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운Mido5.0>피해자에게 완벽한 피해자임을 강요하는 현실< 시즌1보다 시즌2를 훨씬 애정한다. 시즌1도 좋아하긴 하지만 크게 아쉬웠던 부분은 몇 있었다. 시즌1은 해나테잎과 클레이를 기준으로 서사가 진행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클레이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가 굉장히 평면적이라고 느꼈다. 클레이 관점에서 해나테잎이 진행 되다보니 굉장히 늘어지는 감도 있던 시즌이라고 생각했다. 엄청나게 거대한 우울함은 덤. 하지만 시즌2는 달랐다. 모든 캐릭터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고, 캐릭터는 정말 어딘가에서 살아있는 듯 입체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캐붕이라는 의견이 많은데, 내게는 이 점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포인트였다. 또한,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해나 역시 과거 가해 경험과 몰랐던 이야기들이 드러났고, 해나를 그렇게 만든 가해자들도 그들만의 어떤 이야기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나는 이 드라마가 해나에게 책임을 돌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완벽한” 피해자임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이 사회의 문제를 강하게 명시했다고 느꼈다. 해나가 섹스팅을 했다고 해도, 많은 남자애들과 관계가 있다고 해도 해나는 피해자다. 우리 역시 그 부분에서 흔들리면 안된다. 피해자가 피해를 당하면 그 팩트에만 집중을 해야지 왜 그 평소행실이라던가 다른 잣대들을 같이 들이미는지 원... 해나를 그토록 사랑하는 클레이 마저 해나가 완벽한 피해자 및 여성이 아니었음에 괴로워하고 해나를 원망한다. 이때 클레이한테 조금 정 떨어짐ㅎㅎ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를 통해 큰 감동을 느끼고 생각을 전환해볼 계기가 되었다. 내 주변인이 세상을 떠났을때 느끼는 무한한 공허함을 클레이를 통해 느낄 수있었고, 남겨진 유가족의 억울함도 역시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보여주는 화장실 사건도 실제 미국 학교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동성간의 성폭력이고, 특히 마지막 씬은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회성 부족한 아이가 결국엔 어떻게 괴물로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이것도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과 무척 관련이 깊다고 보여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모순점과 잔인성을 13가지의 에피소드에 꾹 꾹 눌러 담느라 고생한 흔적도 보이는 재미있는 시즌이었다. 시즌2 역시 시즌1 못지않게 매우 훌륭했고, 기분 좋게 시즌3를 고대해본다. 열연을 한 모든 배우 그리고 엄청나게 섬세한 브라이언 요키의 다른 작품 역시 기대해본다.(그리고 확실히 이 드라마는 피해자를 위한 드라마가 절대 아니다. 드라마 시작 부분에도 계속 명시하지만 과거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드라마와 절대 맞지 않다.)좋아요258댓글8
좌좌3.5제시카가 마지막으로 변론하는 씬이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다. 제시카 뿐만 아니라 해나, 올리비아, 니나, 클레이의 엄마 등이 자신들이 겪은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보여줬다. 이 장면은 정말 수많은, (그리고 조금 더 보태서 얘기하자면)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이 크고 작은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경험이 있으며, 이에 대한 두려움과 트라우마는 여성들에게 곧 현실임을 보여준다. 누군간 클레이처럼 물어볼 것이다. 왜 여자들은 그 나쁜 상황에 자진해서 들어가냐고. 아니. 여자들은 자진해서 들어가는 게 아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지. 감히 상상도 못하고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어떻게 매일 매 순간 예상할 수 있을까. 그리고 셰리는 답한다. "여자가 나쁜 상황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남자들이 나쁜 상황을 만드는거야."좋아요110댓글0
