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5.0이승윤 흥해라 알라리 깡숑 흥해라 / 비긴 어게인도 그렇고 진짜 JTBC는 음악을 음악으로 대할 줄 안다. 권위적인 심사평 거지같은 반복재생 악마의 편집 등 시청자를 불편하게 하는 모든 요소를 뺐다. 기존 가수들을 섭외해 추억의 힘과 가창력을 잡고 새로운 뉴페이스를 섭외해 신선함과 트랜디함을 잡는다. 심지어 이승기는 MC까지 잘 본다.좋아요45댓글0
예린4.0애매함이라는 불행에 관하여, 그리고 그 가능성에 대하여 충격적이다. 그리고 위안이 된다. 30호, 이승윤이라는 가수의 등장이. 이 밤에 잠 못 자고 흥분하여 토론하게 만든 30호 자체가 새로운 장르다. 공연을 넘어 그의 생각에 고무되어 글을 끄적거리는 되었으니 말이다. 몸짓, 생각, 말 모두가 노래였다. 그는 처음에 등장했을 때부터 풍기는 아우라가 비범하면서도 답지 않게 솔직했다. '나는 배 아픈 가수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이 옹졸한 나의 마음에 쏙 들었다. 자신의 재능은 재능이 있는 사람을 시기하며 질투하는 것이라고 덧붙이는 말에는 웃음이 터졌다. 암. 그렇고말고. 왜, 새해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의 전화번호를 지우라고 하지 않던가. 흔히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천재성을 가진 뮤지션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보석이 나타났다며 열광한다. 해당 뮤지션은 처음에는 얼떨떨하다가도 이내 드디어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은듯한, 확신에 찬 표정을 지으며 큰 소리로 심사위원들께 "감사합니다!"하고 야호하며 내려간다. 한국인으로서 오디션 짬밥이 몇 년인가. 아 또 다른 슈퍼스타가 탄생했구나. 마침내 무대에서의 긴장이 풀리고 환희에 빛나는 눈빛. 나를 알아봐 주었다는 기쁨.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는 짜릿함은 바로 그런 아티스트들을 보며 대중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에서 오는 것일테다. 그런 그들의 특별함과 비범함은 그 자체로도 빛나지만, 예술가로서의 자기 확신이 보이기에 더 돋보인다. 내 길을 아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잘난 것을 알 수밖에 없다. 내가 택한 방향으로 열심히 나아가다 보면 무언가 있을 거라는 희망, 그 희망이 그 사람을 빛나게 한다. 평범하기 그지없고, 나를 믿어본 적 별로 없는, 나에게는 그 모습들이 항상 부러웠다. 물론 그들 나름의 고생과 노력이 바탕에 있었기에 기회가 왔을 때 재능이 꽃피운 것이었겠지만, 발아할 씨앗조차 없는 사람으로서 씁쓸한 마음이 들곤 했다. 가진 것은 뭣도 없으면서 시기, 질투의 화신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의 무대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의 전율을 잊지 못한다. 오디션을 보러 나온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에게 자신의 음악세계를 선보이러 나온 듯한 느낌. 마이웨이인 아웃사이더가 언더독으로서 판을 바꾸니 한 이상함하는 나도 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스타의 냄새'가 풀풀 났다. 그런데 이승윤은 좀 다르다. 칭찬을 어색해하고, 자기 요행이 생각보다 길다며 어리둥절해 한다. 특히 김이나 심사위원의 "본인이 애매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애정이나 인정을 받아주시면 훨씬 더 멋있어질 것 같다"는 말에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엔터계에서는 적지 않은 나이이기에, 그리고 인디에서 오래 활동해 온 그의 배경을 짐작해 볼 때 여러 사연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서태지, 국카스텐이 오르내리는 심사평을 듣는 사람이 보이는 이런 반응은 그의 음악세계 마냥 낯설다. 어울리지 않는다. 예상 외다. 그는 인터뷰에서 "제 인생에 있어서 칭찬을 받아들인다는 건 쉽지 않은 영역이다. '내 깜냥을 잘 알고 있다, 이것 이상으로 욕심부리지 말아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좋은 말에 항상 거리감이 있었다. 조언을 듣고 어쩌면 내 그릇이 조금 더 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넘어 근래 본 가수 중 가장 신선한 물음을 던졌던 그의 퍼포먼스를 생각해보면 어울리지 않는 반응이다. 평소에도 끼가 넘치고 장난기 많을 것 같은 매력적인 사람이 이런 반응이니까 신선하다. 이 사람 뭐지. 