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라운드
Druk
2020 · 코미디/드라마 ·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1시간 57분 · 15세
![[운영] <만약에 우리> 1000 캐시백_보드배너](https://an2-img.amz.wtchn.net/image/v2/T2XWO8sp57dxThcuH2WbGw.jp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mNIUnpJanBiSW1KbklsMHNJbkFpT2lJdmRqSXZjM1J2Y21VdmNISnZiVzkwYVc5dUx6STFNRE01T0RVNU1URTFNakV5TmpZaWZRLmxRUnhKZDJxUi1vYVdHcjR4bzFFS3dJRVJxM3pGemZTeWVKemlqRkxSbmM=)
![[운영] <만약에 우리> 1000 캐시백_보드배너](https://an2-img.amz.wtchn.net/image/v2/NCIXGDs3-yKIR6aK2qBkNw.jp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mNIUnpJanBiSW1KbklsMHNJbkFpT2lJdmRqSXZjM1J2Y21VdmNISnZiVzkwYVc5dUx6ZzJNak00T1RBME5qRTBOelV5TXlKOS5YT2NoLXpsZUsyanl2OFRuWVJGUm80Q2tKWU04OGpQVko0OXhNOTZnRHlN)
각각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같은 고등학교 교사 니콜라이, 마틴, 피터, 토미는 의욕 없는 학생들을 상대하며 열정마저 사라지고 매일이 우울하기만 하다.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 적이고 활발해진다”는 흥미로운 가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틴이 실험에 들어간다. 인기 없던 수업에 웃음이 넘치고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활기가 생긴 마틴의 후일담에 친구들 모두 동참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정한다.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할 것!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을 것!] 지루한 교사,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 최적의 직업적, 사회적 성과를 위해 점차 알코올 농도를 올리며 실험은 계속되는데… 과연 술은 인간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을지, 도전의 결말은?!
4O% 할인 곧 끝나요!
연간 구독권 할인 놓치지마세요.
WATCHA · AD
4O% 할인 곧 끝나요!
연간 구독권 할인 놓치지마세요.
WATCHA · AD
감상 가능한 곳
본 정보의 최신성을 보증하지 않으므로 정확한 정보는 해당 플랫폼에서 확인해 주세요.


이동진 평론가
4.0
삶이란 어느덧 비극이고 어쩌다 희극이며 어쩌면 한바탕의 춤.
재원
4.0
술의 희극성부터 비극성까지 모두를 아우르며 과유불급이라는 교훈까지 알차게 담아냈다.
134340
4.0
부족한 0.05는 알콜수치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마시는 자들이다.
뭅먼트
3.0
매즈 미켈슨만의 자유로운 엔딩. 선을 넘는 것, 선을 지우는 것, 선을 다시 그리는 것.
Jay Oh
3.5
술의 모든 것. 마시는 사람부터, 환상과 대가, 그리고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즐거움까지. All the facets of drinking, and why we still crave another round.
황재윤
4.0
어차피 통제 불가한 인생...을 위하여!
주+혜
4.0
사는 동안 절대 헤어질 수 없는 불안을 삼키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맨정신의 효용만 권하는 현대 사회를 향한 경쾌한 반항 소동
Hyoung_Wonly
3.5
우리는 정말로 여전히 삶을 사랑할까? <어나더 라운드>는 <더 헌트>로 함께했던 매즈 미켈슨과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영화다. 술 한 잔씩 돌리라는 의미인 영어 제목처럼 술에 관한 영화다. 원제 <Druk> 역시 술을 의미하는 덴마크어이며 음료를 마실 때 목구멍에서 나는 꿀떡꿀떡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이기도 하다. 제목도 포스터도 예고편도 술로 가득하지만, 술이 주인공은 아니다. 부풀어가다 못해 처지기까지 한 뱃살처럼 따분하고 지루해진 중년의 삶에 술을 일정하게 들이부어 활기찬 모습을 되찾고 싶어하는 평범한 남성 네 명의 이야기다. 오늘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생동감을 유지한채 살지 못하고, 무력하게 일상의 쳇바퀴 위를 걷고 있다는 기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독일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말한다. “우리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기계를 제작하고, 기계처럼 행동하는 인간을 생산한다. 옛날 인류는 언젠가 노예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험이 있었다면, 지금은 로봇이나 자동인형이 될 위험에 처해있다.” 현대인이 살아가는 삶의 아이러니가 섬뜩하게 묘사돼 있다. <어나더 라운드>는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 딸 아이다로부터 덴마크 청소년들의 음주 문화를 듣게된 뒤 영감을 받아 쓴 희곡이 원작이다. 희곡을 읽고난 아이다는 시나리오 각색을 권했고, 빈터베르그는 오랜 고민 끝에 수락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많이 알려진 사실, 빈터베르그 감독은 아이다에게 주요 배역을 맡길 계획이었다. 하지만 촬영이 임박한 시점에 아이다는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빈터베르그는 절망했고, 영화화 계획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을까.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삶이여… 다시!”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삶을 어떻게든 부여잡은 빈터베르그, 우선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아이다에게 맡기려던 역할은 다른 친구가 맡게 됐지만 아이다가 다니던 학교와 반 친구들을 섭외했고, 이 영화를 아이다에게 헌정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기이하게도 빈터베르그의 눈물로 빚어져 영화로 숙성된 술과 같다. 취할 수 있다는 건 결국 일어날 것이고, 살아 있다는 의미가 담긴 달콤하고 씁쓸한 이야기의 술. 