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라는 거대한 이름 뒤에는 🎭

18일 전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던 클로이 자오 감독이 새로운 각색작으로 돌아왔습니다. 4년 만의 장편 영화 복귀작이자, 매기 오패럴이 집필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햄넷〉인데요. 주연을 맡은 제시 버클리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데 이어,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여우주연상, 음악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국내 개봉 전부터 주목받고 있습니다. 

 

© 유니버설 픽쳐스



매기 오패럴의 소설 [햄닛]

매기 오패럴의 2020년 소설 [햄닛](햄넷)은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문학적 거장의 이면에 숨겨진,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가족 이야기를 다룹니다. 실제 셰익스피어에게 ‘햄넷’과 ‘주디스’라는 이름의 쌍둥이가 있었고, 햄넷은 1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요. 아들의 죽음으로부터 4년 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첫 작품인 ‘햄릿’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 외에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십 대 시절 영문학 수업에서 햄넷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는 매기 오패럴은 햄넷의 죽음과 희곡 ‘햄릿’의 탄생 사이에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해 냈습니다. 

 

© 2025 FOCUS FEATURES LLC

 

매기 오패럴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존 연구들에 일종의 반발심이 들어 [햄닛]을 집필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전기들에서 그의 유일한 아들 햄넷은 기껏해야 두어 번 정도 언급되며, 그저 아동 사망률이 높았다는 식의 부연 설명과 함께 “셰익스피어가 슬퍼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는 등의 서술이 덧붙여져 있는데요. 매기 오패럴은 ‘햄릿’의 1막만 읽어봐도 아버지가 다른 세계에 있는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부모의 마음을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죠. 

 

© 2025 FOCUS FEATURES LLC

 

또한, 셰익스피어의 아내인 아그네스 해서웨이(앤 해서웨이)가 남편에게 미움받았다거나 문맹이라는 등의 추측이 오랜 시간 이어지며 역사 속에서 부당하게 평가받아 왔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런던의 연극 무대에서 은퇴한 후 아내와 자녀들이 있는 스트랫퍼드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는데요. 매기 오패럴은 이 사실이 매우 의미 있으며 사람들이 [햄닛]을 읽으며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클로이 자오의 각색, 영화 〈햄넷〉

 

“햄넷과 햄릿은 사실 같은 이름이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스트랫퍼드의 기록 문서에서는 보통 혼용되었다.”

- 스티븐 그린블랫, ‘햄넷의 죽음과 『햄릿』의 탄생’ 

 

영화의 오프닝에서도 위 문장이 표시되는데요. 클로이 자오는 영화 〈햄넷〉을 만드는 과정에 매기 오패럴의 소설 [햄닛]과 스티븐 그린블랫의 2004년 에세이 ‘햄넷의 죽음과 『햄릿』의 탄생’을 모두 참고했습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생애를 스크린에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새로운 영화 속 캐릭터 ‘윌리엄’(셰익스피어)을 창조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 2025 FOCUS FEATURES LLC

 

각색 과정에서 클로이 자오 감독이 가장 신경 썼던 점이 바로 햄넷과 윌리엄을 그저 한 인간으로 바라봤다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의 무게감은 완전히 내려놓은 채 작업했다고 하는데요. 연출에 있어서도 이 지점은 아주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책과 영화 모두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윌리엄’이나 ‘윌’이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셰익스피어라는 세계적인 작가이기 이전에, 아들을 잃은 한 남자의 서사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관람한 일부 관객들은, 영화의 후반부에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풀 네임이 나오고 나서야 이 영화가 셰익스피어에 관련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은 경우도 있다고 해요. 

 

클로이 자오와 매기 오패럴은 각본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하며 책과 영화 언어 사이의 간극을 메워나갔습니다. 350페이지에 달하는 원작 소설을 90페이지 가량의 시나리오로 줄여야 했는데요. 예를 들어 책에서는 쌍둥이가 병에 걸린 시점과 윌리엄과 아그네스의 첫 만남 사이를 오갔다면, 영화화 과정에서는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재배열하는 작업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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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은 셰익스피어에게 매우 중요한 작품이었습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긴 희곡이자 가장 많이 수정된 작품이며, 완역본으로 공연된다면 4-5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처음 쓰였을 때에는 공연 가능한 길이가 아니었다고 해요. 세상을 떠난 아들 햄넷과 작품의 연결점에 대해 기록으로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햄닛]의 작가 매기 오패럴의 해석처럼 셰익스피어가 사용되지 않을 장면들을 추가로 쓰고, 이미 완성된 대본을 다듬고 수정하는 데 집착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던 것은 어쩌면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일부였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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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넷〉은 예술이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인간으로서, 슬픔에 잠긴 아버지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자신의 개인적인 슬픔을 들여다보게 되죠. 〈햄넷〉을 통해 체험의 관점에서 죽음과 상실을 이야기하는 클로이 자오는 슬픔의 반대쪽 얼굴인 사랑을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깊은 슬픔을 느끼는 것은 어떤 대상을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라고요. 영화는 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관객들에게 진실된 감정을 전달합니다. 연극 ‘햄릿’을 통해 윌과 아그네스가 서로가 상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이해하고, 비로소 억눌러왔던 슬픔을 놓아줄 수 있게 된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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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햄릿’ 역시 누군가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모든 이들을 대표해서 전하는 메시지일지도 모릅니다. 클로이 자오는 셰익스피어라는 거대한 이름 뒤 슬픔의 얼굴을 한 아버지의 모습을 포착해 그의 개인적인 슬픔을 관객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영역으로 확장해 냈는데요. 이렇듯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을 이해하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예술의 필요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영화 〈햄넷〉은 2월 25일 국내 개봉 예정입니다. 

 

 

지금, 아래 관련 콘텐츠를 통해 영화 〈햄넷〉과 관련된 작품들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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