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아워
ハッピーアワー
2015 · 드라마 · 일본
5시간 28분 · 15세

![[내부] 구독권 할인 프로모션 보드배너_3차](https://an2-img.amz.wtchn.net/image/v2/3O-dFqcg8jb_tNrLh9idmw.pn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0lqb2lMM1l5TDNOMGIzSmxMM0J5YjIxdmRHbHZiaTh4TXpBd05qSTVORGcwTVRBeE1EWTJJbjAuelRRQzQzcldySkhMUWkxeW1DdGh0V0g3aElpRnJDODFDcUZRdHNyUHN1aw==)
![[내부] 구독권 할인 프로모션 보드배너_3차](https://an2-img.amz.wtchn.net/image/v2/dJifk6CQ_JkYfQSaPz2meg.pn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0lqb2lMM1l5TDNOMGIzSmxMM0J5YjIxdmRHbHZiaTh4TVRJMk1ERXdNVEU0TmpnME1Ea3dJbjAub3JCREJoN2RoZkRhSUNMeGtpcVk4eTBraFFPbzk4cy01S00wLXBuVEdrOA==)
30대 후반에 접어든 네 명의 친구 아카리, 사쿠라코, 준, 후미. 모든 것을 공유하며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말할 수 없는 고민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준은 이혼 소송 중이라는 폭탄선언을 하고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그러면서 이들은 “진짜 행복이란 게 무엇인지” 자신을 솔직히 들여다보며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4O% 할인 곧 끝나요!
연간 구독권 할인 놓치지마세요.
WATCHA · AD
4O% 할인 곧 끝나요!
연간 구독권 할인 놓치지마세요.
WATCHA · AD
감상 가능한 곳
본 정보의 최신성을 보증하지 않으므로 정확한 정보는 해당 플랫폼에서 확인해 주세요.
출연/제작
코멘트
1000+갤러리
동영상
삽입곡 정보

Fibonacci Forest


정환
4.5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생각했던 우리가 틀렸던 이유는, 우리 사이 오갔던 수많은 대화들은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아픔과 희미하게나마 느껴졌던 간극마저 무시한 채로 서로를 연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시선은 무너진 우리의 폐허를 응시해야만 했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시간을 재건해야 한다. . 저 아래선 그렇게 환할 수 없었으나, 위로 올라오니 안개만 잔뜩 낀 풍경이 반기고 있었다. 어느덧 우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안개를 바라보며 스스로의 미래를 연상시킬 나이가 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늘 행복했던 것도 아니었고, 늘 우울했던 것도 아니었던 나날들이었다. 가까이서 본다면 내겐 크나큰 파동과 같은 순간들도 시간 저 너머로 마주하니 한낱 지평선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반대로 잔잔한 줄만 알았던 내게도 큰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를 억지로 간과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시간들을 어떤 사람으로 견뎌왔나. 내가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를 제대로 생각해 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했었다. 무게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중심을 잃어버릴 때가 있던 것처럼, 우리의 호흡을 비롯한 내 삶의 중심을 그동안 우린 잊고 살았기에 조금씩 흔들리며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린 그것을 기어코 되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소통을 하며 우리와 소통하는 이들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을 안갯 속의 풍경에서 각자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되풀이되는 고집에도 우리의 삶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끝내 중심을 잡지 못했었다. 