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독자 시점
전지적 독자 시점
2025 · 판타지 · 한국
1시간 57분 · 1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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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이상 연재된 소설이 완결된 날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되어 버리고, 유일한 독자였던 ‘김독자’가 소설의 주인공 ‘유중혁’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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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팟
0.5
소재는 탐나서 쓰고 싶고 정작 내용은 제멋대로 각색해서 원작 의도를 전혀 반영하지 않을 거라면, 도대체 왜 영화화 하는거지?
빡치고짜증나는작품만코멘트함
신과함께 같은 쓰레기 영화를 천만이 넘게 봐주니까 같은 감다뒤 제작자가 이딴 걸 또 만들어 오는 거 아님;
이동진 평론가
2.0
중반을 지나기도 전에 이야기와 액션 모두에 무감해진다.
☀️
2.0
하 진짜 기획제작 원동연 씨 각본감독 김병우 씨 정말 죽고 싶으신거죠? <신과 함께> 시리즈 같은 영화를 IP로, 유명 배우로, 멀티플렉스 독과점으로 밀어붙여서 천만 두편 찍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는 걸까? 이런 영화를 블록버스터랍시고 돈 내고 봐주는 건 영화 산업을 죽이는 일이다. 결국 그래서 이 사달이 난 거고. 사실 영화 자체로 놓고 보면 역대 최악의 한국 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근데 이 300억이 넘는 규모의 자본을 들여서, 이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욕심에 눈이 멀어 자기들 멋대로 쓰레기 같이 재창조하는 건 무슨 양심인가? 말이 <전지적 독자 시점>이지, <전지적 원동연/김병우 시점>이다. IP에 기대기 위해 배경과 인물 설정만을 가져왔을 뿐.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정말 이야기와 캐릭터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람들인가? 원작자와 원작 독자들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람들인가? 이런 사람들이 정녕 IP를 다루고 대한민국의 영화 산업을 이끄는 사람들이 맞는 건가? 이렇게 헤집어 놓을 것이라면 애당초 건들지를 말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이 방대한 이야기를 5부작의 영화로 적당히 압축시켜 제작할 수 있으리라 믿은 오만한 기획이 문제였다면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 실질적으로 이 영화가 가진 문제점들에 대해 내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보겠다. 영화와 소설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읽지 않기를 권한다. 첫번째 문제는 캐릭터에 관한 것이다. 제작자들 입맛에 맞게 원작의 캐릭터성을 훼손시키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창작했다는 것 역시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이것은 부차적이다. 더 우선시되어야할 문제점은 그렇게 바뀐 캐릭터성이 정교하지 못하고, 흥미롭지 못하며, 방대한 서사를 압축시켜 재구성하는 과정의 희생양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주인공 '김독자'에게서 그 문제를 가장 크게 체감할 수 있다. 원작 소설에서 '김독자'는 '멸살법'이라는 소설의 유일한 완독자다. (어딘가 어색해보이는 이 설정은 결말에 가서 모두 해소되니, 우선 지금은 넘어가자.) 즉, 그만이 오직 맞이한 세계의 멸망 과정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그 세계에서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 그것이 '김독자'의 핵심 특성이다. 이는 작중에서 '김독자'가 가진 '책갈피'와 '제4의 벽'을 통해 뒷받침 된다. '책갈피'는 '김독자'가 읽었던 '멸살법'의 등장인물을 '직접' 만나서 그들과 상호작용하며 그들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될 때, 그들이 가진 기술을 일부 사용할 수 있게 되는 특성이다. 또, '제4의 벽'은 소설의 '독자'라는 특성에 맞게, '멸살법'이 덧씌워진 '김독자'의 세계를 '김독자'가 독자의 위치에서 관조할 수 있게 하는 특성이다. '제4의 벽'을 통해, '김독자'는 이 절망적인 세계에서 한 발 물러서서 세상을 하나의 이야기로써 대할 수 있게 된다. 