그런데 그래서 마음에 든다. 닮은 거라고는 애매함, 석 자뿐이면서 동질감을 느낀다. 그의 빛나는 재능과 다른 의미로 그의 생각과 철학이 반짝반짝하다. 그의 모호한 음악세계가 나와 같은 무수한 경계선에 걸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지점이 아닐까. 애매함, 이 단어는 어감부터가 잔인하기에, 회색지대는 더 추울 수밖에 없다. 분명하지 않고 꺼름칙한 느낌. 이것인지 저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계륵같은 말. 애매함이란 뭘까.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애매하게 잘난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에 대한 것이다. 나는 꽤나 애매한 사람이었다. 현재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공부는 과목의 구애 없이 웬만큼 했으나 딱히 좋아하거나 재능이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림을 그려도, 글을 써도 그냥저냥. 이 길이 맞다고 해서 따라가기는 하는데 다른 길은 없나 자꾸만 두리번거리는. 전형적인 실력은 없으면서 어쩌다가 다른 길을 간 사람이 잘 되면 배 아파하는 작은 그릇이 바로 나다. 잘 봐주면 평균 이상, 냉정하게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스페셜리스트를 꿈꾸는 제너럴리스트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아주 짧게나마 눈이 반짝했던 것도 같긴 한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내가 모호한 위치에 있게 된 것은 보편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적당히 모범적이면서 집단에서 튀지 않을 수 있는 변신술은 어느 순간부터 내 본연의 색이 무엇인지 잊게 만들었다. 여기저기 눈칫밥으로 내 위치를 가늠하며 내가 여기 서도 되는가. 내가 이곳에 있어도 되는가. 의심하는 삶. 나로 오롯하게 서 있기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가. 내게 맞는 옷을 입기까지가 얼마나 험난한 사회인가. 다듬어지지 않는 원석이 보석이 되기보다 빛이 꺼진 돌멩이가 되는 것이 더 일반적인 이곳에서. 그런 면에서 나와는 결이 다르지만 30호에게, 이승윤에게, 호감이 간다. 그가 어느 때는 담담하게 어느 때는 눈물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아, 그가 음악을 하며 느꼈을 의심과 외로움, 우울이 고스란히 다가왔기 때문이다. 경계에 서 있고 개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평은 예술인에게는 무엇보다 가혹한 말이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은 외로움이다. 이질감이다. 특히 이를 본인이 느끼고 있다면 그 자체가 상처 입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싱 어게인>에서 음악을 길을 먼저 간 사람들에게 ‘너의 그 애매함이 모든 영역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너의 장점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만감이 교차한 듯 했다. 극찬을 들으면서도 희열보다는 의심과 당황이 공존하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이 예술가가 진심으로 잘됐으면 좋겠다고, 그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하길 바란다고 응원하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에 내 감정을 조각이 보였기 때문에, 나도 내 모양을 잠시나마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입이 쓰다. 하지만 위로가 된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만큼 나도 나라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어느 순간 나도 나의 애매함에 볕이 들기를 바란다. 그러면 비로소 내 존재가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더이상 튀어나온 못이 아니라 반짝반짝하고 넓은 스펙트럼으로 자신감있게 음악 생활하길 응원한다. 이제는 30호 가수에게 배가 아프다던 그, 그의 바람대로 이승윤으로서의 음악 인생 즐겁고 행복하게 즐기시기를 바란다.좋아요39댓글1
