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키드 런치
Naked Lunch
1991 · 드라마/미스터리/판타지/SF · 캐나다, 영국, 일본
1시간 55분 · 청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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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에 중독된 해충 방역사 ‘윌리엄 리’와 그의 아내 ‘조앤’.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는 실수로 아내에게 총을 겨누고 미스터리한 세계 ‘인터존’으로 도피한다. 거대한 벌레, 살아 움직이는 타자기, 지네로 변한 인간, 죽은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성. ‘인터 존’에서 기괴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 중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 모두를 놀라게 할 만한 글을 쓰고 있는데… 그는 악몽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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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나
3.5
'세상의 사기꾼들아. 너희가 속일 수 없는 단 한가지가 있다. 바로 내면의 본성이다.'
모까모까
5.0
벌레 = 창작욕 / 오프닝에서 노란 가루(자극 쾌락)를 뿌리면 기어나옴 . 타자기 =창작의 매개 . 벌레 타자기 = 자극을 받으면 느끼면서 보고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자극/쾌락(글쓰기)을 주면 오르가즘(보고서/작품)을 느낌. . 벌레 타자기는 양자가 공존불가(한쪽을 잡아먹음) 즉, 극도로 타인의 간섭을 꺼림. 윌리엄이 검은 가루를 처먹으면서 몸 상태가 안좋아지는 것과 타인을 거친 벌레 타자기가 죽는 것도 같은 이유. . 머드윔포 = 타인을 거친 타자기, 자극(창작)을 받으면 사정함. 쾌락을 통한 결과물로 볼 수 있음. 섹스에 비유한 것이고 정상적인 관계로도 볼수 있음? . 이걸로 노란 가루(마약)의 부작용이 창작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알수 있음. 조앤과 윌리엄이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쾌락(정상적인 창작욕)을 못느끼고 사정(작품)을 못하는 것을 암시. . 의사는 머드윔포를 양식함.(이 과정에서 다시 한번 섹스처럼 은유) 그리고 동업을 제안하는데, 윌리엄은 도망침. . 검문소에서 윌리엄이 조앤을 다시 한번 쏘는 것은 쾌락이 아니라 업무적으로 다가왔기 때문. 창작욕이 없기에 작품을 쓸수 없고 그 때문에 조앤이 죽는 전개가 이루어짐. 이는 엔딩의 의사로부터 도망친것과 겹치며, 오프닝에서 조앤을 쏘는 것도 마찬가지. 왜냐면 노란 가루(쾌락)로 살충 구제원(일)을 하니 작품이 나올수 없음. . 여기서 윌리엄에게 조앤은 작품에 영감을 주는 존재로 볼 수 있음. 그녀를 찾아갔을때 성애를 나누면서 작품을 미친듯이 써가는것으로 볼수 있다. 윌리엄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관계. . 동성애 코드가 나오는 것은 이상적인 쾌락과 다른 방식을 인체에서 찾아야했기 때문. 가루는 인위적인 쾌락이고 다른 방법이기에 인체에서 다른 쾌락을 찾는 대안으로 쓰인 것. 그것 때문에 항문을 그린 미쟝센을 적극적으로 다룬 것. . 인위적인 자극으로 몸을 망친다 위에 언급했는데, 이는 키키가 안좋은 꼴 당한 것과 조앤을 포함한 레즈비언을 따라간 사람들이 노예 취급 당하는 것도 동일 선상. . 머드윔포는 양식 당하는데, 이 과정에서 윌리엄을 의사가 탐내는 이유는 규모는 큰데 아웃풋이 따라주지 않기때문임. 그 이유로 머드윔포에게 펠라치오하는 사람들 중 정상적인 인물이 안보임. . 종합하면, 원작가나 감독이 말하고 싶은건 창작=쾌락=고통을 동일 선상에 두는 것뿐만 아니라, 창작욕이 있는데도 아웃풋이 따라주지 않는 고통을 말하고, 이를 인위적으로 채워도 의미없음다는 것까지 말하고 싶은 것. 즉, 윌리엄이 대안으로 노란가루(쾌락)의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본질적으로는 윌리엄 템(?) 게임이다. 게임이 작품 인건데 노란 가루로 인위적으로 채웠으니 그 게임 자체가 망가져버리는 것. 의사가 검은 가루에서 머드윔포 양식을 택한 것도 동일선상이 있음. 즉, 창작의 고통 뿐만 아니라, 예술을 공정화하는게 얼마나 의미없는 일인지도 말하고 싶은 것 같음. . Ps. 쓰고 싶은 건 많은데, 글로 쓰기는 너무 싫다. 글쓰다가 스스로에게 자괴감 느끼게 만드는 영화. 이걸 정리해서 쓰면 돌아올수 없는 선을 넘을 것만 같아. 무엇보다 진짜 잘 만든 영화인데, 다른 사람한테 추천을 못하겠다... ㅜㅜ
창민
3.0
기발한데 기괴하고 뻔치 않은데 FUN하지 않고 뭐지? 싶은데 독보적이다!