우연이라 믿고픈 나날들의 진상을 따라가면 그 시작엔 자의에 의한 선택이 있었으니, 스스로 이를 필연이라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의 향연이었다. 빌어먹을 우연의 연속뿐이라면 이보다 불우할 수 없을 기구한 내 운명임을 받아들이거나, 어떠한 생각들로 돌이켜봐도 내가 내린 선택에 의한 결정값 이외에 더 좋은 결과를 마주칠 수 없음을 알게 된 나의 삶은 피할 수 없었던 필연들로 가득 찼음마저 내가 선택해야 할 몫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던 우리에게, 더 이상 알 것도 모를 것도 없어 보였던 우리 사이에 잠자코 있던 비밀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우리에게 있었던 문제는 소통이었음을 인식했어야 했다. 서로를 마주 보았던 눈동자들 속과 나누었던 이야기들 속에 담긴 우리의 시간들을 알아채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우리 사이에 벌어진 공간을 뒤늦게라도 인지한다면, 서로가 너무도 다른 우리들이 지금까지 잘 지내왔다고 믿는 것도, 서로를 향한 이해와 공감에 있었다는 근거는 터무니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서로를 그렇게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어째서 우린 서로의 중심에서도 멀어지고만 있는 것일까. 모두가 다 다른 세상에서 행복해지고 싶었던 우리의 시선이 타인을 향한 것은 나름의 배려랍시고 믿었던 터였다. 모두가 다른 우리가 서로를 위해 맞춰갔던 것이었지만, 그 사이에 우리는 나라는 개별성을 잃어버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때로는 여유로웠고 때로는 숨 가빴던 기나긴 내 삶의 온전한 호흡을 제대로 응시하지도 못한 채, 나의 행복을 다른 누군가와의 무너진 관계들로 복구하려 노력했었다. 나의 무너진 풍경들이 남에게 드러내기 부끄럽다 하여 숨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고, 이미 보았음에도 무시한 채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무게 중심을, 나의 행복을 찾고 싶은 우리들은 지나친 우리의 숨 가쁜 호흡들을 놓치고선 삶의 중심을 찾을 순 없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생각했던 우리가 틀렸던 이유는, 우리 사이 오갔던 수많은 대화들은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아픔과 희미하게나마 느껴졌던 간극마저 무시한 채로 서로를 연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시선은 무너진 우리의 폐허를 응시해야만 했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시간을 재건해야 한다. 가장 소중한 것들을 순식간에 앗아가는 세상이다. 더욱이 끔찍한 것은 이를 우연이라고도 믿고 싶어도, 그 시작엔 항상 내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한 사랑을 한다는 것, 무리임을 알면서도 잡으려고 애를 쓰는 것, 부끄러운 아픔인 줄 알면서도 드러내는 것. 우리에겐 그런 용기가 필요했다. 여기서 진정한 사랑은 비단 아름다운 것들뿐만 아니라, 무너진 너의 폐허와 벌어진 우리의 간극들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고서 이를 긍정할 줄 아는 것이었다. 영화의 시작은 밝은 곳에서 어두운 터널로의 진입이 아닌 결국 어두운 터널에서 밝은 곳으로의 진출이었다. 그들과, 영화와 이들을 보는 우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의 풍경에서 넓게 트인 바다가 보이는 곳을 향해 시선을 옮겨본다. 어쩌면 우리는 소통보다도 이 여행을 함께할 동행이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소통은 더 이상 서로의 시선을 바라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본래의 우리 모습 그대로를 잃지 않고서 차라리 같은 곳을 바라보아야 되지 않겠냐며.