백준4.521..2.9 유튜브가 아니라 티비 본방사수한게 얼마만인지..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가 배인 심사평과 진행 만으로도 가치 있었던 프로그램. 귀 행복은 물론이고 안타깝고 응원하고 격려된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닿는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좋아요25댓글0
Hyoung_Wonly3.0JTBC 싱어게인 보면서 느낀 건 신해철 노래 정말 사랑받는구나 였다. 왜 그럴까. 노무현 대통령 찬조 연설, 멘토 역할, 사회 비판 뿐 아니라 그대에게•일상으로의 초대•연극 속에서 등 tv, 라디오 가까운 주변 어디에서 우연히 듣게 되는 마력때문이지 않을까. 과연 마왕이란 예명(藝名)이 무척 어울린다. 대학 가요제에 출전해 당돌하고 도발적인 청춘의 모습으로 큰 성공과 함께 데뷔했는데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해 모두 애처로운 존재가 아님을 꾸준히 노래하다 떠났다. 그의 음악, 그의 존재로부터 청춘과 기성세대에게 끊임없이 송신 되는 메세지들은 곱씹을수록 아름답다. 삶이 뿜어내는 다채로운 매력을 잊지 말라 일깨우고, 의욕을 돋아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메신저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 취업, 오디션/공모전 등을 준비하는 미완의 뮤지션/아티스트들에게는 동력이자 에너지같은 존재였구나 새삼 깨달았다. 2014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왜 그리 그리워했는지 조금 자란 뒤에야 비로소 공감을 한다.좋아요22댓글2
박현신1 토마시는 독일 속담을 되뇌었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 <싱 어게인>은 음악 활동을 했던 과거와 오디션 참가자가 되어 무대에 다시 선 현재, 그 간극의 시간을 담는다. 대중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시기를 절절한 사연으로 보여준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싱 어게인>은 그것을 최대한 생략한다. 그것을 무대로써 보여줄 뿐이다. 자신을 무명이라 칭하는 45호 가수가 부른 것은 45년이라는 시간이었다. 때로 노래는 시간의 무게를 보여준다. 3 오디션 프로그램이 막 등장했을 때였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우리가 열광했던 것은 참가자의 노래 실력과 함께 독설로 불리는 심사평이었다. 심사위원은 때로 실력이 부족한 참가자에게 '노래를 그만하라'는 취지의 독설을 했다. 가수로서의 성공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기에 현실감각을 깨우치게 한다는 점에서 독설은 이해되었다. 실력이 부족한 참가자들은 혹평을 감내해야만 했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만든 능력주의라는 신화. 그때는 그랬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재능을 성공으로 치환시켰다. 참가자들은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하게 반짝이는 우승이라는 성공을 갈망한다. 그것은 오직 재능있는 사람만이 거머쥘 수 있고, 그렇지 못한 많은 사람은 꿈 앞에 좌절한다. <싱 어게인>은 지금껏 보았던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비단 음반 경력이 있는 가수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사실 그러한 포맷의 프로그램도 이미 존재했다). <싱 어게인>이 주목하는 것은 노래라는 행위, 대중의 관심이 모이는 무대라는 공간 그 자체이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그곳에 설 수 없었던 참가자들이 원했던 것은 성공이라는 신화 이전, 무대라는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는 행위 그 자체이다. 지금껏 탈락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오디션을 본 기억은 없다. 그때 견고하게 존재했던 재능과 성공의 치환 공식이 깨진다. 4 <싱 어게인>에서 참가자들의 이름은 가려진다. 그들이 탈락했을 때 비로소 그 이름이 공개된다. 그때 심사위원들은 그 이름을 끄적이며 기억하려 한다. 시청자도 그랬다. 기억하고 싶은 가수의 이름을 인터넷을 통해 검색한다. 손에 쥔 모래처럼 어떤 가수의 이름들은 서서히 잊힐지 모른다. 어쩌면 무용할지도 모르는, 기억하려고 애쓰는 행위. 그때 '다시'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고, 그래서 모든 것은 반복되어야만 한다.좋아요14댓글0
Random cul
4.0
'누가 누굴 판단해' 심사위원이 부족하다는게 아니다. 노래 잘부르는 사람도 너무 많고 ~ 다들 잘되면 좋겠다. 응원하게 되는 음악프로.
