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찍었다는 이유로 수감된 감독?

약 1개월 전

이란을 대표하는 거장 자파르 파나히가 제78회 칸영화제에서 신작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 석권이라는 '트리플 크라운'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란 정부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로 저항의 목소리를 내 온 감독인데요. 감독의 실제 수감 생활로부터 출발한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은 지난 9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10월 1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했습니다.

 

© Natacha Pisarenko / Invision/AP



이란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

이란에서 영화를 찍는 일은 단순한 창작 행위를 넘어 정치적 행동과 생존이 얽힌 고난의 과정입니다. 이란 현대 영화는 오랫동안 검열과 종교적·정치적 통제 속에 있었기 때문인데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에서 영화는 종교적인 기준 아래에서 국가 검열을 통과해야만 제작이 가능했고, 여성 재현 방식부터 정치적 해석 가능성까지 촬영의 거의 모든 면이 통제의 대상이 됐죠. 감독들은 허락된 것만 찍어야 한다는 압박을 늘 의식해야 했으며, 때로는 작은 서사의 디테일 하나가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되며 금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가 이란 영화를 예술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제약 속에서도 감독들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표현 방식 때문입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Janus Films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폭로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란의 감독들은 은유와 상징을 활용하고 일상 속 균열을 포착하는 등 검열을 피해 현실을 말하는 법을 발전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단순한 일상 동선을 통해 정치적 풍경을 암시했고, 자파르 파나히 역시 여성 억압이나 감시 체제를 간접적으로 포착하며 사회적 현실을 은유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이런 영화 언어는 제한의 산물인 동시에 창의성의 원천이 되기도 했는데요.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세밀하게 조형된 저항의 기법들이 자연스레 이란 영화의 미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프사이드〉 © Jafar Panahi Film Productions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자신이 ‘정치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을 만드는 것’이라며 삶 자체가 이미 정치적일 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그의 영화들은 단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정직하게 찍어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울림과 질문을 던집니다. 대표적으로 〈오프사이드〉에서 축구를 좋아하는 여성들의 욕망과 열정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자연히 여성의 경기장 출입이 금지된 이란의 제도적 문제가 드러나게 된 것처럼 말이죠. 



자파르 파나히의 영화적 투쟁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 Jafar Panahi Film Productions 

 

자파르 파나히는 1990년대 중반, 데뷔와 동시에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받으며 새로운 이란 영화의 얼굴로 떠올랐지만 작품 속 체제 비판적 시선이 분명해질수록 정부의 감시는 거세졌습니다. 이란 정부는 2010년, ‘반정부 선전 활동’을 이유로 자파르 파나히에게 20년간 영화 제작 금지, 6년 징역형, 그리고 출국 금지 명령을 내렸는데요. 파나히 감독은 구금에서 풀려난 뒤에도 지속적인 감시가 이어지며 해외 영화제 참석은 물론 촬영조차 허가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럼에도 자파르 파나히는 자택에서 촬영한 작품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를 USB에 담아 밀반출해 해외 영화제에 보내는 등, 통제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작업을 이어갔어요.

 

〈택시〉 © Jafar Panahi Film Productions 

 

특히 대표작 중 하나인 〈택시〉는 파나히 감독이 직접 택시를 운전하며 차량의 내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승객들과의 대화를 비밀리에 촬영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는데요. 촬영 금지 상태에서 공공장소를 무대로 삼아 완성한 대담한 시도였습니다. 〈택시〉는 2015년 제65회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지만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출국 금지 상태로 영화제에 직접 참석하지 못했고, 제작 방식 자체가 이란 정부의 검열을 기만하는 저항 행위로 해석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노 베어스〉 © Jafar Panahi Film Productions 



〈노 베어스〉에서는 자파르 파나히가 본인 역으로 직접 출연해 국경 마을에 머물며 원격으로 영화를 연출하려는 감독의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실제 자신이 출국 금지 상태에서 터키로의 탈출을 고민했던 경험을 작품에 녹여 이란의 출입·검열 현실을 반사해냈습니다.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맞이한 전환점

 

© 그린나래미디어㈜

 

〈그저 사고였을 뿐〉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던 ‘바히드’(바히드 모바셰리)가 자신을 지옥으로 이끌었던 남자를 어떤 소리로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복수극입니다. 파나히가 2022년 7월부터 2023년 2월까지 두 번째 징역형을 겪으며 경험한 강압적 환경, 취조 과정, 감시의 감각에서 출발해 만들어진 작품인데요. 파나히 감독은 ‘수감 중 반복해서 떠오르던 장면들, 절대 잊히지 않는 얼굴들’이 이야기를 끌어냈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영화는 그 경험을 단순히 개인적 고통의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이란 시민들이 겪어온 폭력과 억압을 상징하는 집단적 트라우마로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한 개인의 기억이 사회 전체의 공포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 거죠.

 

© 그린나래미디어㈜

 

가택 연금 기간 동안 자파르 파나히의 영화 속 공간은 이란 정부가 할당한 공간인 집, 택시나 좁은 골목 등으로 제한됐습니다. 이는 곧 작품의 서사나 스토리텔링 방식에도 영향을 끼쳤는데요. 〈그저 사고였을 뿐〉은 금지됐던 공간들을 대담하게 사용했고, 감독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우회적 표현을 탈피하면서 거의 직설적으로 권력의 폭력성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또한, 장르적으로도 리얼리즘 기반의 드라마에 가까웠던 그동안의 영화들과 달리 스릴러, 미스터리적 긴장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리듬을 얻어냈어요. 

 

© 그린나래미디어㈜




자파르 파나히의 〈그저 사고였을 뿐〉은 2026년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이란이 아닌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로 출품될 예정입니다. 영화 제작과 글쓰기, 인터뷰, 여행을 금지하던 판결은 공식적으로 무효화되었지만 감독은 여전히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룰 것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주변부에 머무르며 시스템 밖에서 작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억압 속에서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영화를 통해 저항해 온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누구도 영화 창작을 막을 수 없다. 예술은 결국 다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지금, 아래 관련 콘텐츠를 통해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영화들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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