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씨개명

미즈노 나오키
3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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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개명이 실시되기 이전 조선에서 이루어졌던 이름의 정책에서부터 창씨개명의 정책 결정과정과 여기서 나타난 일본 당국 내부의 의견대립, 창씨개명 실시과정의 실태, 조선인의 대응과 당국의 단속, 그리고 정책이 실패로 끝난 뒤 원래 이름으로 복구되기까지를 살핀다. 창씨개명은 씨를 새로 만드는 것(創氏)과 명을 바꾸는 것(改名)을 의미한다. 이는 조선의 성(姓)을 없애고 조선의 관습에 없었던 일본식의 씨(家)를 새로 만들어 쓰며, 이름을 다시 짓는 것이다. 특히 창씨는 일본의 가족제도인 이에(家)제도를 식민지 조선에 도입하는 동화정책의 일환이었다. 창씨개명의 정책을 일본 식민지지배의 기본 방침이었던 동화와 황민화의 측면 및 차이화의 측면에서 포착한다. 그리고 일본 식민지 당국 내부에서도 창씨개명에 대한 반대가 있었으며, 창씨개명에 적극적으로 응한 것으로 알려진 당시 조선의 명망가들, 예를 들어 윤치호, 김활란 등 이른바 친일파로 지목되는 이들도 내면에서는 갈등과 이견이 있었음을 보인다.