Eunji Lee4.0매일 아침 우리는 스스로를 점검한다. 옷이 너무 비치진 않는지, 치마가 너무 짧진 않은지, 가슴이 너무 파이진 않았는 지, 화장이 너무 진하진 않은지, 팔뚝이 너무 두껍게 보이진 않는지, 덩치가 너무 커보이진 않는지 ,,, 그리고 모든게 공포의 대상이다. 으쓱한 길, 택시운전사, 배달원, 집에 혼자있을때의 적막감, 심지어 요즘은 공중화장실조차 무섭다. 남자들은 모른다. 우리가 느끼는 이 공포감의 무게를. 제발 그만 회피했으면 좋겠다. 이 무게를 느끼기 싫어 도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면할수록 더욱 고독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주변 여자또래들과 얘기를 해보면 저마다 한가지씩 성추행 당한 경험이 있다. 우리는 숨기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괜히 걱정거리 만들기 싫으니까. 나만 입다물면 문제는 일어나지 않으니까. 무엇이 우릴 입다물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이 세상을 이토록 두렵게 느껴지도록 만들었을까. 제발 진실을 그만 외면하고 두려움에 벌벌떠는 우리를 보호해줬으면 좋겠다.좋아요80댓글0
IDA4.0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즌이라 여겨진다. 한나가 정말 피해자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가해자와 상대측 변호사는 의문을 제기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명백히 그들이 피해자였음에도 피해자가 완전히 숭고하거나 고결하며 명백하고 무해하지 않을 경우엔 그들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말하려 한다. 사실 이런 건 굉장히 간단하다. 우리는 그저 주어진 사건에 대해 피해와 가해를 이야기해야 한다. 가해자에게 단 한 번이라도 피해자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내밀었다면, 피해자를 깎아내리고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초점이 가해자에게 맞추어졌다면, 우리는 늘 그걸 바란다. 권력을 가진/남성/가해자 위주의 시스템에 희생 당하는 것은 누구인가. 언제나 약자다. 아무것도 약자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체계와 수많은 기관들이 생겨난다고 해도 이 세계가 그 과정 속에서도 실질적으로 나를 보호하지 않을 거라는 불안과 확신은 그저 지극히 피해망상적인 사고가 아니다. 그 명백함이 피해자를 갉아먹고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준다. 또는 더 많은 가해자와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토대가 된다. <13reasonwhy2>는 대체로 여성보다 남성인물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이번 시즌이 논란이 되는 요지도 아마 그로부터 발생한 듯하다. 피해여성에게 강요되는 고발들은 아무리 이 드라마의 주인공일지라도 2차가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부분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 많다. 아무리 피해자를 도우려 했을지라도 명백히 남성 위주의 사고로 피해여성을 옭아맨다. 뭐, 쉽게 말하자면 하이퍼리얼리즘이다. 한나에게 강요되는 피해자다움과 결백함이 어떻게 한 여성의 지난 삶을 난도질하는지 보여준다. 남성이 멋대로 상상하고 확신하는 여성에 관한 이미지에 금이 갔을 때 그들은 더욱 더 성녀 아니면 창녀 프레임만으로 여성을 판단하려 한다. 피해여성의 연애관계에 대해 파헤치면서 왜 가해남성의 연애관계에 대해선 쿨하게 넘기는지에 대한 질문이 들어 있다. 그 부분의 메시지가 미약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져서 이 시즌이 더 별로인 이들도 있으리라. 몇 마디의 대사로만 처리되기엔 이 드라마가 처한 사건들이 너무 강력했다. 분명 남성이 가진 여성과 다른 권력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은 알겠지만, 이렇게 자극적이고 여성들에겐 일상적인 서사에서 그런 메시지는 더 명확하고 강하게, 때론 가해남성들을 철저히 짓밟거나 짓누르며 그들에게 냉소적인 표정을 지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것은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이퍼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드라마에서 현실 이상의 것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드라마가 현실을 향해 내던지는, 현실을 파고드는 질문들이 명확해진다. 뿐만 아니라 시즌1의 스토리라인과 타임라인이 시즌2에서 뒤죽박죽 되었고 인물의 성격과 성질이 달라졌음은 분명하다. 사실 스토리라인이나 타임라인의 미흡함은 나도 동감하며 비판을 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이 언제나 간발의 차이이고 사건의 연속임을 잊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캐릭터의 성격이 완전 달라졌다며 실망하고 나아가 분노하는 이들의 심정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사실 나는 종종 우리가 아는 타인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평면적인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는 한나가 그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10대들은 매순간 달라지고 변화하며 때론 무감하다가 때론 지나치게 섬세해진다. 