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왜 찍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약 1개월 전

노르웨이 시네마의 대표주자 요아킴 트리에 감독이 돌아왔습니다. 제78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고 제98회 아카데미 9개 후보에 오른 신작 〈센티멘탈 밸류〉인데요. ‘센티멘탈 밸류’(sentimental value)는 마치 할머니의 커피잔처럼 본인에게는 소중하고 의미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중요치 않아 보이는 것을 뜻합니다. 

 

© 그린나래미디어㈜



*〈센티멘탈 밸류〉의 주요 설정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아킴 트리에의 세계

요아킴 트리에의 영화는 언제나 오슬로라는 도시와 그 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에서 출발합니다. 도시 속 젊은 세대의 불안과 정체성, 기억을 섬세한 감정선으로 그려내며 주목받은 감독인데요. 특히 데뷔작이었던 〈리프라이즈〉(2006)부터 〈오슬로, 8월 31일〉(2011),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오슬로 3부작’에서는 현대 청춘의 불안과 가능성, 그리고 삶의 선택 앞에서 흔들리는 인물들의 관계를 서로 다른 시점에서 깊이 있게 탐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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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센티멘탈 밸류〉 역시 오슬로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작품입니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실제로 오슬로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장소이기 때문에 영화들의 배경으로 선택하고 있다고 직접 밝힌 적이 있는데요. 영화 제목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그의 영화들이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작들이 개인의 정서를 담아냈다면 이번 작품은 이를 가족의 기억으로 확장해냈다는 점이 특별하죠. 또한, 〈라우더 댄 밤즈〉와 〈델마〉에서 공동으로 작업했던 각본가 에스킬 보그트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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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노라’를 맡은 배우 레나테 라인스베와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레나테 라인스베는 트리에 감독의 2011년 영화 〈오슬로, 8월 31일〉을 통해 처음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는데요. 당시 라인스베에게 주어진 대사는 한두 줄 남짓이었지만 재능을 알아본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그녀를 주연으로 내세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발표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와 이번 영화 〈센티멘탈 밸류〉는 감독이 레나테 라인스베를 위해 쓴 각본이죠. 캐스팅 제안을 받기 전, 레나테 라인스베는 배우 일을 그만둘 계획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두 영화는 레나테 라인스베라는 배우를 세계 무대에서 완전히 새로운 반열에 올려놨습니다.



〈센티멘탈 밸류〉가 말하는 것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개인적인 감정들과도 맞닿아 있는 영화 〈센티멘탈 밸류〉는 수많은 화해와 소통을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이자 연극배우인 ‘노라’(레나테 라인스베)에게, 어릴 적 집을 떠났던 영화감독 아버지 ‘구스타프’(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새로운 각본을 들고 찾아오는데요. 어머니와 집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한 신작의 주연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하고, 노라는 두 사람이 ‘소통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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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예술과 기억, 장소를 통해 이런 두 사람을 화해로 이끌어 가죠. 구스타프가 노라에게 내민 영화 대본은, 현실에서 딸들에게 화해의 말을 전할 줄 모르는 그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어요. 두 사람은 각각 연극과 영화라는 분야에 속해 있어 처음엔 서로 소통할 수 없는 듯하지만, 두 매체에는 결국 ‘감정’이라는 본질이 있기에 마침내 화해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을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형태로 꺼내놓은 거죠. 아버지와 딸의 화해를 위해서는 시간과 장소의 화해 역시 동반되어야 했는데요. 요아킴 트리에는 ‘집’이라는 사물이 가진 기억을 영화적 언어로 표현하며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교차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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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킴 트리에는 이 과정에서 예술의 존재 가치도 짚어냅니다. 현실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친밀한 대화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바로 영화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지향점 덕분에 〈센티멘탈 밸류〉는 영화 속 인물이나 요소들 간의 화해에서 그치지 않고, 예술과 현실의 사이를 좁히는 작업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과 ‘극장’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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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이 영화를 배우, 제작진, 관객 모두의 ‘센티멘탈 밸류’로 만들어냈습니다. 레나테 라인스베에 따르면 트리에 감독은 리허설을 촬영한 후 대본을 다시 쓴다고 하는데요. 이는 배우들 사이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 서로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들을 포함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배우들 각자에게도 개인적인 무언가가 되죠. 배우뿐만 아니라 촬영감독, 사운드팀 등 현장의 모두가 창작에 깊게 관여하며 하나의 집합체를 함께 만들어나간다고 합니다. 

 

〈센티멘탈 밸류〉는 ‘극장’이라는 장소가 갖는 특별한 의미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요. 극 중 구스타프는 넷플릭스의 자본으로 영화를 찍고자 하는 과거의 감독이죠. 인터뷰 중 영화의 극장 개봉 여부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그는 “그럼 어디서 봐요?”라는 대답으로 쓴웃음을 자아냅니다. 구스타프 역을 맡은 배우 스텔란 스카스가드는 최근 골든 글로브 수상소감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이 점점 멸종되어가고 있다며 영화를 부디 극장에서 봐 달라는 당부를 전하기도 했는데요. 조명이 서서히 꺼지는 극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공유하며 보는 영화란, 저마다에게 특별한 감정적 가치를 지닌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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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존중과 화해를 담은 러브레터 〈센티멘탈 밸류〉는 지난 2월 18일 개봉해 국내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지금, 아래 관련 콘텐츠를 통해 영화 〈센티멘탈 밸류〉의 예상별점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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