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A’(Paul Thomas Anderson)라는 약칭은 어느새 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하나의 브랜드처럼 쓰이게 됐습니다. 단순히 이름이 길어서라기보다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할리우드의 시스템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이기 때문인데요. 10월 1일 국내 개봉한 PTA 감독의 열 번째 장편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파헤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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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망가진 삶을 살던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자신의 딸을 납치한 16년 전의 숙적 ‘스티븐 J. 록조’(숀 펜)를 쫓는 추격전을 그립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2002년 연출한 〈펀치 드렁크 러브〉 이후 처음으로 현대 배경을 다루는데요. PTA의 영화 중 가장 많은 제작비(약 1억 3,000만 달러)가 들어갔으며, 역대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기도 했어요. 그가 지금까지 내놓은 작품 중 가장 오락적이고 대중적인 영화라고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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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se sources—whether it’s a fictional book, non-fiction work, or my own life or my own observations over the past twenty years—have gone into the soup of the whole film.” —Paul Thomas Anderson
“소설과 현실 기반의 이야기, 제 인생, 그리고 제가 지난 20년 동안 삶에서 포착한 것들까지. 그 모든 것을 한 데 쏟아부은 영화예요.”
- 폴 토마스 앤더슨
PTA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시나리오를 거의 20년에 걸쳐 집필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인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PTA는 네 아이의 아버지가 됐고, 정치적인 상황도 많이 달라졌죠. 이 이야기는 PTA가 1960년대 후반 ‘웨더 언더그라운드’나 ‘블랙팬서당’(흑표당)이 주도한 혁명 운동들에 주목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하는데요. 혁명가들의 이념과 이상이 어떻게 변질되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들 대부분이 외로운 삶을 살게 되는지 살펴보는 것이 영화의 주제라고 밝혔죠.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과정에서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토머스 핀천의 소설 [바인랜드]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는데요. 오래전부터 토머스 핀천의 팬이라고 알려진 PTA는 〈인히어런트 바이스〉에서 이미 한차례 그의 소설을 각색했었고, 이번 영화에는 [바인랜드]뿐만 아니라 핀천의 다른 소설에서 가져온 요소들도 함께 녹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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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인 ‘One Battle After Another’(끝없는 싸움)는 1969년, 혁명 단체 웨더 언더그라운드가 발표한 다음 성명에서 따온 내용입니다.
"From here on out, it's one battle after another - with white youth joining in the fight and taking the necessary risks. Pig Amerika beware. There's an army growing in your guts and it's going to bring you down."
“지금부터는 싸움의 연속이다. 백인 청년들도 이 싸움에 참여해 필요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돼지 같은 아메리카여, 조심하라. 네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군대가 곧 너를 무너뜨릴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부터 PTA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문장이라고 하는데요. 혁명은 어딘가에서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내면에 품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인간의 내면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를 펼쳤다고 합니다. 때로는 그 싸움이 세상을 향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향하니까요. 인생도, 정치도, 예술도 ‘끝없는 싸움’이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캐스팅과 작업 방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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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주연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1997년, 〈부기 나이트〉의 ‘더크 디글러’ 역을 제안받았지만 〈타이타닉〉 촬영 일정과 겹쳐 출연을 고사했습니다. 당시 배역을 거절한 것을 인생 최대의 후회라고 말한 적도 있을 만큼 PTA 감독과의 협업을 기다려왔다고 하는데요. 디카프리오는 이번 영화에서 도망자인 동시에 아버지인 캐릭터 ‘밥’을 연기합니다. 