실수를 반복하고 실망을 반복한다. 훨씬 복잡하고 복합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무도 알 수 없다. + 물론 가해와 폭력은 실수가 아니다. 드라마적 요소를 확대시키면서도 이후의 삶을 보여준다. 시즌1이 한나가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었다면, 시즌2는 한나의 죽음 이후 남은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에 가깝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닥치는 것들은 대체로 좋지 않다. 죽음(비극)에서 시작된 서사에 좋음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않나. 이미 파괴되고 망가졌는데 참혹한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좋아지거나 나아지길 바라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제대로 한 삶을 마무리해주기 위해서다. 대체로 심각한 논란이 되는 것은 마지막화에 등장하는 남성이 강간당하는 장면이다. 너무 자극적이고 폭력적이었으며 불필요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왜 수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는 장면은 어디에서나 손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남성이 남성에게 강간을 당하는 장면은 그에 비해 낯설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익숙함과 낯섦의 지수에 따라 우리는 종종 사건의 심각성과 폭력성을 판단한다. 그 장면은 말 그대로 정말 폭력적이었지만 권력구조가 만들어내는 가해와 피해의 위치를 보여준다. 수많은 여성이 성폭력을 피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권력적으로 하위에 위치하게 되는 참혹하고 역한 현실 때문이다. 그런 현실은 언제나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이 귀속시키고 유지하려 한다. 누군가는 질문한다. 모두의 잘못인데 왜 학교한테만 난리냐고. 나는 그 질문엔 몹시 반감을 표하게 된다. 모두가 알고 있다. 한 여성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훨씬 복잡한 일이고 많은 이유들이 있으며 우리는 그 죽음에 모두 책임이 있다. 우리는 한나를 죽음에서 꺼내지 못했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책임이 있다. 그러나 학교에 책임을 묻는 이유는 제도적 저항이다. 또 사회와 체계에 대해 위험성을 알리는 일이다. 수없이 많을 어딘가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한나를 위한 일이다. 학교와의 소송은 어떤 세계와의 충돌로 보는 것이 좋다. 오로지 개인에게만 잘못을 짊어지게 한다면 아무것도 달라지거나 나아지지 않는다. 시즌1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면서도 시즌1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청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13reasonwhy2>가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좋은 지점이 분명하지만 거칠고 매끄럽지 못하며 이음새를 잘 만들지도 못했다. 나는 필요한 이야기들이 이 안에 있었다고 판단하기에 그저 악평을 하진 않겠다. 다만 적어도 이런 스토리를 다룰 때, 섬세함은 필수적이란 사실을 제발 제작자와 창작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자극적 이미지의 나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의 마음을 상처입히지 않는 것이다. 거칠어선 안 된다. 아주 매끄럽고 꼼꼼해야만 한다. 절대 가해는 용서 받을 수 없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행위는 남는다. 누군가 죽어도 그 사람이 건넸던 다정이 남듯이, 폭력도 남는다. 나는 그것들이 희석되지 않길 바란다. 수많은 견고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드라마를 지지하는 이유는 이런 시각을 가진 드라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페미니스트 배우와 작가와 감독이 만들어낸 작품이 언제나 모자랐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것은 미흡할 지라도 살아남은 이들에게, 살아내는 이들에게 손 하나를 내밀어주는 것의 소중함이다. 용기내 도움을 요청하고 망설이지 않고 도움을 주라고 말하는 배려다. 그저 나는 종종 참혹함 속에서 그 참혹함이 얼마나 참혹한지 말해주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너무 많음 피해자들이 간과당했다.좋아요41댓글0
서서
3.0
스포일러가 있어요!!
