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러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쌍둥이 형제 감독이 있습니다. 2023년, 적은 제작비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며 A24의 호러 영화 중 글로벌 최고 흥행을 기록한 〈톡 투 미〉의 ‘필리포 형제’(대니 필리포, 마이클 필리포)인데요. 필리포 형제가 특유의 섬뜩함을 정교한 감정선 위에 담은 새 호러 영화 〈브링 허 백〉으로 돌아왔습니다.
© 소니 픽쳐스 코리아
영화 〈브링 허 백〉은 갑작스럽게 아빠를 잃은 남매 ‘앤디’(빌리 배럿)와 ‘파이퍼’(소라 웡)가 위탁모 ‘로라’(샐리 호킨스)에게 입양되고, 외딴 집에 머무르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는데요. 시력을 거의 상실한 파이퍼는 오빠인 앤디에게 의지하며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의식에 휘말리게 됩니다.
© A24
필리포 형제의 호러가 특별한 이유
〈브링 허 백〉은 기이한 의식을 행하는 오래된 비디오 장면으로 시작하며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힌트를 줍니다. 로라는 이 홈비디오 영상을 반복적으로 틀어두고 자신이 행하는 기이한 의식에 참고하죠. 영화에서 이 의식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오는 의식이 행해진다는 것과 그에 따른 위험이 발생할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하기엔 충분합니다.
필리포 형제는 이에 대해 배경 설정을 전부 완성해둔 상태에서 과하게 설명하지 않고 살짝 힌트만 주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독특하고 섬뜩한 세계관과 장치를 슬쩍 드러내되, 그 너머에 도사리고 있을 위험과 공포는 관객들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필리포 형제 작품만의 매력입니다. 제작사인 A24에서는 이런 특성을 활용해 임의의 관객들에게 의식 영상과 캠코더가 담긴 ‘미스터리 패키지’를 발송하고, 숨겨진 웹사이트를 여는 등의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어요.
〈브링 허 백〉은 본격적인 고어씬들을 통해 장르적 쾌감도 선사하는데요. 이는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호주의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했던 독특한 이력과도 연관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Ingvar Kenne
필리포 형제는 ‘RackaRacka’라는 채널을 운영하며 CG를 활용한 고어 액션씬, 호러 콘텐츠, 패러디 영상 등을 제작해 업로드하며 689만 구독자를 끌어모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곳곳에서 참신한 카메라워크나 현실적으로 소름 끼치는 장면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디지털 매체의 활용에 익숙한 감독들이다 보니 극 중 십 대 캐릭터들을 앞세워 SNS나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이야기에 현실감을 더하기도 하죠.
이들이 만드는 호러 영화들 역시 유쾌함을 놓지 않고, 중간중간 재기 발랄한 편집과 음악으로 톤이 환기됩니다. 100분 내외의 깔끔한 러닝타임 안에서 통통 튀는 분위기로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 또한 매력적이죠. 필리포 형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호러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르’라며, 어둡고 슬픈 것들에 대해 가장 유쾌하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다
〈Talk to Me〉(2023) © A24
필리포 형제의 영화가 호러임에도 불구하고 공감하기 쉬운 이유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가장 개인적인’ 소재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톡 투 미〉와 〈브링 허 백〉에서는 공통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재회를 염원하는 인물들이 등장하죠. 〈톡 투 미〉의 주인공 ‘미아’(소피 와일드)는 죽은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하고, 〈브링 허 백〉의 로라는 죽은 딸을 되살리고 싶어 합니다. 겉으로는 악마나 컬트적인 의식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그 핵심에는 결핍과 상실, 우리를 산 채로 갉아먹는 슬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 A24
〈브링 허 백〉은 감독들의 실제 경험이 특히 더 투영된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필리포 형제가 영화 제작 과정에서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겪었고, 생생하고 현실적인 슬픔이 대본 안에 그대로 스며들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원래 무섭게 그리려고 했던 장면들이 애처로워지기도 했다고 밝혔는데요. 이렇게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녹아든 덕분에 〈브링 허 백〉에서는 공포와 슬픔의 오묘한 조화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샐리 호킨스의 존재감
© 소니 픽쳐스 코리아
〈브링 허 백〉에서 슬픔이 이토록 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연 샐리 호킨스가 연기한 인물 ‘로라’ 때문일 텐데요. 필리포 형제는 슬픔을 극복하지 못한 인물이 얼마나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상상하며 로라 캐릭터를 그려냈다고 합니다. 관객이 감정이입을 하는 동시에 불편함을 느끼도록 이 캐릭터를 구현해낼 수 있었던 건 샐리 호킨스의 다층적이고도 섬세한 연기 덕분이죠. 앤디 역을 맡은 배우 빌리 배럿은 사전 준비를 하는 2주, 실제 촬영을 하는 8주 내내 샐리 호킨스가 로라라는 배역을 입고 완전히 캐릭터로서 살며 인물을 확장시키는 과정을 보는 것이 놀라웠다고 밝혔습니다. 필리포 형제 역시 기존 로라의 캐릭터에 샐리 호킨스가 자신의 색과 깊이를 더하면서 인물에 입체감이 더해졌다고 말했죠.
© A24
샐리 호킨스는 〈설득〉(2007), 〈내 사랑〉(2016),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 등을 포함한 수많은 작품들에서 이미 대체 불가한 연기를 보여준 바 있는데요. 데뷔 후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장르를 거쳐왔음에도 호러 영화와의 접점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브링 허 백〉이라는 선택이 더욱 파격적으로 느껴집니다.
〈브링 허 백〉의 초반부 로라의 모습은 사실 〈해피 고 럭키〉(2008)의 사랑스러운 주인공 ‘포피’나 〈패딩턴〉(2014)의 다정한 ‘매리 브라운 부인’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다정하고 발랄한 이미지로 비춰지는데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만의 어두운 환상에 갇힌 인물의 내면이 드러나면서 복합적인 인상을 남깁니다.
© 소니 픽쳐스 코리아
데뷔작에 이어 두 번째 장편을 통해 고유의 색을 확립한 필리포 형제. 호러 장르를 유쾌하게 그리면서도 섬세한 감정의 폭을 담아내는 매력은 앞으로의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을 높입니다. 해는 뜨겁고 그늘은 시원한 초여름 날씨에 이렇게 잘 어울리는 영화가 있을까요? (단, 고어는 고어입니다. 심약자 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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