즉, 이는 그가 시나리오를 침착하게 분석하고 수행해나갈 수 있게 하는 설정이다. 또, 원래 원작에서는 한계가 있는 인간의 기억력을 보충하기 위해 원래 '멸살법' 작가인 'tls123'에게서 '멸살법'의 텍스트 파일을 전달받는다. 이를 읽어나가면서 '김독자'는 자신이 처한 회차는 '유중혁'의 몇 번째 회차인지, 앞으로의 시나리오들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하는지 등을 파악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텍스트에 없던 실제 '김독자'의 세상에서 살던 이들이 해당 세계로 편입되면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변주가 주된 내러티브로 활용된다. 그리고 그 차이를 알려주는 특성이 ‘책갈피(다시 말해 ‘멸살법‘을 되새겨 등장인물을 알려주는 책갈피)’이고. 이러한 것들을 기반으로 절대 해결 불가능해보이는 문제들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풀어나가는 쾌감, 이미 짜여진 거대한 '이야기'라는 틀에 저항하는 '김독자'를 통해 작가와 등장인물과 독자라는 세 존재의 상호작용에 대해 재사유할 기회, 그리고 그에 따른 자유의지 담론에 근거한 질문 등을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작품이 바로 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이다. 다시 말해, 소설에서의 '김독자'는 해당 이야기에 참여하는 등장인물이면서, 해당 이야기를 읽은 독자이기도 하며, 해당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은 작가이기도 하다는 것. (이 부분은 여기서 굳이 풀어 설명하진 않겠지만 결말에 가서 확실히 못박힌다.) 그런데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의 '김독자'는 전혀 다르다. 단지 '부조리한 세상 앞에 연대하여 저항하려는 소시민 김독자'라는 설정을 위해 위의 핵심 캐릭터성은 전부 삭제되었다. 영화 내의 '김독자'는 단순히 '멸살법'을 읽은 사람에 그친다. 소설의 완독자로서의 면모나 이점 등은 그냥 사라졌다. 독자로서의 특징을 뒷받침해주는 '책갈피'나 '제4의 벽' 같은 특성 따위는 개나 줘버린 듯 사라졌고, 그는 단지 원동연과 김병우가 어줍잖게 설정해놓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등장인물로 표현될 뿐이다. 심지어 5부작의 첫 작품이기에 전체 이야기의 초반부인데도, 벌써 '김독자'는 자신이 알던 시나리오와 다르다(이는 결말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설정인데 이걸 건드렸다는 점이 놀라웠다.)고 걱정한다. 여러가지 것들을 미리 알고 그것들을 약삭빠르고 기발하게 선점하면서 성장하는 재미를 주는 주인공 따위는 없고, 그저 두려워하고 어설피 행동하는 주인공만 남아있는 것. '유중혁'은 어떤가? '김독자'에게 감화되기 전 원작에서의 '유중혁'은 동료들을 도구로써 이용할지언정, 동료들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혼자 다니기만 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반복된 회귀로 인해 소시오패스 같은 면모를 가진 것은 맞지만, 이용할 사람들이 없다면 소시오패스가 다 무슨 소용인가? 일단 데리고 다녀야 이용하든 물고 빨든 할 것 아닌가. 분명 원작에서는 '이현성'을 '김독자'에게 '맡긴다'고 표현되는 대목이 있다. 원래는 자신이 데리고 다니면서 능력치를 향상시켜야 하지만, '김독자'의 비상한 면모를 보고 한 번 맡겨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동료를 '필요로 하는' 캐릭터다. 그런데 영화 속 '유중혁'은 그냥 대놓고 동료들이 필요 없다고 일갈한다. 분명 초반부 회차인 것 같은데(이것도 제대로 안 알려준 게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기 혼자 하는 게 낫다는 식으로 굴며 '김독자' 보고 대놓고 동료를 버리라고 말한다. 원작의 캐릭터성을 그저 '김독자'를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는 소시민'에서 벗어나도록 각성시키는 서사를 위해 부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모순적인 것은, '이지혜'는 또 원작에서처럼 자신의 제자로 들였다는 점이다. 우습지 않은가? 동료를 필요로하는 원작의 설정을 붕괴시켜 캐릭터를 만들었음에도, 또 그것에 충돌하는 '이지혜'라는 동료를 만들어두었다는 점이. 캐릭터에 대한 몰이해와 편의적 시나리오 진행을 위한 작위성이 만나 만들어낸 구멍으로 보인다. 말이 나온 김에 '이지혜'를 이야기해보자. '이지혜'는 이순신을 배후성으로 삼아 칼을 쓰는 인물이다. 