젊을 땐 세상을 바꾸려 싸웠지만, 지금은 그 세상이 딸을 삼키지 않게 보호하려고 싸우는 인물이죠. 두 싸움이 계속해서 충돌하며 흔들리는 인물의 내면을 통해 PTA가 그리고자 했던 ‘폭력의 대물림’을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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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화 속 밥의 딸 ‘윌라’ 역을 맡은 배우 체이스 인피니티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장편 데뷔작인데요. 평범한 오디션 대신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춰보는 ‘케미스트리 리딩’ 과정을 오랜 기간 거쳤다고 합니다. 형식적인 절차를 따르기보다는 유연하게 작업한다고 알려진 PTA는 배우들에게 캐릭터의 주체성을 주고, 자유롭게 방향을 틀 수 있는 ‘생태계’를 마련해 주기로 유명한데요. 함께 저녁을 먹고, 가라테 수업을 하고, 즉흥 연기를 펼치기도 하며 배우들이 캐릭터를 온전히 체화하고 직접 구현할 때까지 기다리기 때문에, 영화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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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촬영을 시작한 곳은 캘리포니아의 유레카라는 지역인데요. 감독 및 배우들은 해당 지역을 단순히 로케이션으로 대하는 것을 넘어 지역 공동체와도 협업하며 긴밀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현지인들을 만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포착해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에 자연스러움을 유지하고, 어느 정도 다큐멘터리스러운 질감을 영화에도 반영할 수 있었다고 해요. 상점 주인, 교도관, 간호사, 군인 등 실제로 배우가 아닌 현지 인물들을 영화에 많이 참여시키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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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밥을 병원에서 빼내는, ‘라티노 해리엇 터브먼’(Latino Harriet Tubman)이라고 불리는 시퀀스는 베니시오 델 토로가 제안했다고 하는데요. 해당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PTA는 실제 현지 간호사에게 해당 상황을 가정해 어떻게 대처하겠냐는 질문을 던졌고, 답변으로 돌아온 말과 설정을 구체화해 그대로 영화에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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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혁명 단체 ‘프렌치 75’의 구성원을 대부분 실제 뮤지션들이 연기했다는 점도 흥미로운데요. 티야나 테일러, 알라나 하임, 샤이나 맥헤일, 폴 그림스타드와 디존 등이 포함됩니다. 특히 샤이나 맥헤일은 극 중에서도 자신의 실제 무대 이름인 ‘정글푸시’(JunglePussy)를 예명으로 사용하죠. 또한, 극 중 알라나 하임이 사용한 예명 ‘메이 웨스트’(Mae West)는 1930년대 할리우드에서 성적 금기를 깨뜨리고 자기 주도적인 여성상을 몸소 구현한 실제 배우의 이름입니다. 이처럼 PTA는 현실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통합해 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비스타비전 촬영과 아이맥스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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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촬영은 폴 토마스 앤더슨이 고집해온 필름 철학이 집약된 결과물인데요. 대부분의 시퀀스를 35mm 비스타비전(VistaVision)으로 촬영했습니다. 최근 〈브루탈리스트〉와 더불어 1960년대 이후 비스타비전 필름으로 대부분의 장면을 촬영한 유일한 영화인데요. 비스타비전은 수평으로 필름을 감아 더 넓은 면적에 이미지를 담는 방식이라 일반 35mm보다 입자가 곱고 해상도가 높습니다. 카메라가 무겁고, 남아 있는 전용 필름과 카메라가 몇 대 없기 때문에 작업이 까다롭지만, PTA는 디지털이 재현할 수 없는 입체감과 질감을 원했기에 비스타비전을 선택했다고 밝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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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비스타비전 상영이 가능한 극장은 전 세계에 몇 군데 없는데요. PTA 감독은 지난 9월,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비스타비전 프린트를 세 부 뽑았고,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런던에서 해당 필름으로 상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전 세계 극장에서는 IMAX(아이맥스) 70mm 필름 포맷으로도 만나볼 수 있는데요. IMAX 측에서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전체 러닝타임 동안 1.43:1 비율로 상영하겠다고 공지한 바 있습니다. 최근 아이맥스 영사기사 Taylor Umphenour가 자신의 시점으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상영관 사진을 업로드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 Taylor Umphenour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20년에 걸쳐 쌓아온 모든 것을 스크린에 가장 생생한 방식으로 재현한 작품인데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끝없는 싸움’은 전 세계 극장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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