다솜땅
3.5
은유와 비유가 난무하는 버로우즈의 삶들이 가득 묻어나는 영상들이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마약과 섹스, 동성애들을 환각세상의 어떤것들로 표현한건데.... 징그럽기 짝이없다. ㅎ 다리 많이 달린것들 싫어하는데... 지네도 나오네 ㅠㅠ 후회와 중독들을 미화시켜 영상에 넣었지만... 후회로 가득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크로넨버그 감독이 그걸 대신 표현해준 듯 하다. #20.1.25 (183)
P1
3.0
추잡스럽고 평범하지 않은 영화 1타 강사 데이빗 크로넨햄버그 센세.. 근데 그닥 노잼 따분하지 않은 상상력인데 이상하게 따분하네..
Dh
4.0
창작-쾌락-고통의 트라이앵글 #스멀스멀 #수렁 #CGV
조규식
4.5
창작자의 지옥 같은 머릿속 탐구 리포트(특히, 글이라는 걸 써보겠다는 불쌍한 애송이들에게 부치는). 글이란 걸(픽션이건 논픽션이건) 제대로 써보겠다고 컴퓨터 자판기 앞이든 종이 앞이든 타자기 앞이든 앉아서 몇날며칠을 보내야 하는 지옥 같은 경험을 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진 모르겠다. 이는 지독한 스트레스로 그대로 돌아오는데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든다. 나 같은 경우는 끔찍한 불면증이 와서 알코올로 뇌의 셔터를 강제로 내리지 않으면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글은 안 써지고 검사는 받아야 하고 써놓은 것 꼬라지도 개판 엉망진창인데 날은 밝아오고 아침엔 다시 나가야 하고,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크로넨버그의 네이키드 런치는 난해하다는 악명이 자자하지만, 사실 겪어본 사람 눈에는 불필요하게 친절하다. 윌리엄 S. 버로우스의 원작은 두 번 읽었음에도 단 한 문장도 제대로 이해를 못 했지만(번역본인 것이 문제였을까? 아닐 것 같다.), 크로넨버그의 영화는 전혀 그러하지 않다. 물론 작품 내에서 파편화되고 원형에선 한없이 멀어진 형상의 상징들이 쏟아지는데, 이를 난해하지 않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그리고 이 난해함을 풀기 위해 상징들을 본래의 대상(으로 추정되는 것)에 일대일 대응시키고 싶은 욕구도 마구마구 생겨날 테다. 뭐, 이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크로넨버그가 아주 바라던 방향은 아닐 것이다. 아마 그는 창작의 고통에서 오는 지옥 같은 황홀경을 더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머릿속이 찢어지는 것 같아 고통을 잊기 위해 중독성 물질에 쩔어버려 만신창이가 된 육신을 끌고서 어떻게든 사건의 마침표를 마침내 찍는 바로 그 행위.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자체로 중독적이다. 탐정(혹은 형사, 혹은 영화 네이키드 런치의 주인공인 윌리엄 리)이 여기저기서 던져지는 사소한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으는 노고 끝에 마침내 전체의 퍼즐을 완성하여 전모를 알게 됐을 때의 경악. 그리고 창작자(여기서는 작가)가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문단 하나씩을 개고생하며 조합한 끝에 마침내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전율. 이 둘은 동일한 쾌감이며, 이렇기에 창작은 지옥 같지만 황홀하다. 아쉬운 점은, 크로넨버그 자신도 이 작품을 만들면서 난해하단 욕을 먹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지(물론 그는 저런 비난에 전혀 동의하진 않았겠지만), 난해함의 극단으로 치달을 때쯤마다 치명적인 윙크들을 친절하게 날려준다는 것이다.(친구들의 인터존 방문, 자루 속의 물건들, 조직원들의 본모습 등) 이 윙크들은 이중의 기능을 하는데, 지옥도 한가운데서 허우적대는 죄 없는 희생자들(=아무도 이딴 거 보라고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 손으로 찾아보고야 마는 딜레탕트 속성의 관객들)에게 던져지는 생명줄이기에 친절하고, 이와 동시에 지옥의 황홀경(이런 경험을 해봤던 자들의 머릿속에서 펼쳐질 트라우마성 플래시백)에서 경험자들을 강제로 깨어나게 만드는 약이기에 치명적이다. 나였다면 윙크들 모두 빼버리고 그냥 극한의 생지옥을 만들었을 텐데, 이는 사실 상업영화에선 택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니 크로넨버그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타협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처럼 지옥에서 한철을 보내야 했음에도 주인공 윌리엄 리는 행운아다. 인터존에서의 무시무시한 경험에 가까스로 마침표를 찍고 떠나온 아넥시아로 와서도 또 똑같은 경험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아니 사실 어디에서건 마침표를 찍더라도 또 이동한 곳마다 매번 이런 지옥 같은 경험을 해야만 하는 악몽 같은 운명(=창작)에 뛰어들었지만(그렇기에 윌리엄 리는 아내의 머리통에 또 총알을 박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어쨌든 그는 훌륭한 것을 계속 써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능 없는 불쌍한 애송이들은 이렇게 할 수가 없다. 그냥 크로넨버그가 보여주는 황홀한 악몽을 보며 전율하는 수밖에.
raffy
3.5
텍스트의 깊은 뱃속을 들여다보는 현미경. 혐오와 아름다움이 동시에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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