근데 총? 이순신 장군이 조총도 아니고 거대한 저격총을 다뤘을리는 없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거대한 숨겨진 서사가 있길래 제작자들은 그녀를 총잡이로 만들었을까? 또, '정희원'은 원래 '멸살법'에서는 '김독자'를 만나지 못해 죽어 등장하지 못한 캐릭터다. 영화 속 '김독자' 역시 그전에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게 타당하다. 그 편의점은 딱히 중요한 공간도 아닌데, 영화 속 '김독자'는 마치 '정희원'을 알고 있다는 듯이 엄숙한 나레이션을 펼친다. 자신을 만나기 전에 꽃을 못 피우고 죽어버렸는데 자신을 만나 살아서 어쩌구 저쩌구. 그래, 뭐, 이 부분이야 그냥 넘어간다고 치자. 근데 '정희원'이 왜 강해진건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시피 하다. 그냥 '멸악의 심판자' 배후성으로 두고 있다는 한 줄로 퉁치고 넘어간다. 그 좋은 배후성을 어쩌다가 선택하게 되었는지, 언제 선택한 건지가 불명확하다. 그렇게 갑자기 그녀가 '천인호'를 쌍칼로 난자할 때(원작에서의 '정희원'은 검도부 출신이어서 검에 능숙하게 적응했다는 설정이 파괴된 것 정도는 무시해야한다.) 쯤 되면 관객으로서는 의문이 생긴다. '아니, 이렇게 잘 싸우는데, 편의점에서는 대체 왜 죽을 뻔...?' '이길영'이나 '이현성'은 그나마 무난히 각색되었지만, 현명하던 '유상아'는 그냥 왈가닥 애새끼가 되어버렸고, '천인호'는 선동가로서의 면모가 사라지고 괴물이 되어버렸다. 이런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쌓이고 쌓여서 영화 전체를 허술하게 보이게 만든다. - 두 번째는 세계관에 관한 문제다. 우선은 '성좌'에 대한 부분. 어떤 성좌들이 있는지, 그들이 어떻게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김독자' 일행 등과 상호작용하는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전지적 독자 시점>은 '성좌물'이다. 성좌들과 주인공의 소통과 그들 사이의 관계는 성좌물의 핵심이다. 이야기를 지켜보는 성좌들은 결국 그 작품이 감추고 있는 세계의 비밀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이를 등한시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특히나 <전지적 독자 시점>은 전지구적 신화와 한반도가 가진 독특한 신화를 성좌 개념과 엮어 흥미로운 판타지 세계관을 선보인다는 것이 또하나의 장점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정희원'을 선택한 '멸악의 심판자'가 성서에서 등장하는 대천사 '우리엘'이라는 것과 왜 그 '우리엘'이 '정희원'을 선택했는지에 관한 것도, '김독자'가 거절한 '긴고아의 죄수'가 화과산의 원숭이 '제천대성'이라는 것과 그로 인해 '제천대성'과 '김독자' 간에 생기는 독특한 유대 관계에 관한 것도, '김독자'가 거절한 또다른 성좌이면서 결말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으로 드러날 '은밀한 모략가'라는 성좌의 존재감도, '유상아'를 선택한 '버려진 미로의 연인'이 그리스 신화의 '아리아드네'라는 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정희원님의 배후성 멸악의 심판자가 스킬 발동에 동의합니다.' 한 문장으로 끝이다. '유상아'는 더하다. 무슨 배후성인지 나오지도 않고, 그냥 실을 뿜어댄다. 내가 대신 설명해주자면 '유상아'가 실을 뿜는 이유는, 그리스 신화의 '아리아드네'가 크레타의 미궁에 갇힌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주어서 그곳을 탈출시켰기 때문에, '아리아드네'의 능력이 실과 연관되었다는 설정이다. '불살의 왕' 특전은 또 왜 여기서 나오는 걸까? 불살의 왕 특전은 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나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왕의 길' 에피소드와 연결되어 있다. '왕의 길'은 그 이름에 맞게 여러 인간들이 세력을 이뤄 서울의 절대왕좌를 얻겠다는 욕망을 바탕으로 싸움을 벌이는 시나리오이다. 이 에피소드가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시나리오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신화와 서울이 가진 지리적, 역사적 특성이 메인 테마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김독자'가 동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사명대사 동상을 부수고 사명대사의 힘이 깃든 유물을 취하는 것이나, 계백을 배후성으로 둔 캐릭터와 김유신을 배후성으로 둔 캐릭터가 만나 황산벌 전투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나, 견훤과 궁예, 그리고 신라의 마지막 왕인 진성여왕을 배후성으로 둔 캐릭터들이 만나 후삼국 시대를 표방하는 것 등, 주인공 '김독자'가 이 역사와 신화의 현장을 흥미롭게 파헤치는 에피소드이다. 