김다운Mido
5.0
>피해자에게 완벽한 피해자임을 강요하는 현실< 시즌1보다 시즌2를 훨씬 애정한다. 시즌1도 좋아하긴 하지만 크게 아쉬웠던 부분은 몇 있었다. 시즌1은 해나테잎과 클레이를 기준으로 서사가 진행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클레이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가 굉장히 평면적이라고 느꼈다. 클레이 관점에서 해나테잎이 진행 되다보니 굉장히 늘어지는 감도 있던 시즌이라고 생각했다. 엄청나게 거대한 우울함은 덤. 하지만 시즌2는 달랐다. 모든 캐릭터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고, 캐릭터는 정말 어딘가에서 살아있는 듯 입체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캐붕이라는 의견이 많은데, 내게는 이 점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포인트였다. 또한,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해나 역시 과거 가해 경험과 몰랐던 이야기들이 드러났고, 해나를 그렇게 만든 가해자들도 그들만의 어떤 이야기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나는 이 드라마가 해나에게 책임을 돌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완벽한” 피해자임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이 사회의 문제를 강하게 명시했다고 느꼈다. 해나가 섹스팅을 했다고 해도, 많은 남자애들과 관계가 있다고 해도 해나는 피해자다. 우리 역시 그 부분에서 흔들리면 안된다. 피해자가 피해를 당하면 그 팩트에만 집중을 해야지 왜 그 평소행실이라던가 다른 잣대들을 같이 들이미는지 원... 해나를 그토록 사랑하는 클레이 마저 해나가 완벽한 피해자 및 여성이 아니었음에 괴로워하고 해나를 원망한다. 이때 클레이한테 조금 정 떨어짐ㅎㅎ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를 통해 큰 감동을 느끼고 생각을 전환해볼 계기가 되었다. 내 주변인이 세상을 떠났을때 느끼는 무한한 공허함을 클레이를 통해 느낄 수있었고, 남겨진 유가족의 억울함도 역시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보여주는 화장실 사건도 실제 미국 학교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동성간의 성폭력이고, 특히 마지막 씬은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회성 부족한 아이가 결국엔 어떻게 괴물로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이것도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과 무척 관련이 깊다고 보여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모순점과 잔인성을 13가지의 에피소드에 꾹 꾹 눌러 담느라 고생한 흔적도 보이는 재미있는 시즌이었다. 시즌2 역시 시즌1 못지않게 매우 훌륭했고, 기분 좋게 시즌3를 고대해본다. 열연을 한 모든 배우 그리고 엄청나게 섬세한 브라이언 요키의 다른 작품 역시 기대해본다.(그리고 확실히 이 드라마는 피해자를 위한 드라마가 절대 아니다. 드라마 시작 부분에도 계속 명시하지만 과거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드라마와 절대 맞지 않다.)
좌좌
3.5
제시카가 마지막으로 변론하는 씬이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다. 제시카 뿐만 아니라 해나, 올리비아, 니나, 클레이의 엄마 등이 자신들이 겪은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보여줬다. 이 장면은 정말 수많은, (그리고 조금 더 보태서 얘기하자면)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이 크고 작은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경험이 있으며, 이에 대한 두려움과 트라우마는 여성들에게 곧 현실임을 보여준다. 누군간 클레이처럼 물어볼 것이다. 왜 여자들은 그 나쁜 상황에 자진해서 들어가냐고. 아니. 여자들은 자진해서 들어가는 게 아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지. 감히 상상도 못하고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어떻게 매일 매 순간 예상할 수 있을까. 그리고 셰리는 답한다. "여자가 나쁜 상황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남자들이 나쁜 상황을 만드는거야."
