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이라면 이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만든 굿즈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하죠.
디자인 스튜디오 ‘딴짓의 세상’ 대표 오세범님을 ‘왓챠디깅클럽’에서 만나 영화 취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W.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저는 디자인 스튜디오 ‘딴짓의 세상'을 운영하고 있는 오세범입니다. 영화 굿즈를 디자인, 제작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작업한 영화로 왓챠피디아 컬렉션을 만들어보니 130편이 채워지더라고요.
W. ‘딴짓의 세상’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궁금해요.
- 저도 몇년부터 시작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찾아봤는데요. (웃음) 2011년에 대학원 재학 중 취미로 진행한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독립출판을 하게 되면서 급히 이름이 필요했거든요. 그때 지은 이름이 ‘딴짓의 세상’인데 지금까지 쓰고 있네요. 출판이나 개인적인 디자인 작업들을 하다가, 2017년에 영화사의 외주를 받아서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공식적인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W. 영화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작업물들이 인상적이에요. 진심이 통했는지 유독 ‘딴짓의 세상’ 굿즈를 좋아하는 팬들도 많고요.
-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도 알고 너무 감사하면서도, 원래 앞에서는 좋은 이야기만 해주시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음)
제가 모으는 굿즈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됐는데, 아무래도 굿즈를 직접 만드는 입장이다 보니 잘 안 모으게 되더라고요. 제가 A24와 NEON의 마케팅 방식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A24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굿즈들을 좀 구입했어요. (슬프게도 NEON의 공식 굿즈는 해외 구매가 불가능합니다!) 사실 공부한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죠.
W. 굿즈를 만드시는 분이 굿즈를 안 모으신다니 조금 의외예요.
- 저는 굿즈를 갖지 않더라도 누군가 영화를 각자의 관점과 해석으로 표현한 아이디어 자체를 보는 게 더 신나고 좋더라고요. 예를 들어, 메가박스에서 나온 오리지널 티켓도 그 시도가 너무 재미있었고요. A24나 NEON 같은 영화사들은 영화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을 뽑아내 가장 멋있고 재밌는 형태의 굿즈로 만들어내는데, 그런 시도들을 보는 게 즐거워서 좋아하죠. 제가 추구하는 작업 방식도 그런 거예요. 물론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야 알게되는 디테일들이 있어서 그런 굿즈들은 실물을 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W. 영화는 언제부터 좋아하셨나요?
-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저는 80년대생인데, 대중문화가 펼쳐지면서 극장이 점점 가까워졌던 게 저희 세대거든요. 시험이 끝나거나 방학이 되면 비디오 가게에 가서 영화를 빌려 보고, 중고등학생 때는 멀티플렉스가 생기면서 〈해리포터〉를 보는 게 연말 루틴으로 자리 잡기도 했죠.
그리고 제가 느끼기에 어떤 사람들은 영화라는 매체를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되는 유전자가 내재된 것 같아요. 같은 영화를 같은 시점에 접해도 어떤 사람은 그걸 단순히 즐기고 벗어난다면, 저 같은 사람들은 거기서부터 딥하게 빠져들어 가는 거죠. ‘점지당한 덕후’라고나 할까요? (웃음)
W. 대표님을 이끌어준 영화들이 있다면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요?
- 어렸을 때 비디오를 자주 빌려 보면서 〈봄날은 간다〉와 〈물랑루즈〉에 꽂혔어요. 〈봄날은 간다〉를 봤을 때 저는 첫사랑도 안 해본 중학생이었는데, 주인공들이 만났다 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몇 개월을 앓았던 기억이 나요. ‘영화가 이렇게 개인의 삶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구나’라고 느꼈죠. 〈물랑루즈〉는 처음 좋아하게 된 뮤지컬 영화예요. 당시에 구하기 힘들었던 수입 CD를 구하려고 찾아보기도 했고요.
돌이켜보면 늘 이런 식으로 영화를 좋아해왔던 것 같네요. 〈500일의 썸머〉를 좋아했을 때는 주인공이 엘리베이터에 쓰고 탔던 헤드셋을 사기도 했어요. 〈월플라워〉라는 영화도 좋아하는데, 이 작품을 다룬 진(zine, 주로 적은 페이지로 만들어진 자유로운 형태의 소규모 출판물)을 독립출판 하기도 했어요.