그 과정에서 '김독자'는 왕으로서 동족 100명을 구했고 그 보상으로 불살의 왕 특전을 얻게 되는 것. 즉,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실질적으로 '불살'을 했기 때문에 주어진 보상이다. 근데 영화 속에선 대체 왜 불살의 왕 특전이 주어져야만 했는지 납득이 안 간다. 단순히 화룡종을 처리해서? 그러면 불살의 왕 특전이면 안 되지 않는가. 오로지 '유중혁'의 회귀 특성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로 '유중혁'을 억지로 죽이고 다시 살리는 과정을 그럴 듯하게 만들기 위해, 특전이 가진 이름의 의미 따위는 무시하고 가져다 쓴 것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tls123'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면모도 상당히 불만스럽다. 영화에서는 'tls123'이 '김독자'의 거래소 거래를 성사시키고, 이는 '김독자'가 클라이맥스에서 위기를 탈출하는 계기가 된다. 원작의 결말에서 밝혀지는 부분인데, 'tls123'은 '한수영'이라는 캐릭터이다. 최종장의 1863회차의 벽을 넘은 '한수영'은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최초의 세계선으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학교 폭력을 당하여 투신한 뒤 가까스로 살아난 어린 시절의 '김독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김독자'가 괴로워하면서도 삶을 붙잡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를 떠올린 그녀는 '김독자'를 살리기 위해 한 가지 소설을 집필하여 김독자의 세계에 뿌렸고, 그것이 바로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멸살법)'이었던 것이다. 이 설정으로 인해 앞서 언급했던 '멸살법의 독자가 단 한 명이었던 것'이 설명된다. 'tls123'이 13년 동안 조회수가 1밖에 없던 소설을 연재했던 이유는 어차피 그 소설을 읽어야할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설정이 과하고 완급조절도 엉망에 묘사의 밀도가 들쑥날쑥했던 것은 한수영이 짧은 활동 가능 시간에 퇴고도 없이 휘갈겨 쓴 글이었기 때문이다. 독자가 보기에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서 쓸데없이 장황했던건 김독자가 시나리오를 클리어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설명을 욱여넣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집필을 마무리한 '한수영'은 능력이 다해 그 세계선에서 사라진다. 즉, 'tls123'은 어디까지나 '멸살법'을 집필한 존재이지,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나서 '김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진짜 신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 시점에서는 이미 '김독자'가 속한 세계선에서는 없어졌기 때문. 그런데 영화 속 'tls123'은 김독자에게 아이템을 주어 김독자를 구해준다. 아, '신'이라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식의 전개를 활용한 거라면, 정말,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이처럼 결말과 중요하게 엮여 있는 'tls123'이라는 캐릭터성을 이렇게 바꿔버렸으니, 마지막 마무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 심히 걱정되는 지경이다. 그 외에 자잘한 것들, 도깨비 '비형'이 너무 쉽게 '김독자'와 협력하는 것이나 '유중혁'의 회귀하면 기존 세계가 소멸한다는 식으로 설정이 바뀐 것, '유중혁'의 회귀가 너무나도 쉽게 이야기 속 시나리오 참가자들과 성좌들에게 오픈되었다는 것 등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이런 부분들은 아쉽긴 해도 각색하며 이야기를 압축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정도로 눈감아줄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던 부분들은 분명히 원작의 전개와 결말을 아는 입장에선 걱정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 나 역시 많은 팬들이 그랬듯,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 매우 뛰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방대한 양의 서사를 압축시켜서 시즌제 시리즈도 아닌 고작 다섯 편의 영화로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원작의 캐릭터성을 훼손시키고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위해 기존 이야기의 구성을 무자비하게 변형시키는, 그것도 재미가 있으면 말이라도 안하지만, 이런 식으로 어설프고 허접하게 구현된 이 영화에 대해서는 분노를 참기가 힘들다. 