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은 감독이 6년 만의 신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10월 22일 개봉한 영화 〈세계의 주인〉인데요. 영화는 국내 개봉에 앞서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한국 영화 최초로 공식 초청되는 등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으며, 국내 개봉 후에도 뜨거운 반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바른손이앤에이
*해당 아티클은 영화 〈세계의 주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주인〉은 '인싸'와 '관종' 사이, 속을 알 수 없는 열여덟 여고생 ‘주인’(서수빈)이 전교생이 참여한 서명운동을 홀로 거부한 뒤 의문의 쪽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전작 〈우리들〉과 〈우리집〉에서는 아이들의 세계를 섬세하게 그렸던 윤가은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오는데요. 사실 윤가은 감독은 오래전부터 10대의 성과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제에 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마주하게 됐고, 필연적으로 경로를 틀어 이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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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경험이 깃든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윤가은 감독은 시나리오를 몇 번씩이나 고쳐 쓰고 폐기하며 3-4년을 보냈을 만큼 ‘주인’의 세계를 어떻게 그릴지 깊이 고민했다고 하는데요. 이런 사려 깊은 태도와 시선은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극중 ‘주인’은 동급생 ‘수호’(김정식)가 아동 대상 성범죄자가 출소 뒤 동네로 돌아오는 걸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해달라고 하자 이를 거부합니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일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피해자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한 사람의 인생과 영혼을 완전히 파괴한다’ 등의 문구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결국 언쟁 끝에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임을 밝히는 순간, 영화는 이후 주인을 둘러싼 달라진 시선과 익명의 쪽지를 따라가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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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감독은 사건이 발생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대신 주인이 살아가는 현재의 일상을 따라가며 비추길 택했는데요. 바로 이 지점에서 동일한 소재를 다뤘던 기존의 영화들과 차별화됩니다. 인물이 과거에 겪었던 일에 갇히도록 방치하는 게 아니라, 현재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집중하기 때문이죠. 과거 사건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범죄 피해자’라는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 속 복합적인 이미지의 주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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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실에서 사람들의 성격이 보통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일관된 경우는 잘 없는데요. 〈세계의 주인〉에서 윤가은 감독은 사실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주인 캐릭터를 스펙트럼 위에 펼쳐놓고 다양한 면모를 꺼내 제시합니다. 극중 주인이 받았던 “뭐가 진짜 너야?”라는 쪽지처럼, 한 인간의 내면에 공존할 수 있는 여러 파편들이 포착되죠. 따라서 주인은 피해자 다운 피해자가 아니라, 혼란과 모순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현실적인 주체로 존재합니다.
이야기와 인물을 그리는 방식은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아있었습니다. 주인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청소년이고,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찾고자 하는데요. 영화의 초반, 아직 채우지 않은 진로희망 칸은 규정하지 않은 채 무엇이 될지를 탐구할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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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감독은 사전에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는데요. 이는 영화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때 감정의 진폭을 크게 느낄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주인이라는 인물의 세계, 더 나아가 〈세계의 주인〉이라는 영화 자체를 마주할 때 선입견 없이 처음부터 겪어보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생각됩니다.
미성숙하고 완벽하지 않은 세계의 주인이어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는 영화 〈세계의 주인〉은 지난 22일 개봉해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지금, 아래 관련 콘텐츠를 통해 나의 〈세계의 주인〉 예상별점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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