자기 삶에 대한 증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무능력은 현대의 가장 큰 심리적 질병이다. 삶의 하이라이트에 “좋아요”만 잔뜩 달려 있는 현실을 두고 프롬은 묻는다. “우리는 정말로 여전히 삶을 사랑할까.” 괜찮은 하루를 보내고 난 후에도 한밤중에 갑자기 삶이 무의미한 듯한 기분, 내 방(채팅방 포함)은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웃을 일이라고는 없는 듯한 기분, 삶이 뭉쳐있지 않고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라지는 기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기분에 얼굴을 감싸쥐는 일은 얼마나 많나.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일상생활의 자동화, 자기만의 독립적 표현보다 남의 생각에 대한 공감과 공유를 유도하는 소셜미디어, 하루 내내 쏟아지는 스마트 업무 알림 서비스 등은 인간의 로봇화를 촉진한다. 이제는 다들 알고 있다. 정신 없이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빅데이터화하여 빼가는 기계만 점차 똑똑해지고 인간은 갈수록 멍해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프롬은 현대인의 삶은 꾸준히, 지속해서 사랑하는 능력을 거의 상실했다고 진단한다. 현대인은 ‘순간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경험’보다 ‘살아 있는 듯한 연출 가능 여부’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우리 삶을 바꾸는 일보다 우리 삶의 일부를 찍어낸 이미지를 ‘있어 보이게’ 연출해주는 SNS가 그 예시다. 인간은 이제 존재가 아니라 퍼포먼스(그에 따라오는 좋아요+조회수)에만 신경쓸 뿐이다. 물질의 신격화를 넘어, 인간을 물질화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은 여전히 진보하고 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문화는 하나의 시대를 창조했고, 꾸준히 마케팅에 자극 받으며 약해진 사람들은 물질의 소유로 자신의 약점을 가리기에 바빠졌다. 이제는 자신을 하나의 상품인냥 팔아치우고 있다. 다른 한편 스스로를 착취하는데 빠져버린 사람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세지조차 마케팅 요소로 이용된다. 나 아닌 물건(돈), 타인, 사건, 지위 등에 더 자주 끌리고 쓸려다니고 들끓을수록, 인간은 활력을 잃기 마련이다. 사랑할 것이 내 몸 바깥에 있다면, 그걸 찾기 위해 모든 시간을 허비해버릴 수 밖에 없다. 자기 내면에서 참된 가치를 일구어내지 못하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무관심해지면서 결국 무력해진다. 즉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잃는 것이다. 성장과 변화가 멈춘 삶이 곧 죽음이다. 죽음의 힘으로 부활한 좀비처럼, 살아있지만 이미 죽어버린 상태로 세월을 탕진하는 것이다. 매즈 미켈슨과 친구들은 무력한 삶을 거부하고자 나섰지만, 그들이 의지하려 했던 건 결국 ‘술’이란 물질에 불과했다. 현대인 좀비화 현상은 술 뿐만 아니라 멀티테스킹 형태로도 극명하게 보여진다. 자신의 무력함을 감추기 위해 우리는 최대한 많은 일을 동시에 진행하고 쉴 새 없는 바쁜 척을 한다. 아시다시피 우리 생활은 늘 뭔가 분주하지만, 무엇 하나라도 집중해서 끝낸 일이 많지 않다. 밥을 먹으면서 영상을 시청하고, 메세지에 답장하며, 그 와중에 같이 밥 먹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4-5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만 그 어떤 일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다. 이러다보니 무엇에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남지 않는다. 효율적인지도 의심스럽고 창조적인 현상은 언감생심이다. 언제부터인가 어떤 일도 자신을 온전히 쏟아 부을만큼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분주할수록 우리는 힘을 잃고, 제대로 쉬고 싶다고 느끼며 삶을 증오하게 된다. 삶에 대한 사랑은 인간성의 기초와도 같다. 기초가 흔들리면 창조의 원천도, 문화의 뿌리도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사랑을 잃으면 개인도 사회도 병드는 건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그 결과가 개인으로는 나르시시즘, 이기주의, 권태, 우울 등에 시달리고, 사회는 과잉생산으로 인한 환경 파괴, 기술 맹신에 따른 인간 소외, 생명 경시에 의한 대량 멸종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방치하면 극단적 공허감이 찾아오고, 세상이 망하길 바라며 자신이 사라지는 게 낫다는 우울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이러한 흐름을 알코올 농도 0.05%로는 맞설 수 없다. 결국 술에서 깨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직시하는 상황만을 맞닥뜨릴 뿐이다. 이후는 자신의 온전함과 유일함을 성찰하고 존중할 시간을 가져야할 밖에. 자기를 더 많이 느끼고, 관찰하면서 자신과 더 가까워지려고, 즉 효율적이 아닌 창조적 존재로서 거듭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해도 괜찮다. 알코올로 몸을 마비시켜 즐거운 기분에 취해 있으려는 노력보다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쉼 없는 행동의 강요와 분주함을 일부러라도 의식해야 할 듯 하다. 자신만의 가치를 찾는 일이 자기 몸에서 멀어질수록 인간은 약해진다. 뿌리에서부터 힘을 응축해 줄기까지 찬찬히 뻗어가 때가 되면 저절로 터져나오는 꽃처럼, 매일 하루가 자신을 사랑할 이유에 대해 고요히 성찰할 수 있는 시간으로 꾸준히 응축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정말로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술 영화 보고 술 먹지 말라는 얘기를 써버린 나. ㅎ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에이드리언 리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수전 브라운밀러), 밤의 언어,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어슐러 르 귄),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정희진),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권정자 외), 작은 불씨는 어디에서나(실레스트 잉) 등 참조.
더 많은 코멘트를 보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