일반적으로 원작이 있는 작품들을 눈 뜨고 보기 힘든 퀄리티로 리메이크를 했을 때 기존 팬덤이 절망하고 분노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이런 저퀄리티의 리메이크작은, 팬들이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의 우수함을 대중들이 알아차릴 기회를 주지 않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작품을 폄하하게 한다. 팬덤은 그것이 가슴 아픈 것이다.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소설 <전독시>는 우수하지만, 영화 <전독시>는 별로군. 원작을 읽어서 이 감정을 만회해야겠다.'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냥 <전독시>은 별로 흥미롭지 못한, 어딘가 유치하고 어설픈 IP로 기억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속편을 내놓을 생각이라면 전부 다 폐기처분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저급한 이야기로 내놓는 것으로는 원작의 명예를 훼손하는 성과 밖에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원작 소설을 모르는 사람들이 어줍잖은 이 영화를 보고 <전지적 독자 시점>에 대해 어줍잖은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다. 그래, 마음이 아프다. 웹소설과 웹툰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킨, 전대미문의 흥행과 주목을 받아 웹소설의 위상을 스낵 컬쳐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한 작품을 이렇게 만듦으로써, 웹소설과 웹툰이 ‘애들 장난‘, ’유치한 작품‘, ’오타쿠들의 특이 취향‘에서 벗어나 날아오를 기회를 죽여놓았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장르 문학에서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판타지 장르가 새로이 대중에게 회자될 기회가 뭉개졌다는 것이 마음 아프고, 그중에서도 마이너한 장르로 여겨지는 게임판타지/퓨전판타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유치하고 저급한 것으로 고정시켜 버린 것이 너무나도 마음 아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마음 다해 공부했고 또 공부하고 있는, 열렬히 사랑하는 영화라는 대중 문화 업계가 이렇게까지 망가졌다는 것이 너무, 정말 너무 가슴 아프다.
credi Tan
0.5
블핑 지수가 출몰, 아니 출연했다는 것만으로 볼 가치가 없는 영화. 지수가 연기한 이지혜역은 이순신 장군을 배후성으로 둔 캐릭터인데, 칼을 버리고 볼트액션 저격소총을 들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원작 파괴. 칼 쓰는 연기가 훨씬 어려우니까 편법을 쓴 것 같은데, 너무 날로 먹으려는 것 아닌가. 블핑 버스는 그렇다쳐도, 버스 노선을 충무로까지 변경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황비홍의 무영각은 명함도 못 내밀 발연기로, 또 어떻게 공들여 쌓아올린 극의 서스펜스를 무너뜨리고, 주변상황과 전혀 동화될 수 없는, 마가 뜬 본인만의 세계관으로 관객들의 몰입감을 무참히 앗아갈지 자못 기대된다. 정말이지 3류 공포영화를 상영하는 미국의 허름한 변두리 극장에서, 산처럼 쌓아올린 팝콘을 던져가며 주인공이 어서 빨리 죽기만을 기다리는 관객이 된 기분이다.
창민
3.5
생존 앞의 여러 인간 군상과 각자도생에 대한 비판점이 클리셰처럼 그려진 아쉬움. 하지만 극장에서 자주 볼 수 없는 게임적 설정과 미션깨기형 전개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Dh
1.5
전체적으로 킹받는 시청각의 향연에 입장하셨습니다 #어중간이라도 갔다면 #메가박스
asfos
1.5
이렇게 재미없는 걸 보고있는 성좌들이 불쌍해질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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