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자가 된 날
روزی که زن شدم
2000 · 드라마 · 이란
1시간 14분

첫 번째 이야기 어린 소녀는 아홉 번째 생일날 그녀는 이제 "여자"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남자 아이들과 놀아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두 번째 이야기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전거 경주에 참가하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 처음에 남편이 그리고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더 많은 마을 남자들이 그녀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는데... 마지막 이야기 상속받은 돈으로 이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노년의 여성을 보여준다. 이 자유를 누리고자 그녀가 선택하는 방법은? <내가 여자가 된 날>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펼쳐지는 다른 세대의 세 여성이 꿈꾸는 자유와 여성에게 가해지는 잔인한 제약에 관해 이야기한다. 감독은 메마른 대지와 검푸른 바다가 부딪히는 해안선을 담은 풍광을 대비시키면서 미니멀리즘과 초현실주의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영상을 통해 이란의 현실에서 여성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예리하게 되묻고 있다.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134340
4.0
가장 잔혹한 동화 아낌 없이 주는 나무는 친구라도 있었지..
Jay Oh
4.0
해안가를 따라 질주하면서라도, 지평선 너머를 꿈꾸며. A triptych on freedom (or rather, captivity). Their dream is beyond the waves.
JK
4.5
어느 나이대의 여성이든, 어떤 삶을 사는 여성이든, 어떤 것을 욕망하는 여성 이든, 너무나 견고하고 촘촘하게 작동하는 가부장제에 의해 많은 것을 제약 당한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바다로 향해 벗어남을 꿈꾼다.
오태영
4.0
이란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과정이 녹아내려있다.
블루엔젤
5.0
아트하우스모모 1관 이란영화제 1.85:1사이드마스킹(우측 한글자막, 하단 영어자막) DCP 2017 394th 극장관람 영화 이란에서 여성으로서의 삶 자유를 향한 세 여성의 고군분투기
Indigo Jay
4.0
스포일러가 있어요!!
메나르
3.0
한줄평: 여성을 넘어 한 명의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이란의 여성 감독 마르지예 메쉬키니의 감독 데뷔작인 <내가 여자가 된 날>은 이란에서 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는 세 여성의 하루 동안의 생활을 담은 단편 세 작품을 차례차례 보여준다. 사실 이 세 명의 여성은 같은 시공간에서 살아가고 있고, 마지막에는 세 인물이 직간접적으로 만나기 때문에 하나의 장편 영화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내가 이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이란의 여성 인권을 공부하면서부터였는데, 부끄럽지만 이란의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는 한 편도 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이 작품이 재상영된다길래 극장에서 직접 보게 되었다. 참고로 보통 이란 영화는 감독이 각본까지 맡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자막에서 각본을 이란 영화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담당했다고 나오길래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두 명이 부부였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갓 9살이 된 꼬마 소녀 하버. 하버는 자신의 집을 찾아온 그녀의 친구 하산과 밖에 나가 놀고 싶어하지만 그녀의 엄마와 할머니는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며 남자와의 외출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9세가 된 아이한테 왜 성인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분을 위해 사족을 붙이자면, 이전까지만 해도 만 18세였던 이란의 성인에 대한 법적 기준은 혁명 후 이슬람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성은 15세, 여성은 무려 9세로 대폭 낮아지게 되었다. 즉, 하버는 문자 그대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법적 성인이 된 것이다. 영화의 제목과 연관지어 볼 때, 하버는 불과 9살의 나이에 '여자가 된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란이 법적으로 남녀유별을 종교라는 미명 하에 강력하게 규제하는 국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머니와 할머니가 하버의 외출을 막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국 하버가 끈질기게 조르자 할머니는 '하버가 낮 12시에 태어났으므로 12시까지는 법적 성인이 아니다'라는 신박한 논리를 들며 12시에 집으로 돌아온다는 조건으로 그녀의 외출을 허락한다. 바닥에 막대기를 꽂고 그림자가 점점 짧아지다가 아예 없어지게 되면 얄짤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약속 장소에 친구 하산은 나타나지 않고, 초조해하며 그의 집까지 찾아가자 하하산은 숙제를 하기 전까지는 집에 나가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림자와 숙제가 이들의 일상적인 욕망을 가로막는 것이다. 