김현승
5.0
이승윤 흥해라 알라리 깡숑 흥해라 / 비긴 어게인도 그렇고 진짜 JTBC는 음악을 음악으로 대할 줄 안다. 권위적인 심사평 거지같은 반복재생 악마의 편집 등 시청자를 불편하게 하는 모든 요소를 뺐다. 기존 가수들을 섭외해 추억의 힘과 가창력을 잡고 새로운 뉴페이스를 섭외해 신선함과 트랜디함을 잡는다. 심지어 이승기는 MC까지 잘 본다.
유권민
4.0
PD의 섭외력에 박수. 오디션 프로인 동시에 슈가맨이다. 지겨울만도 한 오디션 프로그램 중 단연 눈이간다.
예린
4.0
애매함이라는 불행에 관하여, 그리고 그 가능성에 대하여 충격적이다. 그리고 위안이 된다. 30호, 이승윤이라는 가수의 등장이. 이 밤에 잠 못 자고 흥분하여 토론하게 만든 30호 자체가 새로운 장르다. 공연을 넘어 그의 생각에 고무되어 글을 끄적거리는 되었으니 말이다. 몸짓, 생각, 말 모두가 노래였다. 그는 처음에 등장했을 때부터 풍기는 아우라가 비범하면서도 답지 않게 솔직했다. '나는 배 아픈 가수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이 옹졸한 나의 마음에 쏙 들었다. 자신의 재능은 재능이 있는 사람을 시기하며 질투하는 것이라고 덧붙이는 말에는 웃음이 터졌다. 암. 그렇고말고. 왜, 새해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의 전화번호를 지우라고 하지 않던가. 흔히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천재성을 가진 뮤지션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보석이 나타났다며 열광한다. 해당 뮤지션은 처음에는 얼떨떨하다가도 이내 드디어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은듯한, 확신에 찬 표정을 지으며 큰 소리로 심사위원들께 "감사합니다!"하고 야호하며 내려간다. 한국인으로서 오디션 짬밥이 몇 년인가. 아 또 다른 슈퍼스타가 탄생했구나. 마침내 무대에서의 긴장이 풀리고 환희에 빛나는 눈빛. 나를 알아봐 주었다는 기쁨.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는 짜릿함은 바로 그런 아티스트들을 보며 대중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에서 오는 것일테다. 그런 그들의 특별함과 비범함은 그 자체로도 빛나지만, 예술가로서의 자기 확신이 보이기에 더 돋보인다. 내 길을 아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잘난 것을 알 수밖에 없다. 내가 택한 방향으로 열심히 나아가다 보면 무언가 있을 거라는 희망, 그 희망이 그 사람을 빛나게 한다. 평범하기 그지없고, 나를 믿어본 적 별로 없는, 나에게는 그 모습들이 항상 부러웠다. 물론 그들 나름의 고생과 노력이 바탕에 있었기에 기회가 왔을 때 재능이 꽃피운 것이었겠지만, 발아할 씨앗조차 없는 사람으로서 씁쓸한 마음이 들곤 했다. 가진 것은 뭣도 없으면서 시기, 질투의 화신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의 무대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의 전율을 잊지 못한다. 오디션을 보러 나온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에게 자신의 음악세계를 선보이러 나온 듯한 느낌. 마이웨이인 아웃사이더가 언더독으로서 판을 바꾸니 한 이상함하는 나도 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스타의 냄새'가 풀풀 났다. 그런데 이승윤은 좀 다르다. 칭찬을 어색해하고, 자기 요행이 생각보다 길다며 어리둥절해 한다. 특히 김이나 심사위원의 "본인이 애매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애정이나 인정을 받아주시면 훨씬 더 멋있어질 것 같다"는 말에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엔터계에서는 적지 않은 나이이기에, 그리고 인디에서 오래 활동해 온 그의 배경을 짐작해 볼 때 여러 사연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서태지, 국카스텐이 오르내리는 심사평을 듣는 사람이 보이는 이런 반응은 그의 음악세계 마냥 낯설다. 어울리지 않는다. 예상 외다. 그는 인터뷰에서 "제 인생에 있어서 칭찬을 받아들인다는 건 쉽지 않은 영역이다. '내 깜냥을 잘 알고 있다, 이것 이상으로 욕심부리지 말아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좋은 말에 항상 거리감이 있었다. 조언을 듣고 어쩌면 내 그릇이 조금 더 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넘어 근래 본 가수 중 가장 신선한 물음을 던졌던 그의 퍼포먼스를 생각해보면 어울리지 않는 반응이다. 