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약 1개월 전

불 꺼진 극장, 웅장한 음악과 함께 ‘마블’(Marvel)의 리더필름이 상영되는 순간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전성기 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작품들을 극장에서 봤던 기억을 떠올리면 최근 공개되는 영화들에서 예전과 같은 설렘을 느낄 수 없는 것이 다소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어쩌면 〈썬더볼츠*〉는 마블의 현주소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어벤져스는 부재중

‘썬더볼츠’라는 촌스러운 이름과 오합지졸스러운 멤버 구성. 한눈에 보아도 기존의 어벤져스가 보여주던 웅장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인데요. 이들이 모이게 된 이유 또한 그다지 유쾌하지 않습니다. CIA 국장 ‘발렌티나’(줄리아 루이 드레이퍼스)가 본인에게 불리한 각종 증거들을 없애기 위해 제거 대상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니까요. 혼자 힘으로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루저’ 캐릭터들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뭉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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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기존 영웅들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내는 임무를 맡아왔습니다. 멋진 수트에 초인적인 능력은 필수 요건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마블이 그동안 각 영웅들의 캐릭터와 파워에 의존해왔던 것도 사실인데요. 〈썬더볼츠*〉는 뚜렷한 초능력이나 존재감으로 내세울 만한 영웅 캐릭터를 아예 배제하고 시작함으로써 기존 히어로 무비에서 답습하던 공식을 깨부술 것을 선언합니다. 결점을 가진 인물들이 모였기 때문에 전투 장면에서 돌덩이 하나를 뒤집는 데에도 모두가 달려들어야 하는 눈물겨운 그림이 연출되기도 해요. 

 

제이크 슈레이어 감독은 〈썬더볼츠*〉를 처음부터 기존의 마블 영화와는 다르게 만들고자 했다는 의도를 직접 밝혔는데요. 이는 마블의 수장이자 프로듀서인 케빈 파이기가 지시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극 중 ‘옐레나’ 역을 맡은 플로렌스 퓨는 〈썬더볼츠*〉에 대해 ‘마블의 수퍼히어로들이 등장하지만 A24 감성의 인디 영화 같다’는 감상을 전하기도 했죠. 〈성난 사람들〉, 〈더 베어〉의 주요 제작진으로 구성된 〈썬더볼츠*〉 팀은 의도된 부족함에 유머를 한 스푼 더해 정형화된 ‘영웅’을 해체합니다.

 

 

“내가 좀 이상해. 텅 빈 것 같아.”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옐레나’(플로렌스 퓨) 개인의 존재론적 고민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 영화의 빌런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스스로 마주해야 할 트라우마라는 것을 예고하죠. 우울감, 외로움, 학대에 대한 기억 등과 같은 인간적인 문제들이 해결 과제로 주어지다 보니 전투 과정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이번에 처음 등장한 ‘밥’(루이스 풀먼)은 ‘센트리’와 ‘보이드’(The Void)라는 두 인격을 보여주죠. ‘센트리’가 초인적인 감각과 능력을 구사한다면, ‘보이드’는 단순히 물리적 위협을 가하기보다는 사람들을 그림자처럼 만들어 밥의 정신 공간 어딘가로 보내버리는데요. 각자의 어두운 내면세계로 내몰아 존재의 공허함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제이크 슈레이어 감독은 ‘센트리’와 ‘보이드’라는 두 자아가 정신 건강에 대한 우화적인 인물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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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내면세계로 걸어들어가 트라우마와 직접 마주해야 하는데요. 이는 외부 세계의 영웅은 부재하지만, 내면의 어둠을 몰아내는 각 개인이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누구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안을 들여다봐야 하는 법이죠. 마블 역시 〈썬더볼츠*〉를 통해 어벤져스의 부재로 인한 공허함을 마주하고 내부를 점검하는 듯합니다.

 

케빈 파이기는 최근 MCU 프로젝트들의 분산으로 인해 시청자들이 내용을 따라오지 못하고 피로감을 느끼는 ‘마블 패티그’(Marvel fatigue)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매년 1-2편의 드라마 시리즈만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이러한 내부 점검은 MCU가 새로운 페이즈에 접어들기 전, 앞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했던 단계예요. 

 

 

뉴 어벤져스? 짭벤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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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볼츠*〉 제목의 별(*) 모양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애스터리스크’(Asterisk) 기호는 보통 수정이 필요한 단어에 붙이는데요. 

 

많은 팬들이 처음부터 예상했던 바와 같이 ‘썬더볼츠’는 임시 팀명이었을 뿐, 발렌티나에 의해 이들은 ‘뉴 어벤져스’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았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영웅으로 인정받아 얻은 이름이라기보단 발렌티나가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붙인 이름인 만큼, 앞으로 MCU에서 ‘어벤져스’ 타이틀을 두고 기존 멤버들과의 합의를 어떻게 이루어 나갈지 주시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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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은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뉴 어벤져스’라는 팀명을 직접 공개하며 기존 제목의 포스터들을 교체하기도 했는데요. 영화 속 발렌티나의 대처처럼 이 역시 하나의 선전 행위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마블은 이렇게 영화 속 세계관을 현실로 확장해 보여주며 사람들이 다음 행보를 기다리게끔 영리한 수를 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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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이후 상영되는 두 개의 쿠키영상에서는 늘 그랬듯 앞으로 나올 MCU 작품들과의 연결고리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특히 두 번째 쿠키에서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의 ‘샘 윌슨’(안소니 마키)을 언급하며 ‘어벤져스’ 타이틀을 두고 앞으로 분쟁이 생길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이 영상은 〈어벤져스: 둠스데이〉의 루소 형제가 직접 연출했으며, 2분 54초로 역대 MCU 쿠키 중 최장 길이라는 점 역시 화제가 됐습니다. 해당 영상에서는 ‘판타스틱 4’의 초차원 우주선이 지구로 접근 중인 모습이 포착되며 오는 7월 개봉할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마블이 이후 작품들에서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두고 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썬더볼츠*〉를 통해 잠시 내부 점검을 하고 흩어진 곁가지들을 정리했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썬더볼츠 멤버들처럼 마블도 과연 두 번째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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