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 덕후가 쓴 국내 최초 샤프 펜슬 탐구서
“샤프 펜슬,
지극히 과학적이고 지극히 신비로운 이 녀석을
미치도록 알고 싶다”
샤프가 이토록 흥미진진해지는 순간
학창시절 내내 우리 손 안에 있었고 지금도 책상 위 어딘가에 얌전히 놓여 있을 필기구. 너무 익숙하고 흔해서 대부분의 사람은 눈여겨보지 않는 필기구. 바로 샤프 펜슬이다.
공학 덕후인 저자의 눈에 샤프는 하나의 ‘세계’다. 작고 좁은 몸통 안에서 만들어지는 일련의 동작들은 신기하고 샤프마다 그 느낌이 다르기도 해서 도대체 무슨 원리이고 어떤 차이인지 알고 싶어진다. 특수하거나 복잡한 여러 기능을 매끄럽게 구현하는 샤프를 만날 때면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그뿐인가. 저자는 샤프를 탐구하면서 어떤 생명력, 깨달음을 느끼기도 한다. 등장하는 신모델 숫자만큼 단종되는 구모델을 보며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착을 경험한다. 단종됐다가 시장에 다시 나온 샤프를 만나면 마치 부활을 목격한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단종된 후에야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고 희소성이 더해져 명성을 얻은 샤프를 보면서 인간 삶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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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분히 기계적이지만 마음을 홀리는 마성의 필기구 샤프 펜슬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샤프에 대한 인문학적인 얘기보다는 작동과 관련해 과학적 원리 내지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내밀하고 세밀한 정보를 담기 위해 저자는 샤프 분해 와 실험은 물론 실험에 필요한 도구를 직접 고안하고 제작하기까지 했다. 또한 본인이 소장 중인 1100자루가 넘는 샤프(무게로 따지면 14.8kg)를 참고했고, 원고 생성까지 2000시간이 넘는 기간을 투입했으며, 본문에 실린 200개 이상(샤프 그림만 120여 개)의 이미지를 모두 직접 제작하는(이를 위해 미술학원에 등록) 등 샤프에 관해서라면 이 책이 단연 첫 번째 꼽히도록 각고의 정성을 쏟았다.
1장은 샤프의 구조를 살펴본다. 샤프 외부와 내부를 구성하는 부품과 부품을 지칭하는 용어를 소개하고 각 부품의 모양과 특징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2장은 샤프에 장착된 기능과 이 기능을 구현하는 기계적 원리와 장치를 다룬다. 예컨대 슬리브가 선단부 안으로 들어가는 ‘슬라이딩 슬리브’, 필기 시 샤프심이 자동 배출되는 ‘오토매틱’ 기능, 샤프심 보호 기능인 ‘심 쿠셔닝’과 ‘오레누 시스템’과 ‘델가드 시스템’ 및 ‘모굴에어’, 샤프심의 편마모를 방지하는 ‘쿠루토가 엔진’, 샤프심 절약을 구현하는 ‘제로신’ 내지 ‘리드 맥시마이저’ 기능, 샤프심 배출량을 조절하는 ‘레귤레이터’ 기능, 금속 그립부의 미끄럼을 완화하는 ‘널링(룰렛) 가공’ 등이 포함된다.
3장은 전 세계 샤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톱7 업체(펜텔, 미쓰비시 유니, 제브라, 파이롯트, 톰보, 오토, 코토부키)의 대표 샤프를 포함해 80여 종의 베스트셀러 샤프를 하나하나 분석한다.
4장에서는 유격, 노크음, 그립감 등 사용 시 문제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아울러 휜 슬리브 수리, 슬리브 교체를 비롯해 샤프 자작 및 보유척 자작 등 자체 수리 및 튜닝 노하우도 함께 다룬다.
연필보다 샤프해서 샤프 펜슬인 것을!
연필 깎기의 장인인 데이비드 리스는 그의 책《연필 깎기의 정석》에서 “샤프 펜슬은 순 엉터리다”라는 말로 샤프를 비웃었다. 이에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연필은 감성 덩어리 유물이다. 그 자체로 완성체인 이 유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연필의 미래는 샤프 펜슬이다. 샤프 펜슬은 연필에 없는 재능을 부여하여 보다 생산적인 일을 가능하게 했다. 무엇보다 깎여져 짜리몽땅하게 버려지는 연필보다 훨씬 자연친화적이다. 샤프 펜슬은 지구를 살린다.” -0.5장 ‘샤프 펜슬이 순 엉터리라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