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중에도 몬테 도 고소 산에서 산티아고 대성당의 외관이 어렴풋이 보였다. 짖고 검은 대성당의 위용은 먼 곳에서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중세의 순례자들이 저마다 ‘기쁨의 산’이라 이름 붙인 이유가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광장에 우뚝 솟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드넓은 산티아고 대광장에서 그저 망연했다. 한동안 어떤 감정을 느낄 수도, 어떤 표현을 발할 수도 없었다. 드디어 끝났다, 드디어 끝내었다 라는 그 한 생각만이 오래 오래 나 자신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앞에 묶어 두었다. 여기가 바로 카미노 800킬로미터 대장정의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이다.
TV에서 보는 서울에서 해남 땅끝까지 국토대장정은 보통 600킬로미터가 다 되는 기나긴 길이다. 출발 후 3일까지가 가장 고비고, 그 이후로도 한창 때의 젊은이들이 줄줄이 낙오다. 끝까지 완주하는 청년들도 중간 중간 병원에 들르거나 닥터체크를 수시로 받는다. 그러나 나는 이 머나먼 타국의 800킬로미터를 혼자서 쓰러지고 혼자서 일어섰다. 혼자서 울고 혼자서 웃었다. 혼자서 먹고, 혼자서 자고, 그리고 혼자서 이 끝을 밟고, 혼자서 지금 그 감격을 맞이하고 있다...”
이 책은 흔한 여행기가 아닌 한 사람이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자기고해의 글이다. 길이라는 뜻의 카미노 12굽이 800km를 오로지 홀로 견디고 오르면서, 기어이 자신과의 화해를 통해 다시금 일어선다. 처음 순례의 시작부터 길을 쉬이 허락치 않았던 피레네산맥, 그리고 용서의 언덕 위에서 끝내 자신을 용서하며, 끝없는 고달픔 속에서 메세타대고원을 지나, 기어이 마지막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접어들 때의 그 감개무량함이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의 길에서 만난 길과, 풍경과, 사람들 모두 결국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나에게 다가온 소중한 인생의 선물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