Eunji Lee
4.0
매일 아침 우리는 스스로를 점검한다. 옷이 너무 비치진 않는지, 치마가 너무 짧진 않은지, 가슴이 너무 파이진 않았는 지, 화장이 너무 진하진 않은지, 팔뚝이 너무 두껍게 보이진 않는지, 덩치가 너무 커보이진 않는지 ,,, 그리고 모든게 공포의 대상이다. 으쓱한 길, 택시운전사, 배달원, 집에 혼자있을때의 적막감, 심지어 요즘은 공중화장실조차 무섭다. 남자들은 모른다. 우리가 느끼는 이 공포감의 무게를. 제발 그만 회피했으면 좋겠다. 이 무게를 느끼기 싫어 도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면할수록 더욱 고독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주변 여자또래들과 얘기를 해보면 저마다 한가지씩 성추행 당한 경험이 있다. 우리는 숨기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괜히 걱정거리 만들기 싫으니까. 나만 입다물면 문제는 일어나지 않으니까. 무엇이 우릴 입다물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이 세상을 이토록 두렵게 느껴지도록 만들었을까. 제발 진실을 그만 외면하고 두려움에 벌벌떠는 우리를 보호해줬으면 좋겠다.
시예
3.5
시즌1의 암울함이 이상하게 희석되었다 관심없는 부분에 주목하고, 좀 더 산만해졌다
purplty
4.5
좋은 의도를 가진 남자애들조차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주려 한다
이근혜
2.5
그냥 의무감에 봤다.
IDA
4.0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즌이라 여겨진다. 한나가 정말 피해자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가해자와 상대측 변호사는 의문을 제기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명백히 그들이 피해자였음에도 피해자가 완전히 숭고하거나 고결하며 명백하고 무해하지 않을 경우엔 그들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말하려 한다. 사실 이런 건 굉장히 간단하다. 우리는 그저 주어진 사건에 대해 피해와 가해를 이야기해야 한다. 가해자에게 단 한 번이라도 피해자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내밀었다면, 피해자를 깎아내리고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초점이 가해자에게 맞추어졌다면, 우리는 늘 그걸 바란다. 권력을 가진/남성/가해자 위주의 시스템에 희생 당하는 것은 누구인가. 언제나 약자다. 아무것도 약자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체계와 수많은 기관들이 생겨난다고 해도 이 세계가 그 과정 속에서도 실질적으로 나를 보호하지 않을 거라는 불안과 확신은 그저 지극히 피해망상적인 사고가 아니다. 그 명백함이 피해자를 갉아먹고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준다. 또는 더 많은 가해자와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토대가 된다. <13reasonwhy2>는 대체로 여성보다 남성인물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이번 시즌이 논란이 되는 요지도 아마 그로부터 발생한 듯하다. 피해여성에게 강요되는 고발들은 아무리 이 드라마의 주인공일지라도 2차가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부분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 많다. 아무리 피해자를 도우려 했을지라도 명백히 남성 위주의 사고로 피해여성을 옭아맨다. 뭐, 쉽게 말하자면 하이퍼리얼리즘이다. 한나에게 강요되는 피해자다움과 결백함이 어떻게 한 여성의 지난 삶을 난도질하는지 보여준다. 남성이 멋대로 상상하고 확신하는 여성에 관한 이미지에 금이 갔을 때 그들은 더욱 더 성녀 아니면 창녀 프레임만으로 여성을 판단하려 한다. 피해여성의 연애관계에 대해 파헤치면서 왜 가해남성의 연애관계에 대해선 쿨하게 넘기는지에 대한 질문이 들어 있다. 그 부분의 메시지가 미약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져서 이 시즌이 더 별로인 이들도 있으리라. 몇 마디의 대사로만 처리되기엔 이 드라마가 처한 사건들이 너무 강력했다. 분명 남성이 가진 여성과 다른 권력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은 알겠지만, 이렇게 자극적이고 여성들에겐 일상적인 서사에서 그런 메시지는 더 명확하고 강하게, 때론 가해남성들을 철저히 짓밟거나 짓누르며 그들에게 냉소적인 표정을 지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것은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이퍼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드라마에서 현실 이상의 것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드라마가 현실을 향해 내던지는, 현실을 파고드는 질문들이 명확해진다. 뿐만 아니라 시즌1의 스토리라인과 타임라인이 시즌2에서 뒤죽박죽 되었고 인물의 성격과 성질이 달라졌음은 분명하다. 