이러한 하버의 이야기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란의 차일드 시네마의 전형적인 특징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흔히 아이들이 가질 법한, 어른들의 눈으로 볼 때는 귀엽기만 한 문제 상황을 아이들은 해결하려고 하지만, 숙제로 위시되는 어른들의 방해로 아이들이 그들의 욕망을 충족하는 것은 힘들기만 하다. 결국 하버는 그를 기다리기 위해 근처 바닷가를 혼자 이리저리 거닐게 되고, 그곳에서 우연히 조각배를 만들어 배놀이를 하려는 남자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때마침 남자 아이들은 배를 완성하기 위해 돛의 역할을 해 줄 천이 필요하였고, 하버는 엄마가 강제로 입힌 차도르를 조그마한 장난감과 바꾸게 된다. 이란 사회에서 법으로 명시할만큼 이란의 여성하게 강력하게 부과하는, 엄청난 종교적 상징인 차도르가 아이들에게는 그저 배놀이를 위해 필요한 천쪼가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되어 버리는 부분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후 하산과 하버가 서로 입 대고 쪽쪽 빨던 사탕을 아무렇지 않게 나눠먹는 장면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대조적으로 아이들에게까지 종교적 권위를 행사하는 이란 정부와 사회를 은연중에 꼬집는다. 대체 누가 이 순진한 아이들에게 베일을 씌운단 말인가. 하버는 진정으로 여자가 된 날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을까.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갓 9살이 된 꼬마 소녀 하버. 하버는 자신의 집을 찾아온 그녀의 친구 하산과 밖에 나가 놀고 싶어하지만 그녀의 엄마와 할머니는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며 남자와의 외출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9세가 된 아이한테 왜 성인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분을 위해 사족을 붙이자면, 이전까지만 해도 만 18세였던 이란의 성인에 대한 법적 기준은 혁명 후 이슬람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성은 15세, 여성은 무려 9세로 대폭 낮아지게 되었다. 즉, 하버는 문자 그대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법적 성인이 된 것이다. 영화의 제목과 연관지어 볼 때, 하버는 불과 9살의 나이에 '여자가 된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란이 법적으로 남녀유별을 종교라는 미명 하에 강력하게 규제하는 국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머니와 할머니가 하버의 외출을 막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국 하버가 끈질기게 조르자 할머니는 '하버가 낮 12시에 태어났으므로 12시까지는 법적 성인이 아니다'라는 신박한 논리를 들며 12시에 집으로 돌아온다는 조건으로 그녀의 외출을 허락한다. 바닥에 막대기를 꽂고 그림자가 점점 짧아지다가 아예 없어지게 되면 얄짤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약속 장소에 친구 하산은 나타나지 않고, 초조해하며 그의 집까지 찾아가자 하하산은 숙제를 하기 전까지는 집에 나가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림자와 숙제가 이들의 일상적인 욕망을 가로막는 것이다. 이러한 하버의 이야기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란의 차일드 시네마의 전형적인 특징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흔히 아이들이 가질 법한, 어른들의 눈으로 볼 때는 귀엽기만 한 문제 상황을 아이들은 해결하려고 하지만, 숙제로 위시되는 어른들의 방해로 아이들이 그들의 욕망을 충족하는 것은 힘들기만 하다. 결국 하버는 그를 기다리기 위해 근처 바닷가를 혼자 이리저리 거닐게 되고, 그곳에서 우연히 조각배를 만들어 배놀이를 하려는 남자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때마침 남자 아이들은 배를 완성하기 위해 돛의 역할을 해 줄 천이 필요하였고, 하버는 엄마가 강제로 입힌 차도르를 조그마한 장난감과 바꾸게 된다. 이란 사회에서 법으로 명시할만큼 이란의 여성하게 강력하게 부과하는, 엄청난 종교적 상징인 차도르가 아이들에게는 그저 배놀이를 위해 필요한 천쪼가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되어 버리는 부분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후 하산과 하버가 서로 입 대고 쪽쪽 빨던 사탕을 아무렇지 않게 나눠먹는 장면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대조적으로 아이들에게까지 종교적 권위를 행사하는 이란 정부와 사회를 은연중에 꼬집는다. 대체 누가 이 순진한 아이들에게 베일을 씌운단 말인가. 하버는 진정으로 여자가 된 날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을까.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후라라는 이름의 할머니다. 남편이 죽자 상속받은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후라는 백화점에 가 평소에 자신이 그토록 갖고 싶었던 립스틱 같은 화장품부터 웨딩드레스, 냉장고, 소파, 침대 등을 전부 구입한다. 우리에게는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그녀에게는 죽기 직전 이루고자 한 평생의 꿈이었던 것이다. 후라는 자신이 구입할 품목을 상징하는 천들을 손에 묶어 살 때마다 천을 하나씩 풀어버린다. 그런데 쇼핑을 끝내고 보니 손가락에는 하나의 천조각이 남아 있었고, 후라는 자신이 빼먹은 물품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이제껏 쇼핑한 모든 것을 해변에 풀어버린다. 