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카메라로 포착한 슬픔의 도시 📸

약 1개월 전

지난주 열린 제2회 서울아트하우스영화제에서 상영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1989년 영화 〈비정성시〉가 뜨거운 관심을 모았습니다. 단 몇 차례만 진행된 4K 리마스터링 버전 상영은 순식간에 매진을 기록했으며, 〈비정성시〉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극장에서 보고 싶은 작품이라는 것을 확실히 했는데요. 이번 상영에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한 이유는 단순히 ‘보기 어려운 클래식’이라는 희소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비정성시〉가 대만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정면에서 다룬, 동아시아 영화사의 분기점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죠.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45년부터 1949년까지는 대만 역사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일본의 패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만을 통치하게 되는데요. 일본식 생활에 익숙해 있던 대만의 토착민 ‘본성인(本省人)’들과 본토에서 새로이 건너온 ‘외성인(外省人)’ 사이에는 언어 및 문화의 간극이 컸고, 전후 혼란 속에서 국민당 정부의 부패와 물자 부족은 주민들의 원성을 자아냈습니다. 〈비정성시〉에도 대만어, 광둥어, 일본어와 중국어가 모두 사용된다는 점이 혼란한 시대적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데요. 한 가문의 구성원들조차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 Era Communications

 

1947년 2월 28일, 국민당 정부의 단속이 폭력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규모 민중 시위와 유혈 진압으로 번지게 됩니다. ‘2·28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이후 수십 년간 공식적으로 언급조차 어렵던 금기가 됐어요. 1949년에는 국민당 정부가 중국 공산당에 패하며 대만으로 이주해 오면서 계엄령이 선포되고, ‘백색테러’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비정성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비춥니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전쟁이나 진압 같은 직접적 이미지를 거의 보여주지 않고, 인물들이 겪는 침묵과 실종, 균열 등을 통해 시대의 공포를 스며들게 했어요. 이렇게 절제된 연출은 단순히 미학적인 선택이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진 당시의 정치적 상황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비정성시〉가 개봉한 1989년은 대만이 38년간 이어진 계엄령을 막 해제한 지 불과 2년 뒤였으니까요. 〈비정성시〉는 대만 최초로 2·28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상업영화였고, 그 존재 자체가 당시 사회에 하나의 충격이자 해방감처럼 다가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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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언급조차 금기시됐던 사건을 다룬 만큼, 당시 대만의 관객들은 이름만 알고 실체는 몰랐던 역사를 처음 스크린으로 목격하며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본성인들은 실제 겪었던 가족의 이야기가 영화에서 다뤄졌다며 지지를 표했고 보수층이나 외성인들은 영화가 국민당의 통치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에 대해 불편함을 표하는 등 양쪽 집단의 반응이 극명히 갈리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영화는 장면 삭제 없이 정식 개봉이 허용됐지만, 제작 및 개봉 과정에서 ‘폭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말 것’ 혹은 ‘정치적 책임을 특정하지 말 것’과 같은 암묵적인 압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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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 샤오시엔은 그런 제약들 속에서 롱테이크나, 거리두기, 생략을 통해 시대의 정서적 진실을 담아냈어요. '슬픔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제목처럼, 한 도시와 집단의 공동체적 슬픔이 배어있는 공기 자체를 스크린에 옮겨냈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면 대사나 설명보다는 이미지와 장면이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게 되죠. 극중 넷째 아들인 ‘문청’(양조위)가 말을 할 수 없지만 사진을 찍는 인물이라는 점도 이와 맞닿아있어요. 

 

〈비정성시〉는 대만 내부를 넘어 국제적으로도 강한 울림을 남겼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대만 뉴웨이브는 주로 아시아 내부에서만 논의되던 ‘지역적 영화’에 가까웠는데요. 1989년 〈비정성시〉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로는 31년 만에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국제 영화계가 대만이라는 나라의 역사와 뉴웨이브 전체를 세계 영화사 속 하나의 사조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습니다. 허우 샤오시엔의 이러한 성취는 에드워드 양, 차이밍량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국제적인 맥락 속으로 끌어왔고, 대만의 뉴웨이브는 더 이상 지역적 현상이 아니라 독자적 미학을 구축한 세계적 전통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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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대만에서는 〈비정성시〉의 개봉 이후 2·28 사건 관련 연구가 활발해졌고, 1995년에는 정부의 첫 공식 사과와 기념관·기념일 지정까지 이어지는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국가가 금지한 기억을 영화로서 되짚어볼 수 있었던 충격적인 체험이자 변화의 시작이었던 셈이죠. 〈비정성시〉가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해지는 이유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복원한 영화가 아니라, ‘침묵을 깨는 영화’라는 의미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래 관련 콘텐츠를 통해 나의 〈비정성시〉 예상별점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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