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건물과 상점이 빽빽하게 들어선 인도의 뒷골목. 너무나 좁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지도에 표시하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이 길 위에 두 인물이 서 있다. 남자의 삶은 과거에 겪은 어떤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듯 골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소년의 삶은 아버지의 사랑과 폭력이라는 모순된 억압으로부터 탈주하기 위한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영화는 두 인물의 욕망이 배가되는 순간, 두 종류의 운동을 보여준다. 하나는 공간을 지배하는,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기억으로 침투하려는 한 남자의 운동이다. 반면 다른 하나는 같은 공간에서 탈주하여 행복과 해방의 상상 공간으로 이행하려는 소년의 운동이다. 하지만 이 두 운동은 역설적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으며’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운동이다. 이들에게 현재는 각자가 목표로 하는 과거로의 회귀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도약의 열망을 좌절하게 만드는 방해물이다. 그러므로 두 인물의 삶은 늘 과거와 미래의 경계 언저리에 머물며, 오로지 현재만을 배회하고 그들을 둘러싼 공간의 물질적 윤곽만이 남는다. (박진희)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