끝내 그녀는 남은 하나의 정체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향해 뗏목을 타고 섬을 떠난다. 후라의 이야기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하버와 아후와는 달리 그녀의 결정을 방해하는 어떤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 비록 말년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당당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결국 이루어내고야 만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여성들은 모두 "집"이라는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하버는 집에서 나와 친구와 밖에서 놀고 싶어하며, 아후는 집으로 돌아오라는 가족들의 요구를 뿌리치고 자전거 경주를 계속하고 싶어하며, 후라는 수십 년 간 집에서 살림을 하다가 남편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집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감독 마르지예 메쉬키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란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태도는 너무나 감정적이다. 여성은 오직 어머니나 정부로만 대변되며, 이는 모든 이란 남성이 '그의 엄마'라든지 '그의 정부' 등 여성에 대해 독점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된다. 그 결과 집이라는 공간은 이란 여성이 이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된다." 여성 탄압이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인 집으로 상징되는 메타포는 그만큼 이란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의 메시지는 영화가 촬영된 장소에서 극대화된다. 후라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이란 남쪽 페르시아 만에 위치한 키쉬(Kish) 섬의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했다. 키쉬 섬은 이란인들에게 휴양지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제주도 같은 섬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키쉬 섬은 이란에서 가장 개방적인 도시로 꼽힌다. 외국인들도 비자 없이 체류가 가능하며, 섬 전체에는 면세점이 가득찬 호화 백화점이 즐비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해변에서 휴양을 즐기는, 평소 우리가 이란 하면 떠올리는 폐쇄적인 이미지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곳이다. 이런 곳을 배경으로 이란 여성의 사회적 차별을 그린 것은 바꿔 말해 "키쉬 섬도 이 지경인데 하물며 다른 이란 지역은 어떻겠어?"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어린 소녀에서 젊은 여성, 그리고 노년 여성의 이야기를 차례로 담고 있는 영화 구조는 마치 한 이란 여성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그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버와 아후의 이야기에서는 여성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고통과 절망이 표출되지만, 마지막 후라의 이야기를 통해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후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바다 너머 어딘가로 향하는 후라는 진정으로 자신의 자유를 이룩한, 진정한 여성이 된 인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후라가 백화점에서 구입한 물건들은 대부분 가재도구들이다. 후라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자신의 짐을 날라주는 어린 꼬마아이들을 볼 때마다 자신의 아들이 되라고 말하는 것도 그녀에게는 자식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가 백화점에서 끝내 구입하지 못한 것도 '자식', 즉 어머니라는 사회적 위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나는 후라가 이란 여성들의 향후 밝은 미래를 암시하고만 있을 뿐, 그녀 자체가 진정한 여성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영화 제목에서 보여주는 "여성이 되었다"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이전까지는 이들이 여성이 아니라는 말인가? <내가 여자가 된 날>은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한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이란 여성들은 그들이 진정한 여성이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남성과 동등한 한 명의 인간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이다. 얼마 전에 테헤란의 한 거리에서 이란 여성들이 히잡을 벗는 사회 운동을 진행하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처럼 수많은 이란의 아후들은 사회로부터 여성을 넘어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Ordet
4.5
여성의 자유와 억압에 관한 아름답고 슬픈 영상시. 두번째 에피소드에서의 자전거의 운동이 자아내는 영화적 쾌감이 압권이다. 가히 퓨어 시네마라고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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