 누군가 이 일을 계승할 수 있다. 그 길을 뚫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드는 거라 생각한다.
JH
5.0
어떠한 기교도 주관성도 없이 오로지 증언만을 다룬다. 죽은 삶을 살아온 자들이 생의 끝자락에서 내는 목소리에서 한없이 느껴지는 무력감이란...
왓챠보안관^^7
3.5
1부가 끝나기 전까지 자막을 계속 봤다. 아니 솔직히 말해 자막만 봤다. 영화는 피사체가 된 인물이 카메라 앞에 앉은 채로 구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기에, 내게 필요한 정보는 그들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회가 진행될 수록 그들의 표정과 얼굴, 제스쳐, 잠깐 끊어지는 숏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지에 관한 괜한 걱정. 오직 상상만으로 지금 당사자의 입에 이야기되고있는 장소에 내가 가본 것 같은 물리적 경험을 겪었고, 이들의 부고 날짜가 화면에 드리운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기록된 사건이 아니라. 저 봉인된 시간 속에 오직 증언만으로 살아 움직이는 영화, 아니 어쩌면 유령의 증언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환영적인 경험이었다. -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광화문 일대를 조금 걸었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행이라는 것. 혹은 거대한 악의 형상이 나타나면 우리가 피할 수 있을까. 혹은 그와 대면했을 때 살아남는다면 그게 온전히 내 덕일까. 물론 둘다 아니란 걸 잘 안다. 그건 순전히 운의 문제임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저 영화 안과 밖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겠는가. 결국 영화가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이 무력함을 체험하는 일이다. - <사령혼>을 보면서 며칠 전 본 <김군>이 당연히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김군>은 분명 좋은 영화인데 나 스스로가 지나칠 정도로 이 영화에 박한 평가를 내렸던 것 같아 부끄러웠다. 오늘 <사령혼>을 보고 아무래도 그건 왕빙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먼저 접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왕빙은 아무것도 찍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이 영화를 만들었다. 두 영화의 형식은 분명 유사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왕빙만큼 세심하고 사람에 관한 존경으로 다큐를 찍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엔딩 크레딧에 (인터뷰를 하지 못한 희생자분들께 사과를 전합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울컥한 감정이 들었던 것도 그 이유다. 세상은 여전히 왕빙과 같은 관찰자에 의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여지가 있다.
상맹
4.0
다른 영화들과 몸짓들보다는 다르게 직접 발화하시고 발화하게끔 하시는 방법이지만 여전히 왕빙 감독님은 대단하다. 모든 위험들을 무릅쓰고 대약진운동의 족적과 자취를 따라가고 기리는 행위는 가히 영웅적인 것 같다. 노년의 얼굴과 주름과 손의 떨림만 봐도 느껴지는 삶의 무게들. 우리가 죽었던 장소야라는 말, 덜 고통받게 죽고싶다라는 할머니의 말씀 그리고 정말 꺼억꺼억 소리가 나던 장례씬과 폐허와 두개골들. 괜히 삶이 겸허해지고 부끄러워진다. 쉽게 나눌 순 없지만 세 자매에서 유년 비터머니에서 청년 철서구에서 중년 사령혼에서 노년, 중국의 세대 각각이 가진 역사적 아픔들을 담담히 찍으시고 전달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쉬이 잊어버리면 안 될 것들을 찍어주시고 발화해야만 덜어질 수 있는 것들을 담아주시고 놓칠 수 있는 것들을 포착해주는 영화가 세계에 할 수 있는 것들. 상맹의 부국제 세자매에서 시작한 왕빙감독님 영화 보기 프로젝트는 다큐멘터리 수업에서 아감벤의 영화와 몸짓 논의에 대한 소논문으로 만들어지고 사령혼의 영화로 약 20시간의 여정이 비로소 마무리됐다. 궁금하시면 블로그로 오시길!
Indigo Jay
4.0
스포일러가 있어요!!
김건오
5.0
카메라의 존재 의미.
모르그
4.0
역사와 증언 사이, 증언과 청취 사이. 버려지고 스러져 가는 이야기들 사이의 틈을 끝내 붙잡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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