평소에도 끼가 넘치고 장난기 많을 것 같은 매력적인 사람이 이런 반응이니까 신선하다. 이 사람 뭐지. 그런데 그래서 마음에 든다. 닮은 거라고는 애매함, 석 자뿐이면서 동질감을 느낀다. 그의 빛나는 재능과 다른 의미로 그의 생각과 철학이 반짝반짝하다. 그의 모호한 음악세계가 나와 같은 무수한 경계선에 걸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지점이 아닐까. 애매함, 이 단어는 어감부터가 잔인하기에, 회색지대는 더 추울 수밖에 없다. 분명하지 않고 꺼름칙한 느낌. 이것인지 저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계륵같은 말. 애매함이란 뭘까.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애매하게 잘난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에 대한 것이다. 나는 꽤나 애매한 사람이었다. 현재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공부는 과목의 구애 없이 웬만큼 했으나 딱히 좋아하거나 재능이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림을 그려도, 글을 써도 그냥저냥. 이 길이 맞다고 해서 따라가기는 하는데 다른 길은 없나 자꾸만 두리번거리는. 전형적인 실력은 없으면서 어쩌다가 다른 길을 간 사람이 잘 되면 배 아파하는 작은 그릇이 바로 나다. 잘 봐주면 평균 이상, 냉정하게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스페셜리스트를 꿈꾸는 제너럴리스트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아주 짧게나마 눈이 반짝했던 것도 같긴 한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내가 모호한 위치에 있게 된 것은 보편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적당히 모범적이면서 집단에서 튀지 않을 수 있는 변신술은 어느 순간부터 내 본연의 색이 무엇인지 잊게 만들었다. 여기저기 눈칫밥으로 내 위치를 가늠하며 내가 여기 서도 되는가. 내가 이곳에 있어도 되는가. 의심하는 삶. 나로 오롯하게 서 있기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가. 내게 맞는 옷을 입기까지가 얼마나 험난한 사회인가. 다듬어지지 않는 원석이 보석이 되기보다 빛이 꺼진 돌멩이가 되는 것이 더 일반적인 이곳에서. 그런 면에서 나와는 결이 다르지만 30호에게, 이승윤에게, 호감이 간다. 그가 어느 때는 담담하게 어느 때는 눈물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아, 그가 음악을 하며 느꼈을 의심과 외로움, 우울이 고스란히 다가왔기 때문이다. 경계에 서 있고 개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평은 예술인에게는 무엇보다 가혹한 말이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은 외로움이다. 이질감이다. 특히 이를 본인이 느끼고 있다면 그 자체가 상처 입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싱 어게인>에서 음악을 길을 먼저 간 사람들에게 ‘너의 그 애매함이 모든 영역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너의 장점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만감이 교차한 듯 했다. 극찬을 들으면서도 희열보다는 의심과 당황이 공존하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이 예술가가 진심으로 잘됐으면 좋겠다고, 그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하길 바란다고 응원하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에 내 감정을 조각이 보였기 때문에, 나도 내 모양을 잠시나마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입이 쓰다. 하지만 위로가 된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만큼 나도 나라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어느 순간 나도 나의 애매함에 볕이 들기를 바란다. 그러면 비로소 내 존재가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더이상 튀어나온 못이 아니라 반짝반짝하고 넓은 스펙트럼으로 자신감있게 음악 생활하길 응원한다. 이제는 30호 가수에게 배가 아프다던 그, 그의 바람대로 이승윤으로서의 음악 인생 즐겁고 행복하게 즐기시기를 바란다.