양기연
4.5
영화에는 소위 '아티스트'라 불릴 만한 인물이 두 명 등장한다. 워크숍 강사인 우카이와 소설가 코즈에가 그들인데 영화는 그들의 '퍼포먼스'를 꽤 오랜 시간 동안 보여주며 극중 인물들이 그 퍼포먼스에 보이는 다각적인 리액션들에도 집중하려 한다. 나는 그 두 명의 아티스트와 그들의 퍼포먼스가 극중 인물들을 대하는 이 영화의 태도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 우카이는 상대방과 마주하여 조금씩 움직여 가며 서로간의 '중심'을 찾도록 유도하며 이를 점점 다수에게로 늘려가도록 한다. 수많은 대화들로 구성된 이 영화가 계속해서 구도를 바꾸어 가며 숏과 역숏을 이어붙이다 이따금 특정 인물의 가장 내밀한 속내가 드러날 때 그 맞은편의 인물을 대신해 그 특정 인물과 눈을 맞추기까지의 과정은 그러한 우카이의 퍼포먼스를 닮아 있다. 한 편, 코즈에는 자신의 소설이 1인칭 화자를 취하는 순간에도 그 화자가 곧 작가라고 할 순 없으며 작가는 그 극중 어느 인물에라도 이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렇게 특정 인물과 눈을 맞추기 위해 그 어떤 인물의 시선도 대신할 수 있으면서도 자신이 시선을 빌린 그 인물과조차도 동일해질 수는 없는 카메라의 입장과 비슷하다. . 우카이의 퍼포먼스에서 참여자들은 우선 자신의 중심을 찾고, 마주하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중심을 찾아야 한다. 일대일 관계 하에서 중심을 잡더라도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순간, 혹은 사람 수가 늘어나는 순간, 그 중심을 잃게 되곤 한다. 극중 인물들은 그 퍼포먼스에서처럼 자신의 중심을 찾듯 비로소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순간들을 마주하지만, 여러 인물들 간의 그물망 속에서 자신에 대한 솔직함마저 종종 황망해지는가 하면 서로가 서로의 진심에 귀기울이며 서로에게 진심으로 의지하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카이는 이 모든 것들을 꿰뚫어 보고 부러 그들의 속내를 까뒤집어 어떤 파국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상 그 역시 동생으로부터 속이 텅 빈 인간이란 말을 듣는, 제 자신에 대해 솔직할 수 없는 또 한 명의 사람에 불과하다. 코즈에 역시도 자신이 화자로 삼은 극중 인물이 가지는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 스스로 꽤 확신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의 글은 낭독회의 청자로부터 누군가를 진정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무언갈 깨달은 듯 자신의 감정을 처음으로 입밖에 내게 된다. . 극중 인물들과 눈을 맞춰가며 그들의 속내를 가차없이 까보일 수 있을 듯하던, 그들의 감정의 곡절들에 정통할 것만 같던 이 카메라도 끝내 어느 지점에서부턴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들과 눈을 맞추어도, 혹은 누군가의 시선을 대신하더라도 카메라는 그들이 될 수 없다. 쥰이 어디로 갔는지 카메라도 결국엔 알 수 없다. 사쿠라코와 요시히코의 관계가 어디로 향할지 카메라도 결국엔 알 수 없다. 타쿠야에게 닥친 어떤 우연과 그 뒤의 가능성에 대해선 카메라도 후미만큼이나 무지하다. 아카리가 느낀 해방감의 순간에도, 그가 후배 간호사에게 위로를 느낀 순간에도 카메라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나, 끝내 카메라에게 허락되는 영역은 아카리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는 딱 그만큼의 자리일 뿐이다.
Jay Oh
4.0
제목은 행복을 말하지만 영화는 불행을 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요. Shifting centers of (un)happiness. (끄적끄적) 누가 불행하고 싶어서 그 지경까지 갔겠어요. 행복하려고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인 제각각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같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25년동안 봐 온 친구들조차 알고 보면 서로를 그리 잘 몰랐던 걸 수도 있는데, 고작 5시간동안 보고 저 캐릭터들에 대해 뭘 안다고 저는 이렇게 얘기하는 걸까요. 오래 봐왔다고 이해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오만일지 모르지만, 이해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하는 지점들도 있을 것입니다. 각자 생각하는대로 살아가는 것 외의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쉬운 답이 없다는 걸 인정한 뒤에도 각자 생각하는 방향도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불행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 영화에서 보았듯이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도 어찌 보면 이상해보일 수 있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불행에 불구하고도 모두 계속해 나아가려는 모습, 그 자체가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세상/타인과 내 자신, 그 간극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예술은 위로를 건네줍니다. 뭔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그 느낌. 만든 사람과 보는 사람의 시선이 뒤섞이면서 거기서 일시적인 행복이나 행복을 위한 실마리를 찾기도 합니다. 영화 내에서는 워크숍 장면과 낭독 장면을 통해 예술을 말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같은 경험을 두고 모두가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보면서 그 다름을 체험하기도 하는데, 이가 행복을 찾는데에 있어 차지하는 역할 또한 감독이 탐구해보려 한 듯했습니다. <해피 아워>를 본 지금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제가 어떻게 행복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계속해 바뀌고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는 행복의 무게중심을 찾는 것을 멈추지는 않으려고요. 아직은.
