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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꽃놀이 간다〉 이정현 감독 인터뷰

4일 전

작품, 사람, 취향에 대한 이야기 ‘왓피인터뷰’! 💌

영화 〈꽃놀이 간다〉의 이정현 감독을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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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감독 데뷔작 〈꽃놀이 간다〉로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으셨어요. 어떤 작품인가요?

- 〈꽃놀이 간다〉는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약자들을 소재로 한 영화예요. 2년 전에 대학원에서 완성한 작품인데요. 당시 ‘창신동 모자 사건’이 큰 화제가 돼서 뉴스에도 많이 보도됐거든요. 복지 사각지대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모자가 사망한 사건이었어요. 그 기사를 접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시나리오를 쓸 때 많이 참고했어요. 

 

© 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LL RIGHTS RESERVED ( Major )

 

W. 조금 전에 막 첫 관객분들을 만나고 오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 항상 배우로 서던 자리에 감독으로 참석해 GV(관객과의 대화)를 하니까 너무 떨렸어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인 것 같아요. 부끄럽기도 하고 ‘더 잘 찍을걸’하는 생각도 들었죠. 핑계라면 핑계일 수 있겠지만 제한적인 환경에서 찍은 작품이라 많이 아쉽기도 해요. 아직도 긴장되네요. (웃음)

 

W. 〈꽃놀이 간다〉는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드신 작품이라고 하셨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특히 중점을 두신 부분이 있을까요?

- 창신동 모자 사건도 그렇고, 극 중 ‘수미’(이정현)와 같은 사람들은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낡고 허름한 집의 공시지가가 높게 책정돼서 기초 생활 수급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요. 그렇게 복지 사각지대에서 생활고를 겪게 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영화 속 수미의 상황에도 이런 내용을 반영했어요. 암 환자인 엄마를 살려야 하는데 병원비가 너무 많이 밀린 상태고, 기초 생활 수급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동사무소도 찾아가 보지만 집이 있어서 안 된다고 해요. 병원비를 낼 수가 없으니까 일부러 병원에서 난동을 피우고 엄마를 집으로 모셔오는데요. 사실 그렇게 처음 집에 왔을 때 엄마가 돌아가시는 설정이에요. 나중에 발견되는 백골을 보면 돌아가신지 이미 한참 지난 걸 알 수 있죠. 수미 혼자서 엄마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며 그 모든 일들을 벌이고 다닌 거예요. 이런 것들이 잘 표현됐는지 모르겠네요. 열심히 촬영했습니다.

 

W. 제작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 총 3회차에 걸쳐 촬영했는데,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가지고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빠르게 찍어야 해서 힘들었어요. 저도 연출부 막내, 제작팀 막내, 의상팀 막내까지 여러 역할을 동시에 겸하기도 했고요. 제작비가 많지 않아서 다 부탁을 하며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그 당시에 도와줬던 분들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분들 덕분에 어렵게 완성한 영화예요. 

 

© 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LL RIGHTS RESERVED ( Major )

 

W. 이번 작품에서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하셨어요. 그동안은 감독님들이 '오케이'라고 해주는 현장에 계셨지만, 이번 현장에서는 직접 연기를 하고 나서 스스로 오케이 컷을 결정하셨어야 할 것 같은데요.

- 시간이 워낙 촉박해서 거의 모든 장면을 한 테이크밖에 못 찍었어요. 한 번에 연기를 하고 한 번에 오케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조명이 떨어졌다거나 카메라가 흔들렸다거나 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찍었죠. 두세 테이크라도 찍을 수 있었다면 편집할 때 좀 더 풍부하게 고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선택지가 없어서 제 입장에선 모든 장면이 다 조금씩 아쉬워요. 특별히 잘라낸 것도 없고, 거의 현장 편집 그대로 나온 영화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영화를 여유 있게 찍어보는 게 소원이에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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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안타까운 이야기인데도 영화가 익살스러운 음악이나 편집 리듬, 대사나 연기로 줄 수 있는 영화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더라고요. 

- 제가 블랙 코미디를 너무 좋아해서 처음부터 재미있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정말 어려운 연출이라는 걸 아는데도 한번 따라 해보고 싶더라고요. 오프닝부터 수미가 병원에서 막 횡포를 부리는 장면이 나와요. 장면만 보면 재미있고 익살스럽지만, 사연을 생각해 보면 안타까운 상황인 거예요.

