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로 써 내려가는 시 🎬

3개월 전

짐 자무쉬 감독이 6년 만의 신작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일상의 리듬을 담은 옴니버스 스타일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슴슴한 유머 코드를 내세웠는데요. 1980년대 미국 인디 영화계를 주도했던 짐 자무쉬 감독의 세계를 파헤쳤습니다. 

 

 

© 안다미로



시인을 꿈꿨던 짐 자무쉬

짐 자무쉬가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1980년대 미국의 영화계에는 플롯과 감정을 또렷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영화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장르의 법칙과 문법에 충실하고, 관객이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를 명확히 표현했죠. 하지만 자무쉬의 영화들은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말하기보다는 시간의 흐름과 상태를 있는 그대로 포착하길 택합니다. 그의 작품들에는 흔히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랄 것이 없죠.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작은 것들을 카메라로 비춰냈어요.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 인물들은 황량한 공간들을 떠돌기도 하고, 마주 앉아 대화를 하거나 개를 산책시키는 등, 우리가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들이 그의 영화에서는 주를 이룹니다. 

 


〈패터슨〉(2016) © Amazon Studios, Bleecker Street 

 

자무쉬의 이런 표현 방식은 시에 대한 동경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대학시절 영문학을 전공한 짐 자무쉬의 꿈은 원래 영화감독이 아닌 시인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는 실제로도 다른 어느 예술가들보다 시인들을 존경하며, 삶의 아름다움이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 있다고 말합니다. 시는 언어로부터 멀어져, 추상적이고 번역할 수 없는 감정들을 포착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패터슨〉에서는 직접 쓴 시를 인용했고, 〈데드맨〉에서는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이름을 주인공에게 붙여주는 등 곳곳에서 시를 향한 그의 동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데드 맨〉(1995) © Miramax Films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 Soda Pictures  

 

짐 자무쉬의 영화들은 ‘카메라로 써 내려간 시’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시와 닮아 있는데요. 자무쉬의 영화들이 서부극이나 좀비, 뱀파이어 등 장르물의 외피를 가졌더라도 그 안에 담긴 것은 결국 아주 사소한 일상의 감정들입니다. 

 

 

영향을 주고받은 예술가들

 


〈천국보다 낯선〉(1984) © The Samuel Goldwyn Company

 

1985년, 짐 자무쉬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인 〈천국보다 낯선〉이 제1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당시 정형화되어 있던 미국 영화들 사이에 파장을 일으키며 감독 고유의 스타일과 리듬 자체만으로도 영화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이는 마치 프랑스의 누벨바그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짐 자무쉬는 “Steal from Anywhere.”(어디서든 훔쳐라)라는 장 뤽 고다르의 말을 자주 인용하기로도 유명합니다.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장 뤽 고다르나 오즈 야스지로, 로베르 브레송, 장 피에르 멜빌 등의 감독들에 대한 오마주 장면도 짐 자무쉬의 작품들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어요. 

 

빔 벤더스와 짐 자무쉬

 

가장 큰 영향을 주고받은 인물로는 뉴 저먼 시네마를 이끌었던 감독 빔 벤더스를 꼽을 수 있는데요. 두 감독은 실제로 서로 긴밀하게 소통하며 우정을 이어왔고, 영화 스타일 역시 상당히 유사하다고 평가받습니다. 짐 자무쉬의 첫 작품 〈영원한 휴가〉를 인상 깊게 본 빔 벤더스는 자무쉬에게 자신의 영화 〈사물의 상태〉의 제작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고 하는데요. 빔 벤더스가 이 영화를 찍고 남은 40분가량의 필름을 짐 자무쉬가 받아 〈천국보다 낯선〉의 일부를 촬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짐 자무쉬는 1984년 칸 영화제에서 〈파리, 텍사스〉를 보고 빔 벤더스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는데, 현재 베를린의 도이치 키네마테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criterion

 

“빔, 당신 영화는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하나예요. 당신의 영화가 나에게 아주 강한 영향을 줬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낸 것 축하해요. 그리고 촬영 기법이 정말 대단해요. 로비 뮐러는, 제 생각에, 현존하는 최고의 촬영 감독이에요. 언젠가 칸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요. 〈파리, 텍사스〉 고마워요. - J. 자무쉬”

 

편지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짐 자무쉬는 빔 벤더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후 〈파리, 텍사스〉의 촬영감독인 로비 뮐러와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짐 자무쉬 이후 그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감독들도 있는데요. 언어로부터 벗어난다는 점과 일상, 여행, 방황이라는 키워드로 인해 최근 일본의 미야케 쇼 감독 작품에서 짐 자무쉬 스타일과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으며, 영화 만들기에 지쳤을 때마다 〈천국보다 낯선〉을 보며 힘을 얻는다고 직접 밝힌 적 있는 임대형 감독이 그의 영향을 받은 감독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 안다미로

 

일명 ‘파마시브’.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짐 자무쉬 감독이 전작인 〈데드 돈 다이〉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입니다. 2025년 제82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는데요. 데뷔작부터 칸영화제와 인연이 깊었던 짐 자무쉬가 이번 작품은 칸에서 선보이지 않고 베니스를 선택했다는 변주 역시 의외의 포인트로 주목받았습니다. 자신의 세계관 안에서 나름 다양한 변주를 시도해왔던 그가 다시금 옴니버스 형식의 테이블 대화 영화로 돌아왔다는 소식에 초기 작품을 좋아하던 팬들이 특히 반가워하기도 했는데요. 

 

© 안다미로

 

자무쉬는 이번 영화의 시작에 대해 ‘톰 웨이츠가 아담 드라이버의 아버지라면 멋지겠다’라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배우를 염두에 두고 대본을 쓴다고 알려져 있던 기존의 작업 방식을 고수한 건데요. 전통적인 시나리오 작법과 달리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나 분위기, 캐릭터에 대한 세부 사항들을 모으고 그것들을 퍼즐처럼 맞춰나가며 서사를 구성하는 식이죠. 

 


© 안다미로

 

또한, 짐 자무쉬는 현장에서도 즉흥 연기를 선호하며, 영화가 스스로 원하는 바를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편이라고 하는데요. 이번 작품의 두 번째 에피소드인 ‘마더’에서 원래 케이트 블란쳇은 장난꾸러기 자매로 캐스팅하고, 비키 크립스에게 범생이 역할을 맡기려고 했지만 배우들의 요청으로 두 사람의 역할을 서로 바꾸어 찍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에는 전작들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 케이트 블란쳇, 톰 웨이츠, 아담 드라이버 등의 배우들과 다시 한번 의기투합했다는 점과 더불어, 초기작에서 자주 쓰이던 구도나 대사의 흐름이 등장해 반갑기도 했는데요. 그동안 축적해 온 짐 자무쉬만의 스타일이 전부 집약되어 일상 속 운율을 포착하게 해 줍니다. 

 

© 안다미로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마주 앉아 있지만 소통이 단절된 가족을 그린 짐 자무쉬의 ‘파마시브’는 모두의 공감을 얻을 만한 이야기는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짐 자무쉬 감독은 이 영화의 핵심이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개인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구석을 꺼내 시처럼 꿰어놓는 짐 자무쉬의 이야기에는, 꼭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아도 계속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이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짐 자무쉬 감독의 신작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지난 12월 31일 개봉해 국내 극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 아래 관련 콘텐츠를 통해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들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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