STONE
4.5
인생이란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만을 써낸 소설과도 같은 것. '아무도 나쁘지 않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상처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그곳에 있다.
황재윤
4.5
고작 328분만으론 행복의 무게 중심을 찾기엔 한없이 모자라다.
Cinephile
4.0
인간관계는 나와 타인이 외줄에 함께 올라가 서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기에, 그 외줄 위에서 나만의 무게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착각은 언젠가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소악마의 짓궂은 악의로 그 줄을 흔들며 일상을 연약하게 지탱하는 선의를 희롱한다.
JE
4.5
"남을 배려한다고 내 몸을 너무 작게 잡으면 자신이 중심을 잃고 넘어질 수 있어요." 내 몸의 크기는 어느 정도였을까 싶어 바다처럼 쓸쓸해졌다. 타자는 대체 누구인지, 나는 어때야 하는지, 행복은 무엇인지, 이해와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제법 유구한 고민이지만서도 별 수 없이 쓰린 마음으로 더듬게 된다. 긴 러닝 타임이 무색할 정도로 흡인력 있게 호흡을 이끄는 <해피 아워>는 터널 너머의 작은 풍경으로 향하는 오프닝의 모노레일처럼 어느 관계의 소실점을 향해 유유히 다가선다. <열정>의 확장판 또는 <큐어>의 멜로 버전처럼도 보이는 <해피 아워>가 말하는 삶과 관계는 여전히 위태롭고 아슬아슬하다. 평온해 보이면서도 살얼음판 같은 균열 위에 놓여 있다. 사라진 친구처럼, 부러진 한 쪽 다리처럼, 이혼하려다가 혼수상태가 된 남편처럼, 기우뚱한 삶의 무게중심에 기대어 꿋꿋이 버틸 뿐이다. 사소하게 어긋나는 관계 안에 점차 스며드는 다층적인 감정의 결도 놀랍지만, 마치 <큐어>적인 캐릭터들이 불현듯 댕기는 내면과 타자라는 심연도 꽤 저릿하다. 일견 노세의 소설처럼 순간을 스쳐 보내는 기나긴 시퀀스들 속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인식인 듯하면서도, 상상선을 넘나들고 오즈 같은 정면 숏이나 과잉된 O.S 등 부지런한 카메라와 편집이 매순간을 붙들며 우카이의 워크숍마냥 미묘하고 생경한 감각을 아로새긴다. 이따금 캐릭터의 얼굴마저 지워버리는 극단적인 역광이나, 풍성한 협주였다가 처연한 피아노 솔로였다가 하는 음악까지. 조곤조곤한 대사 장면의 연속 가운데 외려 풍요로운 연출이 돋보인다.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한지 알았다"던 의미심장하면서 서늘하기도 한 준의 남편 코헤이의 대사에 적확한 타이밍으로 끼어드는 전철 소음과 속도감 있게 지나치는 그 전철의 모습은 우연일까, 의도된 연출이었을까.
남연우
4.0
끝나지 않을 불행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진정한 행복의 무게중심을 찾으려 발버둥 치지만, 지나간 시간 속 아픔을 붙잡지 않고 그저 서로를 연결하려고만 하는 행위들은 안타깝지만 끝내 인간관계의 파국으로 이어지고 만다.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우리가 보지 못하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속 깊이 자리한 수많은 것들. 이미 서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침묵해 온 순간들이 원인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이해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행복을 찾아 나갈 테니 서로를 위해서, 또는 나만을 위해서라도 입을 열고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생각이 들기에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맴도는 이 안타까운 감정이 마음을 더욱 아프도록 조여온다.
더 많은 코멘트를 보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