수미가 횡포를 부리는 이유는 병원비를 낼 수 없어서 그러는 거거든요. 그렇게 쫓겨나야만 돈을 안 내고 아무런 제재 없이 엄마를 데리고 나올 수 있으니까요. 사실 퇴원을 시키면 안 되는 상황인데 미납액이 너무 밀려서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었던 거죠. 

사이사이에 병원 차트에 미납된 금액도 보여주고, 집에는 여러 병원에서 온 독촉장들도 놓여있어요. 단편이다 보니 설명을 더 많이 할 수는 없어서 이런 식의 힌트를 심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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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수미의 상황이 굉장히 절망적인데도 계속 희망을 보는 듯했어요. 죽기로 마음먹었다가도 그냥 돌아오잖아요. 그게 어떤 힘이었을까요?

- 성당에서 수미가 기도를 하고 나서 자살을 하려고 한강에 가는 장면이 나오죠. 햇빛이 쫙 비치면서 수미도 희망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영화적인 표현으로 풀어봤어요. 그때부터 엄마가 살아날 거라고 거의 자기 최면을 걸고 반쯤 정신이 나가는 거예요. 그 상태로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꽃놀이 관광 포스터를 보게 되니까 ‘아, 저거다!’하면서 빨리 엄마를 꽃놀이 관광에 보내줘야겠다고 결심하는 거죠. 수미 생각엔 엄마가 곧 일어나실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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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극 중 ‘수미’가 사는 집의 미술이 상당했는데요. 대문에서부터 집안까지 실제로 있을 법한 풍경이 펼쳐졌어요. 어떻게 작업하셨나요?

- 마침 옛날 집을 구현해 놓은 세트가 있어서 가보고 바로 결정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살던 집 안방이 딱 그런 모습이었어요. 영화에 나온 것과 같은 자개장, 화장대, 그런 가구들이 있었거든요. 그 장소는 돈을 주고 빌렸는데, 거기서 제작비를 거의 다 쓴 것 같아요. (웃음)

미술은 영화 〈반도〉를 작업하신 감독님께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도와주셨어요. 저는 수미랑 엄마의 종교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는데요. 지금은 돌아가신 저희 엄마가 옛날에 주변 분들한테 이끌려서 종교가 매일 바뀌셨거든요. 어떤 날은 교회를 믿으시다가 갑자기 어떤 날은 절에 다녀오시고.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수미가 엄마랑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걸 미술로도 표현해 봤어요. 방에 놓여있는 액자를 보시면 엄마가 스님이랑 찍은 사진 바로 옆에 수미가 신부님과 기도하는 사진이 있어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해골은 영화 〈지옥〉 팀에게 부탁드렸어요. 영화에 나온 것처럼 백골이 되려면 1년이 넘어야 되거든요. 사실 설정에 맞게 가려면 좀 살이 붙어서 썩은 시체여야 되는데 제작비가 없어서 구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빌려주시는 기존 소품을 가져와서 찍었고, 그게 〈지옥〉에 나왔던 해골이에요. (웃음)

 

W. 〈꽃놀이 간다〉는 직접 설립하신 제작사 ‘와 필름’의 첫 작품이에요. 와 필름에서 또 어떤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 참고로 와 필름 직원은 저밖에 없고요. (웃음) 신인인데 누가 제 작품을 제작하고 배급해 주겠어요. 재미있고 즐겁게 작업하고 싶어서 그냥 제가 만들었어요. 로고는 학생분이 도와주셨고, 음악은 작곡가 윤일상 오빠가 선물이라면서 만들어주셨죠. 

제가 이제 다음 달에도 대학원 작품을 또 찍거든요. 이렇게 찍는 작품들을 와 필름에서 제작하고 배급할 예정이고요. 나중에 내공이 쌓여서 장편 작업도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W. 20대 때부터 감독이 되고 싶어 하셨다고 들었는데 가장 처음으로 ‘영화를 해야겠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 데뷔작인 〈꽃잎〉을 찍기 전이었어요. 사실 영화에 관심이 없다가 〈꽃잎〉 오디션에 붙고 나서 ‘아, 나는 영화배우가 될 거니까 앞으로 영화를 사랑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처음 유럽 영화들을 찾아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영화감독을 하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영화를 보다가 〈꽃잎〉을 찍었는데 당시에는 현장 편집도 없었고 영화 필름 한 장이 정말 비쌌거든요. 그래서 현장에서 장선우 감독님이 막 멋지게 감으로 영화를 찍으시는 게 너무 대단해 보였어요. ‘내가 과연 저런 내공을 키울 수 있을까’ 계속 두려워만 했었는데 이제 현장 편집이라는 게 생겼더라고요? (웃음) 그럼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영화과에 진학을 했는데, 영화가 여전히 너무 재미있었어요. 

