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콘티의 영화경력은 장 르누아르의 <토니>(1935)와 <시골에서의 하루>(1936)의 조감독 활동으로 시작했다. 이후 로베르토 로셀리니, 페데리코 펠리니 등과 교류를 하게 되고, 1942년 제임스 M. 케인의 소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원작으로 한 <강박관념>을 데뷔작으로 발표하며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면모를 과시한다. 또한 두 번째 영화 <흔들리는 대지>(1947)를 통해 고기잡이의 노동과 착취를 사실적으로 그려 네오리얼리즘의 중심에 서게 된다. 네오리얼리즘의 우산에서 벗어나는 분기점이 되는 <흔들리는 대지> <로코와 그의 형제들>과 함께 ‘시칠리아 삼부작’을 형성하는 <레오파드>는 네오리얼리즘과는 안녕을 고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노골적으로 귀족주의적인 탐미성향에 빠져든 비스콘티는 <베니스에서의 죽음>, <루드비히>를 통해 너무나 아름다워 퇴폐적이라고 해도 좋을 극단적인 유미주의의 성향을 드러냈다. <가족의 초상>(1974)에서도 이 같은 경향을 이어간 비스콘티는 <순수한 사람들>(1976)을 완성한 후 공개를 앞두고 1976년 3월 17일 로마에서 의문의 자동차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