백준
4.5
21..2.9 유튜브가 아니라 티비 본방사수한게 얼마만인지..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가 배인 심사평과 진행 만으로도 가치 있었던 프로그램. 귀 행복은 물론이고 안타깝고 응원하고 격려된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닿는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Hyoung_Wonly
3.0
JTBC 싱어게인 보면서 느낀 건 신해철 노래 정말 사랑받는구나 였다. 왜 그럴까. 노무현 대통령 찬조 연설, 멘토 역할, 사회 비판 뿐 아니라 그대에게•일상으로의 초대•연극 속에서 등 tv, 라디오 가까운 주변 어디에서 우연히 듣게 되는 마력때문이지 않을까. 과연 마왕이란 예명(藝名)이 무척 어울린다. 대학 가요제에 출전해 당돌하고 도발적인 청춘의 모습으로 큰 성공과 함께 데뷔했는데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해 모두 애처로운 존재가 아님을 꾸준히 노래하다 떠났다. 그의 음악, 그의 존재로부터 청춘과 기성세대에게 끊임없이 송신 되는 메세지들은 곱씹을수록 아름답다. 삶이 뿜어내는 다채로운 매력을 잊지 말라 일깨우고, 의욕을 돋아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메신저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 취업, 오디션/공모전 등을 준비하는 미완의 뮤지션/아티스트들에게는 동력이자 에너지같은 존재였구나 새삼 깨달았다. 2014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왜 그리 그리워했는지 조금 자란 뒤에야 비로소 공감을 한다.
뻐즈
5.0
💙30호 💙 59호 💙 29호 💙 10호 💙 ❤ ❤ 💐응원합니다 💐 ❤ ❤
박현신
1 토마시는 독일 속담을 되뇌었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 <싱 어게인>은 음악 활동을 했던 과거와 오디션 참가자가 되어 무대에 다시 선 현재, 그 간극의 시간을 담는다. 대중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시기를 절절한 사연으로 보여준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싱 어게인>은 그것을 최대한 생략한다. 그것을 무대로써 보여줄 뿐이다. 자신을 무명이라 칭하는 45호 가수가 부른 것은 45년이라는 시간이었다. 때로 노래는 시간의 무게를 보여준다. 3 오디션 프로그램이 막 등장했을 때였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우리가 열광했던 것은 참가자의 노래 실력과 함께 독설로 불리는 심사평이었다. 심사위원은 때로 실력이 부족한 참가자에게 '노래를 그만하라'는 취지의 독설을 했다. 가수로서의 성공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기에 현실감각을 깨우치게 한다는 점에서 독설은 이해되었다. 실력이 부족한 참가자들은 혹평을 감내해야만 했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만든 능력주의라는 신화. 그때는 그랬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재능을 성공으로 치환시켰다. 참가자들은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하게 반짝이는 우승이라는 성공을 갈망한다. 그것은 오직 재능있는 사람만이 거머쥘 수 있고, 그렇지 못한 많은 사람은 꿈 앞에 좌절한다. <싱 어게인>은 지금껏 보았던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비단 음반 경력이 있는 가수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사실 그러한 포맷의 프로그램도 이미 존재했다). <싱 어게인>이 주목하는 것은 노래라는 행위, 대중의 관심이 모이는 무대라는 공간 그 자체이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그곳에 설 수 없었던 참가자들이 원했던 것은 성공이라는 신화 이전, 무대라는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는 행위 그 자체이다. 지금껏 탈락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오디션을 본 기억은 없다. 그때 견고하게 존재했던 재능과 성공의 치환 공식이 깨진다. 4 <싱 어게인>에서 참가자들의 이름은 가려진다. 그들이 탈락했을 때 비로소 그 이름이 공개된다. 그때 심사위원들은 그 이름을 끄적이며 기억하려 한다. 시청자도 그랬다. 기억하고 싶은 가수의 이름을 인터넷을 통해 검색한다. 손에 쥔 모래처럼 어떤 가수의 이름들은 서서히 잊힐지 모른다. 어쩌면 무용할지도 모르는, 기억하려고 애쓰는 행위. 그때 '다시'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고, 그래서 모든 것은 반복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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