W. 대표님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진 작품이겠네요.
- 어떤 사람은 영화에 더 쉽게 몰입되고 덕후가 된다고 이야기 한 것처럼, 각자 자기 인생의 테마 같은 소주제나 장르가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그 키워드가 ‘성장’이었어요. 단순히 ‘성장 영화’로 분류되는 작품들뿐만 아니라 영화 안에 ‘성장 코드’가 있는 경우에 제가 강하게 이입하게 되더라고요. 〈월플라워〉도 성장 영화의 미덕이 잘 담겨 있는 작품이죠.
〈빌리 엘리어트〉도 제가 좋아하는 성장 영화 중 하나예요. 어릴 때는 빌리의 시점에서 영화를 봤는데 작업을 하면서 다시 볼 때는 아빠, 아니면 형에게 이입했어요. 자기보다 더 어린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양보하는 마음이 그게 그 사람의 성장이라는 생각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들 중에서는 〈마이 선샤인〉과 〈해피엔드〉가 참 와닿았어요.
W. 성장 영화 말고도 특별히 애정하는 작품이 있다면?
- 소위 ‘인생 영화’를 묻는 질문을 받으면 ‘전 그런 거 못 꼽습니다'라며 답을 피하다가도, ‘아, 다음에 물어보면 꼭 대답해야지’ 했던 영화가 있어요. 〈애프터 미드나잇〉이라는 이탈리아 영화인데요. 영화에 대한 영화예요. 이 작품을 통해서 버스터 키튼을 알게 됐어요. 버스터 키튼 영화들을 보면서 〈셜록 2세〉를 좋아하게 돼서 명함과 SNS 프로필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죠.
그리고 최근에 빠졌던 영화에는 〈괴물〉이 있네요.
W. 〈괴물〉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영화 속 로케이션을 직접 다녀와서 여행기 책까지 출간하셨다고.
-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이 〈괴물〉로 내한하셨을 당시에 제가 감독님 굿즈 작업을 했는데, 사실 그 당시에는 영화를 아직 못 본 상태였어요. 감독님께 굿즈를 직접 전달드리면서,
그 자리에 있었던 두 주연배우를 본 기억도 나요. 영화제가 끝난 뒤 영화가 개봉했을 때에도 주변 사람들이 저한테 좋아할 거라면서 많이들 추천해 준 작품인데, 알면서도 시간이 나지 않아 못 보고 뒤늦게 관람했다가 빠져버린 거죠.
그래서 영화 촬영지인 스와에 직접 가서 주인공들이 살았던 집이나, 등굣길 등을 방문하면서 기록으로 남겼어요. 주민들이 친절하시기도 했고, 영화 촬영이 몇 년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영화의 인상과 공간의 온도가 일치하는 곳이라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왔습니다.
W. 영화를 좋아하는 방식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굿즈 장인으로 이미 유명하시기도 한데, 특히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으신가요?
- 에릭 로메르 감독의 〈녹색 광선〉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이 작품의 경우 스튜디오 초기에 자체 작업했던 프로젝트인데요. 영화 속에서 쥘 베른의 동명 소설 [녹색 광선]이 실제로 언급되거든요. 그런데 찾아보니 아무도 이 책을 국내에서 출간하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직접 출간에 나섰습니다. (웃음)
이 책을 위해 처음으로 출판사 등록도 했고요. 사비를 천만 원 가까이 들여가며 큰 스케일로 벌인 작업이었어요. 비싼 취미생활이라고나 할까요.
그러고 나서 몇 년이 지나 CGV에서 진행한 ‘에릭 로메르 감독전’을 위해 뱃지 작업을 하게 됐어요. 같은 영화를 시간이 흘러 다시금 작업으로 마주하니 굉장히 뿌듯했던 기억이 나요.
W. 앞으로 ‘스튜디오 딴짓의 세상’에서 준비하고 계신 작업이나 신년 목표를 살짝 스포해 주신다면?
- 예정된 개봉작들의 굿즈 작업을 이어가면서 올해는 스튜디오 자체 작업들을 좀 늘려가려고 해요. 〈괴물〉로 스와 여행기를 쓰면서 스스로도 동기부여가 많이 됐거든요. 이런 작업들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 계약을 마친 영화책 한 권도 올해 출간할 예정이에요.
💌 ‘왓챠디깅클럽’은 그동안 왓챠가 담아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비정기적으로 풀어보는 코너입니다. 왓챠와 왓챠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드릴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