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15일 방영된 KBS HDTV 문학관. 소설에서 '내가 살았던 집'은 출판사 계약직 직원인 미혼모가 중학생 딸과 함께 사는 물리적 공간이며, 5세 연하의 결혼한 방송기자와 세 계절에 걸쳐 사랑을 나눈 불륜의 공간을 상징한다. 불륜의 관계를 그만두려고 전화 코드를 뽑아버리는 여자, 끊어졌던 인연의 끈을 무리하게 다시 이으려는 남자, 어머니의 보살핌 없이 치러낸 초조를 감당 못하고 가출하는 딸…. 작가는 한없이 흔들리는 이런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현대인의 불안한 욕망과 윤리 의식, 그리고 세속적인 현실성 사이에서 외로운 줄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연출 의도. 95년 첫 장편인 '새의 선물'을 선보이며 그 특유의 생생한 묘사와 삶을 바라보는 냉정하고 치밀한 시선으로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은 최고의 베스트 셀링 작가 은희경. 그런 그의 작품들을 영상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이미 몇 차례 - 베스트극장 같은 프로그램을 통하여 - 있어왔기 때문에 새삼스레 '은희경의 작품을 영상화한다'는 취지는 그다지 새로울 일은 아닌지도 모른다. 작가가 등단한 이후로 그의 작품들이 끊임없이 영상 매체의 관심권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그만의 독특하면서도 디테일한 묘사들, 그 속에 드러나는 다채로운 인간 군상들에 대한 진지하고 냉철한 고찰 등이 그 어떤 작품들보다도 명확하고 신선하며, 무엇보다 우리들 삶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서있다는 강렬한 '친근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2000년에 발표된 '내가 살았던 집'은 그런 의미에서도 그의 작품 중 최고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그가 이전의 작품들에서 추구해왔던 일련의 경향 - 사랑으로부터 모든 낭만적 관념을 박탈하려는 - 들을 유지하면서도 주제는 좀더 끈끈하고 좀더 무거우며 한층 더 냉정한 시선과 낮은 목소리로 삶을 성숙하게 관조하는, 매력으로 충만한 소설이다. 이야기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엔 연인과의 사랑뿐만 아니라, 죽음이 남긴 그림자, 가족에 대한 애증, 그리고 그 대가로 파생된 상처와 앙금들... 하나의 단편 소설로 이처럼 복잡하고 지난한 삶의 문제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다룰 수 있는 그 공력이 놀랍다. 덧붙여 이 소설의 최대의 장점은 그 자체의 내러티브만으로도 한편의 영화를 충분히 완성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영상적인 장치들이 가득하다는 점이다. 그동안 기회가 생기면 꼭 그의 작품을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터였는데, 이 소설을 읽자마자 주저함 없이 최고의 소재라는 믿음이 들었다. 역량이 허락하는 하에서, 그의 소설이 던져주는 매력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그 매력 이상의 '것'들을 영상을 통해 덧입히는 의미있는 작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독보적 연출 X 강렬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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