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통역

전업 아르바이트생 지선은 유명 예술가 앨런 킴의 실험 모집 공고를 보고 면접을 본다. 앨런 킴과의 만남에서 오지랖이 넓고 남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한 지선은 면접에 최종 합격해 단절된 실험공간에서 실험자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맡게 된다. 한편 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는 시간 강사 인우는 교수 전임을 위해 유명 예술가 앨런 킴의 실험에 실험자로 참여한다. 2주간 격리된 공간에서 외부와 소통하는 방법은 오직 스무 단어로 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뿐인 이 실험은 인우에게는 이혼한 전 아내 수경을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인우와 지선은 첫 만남에서 수경에게 보낼 메시지를 함께 고민하게 되고, 지선은 상대방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배려하는 인우에게 관심을 가진다. 앨런 킴의 실험에는 인우를 포함한 총 세 명의 실험자가 있는데, 그중 종민은 혼자 딸 수아를 키우는 치킨집 사장이다. 실험의 목적엔 관심 없고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참여한 종민은 채식주의자여서 자신과 사이가 틀어진 수아에게 틱틱대는 무심한 아빠다. 처음 메시지를 보내는 날, 지선은 종민이 수아에게 보내는 메시지 속에서 서툰 종민의 애정표현을 조금씩 바꿔 수아에게 전달한다. 수아가 부드러운 종민의 말에 아빠에 대한 미움을 조금씩 누그러뜨리는 것을 보며 지선은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지선의 오지랖을 못마땅해하는 사람이 있다. 경원은 이 실험의 총괄 보안요원으로, 지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실험이 어떠한 외부의 방해 없이 무사히 잘 진행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무전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지선의 이상행동과 실험자들을 향한 관심에 경원은 점점 감시망을 좁힌다. 지선은 경원의 무서운 압박 속에서도 실험자들을, 특히 인우를 보살피려는 마음을 쉽게 접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지선은 마지막 참가자 금란의 메시지를 보고 감동을 받게 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금란은 실험 기간 내내 아무 메시지도, 음악도 듣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인생을 갈무리한다. 남길 메시지도, 메시지를 보낼 사람도 없는 금란을 위해 지선은 작가인 금란에게 시를 한 편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느냐고 제안한다. 금란의 시를 받아 지선은 인우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그 메시지에 감동한 인우는 수경에게 보낼 메시지를 조금씩 완성하고 이별의 상처도 극복한다. 지선은 금란의 남은 인생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실험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날, 금란은 지선에게 마지막 소원으로 한 남자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지선은 격리실 밖으로 나가 금란의 마지막 첫사랑이었던 노인의 집을 찾아간다. 실험이 거의 끝나가고, 인우는 드디어 수경에게 보낼 메시지를 완성한다. 지선은 수경을 찾아가 인우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우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수경이 기뻐하는 모습에 지선은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진다. 한편 격리실에선 수아가 불량배들에게 시비가 붙어 폭행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경원은 이 소식을 종민에게 정하고, 종민은 분노를 참을 수 없어 격리 실험을 중단한 채 수아에게 달려간다. 무뚝뚝하고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만 생각했던 아빠가 돌아오자 수아는 깜짝 놀란다. 아픈 수아를 간호해주던 지선은 두 사람의 재회에 마음이 놓인다. 종민에 이어 경원은 금란이 자신의 참가비용을 전부 대학생들에게 기부하겠다는 말을 듣자 이해할 수 없어한다. 원칙주의자 경원에겐 정해진 규칙에 순응하고 자신의 이득에만 집중하는 것만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험자들이 하나둘 자신의 방법을 찾아 격리실을 떠나자, 경원은 자신도 실험을 통해 변화했음을 느끼고 앨런킴의 프로젝트를 떠나겠다고 통보한다. 실험이 끝난 뒤, 앨런킴은 TV 교양 프로그램에 나와 이 모든 실험 과정을 이야기해주며 인생에서 한 걸음 물러나 객관적으로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전임 교수가 된 인우 역시 자신의 실험 참여 후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며 지나치게 자기 감정에만 쌓여있던 자신을 밖으로 끄집어내준 메신저 지선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강의가 끝나고, 인우와 지선은 서로의 손을 잡고 정답을 알 수 없는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