저자/역자

목차

한국어판 책을 내면서 책을 내면서 서장 무엇이 문제인가 제1부 창씨개명에 이르기까지 제1장 조선인의 이름과 식민지지배 제2장 가족제도의 일본화와 씨제도 제3장 창씨개명 정책의 결정과정 제4장 법제도와 그 목적 제2부 창씨 실시와 강제의 실태 제1장 창씨의 실시와 신고의 부진 제2장 계획된 ‘주지철저’와 ‘독려’ 제3장 “전 호수의 씨 신고를 완료하라” 제4장 강제의 양상 제5장 ‘내지’ 정치가의 비판과 창씨의 결과 제3부 비판·저항과 단속 제1장 조선인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제2장 비판 언동의 단속 제3장 창씨 비판과 독립의 지향 제4부 창씨개명에서의 차이화 제1장 창씨개명 반대론 제2장 씨 설정에서의 차이화 제3장 개명에서의 차이화 제5부 창씨개명의 여러 가지 양상 제1장 조선인 명망가의 경우 제2장 창씨개명과 족보 제3장 여성의 창씨개명 제4장 재외 조선인의 창씨개명 제6부 창씨개명이 남긴 것 제1장 실시 이후의 상황 제2장 해방과 이름의 부활 제3장 창씨개명은 무엇이었는가 책을 마치며 옮긴이의 말 인용·참고문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일본의 식민지정책 중 가장 잘 알려졌으나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창씨개명! 일본의 식민지정책 중 가장 잘 알려졌으나 실패한 정책으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 창씨개명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기존의 창씨개명에 대한 연구도 창씨개명 자체의 법적 장치만을 주목했을 뿐 식민지지배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살펴보는 창씨개명의 전체상은 조명되고 있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창씨개명이 실시되기 이전 조선에서 이루어졌던 이름의 정책에서부터 창씨개명의 정책 결정과정과 여기서 나타난 일본 당국 내부의 의견대립, 창씨개명 실시과정의 실태, 조선인의 대응과 당국의 단속, 그리고 정책이 실패로 끝난 뒤 원래 이름으로 복구되기까지를 살펴보고 있다. 창씨개명은 무엇이었나 창씨개명은 씨를 새로 만드는 것(創氏)과 명을 바꾸는 것(改名)을 의미한다. 이는 조선의 성(姓)을 없애고 조선의 관습에 없었던 일본식의 씨(家)를 새로 만들어 쓰며, 이름을 다시 짓는 것이다. 특히 창씨는 일본의 가족제도인 이에(家)제도를 식민지 조선에 도입하는 동화정책의 일환이었다. 창씨의 강요는 천황을 종가(宗家)로 하여 그 아래 신민인 가장이 이끄는 각 가(家)가 분가(分家)로서 존재한다는 일본 가족제도인 이에(家)제도를 조선에 이식하는 것으로서, 조선의 가족.친족제도를 일본식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이는 조선의 조상중심주의 즉 혈족중심주의에서‘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국체의 관념’즉 일본의 황실중심주의로 조선인을 바꾸어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심고 조선을 식민 지배하려 한 것이었다. 이 책의 특징들은 이 책에서는 창씨개명의 정책을 일본 식민지지배의 기본 방침이었던 동화와 황민화의 측면에서뿐만이 아니라, 차이화의 측면에서 포착하려 했다. 그리고 일본 식민지 당국 내부에서도 창씨개명에 대한 반대가 있었으며, 창씨개명에 적극적으로 응한 것으로 알려진 당시 조선의 명망가들, 예를 들어 윤치호, 김활란 등 이른바 친일파로 지목되는 이들도 내면에서는 갈등과 이견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창씨개명의 실태를 밝히기 위해 저자는 당시의 신문, 소설, 잡지와 각종 간행물 등은 물론이고, 최근 한국에서 열람이 가능해진 조선 총독부 문서를 이용하고 있어 새로운 자료로서 실태에 접근하고 있다. 사진 도판도 일본 이와나미문고에서 올 3월에 발간될 당시보다 신문자료 중심으로 2배가 넘게 새로 추가하여, 창씨개명이 실시될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해주고자 했다.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서장 무엇이 문제인가>에서는 최근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정조회장을 비롯한 일본 정치인의 발언이나 교과서 서술 등을 통해 일본인의 창씨개명에 대한 역사인식을 짚어보면서 문제의식을 출발시킨다. 창씨와 개명의 정확한 의미와 차이, 용어의 사용 정의, 이용 자료의 소개 등을 하고 있다. <제1부 창씨개명에 이르기까지>에서는 1940년 창씨개명이 실시되기 전까지 즉 1910년 한국병합에서부터 30년 동안 조선에서 일본 식민지 당국의 이름에 대한 정책을 살펴본다. <제2부 창씨 실시와 강제의 실태>에서는 창씨개명에 대한 실시 법령인 <개정 조선민사령>이 실시된 이후, 조선 총독부는 조선인에게 어떻게 강압적으로 창씨를 독촉했는지 살펴본다. 에서는 창씨개명에 대한 조선인의 반응, 특히 비판과 저항이 어떤 형태로 드러났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총독부의 단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밝힌다. 창씨개명에 대한 조직적인 저항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불만과 비판이 강하게 있었고, 식민지 당국은 이를 엄중히 단속하는 가운데 창씨 정책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4부 창씨개명에서의 차이화>에서는 일본인과 조선인을 구별하기 위해 창씨와 개명을 실시하면서 각각 어떻게 제한을 두었는지 살펴본다. 일본인 중에서도 창씨에 반대하는 경우가 있었고, 조선에서도 가문 차원에서 정체성 유지를 위한 창씨에 대한 대응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이름에 차이를 남기는 결과를 낳았다. <제5부 창씨개명의 여러 가지 양상>에서는 지배와 저항의 도식에서 포착되지 않는 창씨개명에 대한 조선인들의 여러 양상들을 소개한다. 적극적으로 창씨에 응한 것처럼 보였지만 괴로움에 가득찬 대응을 보인 윤치호의 경우나, 도지사이면서 창씨에 저항했던 손영목의 증언, 종족집단의 대응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족보의 기재, 아버지나 시아버지 등 호주가 결정한 새로운 씨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목소리, 일본이나 중국에 사는 조선인의 반응 등을 거론한다. 또 창씨개명과 동시에 실시된 대만의 개성명(改姓名)정책을 비교해본다. <제6부 창씨개명이 남긴 것>에서는 창씨개명 실시 후 조선사회에서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을 살펴본다. 그리고 1945년 이후 창씨개명으로 잃어버린 조선이름이 어떻게 복구됐는지를 밝힌다. 끝나지 않은 역사, 창씨개명 저자 미즈노 나오키는 올 3월에 이 책 『창씨개명』을 발간한 이후 일본인들과 한국의 독자들로부터 여러 통의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창씨개명을 겪었던 세대에게서 편지를 받은 것인데, 특히 한국독자로부터의 편지는 창씨개명이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한국인을 괴롭히고 있는 현실임을 다시 느끼게 했다고 한다.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한일간의 역사를 둘러싼 대화와 교류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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