〈꽃잎〉 이후에도 영화를 계속 기다렸지만 가수 활동을 하느라 제의가 들어오지 않아 계속 목말라 있던 상태였거든요. 그때도 늘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나이가 많이 들면서 같은 걸 봐도 느끼는 게 깊어지고 시각도 열리더라고요. 이젠 영화적인 표현을 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출을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 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LL RIGHTS RESERVED ( Major )

 

W.  배우, 가수, 감독 등 여러 타이틀을 갖게 되셨는데, 앞으로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으신가요? 목표가 있다면?

- 배우를 할 땐 배우, 예능을 할 땐 예능인, 가수를 할 땐 가수. 이렇게 달라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감독이라는 이름이 아직은 너무 부끄러운데요. 그냥 그 기본적인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해서 미련이 안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요. 

 

W. 가장 처음으로 영화관에 갔던 기억, 혹은 극장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으신가요?

- 가장 처음 극장에 가서 본 영화가 〈우뢰매〉였어요. 옛날 동네 극장에서 100원만 내면 볼 수 있었는데, 당시엔 심형래 선배님이 아이들 사이에서 거의 ‘뽀통령’이셨거든요. (웃음) 〈우뢰매〉를 처음 극장에서 봤는데 모든 사람들과 함께 큰 스크린에서 이 아주 풍부한 사운드에 묻혀서 다 같이 웃고 울면서 영화를 본다는 게 너무나 기쁘고 설렜어요.

영화관에 갈 때마다 광고가 끝나면 조명이 꺼지고 팝콘 냄새도 나고. 그게 너무 좋아서 충무로나 종로, 서울극장, 단성사 이런 극장들에 갔었어요. 영화 끝나면 맥도날드에서 치즈 버거를 먹고 그 티켓을 보면서 행복해했던 기억이 나요. 다음 날 학교에도 들고 가서 책갈피로 끼워두곤 했죠. 극장이 주는 그런 환상 같은 것들이 너무 좋았어요.

 

W. 어떤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 장르나 서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 박찬욱 감독님 작품 정말 좋아하고요. 연상호 감독님의 초창기 애니메이션인 〈돼지의 왕〉도 좋아해요. 다르덴 형제 감독님 영화도 좋아해서 이번 영화제에서도 프로그래머 선정작 중 하나로 〈더 차일드〉를 골랐는데요. 어떻게 영화 음악도 없이 사람을 울리는지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핸드헬드와 롱테이크로 깔끔하게 연출하시는 것도 그렇고 배우들의 연기도 다 좋아서 정말 최고인 것 같아요.

 

W.  늘 영감을 받는 작품을 하나만 꼽는다면?

- 〈복수는 나의 것〉.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삐뚤어진 마음을 갖고 있으면 앵글이 삐뚤어져 있기도 하고, 속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 그게 노래 가사로 표현되기도 해요. 그런 아이디어들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저는 예전부터 박찬욱 감독님 작품 중에 〈복수는 나의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거든요. 요즘도 다시 돌려보면서 씬의 전환이나 연출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얻죠. 제가 박찬욱 감독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W. 이정현 감독님이 애정하는 별 다섯 개 만점 영화 다섯 편을 알려주세요.

-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아무도 모른다〉, 〈부산행〉, 〈더 차일드〉. 프로그래머 선정작과 안 겹치게 해 보려고 했는데 두 작품이나 겹쳤네요. (웃음)

 

W. 마지막으로 관객분들이나 왓챠피디아 유저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영화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에 직원이 한 명뿐인 ‘와 필름’이라는 제작사를 만들었어요. 열심히 노력하고, 즐겁게 촬영하고 있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W. 영화 〈꽃놀이 간다〉에 직접 별점과 코멘트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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