사실 스토리라인이나 타임라인의 미흡함은 나도 동감하며 비판을 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이 언제나 간발의 차이이고 사건의 연속임을 잊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캐릭터의 성격이 완전 달라졌다며 실망하고 나아가 분노하는 이들의 심정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사실 나는 종종 우리가 아는 타인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평면적인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는 한나가 그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10대들은 매순간 달라지고 변화하며 때론 무감하다가 때론 지나치게 섬세해진다. 실수를 반복하고 실망을 반복한다. 훨씬 복잡하고 복합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무도 알 수 없다. + 물론 가해와 폭력은 실수가 아니다. 드라마적 요소를 확대시키면서도 이후의 삶을 보여준다. 시즌1이 한나가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었다면, 시즌2는 한나의 죽음 이후 남은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에 가깝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닥치는 것들은 대체로 좋지 않다. 죽음(비극)에서 시작된 서사에 좋음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않나. 이미 파괴되고 망가졌는데 참혹한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좋아지거나 나아지길 바라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제대로 한 삶을 마무리해주기 위해서다. 대체로 심각한 논란이 되는 것은 마지막화에 등장하는 남성이 강간당하는 장면이다. 너무 자극적이고 폭력적이었으며 불필요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왜 수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는 장면은 어디에서나 손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남성이 남성에게 강간을 당하는 장면은 그에 비해 낯설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익숙함과 낯섦의 지수에 따라 우리는 종종 사건의 심각성과 폭력성을 판단한다. 그 장면은 말 그대로 정말 폭력적이었지만 권력구조가 만들어내는 가해와 피해의 위치를 보여준다. 수많은 여성이 성폭력을 피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권력적으로 하위에 위치하게 되는 참혹하고 역한 현실 때문이다. 그런 현실은 언제나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이 귀속시키고 유지하려 한다. 누군가는 질문한다. 모두의 잘못인데 왜 학교한테만 난리냐고. 나는 그 질문엔 몹시 반감을 표하게 된다. 모두가 알고 있다. 한 여성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훨씬 복잡한 일이고 많은 이유들이 있으며 우리는 그 죽음에 모두 책임이 있다. 우리는 한나를 죽음에서 꺼내지 못했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책임이 있다. 그러나 학교에 책임을 묻는 이유는 제도적 저항이다. 또 사회와 체계에 대해 위험성을 알리는 일이다. 수없이 많을 어딘가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한나를 위한 일이다. 학교와의 소송은 어떤 세계와의 충돌로 보는 것이 좋다. 오로지 개인에게만 잘못을 짊어지게 한다면 아무것도 달라지거나 나아지지 않는다. 시즌1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면서도 시즌1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청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13reasonwhy2>가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좋은 지점이 분명하지만 거칠고 매끄럽지 못하며 이음새를 잘 만들지도 못했다. 나는 필요한 이야기들이 이 안에 있었다고 판단하기에 그저 악평을 하진 않겠다. 다만 적어도 이런 스토리를 다룰 때, 섬세함은 필수적이란 사실을 제발 제작자와 창작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자극적 이미지의 나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의 마음을 상처입히지 않는 것이다. 거칠어선 안 된다. 아주 매끄럽고 꼼꼼해야만 한다. 절대 가해는 용서 받을 수 없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행위는 남는다. 누군가 죽어도 그 사람이 건넸던 다정이 남듯이, 폭력도 남는다. 나는 그것들이 희석되지 않길 바란다. 수많은 견고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드라마를 지지하는 이유는 이런 시각을 가진 드라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페미니스트 배우와 작가와 감독이 만들어낸 작품이 언제나 모자랐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것은 미흡할 지라도 살아남은 이들에게, 살아내는 이들에게 손 하나를 내밀어주는 것의 소중함이다. 용기내 도움을 요청하고 망설이지 않고 도움을 주라고 말하는 배려다. 그저 나는 종종 참혹함 속에서 그 참혹함이 얼마나 참혹한지 말해주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너무 많음 피해자들이 간과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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